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길을 떠나며


늘 짐을 쌀 때는 설렘 반, 두려움 반이지만 막상 길을 나서면 깃털처럼 가볍고 새처럼 자유롭다.

몸뚱이 하나 의지하기 위한 살림살이 달랑 배낭하나면 그만인데, 한 번 갈 때 숟가락 하나 들고 가지 못하는 살림살이 지천에 늘어놓고 살았다.

마음은 그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어 길 나서면 천하가 내 집인 것을 앞 마당을 우주로 삼아 희로애락을 누렸구나!

실오라기 하나도 펼치면 온 법계에 가득하고 거두면 티끌조차 없는 것이거늘.... 

집에 있을 때는 들판의 바람소리에 이끌리고 길 위에 서면 따뜻한 방에서 풍겨나는 된장찌개가 그리운 게 중생의 마음이나,

본시 이 물건은 정체가 없는 놈이니 바람처럼 구름처럼 기약없이 떠돌다 보면 산이든 들이든 처처에 꽃 필 날 있으리.

기대했던 곳에서는 실망하고 시시한 곳에서는 탄성을 지르며, 크고 작은 사기도 당하고 때론 밥을 굶기도 하는 것이 여행이란 것이니, 

안락하고자 하면 불평불만이 산을 이루고 마음을 바로 쓰면 이만한 수행도 드물다. 

두 달이 될지 석 달이 될지 모르는 길 위에서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마주치는 그 모든 것이 수행의 대상이 되어 기쁘게 회향되길 바랄 뿐이다.



맨 위로 맨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