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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늙음의 얼굴 지금보다 한참 젊을 때 인근 온천에 갔다가 단체로 오신 할배들의 참 거시기한 대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할배1 : 요새는 집에 할마이(부인)도 말을 안 듣고 젊은 다방 애들이나 어째 좀 거시기해 볼라 캤더니, 고것들이 애만 태우고 통 말을 안듣네. 할배2 : 갸들이 본래 뜸만 들이고 돈만 뜯어먹는다카이. 할배3 : 에이, 말도 마. 나도 갸들한테 갔다준 것만 해도 논 서마지기 값은 될끼다. 헐! 잠시 귀를 의심했다. 저것이 진정 저 쪼그러진 할배들사이에서 흘러나온 대화란 말인가? 그 때 나는 내가 남자라는 사실에 크게 절망했다. 나이들어 꼰대소리 듣지 않고 어른 대접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접은 커녕 천박하고 추한 늙음이 되지 않는 것만도 결코 쉽지 않다. 늙어서도 딸같고 손녀같은 젊은 여성..
내면과의 마주함 인도 히말라야 오지 마을에서 한 달 넘게 홀로 산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로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한 곳입니다. 며칠 둘러볼 일정이었는데 마침 산사태로 길이 막혔다기에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아예 눌러 앉아버렸던 것입니다.그곳은 영어도 잘 통하지 않고 TV나 신문 또한 없었으며 몇 안 되는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를 아는 이 없었고,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움푹 드러난 곳이라 이 세상과 완전히 고립되어 홀로 툭 던져진 느낌이었습니다.어렵게 구한 허름한 민박집의 현지 음식 외에는 먹을 것이 없었고 즐길 것 또한 읽을 책하나 챙겨가지 않아 그 첩첩 산골에서 나를 즐겁게 해 줄 문명의 이기는 그 어느 것도 없었으니 처음에는 결핍과 고립감으로 힘이 들었습니다.그러나..
선정에 들었다한들 오래전 미얀마 선원에서 수행할 때의 일이다. 당시 외국인 처소에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수행자들이 섞여 있었는데, 나라마다 문화와 관습이 다르다 보니 가끔씩 서로 이해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중 동남아에서 온 아주 착하고 순한 수행자가 있었는데, 감기인지 버릇인지는 몰라도 매일 새벽마다 처소주변에서 큰소리로 기침을 하며 침을 탁탁 내뱉었다. 새벽 세시에 기상하여 공양시간 전까지 법당에서 조용히 명상하는 시간이라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것 역시 훌륭한 공부거리거늘 아침시간에 고요하게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공부 초짜들은 내심 불평불만이 많았지만, 같은 수행자 처지라 대놓고 말은 못하고 뒷공론만 무성하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공양 후 잠시 외출을 하셨던 한 노스님께서 휴지를 잔뜩..
가장 소중한 것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별거 아닌 것들이 남들이 그렇게 가지고 싶어하는 가장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바쁜 사람들은 훌쩍 떠나는 이를 부러워하지만, 여행에 지친 방랑자는 온기나는 집의 소박한 밥상을 그리워 한다. 시골에 사는 사람은 도시의 화려한 불빛을 그리워하지만, 도시의 사람들은 시골의 한적한 흙냄새를 그리워한다. 자식이 속 썩인다 하지만 자식 잃은 사람의 슬픔만 하겠으며, 삶이 아무리 팍팍하다 한 들 병원에 누워 생사를 오가는 환자만큼이야 하겠는가? 오늘 이 순간 살아 숨쉬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신비하고 감사한 일이다. 석 달 간의 유랑 끝에 돌아와 차진 쌀밥과 시래기 국에 김치 하나 올려 놓으니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두 달 간의 유랑을 마치고... 예전에는 미얀마 선원에서 수행을 하고 인도에 가서 실참을 하는 식으로 여러 해를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순서를 바꿔 한 달간 유랑을 먼저 하고 한 달은 선원에서 보냈습니다. '마하시 위빠사나'에서 행선, 좌선을 한 세트로 하는 것에 착안하여 한 달간의 유랑은 행선처럼 하고, 한 달의 선원 생활은 좌선처럼 여기며 두 달간의 안거를 난 셈입니다. 유랑 생활에서는 외부 대상과 그것과 함께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림의 주공부로 삼았고, 선원에서는 자신의 몸(물질)과 마음(정신)에서 일어나는 형성표상들을 공부삼았습니다. 어떻든 이런 식으로 미얀마 '마하시선원'과 인도 등지에서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대여섯달씩 보낸 안거와 실참이 이번에 일곱번째이니 대략 '칠 안거'를 보낸 셈으로 재가수행자로서 이만한 홍복도 없습니..
