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여행의 의미



여행지와 숙소를 2,3일에 한 번 꼴로 옮겨다니다 보니 늘 길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익숙해지고 정들 틈이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다. 자유로운 여행이니 한동안 눌러 앉을 수도 있으나 딱히 그러고 싶진 않다. 어차피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안정된 거처, 편안한 사람, 입에 맞는 음식과 편리한 환경 및 상황과의 결별이다.

이는 새로운 것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언제나 익숙한 것에 편안하고 편안한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변화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움켜쥐고 죽는 순간까지 놓지를 못하는 것이 범부의 삶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 어디서든 미련없이 떠나야 하는 여행은 좋은 공부의 하나이다. 늘 낯선 것을 만나야 하며 거기서 또 무언가를 해내야하기에 머물고 움켜쥘 것이 없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관계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하다. 숙소의 매니저, 현지인, 외국인 여행객을 비롯해 장사꾼, 혹은 호객꾼들과도 가볍고 한시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니 기존의 인간관계는 잠시 잊어도 좋기 때문이다. 생존과 목적을 위한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니 온전한 자아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고 달리 메일 것도 없다. 이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sns상의 글쓰기도 자제하고 관계도 최소화하니 더욱 가볍고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행이란 것의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한다. 이름난 관광지에서는 서둘러 짐을 싸고 이름 없는 한적한 곳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여행의 또 다른 얼굴이다. 번듯한 숙소에서는 투어에 혈안이 된 호스트를 만나고 허름한 숙소에서는 소박하고 다정한 인정을 만나기도 했으며, 때론 무심결에 바가지도 쓰고 택시의 횡포에 길바닥에 나 앉기도 했다.


그러나 삶이 그러하듯 여행에서의 상황은 내 의지와 다르게 전개되는 것이 다반사이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일을 할 뿐이고, 수시로 일어나는 마음을 챙기는 것이 나의 일이니, 달리 좋다 나쁘다 할 것도 없다.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이 기대와 불안을 뛰어 넘어 탁 놓아 버리는 편안함을 주는 매력이 있으니, 이 또한 여행이 주는 좋은 선물이기도 하다.


삶이 그러하듯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여행의 의미도 다르고 나름 다 이유가 있고 의의가 있다. 먹고 놀고 즐기자는 여행이든 불편과 고생을 사서 하는 여행이든 여행은 여행이니까 그대로 다 좋다. 염소의 꼴로 사자소리를 내는 것도 지나친 허세이고 사자의 꼴로 염소 소리를 내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사자든 염소든 메추리든 제 생긴대로 살고 제 소리를 내면 그만 아니겠는가?




맨 위로 맨 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