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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무상(無常) 여기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개발해 세계적인 부호가 된 스티브잡스(Steve Jobs, (1955~2011)가 불과 56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 위해 병상에 누워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가 있다. 비록 범부이기는 하나 그의 말 속에 무상과 공의 개념이 깊이 묻어있다. I reached the pinnacle of success in the business world.나는 사업에서 성공의 최정점에 도달했었다.In other's eyes, my life is an epitome of success.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 삶이 성공의 전형으로 보일 것이다.However, aside from work, I have little joy. In the end, wealth is only a fa..
작은 기적, 민생의 성자 - 송태경의 사회적 사랑 ► 민생연대 홈페이지 : http://www.minsaeng.org 작은 기적, 민생연대 해산철회 및 유지결정 이제껏 살아오면서 어제 오늘처럼 미안하다, 죄송하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적은 없습니다. 그동안 ... blog.naver.com 이제껏 살아오면서 어제 오늘처럼 미안하다, 죄송하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적은 없습니다. ​ 그동안 민생연대를 후원하지 못해 미안하다, 너무 조금밖에 후원해주지 못해 죄송하다,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줘서 고맙다. 지난 일요일 JTBC 뉴스에서 민생연대 해산관련 인터뷰 기사가 나간 이후, 많은 분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제게 해주신 얘기이고,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제게는 감동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해산을 기정사실로 해야 했던 민생연..
잃어버린 마음 찾기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곧 찾을 줄 아나, 잃어버린 마음은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 뿐이다. - 맹자 우리의 행복은 집착한 것을 내것으로 만들었을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는 그 마음을 포기할 때 비로소 찾아온다.
가난한 수도승의 방 프란치스코의 가난한 수도승 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것은 20대 때 부터였을거다. 어쩌면 아버지의 기도 때문 인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이 장녀를 까르멜 봉쇄 수도원에 보내려고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도 나무묵주가 나른해지도록 기도 하셨고 나는 아버지의 기도를 깨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별을 거듭 하면서 마흔이 넘어서야 딸 하나를 낳았고 이제 그 딸이 서른살을 훌쩍 넘겼으니 시간이 유수처럼 흘러버렸다. 내가 오십이 되어서 못내 못내 수도승이 되지 못 했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수도승의 옷이라도 입고 싶어서 바느질을 시작 했을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수도승들이 입는 발목까지 닿는 긴 통자루옷과 허리를 묶는 매듭이 필요해서 내 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수도승의 옷은 파는 곳이 없었으므로 — 그렇게 광목으로 옷을 지..
바깥 음식을 안 먹게 되면 믿기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바깥 음식을 안 먹게 되면 삶이 참으로 단촐해지고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대로 방향 잡기가 쉬워진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수 있다. 먹을수 있는 음식이 제한적이 될때 내가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과 실제로는 없어져도 살아가는데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이 생각보다 실제로는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삶을 단순하게 가볍게 살고 싶다면 자기 손으로 손수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살림을 잘 사는 생활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지름길 이다. 돈 버느라 지쳐 빠져서 살림이 엉망진창 일때 나는 불행 했고 우울 했었다. 돈 버는 일 보다 돈을 적게 쓰고 돈 버는 일로 낭비 되었던 시간과 생각과 돈의 에너지가 절약되니 내 삶의 질이 깊어졌고 자존감이 커져 갔으며 ..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연설 2005
