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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다시 길 위에

추수를 끝낸 텃밭이 텅 비었다.

애초에 빈 것이었는데 작은 씨앗 하나가
영양과, 온도와 토양이라는 조건을 원인으로 싹을 틔워
온 밭을 가득 채웠었다.

꽃을 피워 보기에 좋았고
열매를 맺어 넉넉히 먹을 것을 내어 주더니
스스로를 노랗게 물들이고 미련없이 산화했다.

한 세월 잘 살았다.
지구별 한 귀퉁이에 씨앗을 뿌리고 열매가 맺었으니
그것이 나의 삶이고 수행이고 안거였다.
우주만물이 인과로 순환하듯 내 삶의 끝도 그러하리라.

선방은 안거에 들고
이 물건은 이제 바랑하나 짊어지고 만행을 떠날 차례다.
머뭄에 집착없고 떠남에 두려움없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렇게 가면 그만이다.

돌아오는 봄,
나 없는 내가 간적도 온적도 없이 돌아와
일없이 꽃이 피고 새가 울며
열매가 맺어지이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has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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