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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늙음의 얼굴

 


지금보다 한참 젊을 때 인근 온천에 갔다가 단체로 오신 할배들의 참 거시기한 대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할배1 : 요새는 집에 할마이(부인)도 말을 안 듣고 젊은 다방 애들이나 어째 좀 거시기해 볼라 캤더니, 고것들이 애만 태우고 통 말을 안듣네.

할배2 : 갸들이 본래 뜸만 들이고 돈만 뜯어먹는다카이.

할배3 : 에이, 말도 마. 나도 갸들한테 갔다준 것만 해도 논 서마지기 값은 될끼다.

헐!
잠시 귀를 의심했다.
저것이 진정 저 쪼그러진 할배들사이에서 흘러나온 대화란 말인가? 그 때 나는 내가 남자라는 사실에 크게 절망했다.

나이들어 꼰대소리 듣지 않고 어른 대접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접은 커녕 천박하고 추한 늙음이 되지 않는 것만도 결코 쉽지 않다.

늙어서도 딸같고 손녀같은 젊은 여성들에게 이성으로 집착하며 심지어 속에 흑심을 품고 실제 행동으로까지 이어가려는 것은 참 추악한 늙음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과 행동을 하고 제법 그럴싸한 말을 하고 다니더라도, 그 속에 조절조차 안되는 거친 감각적 욕망과 집착을 감추고 있다면 그것은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촌부에서부터 꽤 이름난 정치인, 예술인, 문인, 종교인들조차 늙어 망신당하고 신세망치는 이가 어디 한 둘이던가?

수행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도 있다. 깨달음이라는 거창한 목표 이전에 최소한 인간의 품위와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인격이 성숙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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