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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선정에 들었다한들

오래전 미얀마 선원에서 수행할 때의 일이다. 당시 외국인 처소에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수행자들이 섞여 있었는데, 나라마다 문화와 관습이 다르다 보니 가끔씩 서로 이해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중 동남아에서 온 아주 착하고 순한 수행자가 있었는데, 감기인지 버릇인지는 몰라도 매일 새벽마다 처소주변에서 큰소리로 기침을 하며 침을 탁탁 내뱉었다.

새벽 세시에 기상하여 공양시간 전까지 법당에서 조용히 명상하는 시간이라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것 역시 훌륭한 공부거리거늘 아침시간에 고요하게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공부 초짜들은 내심 불평불만이 많았지만, 같은 수행자 처지라 대놓고 말은 못하고 뒷공론만 무성하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공양 후 잠시 외출을 하셨던 한 노스님께서 휴지를 잔뜩 사들고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셨다.

마침 청소를 하다가 나와 마주쳐셔 `아니, 그 많은 휴지를 어디다 쓰시게요?`라고 여쭈었더니, 노스님 왈

`그 수행자말이야,
온 우주법계와 허공이 다 부처님 몸인데, 부처님 몸에다 침을 그리 뱉어서야 쓰겠나,

오늘부터는 여기다 실컷 뱉으라고 사오는 걸세 허허!` 하며 농처럼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 끝에 힐끗 살피니 휴지다발 옆에는 웬 약봉지도 보였다.

순간, 나도몰래 합장을 하고 깊게 허리를 숙였다. 수행한답시고 틀어박혀 제 앉은 자리 하나 밖에 보지못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설사 그 때 내가 고요한 곳에 머물며 선정에 들어 `비상비비상처`를 들락거렸다한들 이 마음보다 더 아름답지는 못 했을 것이다.

<육조단경>
"마음이 바르다면 계율이 무슨 소용이며 행실이 바르면 참선이 무슨 필요인가

은혜를 알아 어버이를 섬기고 믿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라,

겸손과 존경으로 위아래 화목하고 참으면 나쁜 일들 조용히 사라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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