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수월리 아삶공

서울을 떠나며

코로나 팬데믹으로 예기치 않게 무려 두달 넘어 청도 수월리에서 자가유배를 즐기다가 어제 저녁에 상경 했다.  
어디에서나의 루틴대로 어김없이 새벽 3:30 분에 깨어서 한시간 반동안 명상을 했다. 
절에서는 새벽예불이라 할거고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새벽기도라 할 것이다. 
엄마 아버지의 기도 모습을 보면서 자란 나에게도 형태는 다르지만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을 평범한 일상이다.  
어제 청도를 떠나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오는 동안에 차창에 어둠이 스치듯이 많은 회상들이 스쳐갔고 연희동의 숙소에서도 뭔가 아슴프레한 기억들이 밀려 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이 회상들은 해변 언저리에 살며시 밀려 왔다가 자잔한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로 흡수 되는 과정을 끝 없이 되풀이 하는 파도처럼 의미 없이 왔다리 갔다리 되풀이 되었다.  

다시금 나의 뇌 안쪽 한부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해마세포가 기지개를 켠다. 
해마세포에 희미하게 흔적을 드리우고 있던 유년기부터 시작해서 어제까지의 기억들이 ‘나 여기 있소’ 하며 머리통을 들이미는 것 같다. 
시간의 정렬을 무시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들낙날락하는 기억의 파편들을 이리저리 모아서 퍼즐처럼 맞추어 본다. 
이미 지나간 일들이고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들이지만 그 장면들을 딛고 오늘의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니 정색을 하고 그들을 마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수십년 동안 내 개인적으로도 수 많은 일들을 겪었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에도 격변의 파도가 늘 휘몰아쳐 왔다.  
한 사람의 인생이란 얼마나 파란만장 한가? 
이 세상은 70억이 넘는 개인의 드라마를 담고 있는 거대한 영상 필름보관소다. 
나는 언제나 픽션보다 넌픽션에 훨씬 더 많은 관심과 흥미와 호기심을 가졌다. 
넌픽션의 수 많은 이야기들은 이 세상을 가득 채우며 나 라는 개인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교훈과 가르침을 주어 왔다. 
내 삶도 길고 파란만장 했다. 


625 전쟁통에 부산 광복동 1번지 적산가옥에서 태어나 서울로 다시 부산으로 진해로 강진으로 해남으로 일산으로 서울로 괴산으로 파주로 다시 서울로 수십번 이삿짐을 싸고 풀며 도시 유목인으로 살아왔다. 
정착에 대한 갈망이 없었으니 그렇게 떠 돌아도 신세 한탄 같은 것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나에게 삶이란 그토록 절실하기에 그저 하루하루 생존하는 그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바라고 원하는 것은 그자체로 사치라고 생각 했다. 
나는 매일의 생계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노동자로서 도시를 부랑하며 살아 왔다. 
나의 근육은 엄청난 이삿짐을 셀프로 싸고 풀기에 적절했고 두뇌는 일상적인 일들을 처리하는데 최적화 되었다. 
 그 밖의 쓰잘데 없는 ? 생각하지 않아도 생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생각들은 점 점 퇴화되었고  쪼그라들어 가서 아기 주먹만한 크기로 줄어든 뇌가 무겁지 않게 머리에 얹혀 있어서 살기에 편했다. 
무릇 생명체란 위험에 처하면 오로지 생존 본능만이 남는 법이고 그렇게 살아남은 경험이 한번 두번 쌓여가면 살아남는걸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이삿짐을 싸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청도 수월리 저 숲에 내 살과 뼈를 태운 재를 묻으면 된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이삿짐을 쌀 근육이 약해진 나는 딸에게 말했다. 
‘엄마는 이제 힘이 없어서 짐을 못 싸겠으니 포장이사를 부르자’ 
그 수많은 이사를 포장이사를 불러본적이 없이 우리 둘이서 다 싸고 트럭을 불러서 옮겼다. 
웬지 포장이사는 사치 스럽게 여겨 졌었다. 
‘엄마 걱정 마세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 
그렇게 되어서 나는 이삿짐 걱정 하나도 안하고 딸이 혼자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이사할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것 같다. 
보고 배우고 자란 것이 그런 것들이니 든든하구나. 잘 하는구나. 
연희동의 이삿짐은 시옷과 집에서 쓰던 것들을 버릴건 버리고 당근마켓에 팔거는 내어 놓고 수월리 집으로 갈것과 경산 대구한의대 한방바이오센타로 갈것과 세 종류로 분류를 해야 하는 어려움과 복잡함이 있는데 솔이 차근차근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내가 딸을 양육하고 보호했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딸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는 역할 체인지가 일어 났고 의무와 책임을 벗어남과 동시에 권력도 이양해야 했다. 


이제 나는 아무런 결제권도 없고 그저 딸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나는 그래도 좋다. 생계에 대한 걱정을 안해도 되니까.  앞으로는 딸이 나를 먹여 살려 줄태니까. 
그래서 소소한 살림살이에 대한 사소한 애착도 내려 놓기로 했다. 아무리 아깝고 아쉽더라도 딸이 소용 없다 하면 여지없이 버려야 한다. 
당근마켓이 있어서 참 좋구나. 

오늘은 평화가깃든밥상의 수업이 있다. 
몇차례 마무리 수업을 해야하고 몇몇 만날 사람과 매듭지어야 할 약속들이 있고 안녕 인사를 나누고 싶은 몇몇 사람들이 있다. 
지난 십이삼년 동안 무탈하게 서울살이 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많은 고마운 분들에게 이루 말할수 없는 은혜를  느낀다. 
예를 갖추고 일일이 제대로 인사를 못 하더라도 용서해 주시기를 🙏
영영 헤어지는게 아니라 청도 수월리평화가깃든아삶공 에서 해후할 수 있기를 ~


맨 위로 맨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