마하시 선원 퇴소와 회향 미얀마 마하시 선원에서 약 한 달 간의 수행을 잘 마쳤습니다.짧은 기간이었지만 양심에 거리낌없이 팔계를 수지하고, 삼보의 거룩한 밥을 허투로 먹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본시 승속이 다르지 않고 절간이나 저자거리가 둘이 아니니, 그 모두가 마음이고 분별심일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속으로 왔지만 수행빨이 남아선지 생활의 방법적인 면에서 아직 많이 생소하고 멀리 느껴집니다.작지만 수행의 경험들 또한 어찌 없겠습니까만, 그것을 적절히 표현하기에 언어의 한계를 느끼며, 굳이 드러낼 의욕과 이익을 알지 못하겠습니다.다만, 수행처에서 있었던 그 모든 것의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좋았고 그저 고맙고 과분하게 감사한 나날이었다는 것, 그리고 수행의 공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고통받는 모든 분들께 회향하고저 하는 마음뿐입니다...
발길을 다시 미얀마 수행처로 그동안 잘 먹고 잘 놀았다. 1년 중 대부분을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으니, 한두 달 쯤은 스스로를 규율에 메어놓고 살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진정한 자유는 메어있으나 풀려있으나 그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법이고, '메임과 풀림'이 다 이름이고 마음일 뿐이다. 그러니 배낭 메고 다니는 것이나 선방에 틀어 앉는 것이나 실제로 다르지 않은 것인지 몸소 점검을 해 봐야 되겠다. 먹고 싶은 것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며 세속의 즐거움을 누렸으니, 욕구의 그 반대편에 서 보는 것은 또 얼마나 의미있는 일이겠는가? 세상은 송년이다 신년이다 떠들썩하겠지만, 이 물건은 그 반대 적멸의 방으로 간다. 이제 여행은 여기서 접고 곧바로 미얀마 행 비행기를 탄다. 지난 수년간 발 때 묻은 법당과 경행대가 있고 열반하신 스..
여행의 의미 여행지와 숙소를 2,3일에 한 번 꼴로 옮겨다니다 보니 늘 길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익숙해지고 정들 틈이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다. 자유로운 여행이니 한동안 눌러 앉을 수도 있으나 딱히 그러고 싶진 않다. 어차피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안정된 거처, 편안한 사람, 입에 맞는 음식과 편리한 환경 및 상황과의 결별이다. 이는 새로운 것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언제나 익숙한 것에 편안하고 편안한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변화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움켜쥐고 죽는 순간까지 놓지를 못하는 것이 범부의 삶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 어디서든 미련없이 떠나야 하는 여행은 좋은 공부의 하나이다. 늘 낯선 것을 만나야 하며 거기서 또 무언가를 해내야하기에 머물고 움켜쥘 것이 없는 것이다. 낯선..
과정이 공부이고 여행이다 배낭 메고 집 나온지 보름 남짓 되었다. 오는 날부터 감기 몸살이 꽤 심했지만 여행중 흔히 있는 일인지라 그냥 아팠을 뿐 큰 괴로움은 없었다.워낙 촌뜨기 빈농 출신이라 불가에서 금하는 음식 빼고는 무엇이든 잘 먹는 체질이니, 어느 나라에 가든 현지 음식에 바로 체적화되니 이것도 타고난 복이다.참 자유로운 여행이지만 혼자 개척해 나가는 여행이 쉽지만은 않다. 특히, 장거리 이동에서 버스와 택시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늘 번거로운 일이다.좋은 구경하며 먹고, 놀고 즐기자는 여행에서 불편은 곧 불만이다. 그러나 뭔가 이해하고 통찰하고자 하는 여행자에게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배움이고 여행 그 자체이다.무엇보다 여행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본다. 목적과 기대에는 실망과 좌절이 있지만 과정에 의미를..
