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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수월리 아삶공

피안彼岸에 다다르다.

 

질풍노도의 시간을 통과하고 이제 피안에 다다랐다.

칠흑같은 어두움을 뚫고 들려오는 새소리와 개구리 소리 벌레소리 고라니소리 등. 등

밤에도 지저귀는 새들이 있구나.

인생사 모든 것을 몸소 다 경험해 보고야 말겠다는 굳은 소원을 가지고 이번 생으로 건너 왔나보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였다.

아마 30대 중반 이었을게다.

그때부터 내가 이번 생에 어떻게 살려고 했는지 짐작이 되기 시작 했다.

내 인생의 퍼즐 조각들이 전체 그림의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 이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실연. 배반과 좌절. 빛과 어두움. 희망과 염세. 이 모든 것이 뒤엉켜 혼란스럽던 10대와 20대를 통과 하면서 불꽃으로 내 살갗을 스스로 태우기도 해 보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방랑을 하기도 했었다.

이제 못 해 본 것은 여성으로서 엄마가 되어보는 사명 이었다

엄마가 되어서 한 생명 존재를 잉태하여 온전하게 부양하고 보살피는 그 의례를 통과 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의 생명을 온전하게 돌보고 돌아옴을 바라지 않는 완전한 이타적 사랑을 경험하려면 모성 밖에 없으리라는 울림이 계속 있었다.

그렇게 나에게 어미로서 살아가도록 육신을 내어주고 어미가 되도록 허용해 주는 한 사람 남자를 만나서 아이를 낳았고 어미가 되었고 그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수십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이는 완전한 성인이 되었고 나는 등이 굽어가는 노파가 되어 갔다.

내가 원한대로 어미 노릇을 하느라 아무도 잠시도 아이를 돌보아주고 보살펴주는 도움의 손길을 기대 할수 없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채 혹은 등에 업은채 모녀가 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고 양식을 거두어야 했다.

이 세상에는 아이와 나 그리고 의지 할데라곤 신 밖에 없었다.

“ 내가 알고 네가 알고 하느님이 알면 되었어” 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 말은 내 가슴에서 나온 말 이지만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로서 살아온 수십년 동안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고 이제 나는 피안에 도착 했으니 되었다.

살아 오면서 내가 가장 잘 한 일은 두가지.

그 하나는 어미가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끼 먹기 위해 하루를 벌어야 하는 일용직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삶은 그토록 엄중 했다.

매일 매일을 살얼음 딛듯이 살아야 하는 삶의 엄중함은 그래서 더 귀하고 귀하게 되었다.

벌써 70년이 지났고 육신은 조금씩 낡아졌다.

크게 고장난 곳은 없지만 나사들이 낡아서 조금씩 삐그덕거리며 느슨해져 가고 언젠가는 낡아 부스러져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시간은 예전에 비할수 없을만큼 빠르게 흐르고 있어서 앞날을 가늠할 수가 없다.

내가 태어났을때 보다 현재의 시간은 재깍재깍 숨 가쁜 속도로 넘어가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얼마나 많이 변하는 세계를 바라 보아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급속도로 소멸되는 문명의 수레바퀴를 바라 보면서 지금 이 시간

나와 내 딸이 모녀로서 만나 함께 하는 이 시간의 소중함을 엄중한 마음으로 맞이한다.

고맙고 아름다운 시간. 인연. 공간. 이다.

만약에

나에게도 꿈 이란 것이 있었다면 이제는 다 이루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 며칠 되었다.

오늘은 02시경에 잠에서 깨어 너무나 명료해져서 커피 한잔과 부드럽고 달콤한 과자를 먹으며 이 마음을 기록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신이 허락하셨기에 이루어진 일 이지만 그래도 내가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몸을 빌려준 남편과

나에게 딸로서 와준 그녀에게 두손 모아 감사 드리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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