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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자유로운 삶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더욱 친해진 친구가 있다.

그는 건축현장에서 거친 일을 해 왔고 학벌은 중졸이며,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으로 손수 지은 조그마한 집에 살고 있다. 그는 군말이 없다. 아주 직선적으로 내 뱉는 말은 투박하기 짝이 없다. 때론 능청스러운 농담과 역설로 사람들을 배꼽 빠지게 하기도 한다.

정치나 사회문제에도 나름 안목이 있어 촌철살인의 논평도 시원하게 내 갈긴다. 독설도 서슴치 않으며 대놓고 바른 말을 해도 사람들은 크게 게의치 않는다. 원래 그런 놈이기 때문이다.

그 나이에 홀아비로 사느냐고 핀잔을 주면 장가는 못간게 아니라 안 간거고, 연애는 결혼한 네 놈들보다 더 많이 했다고 우기는데 확인할 바는 없다. 자기가 총각이니 처녀라야만 결혼을 하겠다는데 확률은 아주 낮아 보인다.

산에서 손수 딴 귀한 것들을 경로당에 툭 들여놓고 능청스레 농담과 험담을 섞어 해대도 노인들은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그가 사랑하는 방식임을 알기 때문이다.

신세를 져도 당당하며 체면이나 사양따위는 없다.가령 지인들에게 밥이나 술을 얻어 먹어도 절대 고맙다는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접이 시원찮다고 호통을 치는 그는 매사 뻔뻔하리만큼 당당하다.

그는 일을 하고 댓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힘과 기술이 좋아 막일이나 용접 등의 일을 많이 맡기면 육두문자를 써가면서도 일은 정성들여 꼼꼼히 잘 해준다. 그리곤 댓가는 당당히 요구하거나 어떤 경우는 아예 받지 않기도 한다. 그것이 그가 베푸는 방식이다.

그는 사는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나이들어 가진 것도 없이 계악직 잡부를 전전하지만, 앞 일에 천하태평이다. 주변에서 걱정을 하면 '까짓거 산 입에 거미줄 치겠느냐'고 외려 큰 소리다. 

오래지켜 본 그는 자신의 처지를 허세로 치장하는 요령을 가진 인물은 아니다. 제 멋대로 삶을 듵었다 놓았다하는 그의 완력과 강단은 그런 것 쯤 뛰어 넘기에 충분하다. 

그에게서 소설 '토지'에 나오는 '윤보목수'와 '희랍인 조르바'의 면모를 본다. 선이 굵은 사내이자 삶에 거침없이 자유자재한 주인공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나름의 질서와 도리를 지켜가가는 의리파이다. 

그에게서 지식과 학벌의 나약함을 느낀다. 심지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무위도인의 면모를 보는 것이다. 과거에 연연하지도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는 그는 많은 인간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참 스승이다.

어떤 이는 말로 배워서 홉으로도 못 써 먹고 어떤이는 홉으로 배워 말로 써 먹는다. 어떤 이는 호랑이 거죽을 쓰고 염소의 울음을 울고 어떤 이는 염소의 거죽을 쓰고 호랑이 울음을 운다. 

매끄러운 언어와 높은 식견과 고귀한 가치가 난무하는 세상에 비록 거칠고 투박해도 한 가지라도 실천하며 당당하게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이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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