길을 떠나며 늘 짐을 쌀 때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이지만 막상 길을 나서면 깃털처럼 가볍고 새처럼 자유롭다.몸뚱이 하나 의지하기 위한 살림살이 달랑 배낭하나면 그만인데, 한 번 갈 때 숟가락 하나 들고 가지 못하는 살림살이 지천에 늘어놓고 살았다.마음은 그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어 길 나서면 천하가 내 집인 것을 앞 마당을 우주로 삼아 희로애락을 누렸구나!실오라기 하나도 펼치면 온 법계에 가득하고 거두면 티끌조차 없는 것이거늘.... 집에 있을 때는 들판의 바람소리에 이끌리고 길 위에 서면 따뜻한 방에서 풍겨나는 된장찌개가 그리운 게 중생의 마음이나,본시 이 물건은 정체가 없는 놈이니 바람처럼 구름처럼 기약없이 떠돌다 보면 산이든 들이든 처처에 꽃 필 날 있으리.기대했던 곳에서는 실망하고 시시한 곳에서는 탄성을 지르..
다시 길 위에 추수를 끝낸 텃밭이 텅 비었다. 애초에 빈 것이었는데 작은 씨앗 하나가 영양과, 온도와 토양이라는 조건을 원인으로 싹을 틔워 온 밭을 가득 채웠었다. 꽃을 피워 보기에 좋았고 열매를 맺어 넉넉히 먹을 것을 내어 주더니 스스로를 노랗게 물들이고 미련없이 산화했다. 한 세월 잘 살았다. 지구별 한 귀퉁이에 씨앗을 뿌리고 열매가 맺었으니 그것이 나의 삶이고 수행이고 안거였다. 우주만물이 인과로 순환하듯 내 삶의 끝도 그러하리라. 선방은 안거에 들고 이 물건은 이제 바랑하나 짊어지고 만행을 떠날 차례다. 머뭄에 집착없고 떠남에 두려움없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렇게 가면 그만이다. 돌아오는 봄, 나 없는 내가 간적도 온적도 없이 돌아와 일없이 꽃이 피고 새가 울며 열매가 맺어지이다. namo tassa bhagav..
소음과 마음의 반응들 ​ 사람마다 같은 문제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게 있고 지나치게 힘들어 하는 것이 있다. 비교적 여행하기 어렵다는 인도를 아홉번에 걸쳐 도합 삼년 가까이 여행하면서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다. 가령, 지극한 더러움, 혼이 달아날 것 같은 혼잡함, 끈질긴 삐끼와 사기꾼, 파리가 들끓는 식당에서의 식사, 쥐가 드나들던 싸구려 숙소, 기차의 무제한 연착, 장사치들의 능청스런 거짓말 등은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내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소음이었다. 인도 어디를 가나 정신없이 울려대는 자동차와 오토릭샤의 경적과 오토바이 굉음, 귀청이 떨어질듯한 음악소리, 새벽녘이면 골목에 몰려다니는 개떼들의 울부짖음 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콜카타의 '서더 스트리트' 주변 숙소는 어디나 시끄러우나, 내가 가장 오..
종노릇 하지 말고 촌야에 묻혀 보고 듣는 것이 적으니, 무엇이든 줄어들고 단순해진다. 먹고싶은 것이 줄어들어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생각이 적어지고 하고싶은 일이 줄어들어 주어진 일에 대해 좋고 싫음이 없어진다. 이런저런 욕망이 줄어드니, 풀벌레 소리도 정겹고 햇살 한 자락에도 감사함이 느껴진다. 없어지는만큼 무언가 채워지는데, 그것은 사소하고 아무 맛도 없는 것들이지만 실은 참 맛있는 것이다. 남은 욕망들 잘 달래면서 종노릇 하지 말고 살아야겠다.
