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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소음과 마음의 반응들


사람마다 같은 문제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게 있고 지나치게 힘들어 하는 것이 있다.
비교적 여행하기 어렵다는 인도를 아홉번에 걸쳐 도합 삼년 가까이 여행하면서 크게 어려운 것은 없었다.


가령, 지극한 더러움, 혼이 달아날 것 같은 혼잡함, 끈질긴 삐끼와 사기꾼, 파리가 들끓는 식당에서의 식사, 쥐가 드나들던 싸구려 숙소, 기차의 무제한 연착, 장사치들의 능청스런 거짓말 등은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내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소음이었다. 인도 어디를 가나 정신없이 울려대는 자동차와 오토릭샤의 경적과 오토바이 굉음, 귀청이 떨어질듯한 음악소리, 새벽녘이면 골목에 몰려다니는 개떼들의 울부짖음 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콜카타의 '서더 스트리트' 주변 숙소는 어디나 시끄러우나, 내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로 옆 400루피(약 6,500원)짜리 허름한 숙소는 인내력의 한계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인도의 기본 소음에 더해서 낮에는 벽체 보수 공사로 쉼없이 망치질을 해대고,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앞 건물 술집에서 귀청이 떨어질듯 쿵쾅대는 음악을 사정없이 틀어댄다.

게다가 옆방 6인실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떼거지로 들어앉아,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밤낮으로 먹고 마시면서 떠들었다.

남인도의 무더위에 탈탈대며 돌아가는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야 하니, 창과 문을 닫을 수도 없어 그 끔찍한 소음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도저히 사람 살 곳이 못된다 싶어 숙소를 몇 번 옮기려다가 이곳이야말로 번뇌로부터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공부처라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당시 미얀마 선원에서 몇 달 간의 안거를 마치고 실참하는 차원에서 인도에 왔던 터라 비교적 쉽게 마음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소음에 대한 마음의 반응은 의외로 과격하고 교묘하였다.

요란한 망치소리가 들릴 때 마다 손님을 두고 공사를 하는 업주의 몰상식을 비난하고, 늦은 밤 술집의 소음을 용인하는 인도의 행정당국을 비웃고, 소란스런 중국인들의 메너없는 태도와 문화를 사뭇 경멸하였다.

도덕과 규율을 준수하는 문화인으로서의 나를 가치 판단의 중심에 놓고, 거기에 못미치는 후진국의 미개한 문화와 사람들의 의식수준을 비웃고 있었다.

그러나 주의깊게 알아차림 할 때마다 그것은 소음으로부터 일어난 '나의 생각'이라는 사실이 알아지고, 알아차림의 힘이 더욱 강해지자 소음은 그냥 소리일 뿐, 그 자체가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단지 소리일뿐인 그것에다 온갖 이름을 짓고 심지어 시민의식, 문화같은 거창한 것까지 가져다 붙이는 마음 작용이 참으로 오묘하였다. 게다가 소음유발은 용인되지 못할 반사회적 행위라는 도덕적으로 조건지어진 뿌리 깊은 마음이 읽혀졌다.

사실, 그 소리를 발생시킨 사람들은 나의 정신적 안정을 저해할 그 어떤 의도도 없었으며 그냥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도덕이나 문화 등의 관념적 차원을 벗어나면 그것은 단지 가치중립적인 소리 그 자체일 뿐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흩어지고 순간순간 알아차림의 힘이 약해질 때마다 짜증이 올라오고 숙소를 옮겨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거듭 알아차리면서 두 달 넘게 그 소리들과 더불어 잘 지냈다.

그 후 소음과 훨씬 친해지게 되었고 소리들로부터 올라오는 내 '마음의 소음'을 통찰하고 이해하는데 한결 익숙해졌다. 또한 불평, 불만이나 화냄에 숨어있는 나의 기대와 도덕적 잣대 따위를 이해하고, 이것들과 외부 대상들간의 충돌을 잘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살면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번뇌들도 이와 같다. 정작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어떤 사실이나 상황 그 자체보다 그것으로부터 만들어 내는 마음의 부정적 반응들이다.

좋지 않은 환경, 불편한 인간 관계,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그것의 해결과 개선을 위한 현실적 노력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것으로 인해 일어나는 내 마음의 반응들인 것이다.

어떤 단순한 사실(Fact)에서 마음이 얼마나 많은 극락과 지옥을 만들어 내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늘 상황과 조건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롤러코스트를 타고 양극단을 왕복하는 삶이 거듭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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