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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무제


요즘은 딱히 쓸 글이 없다.
산골에 묻혀 일없이 사니 특별한 생각과 감상이 없어 글을 쓸만한 재료도 도구도 없다.

홀로 있어도 외로움이 없으니 '내 말 좀 들어주세요' 라며 외칠 일도 없고, 굳이 외부의 대상에게 나의 내면과 포장지를 열어 공감받고 싶은 욕구도 없다. 

학식과 수행이 높고 헌신적인 인류애와 봉사심을 갖춘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싶은 마음도 전혀없고, 실제 그렇지도 않으니 입만 뻥긋하면 헛말 일 뿐이다.

크고 고귀한 깨달음과 지혜가 없으니 사람들을 향해 목청높여 일갈 [一喝] 할 일도 없고, 세상일을 놓아버렸으니 죽이든 밥이든 하루 두끼 이상 먹으면 됐지 감놔라 배놔라 할 일도 없다.

굳이 바깥에서 구하지 않아도 속이 허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 역시 자기 주장과 방식대로 잘 살아가며 그대로 다 옳으니 달리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저 할 일 이라곤 한 눈 팔면 찰나에도 구만리 장천을 헤매는 마음이라는 놈 감시하는 경비원 노릇이고, 즐길 것은 맑은 새소리와 한 뼘씩 드는 봄 햇살을 쬐는 일과 손바닥만한 텃밭 일구는 것 밖에 없다.

그냥 이대로 좋긴한데 '좋다, 나쁘다'하는 것도 분별일 뿐이고, 그것을 담을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하니 딱히 표현할 길도 없다. 

해서 그저 쓸것이 없다는 것을 썼을 뿐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 글을 썼다는 자체가 무언가 쓸 말이 있었던 것이고, 그렇게 보면 위에 쓴 글 역시 말짱 헛말이다.

노자 가라사되 "아는 자는 말이 없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단지 흉내만 냈을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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