친구 이야기 - 박인수 친구 이야기 - 박인수 많지 않아도그리고 자주 만날 수 없어도나에게 친구가 있음은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멀리 있어도가만히 이름 불러 볼 수 있는친구가 나에게 있음은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내 좋은 친구를 만날때면웃음마다 봄날 기쁨입니다보고픈 친구를 생각할때면그리움은 잔잔한 행복입니다
내일의 해는 다시 뜨는 법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어느 노인의 고백 하루 종일 창 밖을 내다보는 일이 나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누가 오지 않아도 창이 있어 고맙고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벗이 됩니다. 내 지나온 날들을 빨래처럼 꼭 짜서 햇살에 널어두고 봅니다.바람 속에서 펄럭이는 희노애락이 어느새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네요. 이왕이면 외로움도 눈부시도록 가끔은 음악을 듣습니다. 고요하고 고요하게 하나의 노래처럼 한 잎의 풀잎처럼 사라질 수 있다면 난 잊혀져도 행복할 거예요. 한 폭의 그림같은 글이할머니의 인생이 담긴 글씨와 만나니어머니가 남겨주신 편지처럼귀하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 이해인 수녀님
하늘이 내린 천사 백영심 간호사 “상금 4억원은 아프리카에··· 내 옷값은 1달러짜리 구호품... ″ 1990년 9월, 김포국제공항 출국장. 당시 28세이던 백영심 간호사가 아프리카 케냐로 의료 선교를 떠나던 날이었다. 돌아올 날은 정해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공항 바닥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백 간호사는 2남 4녀 중 셋째 딸. 제주 조천읍 함덕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제주에서 마쳤다. 자식을 육지로 내놓는 일만 해도 조마조마했는데, 그 귀한 셋째 딸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프리카로 간다니···. 백 간호사를 아프리카로 파송했던 한국 교회조차도 그가 금방 돌아올 줄 알았다. 처음엔 정식 선교사 월급 대신, 교회 청년들이 모아준 300달러(약 36만원)와 병원 퇴직금을 가지고 떠났다. 하지만 백 간호사는 아프리카에서 ..
피안彼岸에 다다르다. 질풍노도의 시간을 통과하고 이제 피안에 다다랐다. 칠흑같은 어두움을 뚫고 들려오는 새소리와 개구리 소리 벌레소리 고라니소리 등. 등 밤에도 지저귀는 새들이 있구나. 인생사 모든 것을 몸소 다 경험해 보고야 말겠다는 굳은 소원을 가지고 이번 생으로 건너 왔나보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였다. 아마 30대 중반 이었을게다. 그때부터 내가 이번 생에 어떻게 살려고 했는지 짐작이 되기 시작 했다. 내 인생의 퍼즐 조각들이 전체 그림의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 이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실연. 배반과 좌절. 빛과 어두움. 희망과 염세. 이 모든 것이 뒤엉켜 혼란스럽던 10대와 20대를 통과 하면서 불꽃으로 내 살갗을 스스로 태우기도 해 보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방랑을 하기도 했었다. 이제 못..
우주의 법칙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부산 남산동 남산고등학교 올라가는 사거리 요리학원 골목길에 생식가게가 있었다. 우연히 들렀던 그 가게 주인은 그당시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물이 훤출한 남자 였다 외국어 대학 불문과를 나와서 잘 나가는 증권회사에서 일하다가 IMF 사태를 맞아 졸지에 거리에 나 앉게 되었다가 예기치 않게 기공을 만나 수련자로 살아가는 인생의 전환을 맞은 사내였다. 역시 예기치 않았던 인연으로 그 당시 부산대학에서 중국어문학을 가르치던 서모교수와 함께 그 사내와 기공수련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한 일년 정도 함께 수련을 하면서 파륜공을 만나 파륜공 수련을 하기도 했다. 파륜공의 에너지는 그 어떤 수련법보다도 막강했다. “ 언젠가는 피부병으로 사람들이 죽어 갈 것이고 그 다음에는 감기 같은걸로 수많은 ..
홀로 있을때라야 홀로 있을때라야 더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들을수 있기에 나는 홀로 있을 시간을 애써서 마련한다. 이 소리는 내가 가장 신뢰할수 있는 깊은 침묵의 시그널 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물론 충만하고 아름답지만 깊은 울림을 만질수는 없다. 내면 깊은 곳에서 떠 오르는 기억들과 진실은 거짓됨의 가면을 벗기고 참 모습으로 다가 온다. 때로는 얼굴을 돌리고 싶을때도 있지만 진실은 그 너머에 숨겨져 있고 좀 더 깊게 탐색을 해 들어가야만 만날수 있다. 나는 이 것을 신의 목소리라고 여기고 이 만남을 신과의 만남이라고 명명한다. 이 만남은 명징하고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세상은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고 법칙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이며 법칙을 이해하..
