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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두 달 간의 방랑을 마치고


직장을 접고 명상과 봉사, 여행 등을 핑계로 인도와 미얀마에서 보낸 대부분의 시간은 참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특히, 오랜 시간을 보낸 캘커타는 최고의 더러움과 혼잡함, 시끄러움, 빈곤이 뒤섞여 있는 도시였지요.

거기서는 의, 식, 주에서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하려했습니다. 입는 것은 길거리 난전에서 일이천원짜리 헐렁한 바지에, 먹는 것은 노점에서 단품 볶음밥이나 인도빵으로 해결했습니다

자는 것 역시 시멘트 바닥에 야전 침대같은 것이 놓여 있고 가끔 바퀴벌레가 들락거리기도 하는 5,6천원 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지내면서 하루 만원 남짓으로 생활했습니다.

물론, 때로는 여행자 식당에서 인도 난에다 3,4천원하는 치킨커리를 먹고 인도영화도 보러가고 마트에서 요플레나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노점에 앉아 먹는 '모힝가'라고 하는 500원짜리 국수에 감사했고, 홍차에 우유와 생강 등을 넣고 끓인 200원짜리 미얀마 티(짜이)에 매우 행복했습니다.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라 선택한 행복이니 '무소유'다 '텅빈 충만"이다 하는 것은 책장속에 있는 말이고, 오직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달리 말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사실, 무엇보다 그 생활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으며, 궁핍의 댓가로 주어지는 또 다른 편안함과 무한의 자유를 나름 즐기며 지냈습니다. 여행을 수행으로 여기며 그동안 참 어렵고 궁핍한 곳만 많이도 다녔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미얀마를 거쳐 베트남을 대충 한바퀴 돌았습니다. 베트남도 다낭이나 나트랑같은 곳은 꽤 근사한 휴양지인 것 같습니다. 처음 배낭 여행을 시작한지 10여년 만에 비교적 편안한 여행을 했습니다.

아니, 오랜만에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린 것 같습니다. 하루에 수 백 달러가 넘는 호텔이 즐비한 곳에서 단돈 몇 십 달러로 누리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뭐 물질이 어쩌니 저쩌니 하지만 그래도 편한 것이 좋고, 좋은 것이 좋긴합니다. 또한, 익숙한 것에 편안하고 편안한 것에 익숙한 법입니다.

먹고 살 만한데도 치열하게 경쟁하며 그렇게 돈을 벌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고요,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것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메너리즘에 그리 오래 빠질 수 없는 타고난 체질인 것 같습니다. 어쩐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고 무료하니 천상 촌놈에 돌쇠 기질이 뼈속에 녹아 있는듯 합니다.

두 달 여만에 돌아왔습니다. 여행자에게 돌아올 곳이 있다는건 감사한 일입니다.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한국은 참 근사한 곳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넓고 깨끗한 공항, 편리한 지하철엔 추운 날씨에도 난방이 푹푹 터지고 잘 차려 입은 신사, 숙녀들이 넘쳐납니다. 

잘 정돈된 도로에는 고급스런 차와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집으로 들어서니 넓지않은 공간이지만 온갖 가전제품들이 갖추어져 생활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달랑 단품 메뉴하나에 음료하나로 먹던 식단에 반찬이 넘쳐나니 당장 젖가락 운전에 혼란을 느낍다. 모든 것이 분에 넘치도록 풍족함에 무의식이 자꾸만 브레이크를 걸며 이래도 되는가 하는 자각이 문득문득 일어납니다.

더럽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인도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서는 무슨 귀중품을 잃어 버리고 온 사람처럼 부랴부랴 보따리를 싸서 다시 인도행 비행기에 앉아있던 지난날이 바로 이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무소유란 ‘더 좋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 부리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소유에 집착할수록 묶여지고 버릴수록 자유로워지며, 낮은 곳으로 갈수록 편해지는 것은 변치않는 삶의 이치인 것 같습니다.

모두 설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에도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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