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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수월리 아삶공

산다는 것은

어느정도 내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되기까지 무려 20여 년이 걸렸다. 
번뇌망상이 내 삶을 칡 넝쿨처럼 칭칭 감아서 내 삶이 그토록 고달프고 괴롭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1997년 겨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씩 잘라내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정리정돈이나 청소를 내가 원하는만큼 깨끗이 못 하는 줄 알았고 내가 게을러서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살던 어느 날.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이 추려져서 생존하기에 꼭 필요한 몇가지만 남긴다면 내가 원하는 만큼 정결한 삶을 살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어왔다. 
나는 내 머리속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현실화 되지못한 쓰잘데 없는 지적 욕망부터 처리하여서 나의 뇌를 소제하고 휴식을 주는게 절실하다고 느꼈다. 

‘앎’이란 
실제로 그렇게 ‘삶’에 적용하므로서 ‘생명’이 되고 ‘살림’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 많이 알기보다 그렇게 살기에 온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앎과 삶이 하나가 되는 것은 하늘에 있는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2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확실히 알게되어 
가망 없는 목표물을 현실에 맞게 낮추어서 나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있는 동안 살기로 작전을 변경했다. 
복잡한 모든것을 단순화 시키는 것 만큼 살기가 수월해진다는 것을 점차 배워나갔다. 

첫번째. 책 
두번째. 옷
세번째. 그릇과 기물 
네번째. 식성
다섯번째. 관계를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나의 자존감과 내면의 힘이 살아났다. 

1. 책과 티브이와 컴퓨터와 영화를 안 보고 사는 15년 동안 나의 뇌가 많이 쪼그라들고 단순해져서 복잡한 생각을 할수있는 능력이 사라졌고 상대적으로 행복감을 느낄수 있는 개인적인 뇌 공간이 어느정도 확보되었다. 

2. 옷을 사지 않고 내 손으로 만들어 입되 옷감은 면직물로 색갈은 희거나 베이지나 크림색 등 밝은 색으로 디자인은 오직 한가지. 이렇게 시작된 손바느질이 어느새 20년이 되었고 나는 모든 외적 장식물로부터 자유로와졌다. 

3. 그릇과 기물은 많이 버렸지만 생존 수단으로 요리수업을 다시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는데 수월리 생활을 하면서 서울 작업실에 있던 그릇과 기물을 딸이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나누어 주든지 없애도 좋다고 선언했으니 내 공간에 쌓일 염려는 없을 것이다. 

4. 하늘의 은혜로 몸 시스템과 식성이 변한지 벌써 20년이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식재료는 단조롭다. 채소 과일 열매 그리고 그 부산물. 간장 된장. 식초. 식물성 기름. 차. 향신료. 사탕수수 정도.
그러다보니 자연히 외식 안 하게되고 외식을 안하니 사람만나는 빈도가 낮아지고 자연스레 사람관계가 줄어들어서 삶이 단촐하고 보잘것 없게 되었다. 
대신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고독을 즐기게 되었다. 잘 살기 위하여 무엇인가 하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 
있는 그대로 잘 존재하는 것이 직무유기를 하지 않는 유일한 삶의 방식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생명 에너지는 낭비되지 않고 어느정도 쌓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어느정도 비축된 상태다. 
여러가지 위기가 찿아와도 어느 정도는 버티어 낼수 있으리라. 
혼자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하지만 내가 살아야. 내게 힘이 있어야.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조금은 남을 도울수도 있을 것. 

5. 그래서 모든 것이 어느정도 단순해졌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되어 산골에 정착하게 되었다. 
월든 같은 호수도 못되고, 스콧트 내외가 살던 버몬트같은 광활한 숲도 아니고, 타사튜더처럼 넓고 아름다운 정원도 없고 
내 사랑 모드가 살았던 오두막처럼 사랑이 넘치지도 않는 
소박하고 단순한 내 거처 수월리 아삶공에서 매일 사유를 길어 올린다. 

월든에 비할 바 없는 손바닥만한 저수지. 집안에 앉아서 바라보이는 바로 곁의 야트막한 숲과 소나무 방풍림이 둘러싼 능선과 하늘. 
항아리 수십개가 놓인 백오십여 평의 마당. 열린 부엌과 침실 하나 작업실 하나 단지 세개의 공간으로 연결된 쾌적한 집. 장식물이 없는 벽. 
내가 남은 삶을 단순소박하게 살아가기에 적절한 곳이다.  
젊었을때 그토록 원하던 방랑벽은 해마다 사는 곳을 이동해야 하는 유목인처럼 자주 이사하며 살다보니 여행에의 갈망이 완전히 사라졌다. 
내게는 여행 마저도 단순하게 오직 인도의 마운트 아부 마두반에만 다녀오면 된다. 

살아보니 인생은 길고 
무수한 사건들이 일어났으며 
결국은 하나하나 통과 하는 것이었고 
목적지는 하나 
강을 건너 저승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잘 건너가는 연습과 훈련을 잘 하기 위해서 지금 살고 있는 것.  
이제는 잘 건너는 훈련에 집중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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