살림의 묘미 살림의 묘미를 살려내는 기술은 질서와 깨끗함이다. 깨끗함을 유지하고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너무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아야 한다. 그 구심에서는 흔들림 없는 안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살림의 묘미는 적절한 가성비가 있어야 한다. 젊었을때 수십년간 먹이를 계속해서 공급해야 했을때는 살림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 사냥과 살림의 균형과 조화가 이그러지면 온전한 생명활동이 유지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기우뚱 거리면서 생명력을 소진하다가 이제서야 원심과 구심의 적절한 궤도 안에 들어 왔고 매일 매 순간 바쁘지 않게 살림사는 묘미를 살려내고 있다. 매일의 질서와 깨끗함을 잘 유지하려면 물건을 줄이고 일거리를 줄이는 것이 상책이다. 구석구석 쌓이는 먼지를 털어내기 쉽게 구석마다 여백이 있어야 하고 딱 필요..
내 인생을 사는 세 가지 깨달음 나는 오십대가 된 어느 봄날, 내 마음을 바라보다 문득 세 가지를 깨달았다. 이 세 가지를 깨닫는 순간,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지는가를 알게 되었다. 첫째는, 내가 상상하는것 만큼 세상사람들은 나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보통 사람은 제각기 자기 생각만 하기에도 바쁘다. 남 걱정이나 비판도 사실 알고 보면 잠시 하는 것. 그렇다면 내 삶의 많은 시간을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걱정하면서 살 필요가 있을까. 둘째는, 이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줄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다. 내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줄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모두가 나를 좋아해..
서울을 떠나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예기치 않게 무려 두달 넘어 청도 수월리에서 자가유배를 즐기다가 어제 저녁에 상경 했다. 어디에서나의 루틴대로 어김없이 새벽 3:30 분에 깨어서 한시간 반동안 명상을 했다. 절에서는 새벽예불이라 할거고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새벽기도라 할 것이다. 엄마 아버지의 기도 모습을 보면서 자란 나에게도 형태는 다르지만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을 평범한 일상이다. 어제 청도를 떠나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오는 동안에 차창에 어둠이 스치듯이 많은 회상들이 스쳐갔고 연희동의 숙소에서도 뭔가 아슴프레한 기억들이 밀려 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 회상들은 해변 언저리에 살며시 밀려 왔다가 자잔한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로 흡수 되는 과정을 끝 없이 되풀이 하는 파도처럼 의미 없이 왔다리 갔다리 되풀..
'나'라는 존재 사위가 고요하고 물이 깊어지고 명징해 졌을때 손을 넣어 무심하게 한번 휘~젓기만 해도 가라 앉아 있었던 쓰레기들이 떠 올랐다. 샘을 여러번 청소했으므로 둥둥 떠다니는 쓰레기는 없다고 여겼다. 물이 맑고 고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물이 조금 흔들렸을 뿐인데 가라앉아 있는지 몰랐던 자잘한 부스러기 같은 이물질들이 계속 떠 올랐다. 그 이물질들은 지푸라기이거나 날카로운 금속 조각 일 때도 있고 미끌거리는 이끼가 낀 돌멩이 일 때도 있었다. 내 인생은 어찌보면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고, 어찌보면 드라마도 그런 대하 드라마가 없다고 여겨질 만큼 온갖 크고 작은 사회적 개인적 사건들과 격변의 이랑에 휩쓸려 왔다. 정신을 차리려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야 할 때도 있었다. 만약에 내 삶의 터전이 안전했고 오랫동안 등..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의술과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고령화 시대가 도래했지만 태반의 사람들이 노후준비에 소흘하다고 대두되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책임주의하의 사회에서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겠으나 자칫 방치하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점을 일으킬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이는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노후준비”라는 용어만큼은 귀에 익숙하고, 노후준비를 위해 라이프사이클과 저축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 대비하여야 함을 알고 노력하거나 걱정이라도 한다. 하지만 “죽음준비”라고 들어보았겠는가? 죽음준비라는 말 자체가 처음 들어보는 용어일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준비한다고 하면 자칫 비관적인 사람, 염세주의에 물든 사람 등등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결코 회피할 수 없고 너 ..
