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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삶의 나침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의술과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고령화 시대가 도래했지만 태반의 사람들이 노후준비에 소흘하다고 대두되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책임주의하의 사회에서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겠으나 자칫 방치하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점을 일으킬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이는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노후준비”라는 용어만큼은 귀에 익숙하고, 노후준비를 위해 라이프사이클과 저축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 대비하여야 함을 알고 노력하거나 걱정이라도 한다.
 
하지만 “죽음준비”라고 들어보았겠는가?
죽음준비라는 말 자체가 처음 들어보는 용어일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준비한다고 하면 자칫 비관적인 사람, 염세주의에 물든 사람 등등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결코 회피할 수 없고 너 나 차별 없이 언젠가는 죽는 것이 인간이고 죽음의 시작은 출생부터인 바, 이제부터 죽음에 대해 준비해야 하는 당위성을 알았으며 유용함을 알게 되었다.
곧 노후준비란 경제적으로 삶의 격을 높이는 것이고, 죽음준비란 본질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한다고 하겠다.
 
이 책을 통하여 실천할 점이 있다. 세가지로 요약해본다.
 
첫째, 유가족을 배려한다면 死前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이다.
사례를 보면 갑작스런 사망으로 남은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경제적 배경은 슬픔과 함께 당혹감을 주게 되고 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당사자의 사망으로 친소 구분 없이 오직 법률적 관계인이 독점할 수 밖에 없는 장례로 인해 남겨진 非 혈연관계의 사람들(공인 받지 못하는 비탄)이 겪게 되는 당혹감을 고려해서이다.
死前 유언을 통하여 역시 인간관계에 관한 死前 교통정리라고 할까.
 
둘째, 존엄한 죽음을 위해 가족을 위시한 가까운 이들에게 미리 선언해야 한다.
치유 불가능한 경우 인위적인 생명연장은 바람직하지 않은데,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자신의 생명은 신의 부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간 식물인간으로 병실에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거나 현대의학으로 도저히 치료할 수 없고 곧 죽음이 임박하리라는 진단을 받은 경우에 죽는 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한 연명조치를 일체 거부해야 한다. 남을 가족들의 정신적 경제적 고통도 고려하면서.
즉,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안락사(소극적 안락사-존엄한 죽음)를 요청하는 선언을 하는 것이 낫다. 단, 미리 선언하지 않으면 안락사는 범죄가 되므로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셋째, 얼마 살지 못할 환자에게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병명을 알리는 것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견해로는 죽음과 조우함으로써 감성이 더욱 날카로워지고 삶과 사랑을 한층 더 농조 짙게 관조할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스스로 ‘인생의 재평가’를 해보는 것이 죽음에 대한 불안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실을 알고 나서 당장은 공포 두려움 불안한 심리겠지만 소위 “타협”단계로 접어들어서 ‘인생의 총결산’을 하는, 존엄한 죽음을 고려하여야 한다.
 
작년 시월 초 부친께서 별세하셨다.
운명이 가까워진 무렵, 의사는 중환자실로 모셨으면 좋겠고 몇 가지 긴급조처도 취할 수 있으며 이런 점에 동의를 요구하였다. 갈등을 느꼈다.
중환자실行은 물리적인 연명임은 자명하며 운명하시는 순간을 지켜보지도 못할 터. 환자보호자를 대표하여 거절하곤 1인실로 모시고 마지막 가시는 길을 형제 자매 손주들이 지켰다.
거의 신체기능이 정지된 상태였겠지만 우리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버지께 작별인사를 드렸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의사의 권유를 뿌리친 것이 큰 다행이었다고 본다.
 
이 책은 담담하게 죽음 준비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정상적인 죽음준비를 위해 죽음준비교육을 어린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평생교육으로 강조해야 한다고 본다.
죽음이라는 테마를 통해 “죽음준비교육”이 평생교육으로서 지향하는 것은, 죽음을 온전히 맞을 수 있도록 죽음에 대해 보다 깊이 사색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라 한다.
곧 죽음의 철학이란 죽음을 깊이 응시하여 성찰하는 철학으로, 이는 곧 본질적인 삶의 의미를 되묻는 “삶의 철학”인 것으로 정의한다.
 
옮긴이의 말로 마무리를 지어보자.
“우리는 죽음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현실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생각하게 되므로 죽음준비교육은 바로 삶의 교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준비교육이란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게 아니라 죽음준비를 통해서 삶을 보다 의미있게 변모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준비는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죽음준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제대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죽음 공부합시다!
.유익한 책, 이 책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죽음준비라는 개념은 몰랐을 테다.
우연히 손에 쥐게 된 책과의 조우를 고맙게 생각합니다.

출처 : 문텐해월 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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