일상의 흐름 속에는 텃밭을 살피다가 차 한잔을 놓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본다. 온갖 새소리와 개짖는 소리, 경운기 소리, 마늘 장수 스피커소리....이른 봄 작은 점하나 씨앗이던 것들이 형체가 생겨나 이제는 밭을 가득 메웠다. 푸짐하게 먹을 거리를 내어주던 열무와 쑥갓은 화사한 꽃으로 변해 있고 그 사이로 나비들이 춤을 춘다.모든 존재가 살아있다. 살아있음을 노래한다. 그 노래는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고 끊임없이 생멸하고 있다.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사람과 꽃속을 분주히 드나드는 벌이며 잽싸게 싹트는 콩을 뽑아먹는 비둘기며 푸성귀에 붙어있는 벌레들까지 실은 애쓰지 않는 것들이 없다.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이 모든 순환의 고리들이 눈물겹다. 그러나 풍경은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행복 행복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리고 그 반응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기쁜 일은 나누면 배가 되니 멋진 여행지나 맛있는 음식 앞에서, 반가운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인증샷을 찍고 그것을 알리면서 행복을 누리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합니다.그러나 나누기 위한 것이라면 일단 그것을 충분히 즐기고 나서 알려도 늦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나의 행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주관적 경험을 중시하고 행복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알리는데 마음이 팔려 행복한 순간을 놓치지는 않을 것이며, 실재적 행복이 아닌 머리속에 규정해 놓은 관념적 행복을 더 즐기지는 않을것 입니다.남들이 행복이라 여기는 것들에 동참하여야 행복하고 또 그것을 인정받아 행복한 ..
상경 30년을 살았건만 석 달 만에 올라온 도시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기분이다.이런저런 용무를 마치니 서울에 오면 꼭 연락하라는 여러 지인들이 잔영처럼 스친다.남겨 둔 주머니 속 동전 몇 잎을 만지작거리듯 몇 차례 생각을 더듬었지만 너무 낡은 기억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내 행복에 기여하기엔 너무 먼 길을 왔고, 그들의 행복에 기여할 예전의 자아는 또 몇 잎이나 남아 있던가? 애써 관계를 유지하고 그 속에서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이제 너무 낯설다. 새들이 찾아와 노래하면 그 뿐, 나무는 새들을 찾지 않는다. 번거로운일 만들지 않고 굳이 자신을 드러낼 일 없으니 애쓰지 않아 좋고, 재주없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한가해서 좋은 시절이다.서둘러 내려가자. 내 낡은 사회적 자아의 무덤이자 무한자유의 숨결..
행복 《행복》행복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리고 그 반응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기쁜 일은 나누면 배가 되니 멋진 여행지나 맛있는 음식 앞에서, 반가운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인증샷을 찍고 그것을 알리면서 행복을 누리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합니다.그러나 나누기 위한 것이라면 일단 그것을 충분히 즐기고 나서 알려도 늦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나의 행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주관적 경험을 중시하고 행복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알리는데 마음이 팔려 행복한 순간을 놓치지는 않을 것이며, 실재적 행복이 아닌 머리속에 규정해 놓은 관념적 행복을 더 즐기지는 않을것 입니다.남들이 행복이라 여기는 것들에 동참하여야 행복하고 또 그것을 인정받아 ..
자유로운 삶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더욱 친해진 친구가 있다.그는 건축현장에서 거친 일을 해 왔고 학벌은 중졸이며,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으로 손수 지은 조그마한 집에 살고 있다. 그는 군말이 없다. 아주 직선적으로 내 뱉는 말은 투박하기 짝이 없다. 때론 능청스러운 농담과 역설로 사람들을 배꼽 빠지게 하기도 한다.정치나 사회문제에도 나름 안목이 있어 촌철살인의 논평도 시원하게 내 갈긴다. 독설도 서슴치 않으며 대놓고 바른 말을 해도 사람들은 크게 게의치 않는다. 원래 그런 놈이기 때문이다.그 나이에 홀아비로 사느냐고 핀잔을 주면 장가는 못간게 아니라 안 간거고, 연애는 결혼한 네 놈들보다 더 많이 했다고 우기는데 확인할 바는 없다. 자기가 총각이니 처녀라야만 결혼을 하겠다는데 확률은 아주 낮아 보인다.산에서 손수 딴..