산다는 것은 어느정도 내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되기까지 무려 20여 년이 걸렸다. 번뇌망상이 내 삶을 칡 넝쿨처럼 칭칭 감아서 내 삶이 그토록 고달프고 괴롭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1997년 겨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씩 잘라내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정리정돈이나 청소를 내가 원하는만큼 깨끗이 못 하는 줄 알았고 내가 게을러서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살던 어느 날.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이 추려져서 생존하기에 꼭 필요한 몇가지만 남긴다면 내가 원하는 만큼 정결한 삶을 살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어왔다. 나는 내 머리속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현실화 되지못한 쓰잘데 없는 지적 욕망부터 처리하여서 나의 뇌를 소제하고 휴식을 주는게 절실하다고 느꼈다. ‘앎’이란 실제로 그렇게 ‘삶’에 적용하므..
단순하고 소박한 삶 20여 년 전만 해도 미니멀리즘 같은 용어는 있지도 않았던 시절.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겹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로부터 약간의 도움이라도 얻기는 커녕 꽤 많은 부채를 물려받아 시작한 사회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맨주먹으로 시작해도 자리잡기 어려운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기초자본금 없이 살아가는 자영업이란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일일 일용직과 다를 바가 없다. 벌어서 임대료 내고 코딱지 같은 홍보비 내고 한두 명 직원 월급 주고 세금 내고 나면 그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이다. 가장 마지막까지 떼어 먹는 게 세금일테고. 임대료 밀리면 시설비는 하나도 못 건지고 다른 곳으로 밀려 나가야 한다. 서른 살에 엄마로부터 떠밀려서 운영해야 했던 요리학원은 씨앗 빚을 감당하지 못한채 이자만 겨..
시각정보가 뇌에 전달되는 시간은 찰나 눈을 속이면 뇌는 비치는대로 반응 한다. 어느 것이 진실인가? 수정체를 통해 들어온 사물의 스케치가 망막 스크린에 비추어져 시신경을 거치고 중추신경을 통해 시각피질에 도달하고 뇌의 중심부가 이 사물의 정체를 판독해 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찰라다. 내가 보고 있는 모든 사물은 느끼는 순간 이미 찰라로 미끄러져 사라져간 과거의 잔상일 뿐이다. 실제로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언제나 속임수에 지나지 않으며, 나는 수시로 그림자를 보면서 현재라고 기만 당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한다고 믿는 그것이 사실은 그림자일 뿐인데도 나는 그 환상을 붙잡고 늘어져야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러한 마야에 도취되는 순간들을 붙잡고 좋아하는 이 어리석음을 벗어던지고 싶진 않다. 벗어 던져 버리기에는 안타까울 만..
세상 모든 것은 신기루 같은 것 눈을 속이면 뇌는 비치는대로 반응 한다. 어느 것이 진실인가? 수정체를 통해 들어온 사물의 스케치가 망막 스크린에 비추어져 시신경을 거치고 중추신경을 통해 시각피질에 도달하고 뇌의 중심부가 이 사물의 정체를 판독해 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찰라다. 내가 보고 있는 모든 사물은 느끼는 순간 이미 찰라로 미끄러져 사라져간 과거의 잔상일 뿐이다. 실제로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언제나 속임수에 지나지 않으며, 나는 수시로 그림자를 보면서 현재라고 기만 당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한다고 믿는 그것이 사실은 그림자일 뿐인데도 나는 그 환상을 붙잡고 늘어져야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러한 마야에 도취되는 순간들을 붙잡고 좋아하는 이 어리석음을 벗어던지고 싶진 않다. 벗어 던져 버리기에는 안타까울 만..
나의 영혼은 나의 영혼은 저 먼 곳. 지구별의 중력을 넘어선 우주 저 너머 비물질 세계의 니르반담에 거하는 무한극소 한점의 빛이며 영혼들의 씨앗인 그분께 속하는 비물질적인 무한극소의 한 점의 빛이다. 이 빛이 햇살처럼 세상으로 내려와 가이아의 중력에 이끌려 들어와서 물질 원소들의 협조를 얻어 휴먼~빙. 생명이 되었다. 나의 영혼은 비욘드 월드 침묵의 나라. 평화의 나라에 속하고 나의 육신은 다섯 가지 물질 원소의 화합으로 몸을 이룬다. 내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 내 몸은 분해 되어 다섯 가지 원소로 되돌려 진다. 내 몸은 색 이었다가 공이 되고 공 이었다가 색이 되며 끊임없이 영원히 순환된다. 아톰은 물질로 현현 되기도 했다가 다시 극소의 아톰으로 되돌려지면서 질량불변의 움직임으로 지구와 행성들을 출렁거리게 한다. ..
