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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여행, 그 불확실성 어느 듯 배낭싸서 나온지 한 달 남짓, 여행이라고 해서 항상 신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택시 바가지를 왕창 쓰기도 하고, 황당한 일정 차질로 모처럼 예약한 제법 근사한 호텔의 3일치 숙박비를 몽땅 날리기도 했다.처음 배낭을 매고 해외로 떠난 것이 10여년 전이니, 배낭여행이라면 그래도 조금 해 본 셈이지만 여행에서 겪는 이런저런 일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거칠고 힘든 여행지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해야 된다는 생각에 그동안 인도와 네팔 등지를 많이도 돌아다녔다.특히, 인도를 몇 달씩 여행하다 보면 그 혼잡함과 끈질기게 달라붙는 삐끼들과 사기꾼, 무엇이든 제대로 되는 일이 없는 그 불확실성에 치를 떨며 돌아와서 몇 달간 한국에 있다보면 또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인도행 비..
황당한 No problem 그러나... 황당한 No problem 그러나...인도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일할 때(봉사) 입니다. 콜카타는 인도에서도 환경이 참 열악한데, 많은 봉사자들이 자비를 들여 묵고있는 '서더 스트리트' 주변의 숙소도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보통 우리돈 오천에서 만원 정도의 방은 거친 시멘트 바닥 위에 야전 침상하나 놓여 있는데, 창문이나 선풍기 등에 쌓인 먼지는 대략 오백년은 묵은듯 하고, 얇은 시트 한 장 씌운 침대 메트리스나 베개 안쪽은 아예 열어보지 않는게 속이 편합니다.그래도 땅은 넓은 나라여서 방이 엄청 크고 방안에 화장실도 딸려있는데, 변기는 받침대와 뚜껑이 아예 없고 역시 오백년쯤 된 듯한 녹슨 수도 꼭지에는 연신 물이 뚝뚝 흘러내렸습니다.편하게 있으려면 주변에 제법 괜찮은 숙소도 있지만 한발짝만 나가면 ..
찾는 것은 이미 마음속에 찾는 것은 이미 마음속에. . . 문명의 때가 덜묻은 아주 조용한 곳을 찾아 한 달만 살고 오자고 길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인도 북단 히말라야 자락의 라다크는 해발 3,400m의 고원인데다 이동을 하려면 해발 5,000m의 아찔한 고개들을 넘어야 합니다.라다크 자체도 오지이지만 거기서도 관광객이 찾지 않는 조용한 마을을 현지 스님의 소개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버스가 어찌나 낡았던지 의자시트는 새까맣게 절은 때가 빤질빤질 윤이나고 차체는 여기저기 녹이 슬어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워낙 고산지대라 현지 주민들은 햇빛에 검게 타고 쭈그러진 얼굴에 행색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티벳불교의 독실한 신자인 그들은 참 순박하고 평화로웠습니다.삼 일에 한 번 있는 버스는 진즉부터 만원이었는데 오랜만에 나온..
김치와 삼겹살로 엮은 드라마 김치와 삼겹살로 엮은 드라마> 히말라야자락 '다람콧'이라는 산골에서 민박할 때의 일입니다. 몇 달 째 김치나 고기와는 인연이 먼 채 생활한 탓인지 입맛도 없고 기운이 축 쳐지던 어느 날 지붕을 쳐다보니 기왓장이 얇고 널찍한 돌판으로 덮여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문득, 저 돌기왓장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기가 막힐 것 같은 꽤나 창의적인 생각이 번쩍드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마당 귀퉁이에는 지붕에 올리고 남은 돌판이 두어 장 눈에 뛰었습니다. 먼저,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가 그 지역을 어슬렁거리며 주린 하이에나처럼 고기를 갈망하던 한국청년 둘을 포섭하여 삼추위(삼겹살 추진위)를 결성하고 각자에게 임무를 부여하였습니다. 그 젊은이들에게 배낭 여행계의 할배급이며 '남 아무개옹'으로 불려지..
배낭여행, 미얀마. . . 며칠간 오토바이 빌려 타고 바간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이름없는 파고다 곁 나무 그늘에서 한나절 명상에 들기도 하고 낮잠도 자면서 조용히 즐겼다.현지인 마을을 누비며 뛰노는 아이들과 장난도 치고, 모여있는 아낙네들과 손짓, 몸짓으로 한바탕 웃기도 하고, 사나운 개들과 기싸움을 한판 벌이기도하며 바람난 수캐처럼 돌아다녔다.골목길에는 마침, 어린 스님들이 탁발을 하고 계셨다. 맨발로 서서 따뜻한 밥을 퍼주는 불자들이나 의젓하게 가사를 수하고 맨발로 다니며 밥을 받는 어린 스님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였다.공양물을 준비하지 않은 터라 급히 오토바이를 몰고 동네를 뒤진 끝에 다행이 작은 구멍가게를 찾았다. 급한 김이라 정성은 부족했지만 예의를 다해 공양을 올렸으나, 어린 스님들의 머리에 핀 마른 버짐이 못내 ..