수행(修行) 《수행》당연하다고 믿는 것이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심지어 옳다고 믿는 것들까지 진지하게 숙고하고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이런 것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개인의 만족과 행복의 근간이며 바른 길로 나아가기 위한 지표가 되기에 삶에 필요한 것이지만,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들은 내면에 깊이 조건지어져서 사사건건 자신과 남을 재단하는 낡은 잣대이자 칼이 되며 스스로를 옭아매는 틀이 되고 상대를 미워하고 배척하는 근원이 된다.늘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모든 대상으로부터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림으로서 그것이 어떤 조건지어진 틀에서 형성된 것인지 그것이 어떤 패턴으로 작용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나아가 그 조건 지어진 틀이 진정으로 타당한 것인지 그것으로 인해 어떤 감정이 오고가며 과연 나와 타인에게 유익한..
인생열차 인도의 기차만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 있을까? 한 기관차가 끌고 가는 여러 등급의 객차는 인도 사람들만큼이나 특색있다. 먼저 상위등급인 AC칸은 좌석이 깔끔하고 넓직하며 사람들 생긴 모습부터 다르다. 피부색도 대체로 희고 차림새도 좋으며 말 수가 적고 제법 점잖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며 나름 교양이 넘치는 사람들이 타는 이 칸은 조용한 분위기에 영자신문을 턱 하니 펼쳐들고 카스트 축에 들지도 못하는 외국인 따위는 아는체도 않는다. 반면, 중간 클래스인 SL칸은 온갖 인간군상들의 전시장이다. 수시로 창문을 두들기는 잡상인과 걸인들을 응대해야 하고, 절도에도 신경써야 하며 바퀴벌레와도 친하게 지내야 여행이 즐겁다. 볼 일 보러 가면 화장실 문화에 익숙치 못한 인도 서민들이 간혹 반대로 앉아 ..
삶이란 산골에 틀어박혀 세상 일 잊고 한가하게 있지만 이런것이 최상의 삶이라 여기고 안주하지 않으며, 아마 앞으로도 또 불현듯 배낭을 싸서 훌쩍 어디론가 떠나갈 것이다. 은퇴하고 지난 6년간 가장 오랜시간을 보낸 인도, 그리고 그 곳 빈곤과 혼돈의 도시 캘커타는 지금의 이 고요와 안빈의 삶을 뒤 엎어 버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돌아보니 지금껏 그곳에서 만나고 접한 사람들은 내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으며, 그들과 함께한 삶의 면면은 늘 마음 한 켠에 그림자처럼 남아 나태한 생활에 경책을 준다. 비하르 주 빈촌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노점 짜이집에 종일 일하면서도 웃음과 장난기를 잃지않은 12살 소년, 나는 매일 아침으로 먹을 삶은 계란을 사러가서 소년과 팔 씨름을 하며 히히덕 거렸고, 정확히 밤 9시 10분이면 어김..
일장춘몽 요즘 아침마다 단상에 올라 부대 사열을 한다. 나의 장병들은 텃밭에 도열해 있는 여러 작물들이고 사열 지휘관은 마당에 놓인 물뿌리개이며 군악대는 각종 새소리이다. 부대 깃발은 작물마다 붙인 푯말이고 단상은 현관앞 발코니이다.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진 나의 휘하 부대를 아침마다 도열시켜 경례를 받고 각 부대 장병들의 사기를 점검한다.지난 가을에 창설된 마늘부대는 겨우내 사단장의 해외순방으로 인한 사기 저하로 동장군 부대와의 전투에서 대패하여 살아남은 놈이 몇 되지 않는지라, 며칠 전 상추부대원을 대거 전입시켜 보충하였다.또한 놀고 먹는 건달부대를 만들기 위해 제멋대로 잘 큰다는 땅콩부대를 최근 신설하였으며, 해마다 반복되는 부대신설도 귀찮은 노릇이라 몇 년 씩 그냥 내버려 둬도 된다는 도라지, 더덕 등의 ..