적막강산 寂寞江山 #寂寞江山 이다. 눈 앞에는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그 아래 활엽수들이 봄이 오면 틔워낼 움들을 숨겨서 품고 있다. 집앞에는 호수라기에는 너무 작고 연못 이라기에는 제법 큰 저수지가 살얼음들을 키워간다. 앞 마당에는 이육사선생댁에서 시집온 유서 깊은 항아리들이 놓여져 있고 겨울밤을 덮혀줄 소나무장작도 적당히 쌓여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달 가까이 수업을 할 수 없는 연희동 ‘시옷’을 떠나 오도 가도 안하고 수월리에 은둔하여. 하루종일 뜨개질을 하다가 마당으로 나가서 고요한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멍~하니 소나무 능선을 바라보기도 한다. 봄이 되면 나물을 뜯어서 쑥국을 끓이고 텃밭에 키운 허브로 샐러드를 만들고 상추를 뜯어서 비빔밥을 짓고 벚꽃을 가득히 밥위에 뿌릴 생각을 하면 마음이 일렁일..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나 또한 삶에 큰 고마움을 느끼며 또 죽음이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데 큰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는 누워서 병을 앓으며 무력한 삶을 계속 살아갈 필요가 없다. 요양원에서 이루어지는 긴 사멸의 공포를 느낄 필요도 없다. 우리가 집에 있고 우리 희망을 알릴 수 있으면, 우리는 먹는 것을 멈출 수 있다. 그것은 간단한 일이다. 병구완을 않고 먹는 것을 멈추면, 죽음은 우리 앞에서 두 손을 활짝 벌리는 것이다. 내 남편 스코트의 죽음은 내게 훌륭한 길, 훌륭한 죽음을 보여 주었다. 고통과 억압이 없는 죽음, 여전히 생명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슬픔이 없다."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보리, 1997, p.233) 헬렌 니어링(Helen Knothe Nea..
전기, 넌 어느 별에서 왔니? I 물리학자 김상욱 별의 자손인 우리는 공허한 세상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행복을 상상하며 산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생각나는 명강의.
살아있다는 것은 내 삶에 있어서 선택지가 단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나는 비로소 가볍고 자유로와졌다. 단순함은 명징성을 이끌어내 주었다. 모든 헛된 욕구가 사라지는 순간이 올때가 있다.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지쳐서 심심해질때 문득 휴식이 찿아오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생명의 존재로서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것 만이 삶의 정수(精髓) 라는 것.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음으로 생명의 투명성이 떠오르면 살아있음 그 한가지 만으로도 경이롭다. 어제 산나물 채개장 쿠킹클래스에 온 수강생 중에 15,6년 전 즈음 철마산 오두막에 온 적이 있었다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그때 하룻밤을 재워 주면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시간과 시간의..
수행자 내 삶에 있어서 선택지가 단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나는 비로소 가볍고 자유로와졌다. 단순함은 명징성을 이끌어내 주었다. 모든 헛된 욕구가 사라지는 순간이 올때가 있다. 마음이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지쳐서 심심해질때 문득 휴식이 찿아오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생명의 존재로서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것 만이 삶의 精髓이자 에센스 라는 것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음으로 생명의 투명성이 떠오르면 살아있음 그 단 한가지의 경이로움만으로도 소스라친다. 어제 산나물 채개장 쿠킹클래스에 온 수강생중에 15,6년전 즈음 철마산 오두막에 온 적이 있었다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그때 하룻밤을 재워 주면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 아, 나는 어린..
마지막 문자 할아범이 가고 50일. 얼굴을 못 본 지 80일. ​ 할아범에게 말했었다. 글보다는 말. 말보다는 표현을 하라고. ​ 아니다. 표현은 사라지고 말은 없어지고 글은 남는 것을. ​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에 핸드폰을 넘겨주며 그 안에 글을 남겼다. 그리운 사람. 씩씩하게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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