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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내면과의 마주함


인도 히말라야 오지 마을에서 한 달 넘게 홀로 산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로 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한 곳입니다. 며칠 둘러볼 일정이었는데 마침 산사태로 길이 막혔다기에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아예 눌러 앉아버렸던 것입니다.

그곳은 영어도 잘 통하지 않고 TV나 신문 또한 없었으며 몇 안 되는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를 아는 이 없었고,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싸여 하늘만 움푹 드러난 곳이라 이 세상과 완전히 고립되어 홀로 툭 던져진 느낌이었습니다.

어렵게 구한 허름한 민박집의 현지 음식 외에는 먹을 것이 없었고 즐길 것 또한 읽을 책하나 챙겨가지 않아 그 첩첩 산골에서 나를 즐겁게 해 줄 문명의 이기는 그 어느 것도 없었으니 처음에는 결핍과 고립감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외부와의 관계가 두절된 낯선 곳에서의 삶은 새로운 경험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환경에 적응하는 법인지라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주어진 삶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외국인을 처음 보는 천진한 아이들이 뒤를 쫄쫄 쫒아오면 골려주는 척하며 같이 놀기도 하고, 순박한 현지인들과 마주치면 일부러 한국사람 대하듯 ‘아이구, 아지메 어디갔다오슈~’라며 구십도 인사를 하며 코믹한 표정을 지으면 깔깔 웃고 즐거워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고 편해지게 되었습니다.

고도가 높을수록 하늘빛은 푸르고 별은 크게 보입니다. 해서 낮에는 가슴까지 시린 푸른 하늘을 벗 삼고 밤에는 벌러덩 드러누워 왕주먹만한 히말라야의 별들을 즐겼습니다. 아무런 인공적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와 적막 속에 무섭도록 파고드는 고독과도 사이좋게 지내며 맛도 색깔도 없는 숱한 밤들을 음미하였습니다.

하릴없이 심심해지는 날은 그 넓은 인도 땅을 헤집고 다니느라 빵구가 난 양말이며 옷가지를 꿰매다가 문득 이런 글을 수첩에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 낯선 땅 천축국 어느 산골 헛간방에서 ‘규중칠우’들과 은밀하게 내통하는 이 또한 큰 즐거움이니 홀아비살림 적막하다 하여도 바늘로 허벅지 찌를 일은 없어라!

혹여, 이 행색에 궁색하다 말 지어다!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라 행복이요 즐거움이니, ‘무소유’다 ‘텅 빈 충만’이다 하는 것은 책장 속에나 있는 말이고, 다만 나는 이것을 즐길 뿐이니, 단출한 살림살이 걸림 없는 이 밤이 주지육림 비단옷에 고대광실 기와집인들 그 무엇이 부러울까?”

돌아보니 그동안 나는 많은 외부대상에 마음을 쏟으며 살았고 나의 자아라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 엮여져 있는 허상을 '나'라고 붙들고 그것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늘 타인의 평가와 인정에 신경을 쓰고, 허상으로 지은 자신을 과시함으로써 자존감을 세우고, 각종 스포츠나 취미, 음식, 영화, 음악, 문화 활동 등 너무도 많은 외부 대상을 통해 갈애의 만족을 추구해 왔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그 모든 것을 떠나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한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어떠한 문명의 이기나 외부 대상없이도 내면에 충분히 구족된 무한의 공간을 즐기게 되었으며, 하늘과 산과 돌멩이 같은 자연과 대화하며 자신만의 풍족한 내면의 행복을 찾을 줄 알 게 된 것입니다.

이는 세상과 단절된 그곳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를 둘러싼 여러 관계를 벗어남으로써 오롯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한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관계를 벗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행은 어떤 상황과 환경이든 행, 불행의 조건으로 삼지 않는 것이며 대상과의 관계속에서도 그것에 꺼둘리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굳이 외부대상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내면에 구족된 평화를 즐길 줄 아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난날 미얀마의 수행처와 인도에서 흙이라도 파먹고 싶도록 절절한 외로움을 벗삼아 홀로 보낸 숱한 나날들 또한 어떠한 관계나 외부대상보다도 자신 속에 잠재된 무한의 자유와 텅 빈 공간의 충만함을 즐기는 법을 배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본의 아니게 장기간 외부활동이 제한되면서 답답함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 나름이니 고립된 생활 속에서 오히려 자신의 내면과 온전히 마주치며 그 곳에 잠자는 무한한 평화와 행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럴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이 힘든 분들께는 미안한 말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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