촌야에 묻혀 어젯밤 일찌기 대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로 향하는 매체인 tv, 핸드폰을 끊고 마음마저 끊었다. 그리곤 전등을 모두 끈 채 마당에 의자를 놓고 비스듬히 누워 달구경을 하였다. 고요하고 적막한 가운데 상현달처럼 약간 모자란 기쁨이 동무로 찾아와 같이 즐기고 놀았다. 촌야에 묻혀 세상을 잊으니 구하지 않아도 덤으로 오는게 있고, 남들이 가진 것을 포기하니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얻을 수 있어서 참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할 일은 저절로 찾아오고, 재미를 찾지 않으니 재미있는 것도 없고 재미없는 것도 없다. 이른 아침 대문을 여니 낮으막한 앞산이 마실을 오고 맑은 새소리 손님을 맞는다.
무제 요즘은 딱히 쓸 글이 없다. 산골에 묻혀 일없이 사니 특별한 생각과 감상이 없어 글을 쓸만한 재료도 도구도 없다.홀로 있어도 외로움이 없으니 '내 말 좀 들어주세요' 라며 외칠 일도 없고, 굳이 외부의 대상에게 나의 내면과 포장지를 열어 공감받고 싶은 욕구도 없다. 학식과 수행이 높고 헌신적인 인류애와 봉사심을 갖춘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싶은 마음도 전혀없고, 실제 그렇지도 않으니 입만 뻥긋하면 헛말 일 뿐이다.크고 고귀한 깨달음과 지혜가 없으니 사람들을 향해 목청높여 일갈 [一喝] 할 일도 없고, 세상일을 놓아버렸으니 죽이든 밥이든 하루 두끼 이상 먹으면 됐지 감놔라 배놔라 할 일도 없다.굳이 바깥에서 구하지 않아도 속이 허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 역시 자기 주장과 방식대로 잘 ..
텃밭을 일구며 집 짓느라 방치해 둔 자갈밭을 일구었다. 삽으로 땅을 파고 돌을 골라냈다. 기계를 쓰지 않으니 고요한 가운데 새소리와 달그락 거리는 삽질소리 뿐이다. 급할 것도 없고 목표도 없으니 삽질 몇 번하다 숨차면 하늘보고 먼 산을 본다. 그리곤 들마루에 앉아 모처럼 내리는 귀한 봄 햇살을 맘껏 쬐어본다. 전형적인 건달일이라 농사많은 분들께는 미안한 노릇이다. 수행하는 사람이라 자처하니 자고 일어나서 잠들 때 까지 마음을 들여다 본다. 밥을 먹으면서도 삽질을 하면서도 화장실에 앉아서도 일어나는 마음들을 본다. 눈깜박하는 사이 놓쳐버려 구만리 장천을 헤매는 마음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마주치는 대상들이 조건지어진 마음을 만나 비교하고 판단하며 상을 만들어 낸다. 허공에 그려지는 그림같은 마음들이 손님처럼 왔다가 알아..
백수일기 한국에 돌아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행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더욱 격렬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먹고 싶었던 차진 쌀밥에 쪽쪽 찢은 김장김치와 된장찌개를 실컷 먹었고 떡국과 더불어 누가 주지도 않는 나이도 자진해서 한 살 더 먹었다. 추운 날은 백수 공식 유니폼 츄리닝 차림으로 배추전 한 쪽 붙여먹고 온수매트 위에서 여러가지 자세로 엑스레이 찍기 놀이를 하다가 노는 입에 염불하듯 행선도 하고 좌선도 했다. 참, 좋~다. 찾는이 없어 고요하고 적막하니 마음도 그와 같아 다만 그것을 즐겼다. 관계에서 벗어나 오롯이 있으니 텅비고 충만하여 딱히 무엇으로 채울 것이 없다. 한 생각마저 사라지니 여여하고 여여하다. 평생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열심히 하겠다는 칼날같은 결심을 하고 닥달하며 살았으니..
