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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텃밭을 일구며


집 짓느라 방치해 둔 자갈밭을 일구었다. 삽으로 땅을 파고 돌을 골라냈다. 기계를 쓰지 않으니 고요한 가운데 새소리와 달그락 거리는 삽질소리 뿐이다.

급할 것도 없고 목표도 없으니 삽질 몇 번하다 숨차면 하늘보고 먼 산을 본다. 그리곤 들마루에 앉아 모처럼 내리는 귀한 봄 햇살을 맘껏 쬐어본다. 전형적인 건달일이라 농사많은 분들께는 미안한 노릇이다.

수행하는 사람이라 자처하니 자고 일어나서 잠들 때 까지 마음을 들여다 본다. 밥을 먹으면서도 삽질을 하면서도 화장실에 앉아서도 일어나는 마음들을 본다. 눈깜박하는 사이 놓쳐버려 구만리 장천을 헤매는 마음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마주치는 대상들이 조건지어진 마음을 만나 비교하고 판단하며 상을 만들어 낸다. 허공에 그려지는 그림같은 마음들이 손님처럼 왔다가 알아차리면 안개처럼 사라진다.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멈추고 오직 고요한 가운데 거기 그 이름이 삽질, 밥먹음, 햇살인 것들만 있는데, 있다는 것마저 이름일 뿐이다.

바람불고 비오다가 느닷없이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도, 맑고 따신날도 다 봄이라는 계절이 가진 속성이며 인과이리라.

변화와 조건없이 오는 봄은 또 얼마나 나른하고 무미건조할 것인가? 봄을 기다리지만 이미 봄은 코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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