진정한 자유란 ​ 이번 여행에서는 페북에 쓸 글 조차 제대로 떠 오르지 않았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도무지 쓸 것이 없었다. 매일 관광하고 맛집 찾아 다니고 밤에는 마시지 샵에다가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으면서 술자리에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 여행 전문 가이드는 공식일정 끝나면 쉬기라도 하지만, 먹고 자고 즐기는 모든 일정을 함께 해야했다. 보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 없으니 글 쓸 것이 없는 건 당연한 것이다. 대신 잘 먹고 편하게 다니고 있다. 10여년의 내 여행 경력 중 이번여행에서 제일 좋은 숙소에 제일 좋은 음식에 제일 편한 교통 수단을 이용했다. 나와 다르다고 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 강물에 요강단지 비우듯 조건지어진 것에서 일어나는 마음들은 비워 버리면 그저 하나의 물일 뿐이다. 잘 난 체 해..
두 달 간의 방랑을 마치고 직장을 접고 명상과 봉사, 여행 등을 핑계로 인도와 미얀마에서 보낸 대부분의 시간은 참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특히, 오랜 시간을 보낸 캘커타는 최고의 더러움과 혼잡함, 시끄러움, 빈곤이 뒤섞여 있는 도시였지요.거기서는 의, 식, 주에서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하려했습니다. 입는 것은 길거리 난전에서 일이천원짜리 헐렁한 바지에, 먹는 것은 노점에서 단품 볶음밥이나 인도빵으로 해결했습니다자는 것 역시 시멘트 바닥에 야전 침대같은 것이 놓여 있고 가끔 바퀴벌레가 들락거리기도 하는 5,6천원 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지내면서 하루 만원 남짓으로 생활했습니다.물론, 때로는 여행자 식당에서 인도 난에다 3,4천원하는 치킨커리를 먹고 인도영화도 보러가고 마트에서 요플레나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미얀..
마하시 명상센터로 오늘은 야간 버스로 양곤의 마하시 명상센터로 갑니다. 이번엔 일정이 짧아 수행의 진전보다는 비록 여행중이지만 연말연시를 좀 차분하고 법답게 보내자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부처님 법이 계시고 계행을 지키며 수행의 길을 묵묵히 가시는 스님들과 선우들, 열반하신 스승의 가르침과 수행의 추억이 있는 그 곳에 마치 친정집을 가는 것처럼 기쁨이 앞서 갑니다. 짧은 입소지만 '팔계'를 수지하고 오후불식하며 아무것도 바람없이 '나'라는 이 물건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살펴 보겠습니다. 비록, 재가자이지만 살면서 이렇게 수행할 수 있는 인연을 만난 것이 참 기쁘고 다행한 일입니다. 그것의 처음과 중간과 끝이 모두 행복한 것이기에 더불어 즐기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시길. .. . _()_
마하시선원 퇴소와 회향 그리고 만행 가끔씩 세상과의 연결고리와 감각적 욕망을 끊어버리고 당연시하던 습성을 바꿔보는 것도 참 좋은 일인것 같습니다. 늘 끼고 다니던 핸드폰을 끊으니 고요하고 적막해서 좋고, 오전 10시30분 점심공양 이후 적용되는 오후 불식도,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짧은 수면도 아직 수행 습성이 붙어있어 쉽게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금욕 생활이 주는 가장 큰 보람은 세속의 생활이 얼마나 동물적 본능과 반복된 습성속에서 살아가는지를 관조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음식과 수면을 절제함으로써 얼마나 먹고 자는 일에 충실했는지를 알 수 있고 통신을 끊음으로 얼마나 관계에 집착하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여행 중에 들른 짧은 수행 기간이었지만 모든 것의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좋았습니다. 친정집 같은 수행처의 법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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