미얀마에 스며들다 배낭 꾸려서 집 나온지 며칠 되었다. 그간 미얀마를 그렇게 들락거려도 위파사나 명상센터로 직행한 관계로 제대로 여행 한번 해보지 못했다. 이번엔 양곤에서 잠깐 선원에 들렀다가 바간으로 왔다. 택시 1시간 30분, 버스 10시간, 마차30분 걸렸다. 택시는 에어컨이 없어 몹시 더웠지만 택시비가 너무 싸서 미안했고, 버스에서는 잘 잤고 컴컴한 새벽에 탄 마차는 재미있었다.여느 때처럼 현지인 마을 주변의 배낭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싼 게스트 하우스를 잡았다. 골목에는 미얀마분들이 이용하는 길거리 음식이 늘려있고 태생이 빈촌인지라 아무거나 없어서 못먹는 체질이니 어디를 가던 먹고 사는데는 지장없다. 손으로 파리떼를 쫓으며 먹던 인도의 로컬식당에 비하면 감지덕지이고, 더구나 미얀마 음식은 명상센터에서 이골이 나도록..
두 달 간의 배낭여행, 또 짐을 꾸리며 사람들은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생각과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여행에 대한 생각과 방식도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비루한 일상을 떠나 뭔가 럭셔리하고 품위있는 풍경을 그리며 가방을 쌉니다.어떤 이는 멋진 경치와 맛있는 음식과 액티비티를 즐기기 위해 떠나고, 또 어떤 이는 뭔가를 배우고 느끼고 이해하기 위해 떠나기도 합니다.여행의 방식도 아주 고급스런 크루즈 여행부터 먹고 자고 이동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패키지로도 가고, 또 어떤 이는 배낭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값싼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는 여행도 있습니다.그 어떤 가난한 나라의 헐벗은 사람들을 보는 시각도 달라 어떤 이는 지금의 자기를 참 다행으로 여기며 자족함을 배우고, 어떤 이는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탓하고 또 어떤이는 깊은 연민의 마음을 품기..
귀한 인연 미얀마 어떤 가볍게 시작된 인연은 뜻밖에 사람을 거기에 오래 묶어두기도 하고, 또 어떤 무거운 인연은 두번 다시 그곳을 찾지 않게 하기도 한다. 십여년 전 인도여행에서 지친 심신을 달랠 겸 방콕으로 건너가 카오산 거리를 헤매다 어떤 베테랑 여행자로부터 미얀마의 어느 해변에 가면 바닷가재를 단돈 몇 만원에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며칠 후 바로 미얀마로 향했다.그 때만 해도 미안마는 지독한 군부독재 시절이었고 아웅산 수치 여사는 가택연금 상태였으며 미얀마에서 그녀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는 것은 금기였다.이런 이미지 때문인지 여행객은 거의 없었고 물가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쌌다. 조식 포함된 오천원에서 몇 만원짜리 숙소가 허다했고 맛있는 음식들도 몇 천원이면 실컷 먹을 수 있었다.그 때 나는 일찌기 미얀마..
진정한 스승 한 때 진정한 의지처와 영적 스승을 찾아 방황한 적이 있다. 진리에 목말라하던 때 인도의 영적스승 라마나 마하리쉬의 책을 읽고 마치 구원의 샘물로 목을 축인 듯 했다.그 분의 책은 나의 바이블이 되었고 수행의 지침서가 되었으며 마하리쉬는 존경하는 스승이 되었다. 그 때 나의 꿈은 그 분이 영감을 받았고 쉬바신의 현신이라 칭송하는 아루나찰라와 그 분의 아쉬람에 가보는 게 꿈이었다.꿈은 꿈이었을 때가 좋은 법이던가? 이름도 생소한 남인도의 '띠루반나말라이'라는 곳에 어렵게 찾아가 본 아루나찰라는 모기가 들끓는 그냥 고향 동네 앞 산 정도 되는 곳으로 그 어떤 신령함이나 영험함도 느낄 수 없는 평범한 곳이었다.그의 아쉬람 역시 전 세계에서 모인 수행자들에게 걸맞는 수행체계는 찾아보기 어렵고 상당부분 신격화되고..
외로움 홀로 몇 달이고 낯선 인도 땅을 헤맬 때가끔 흙이라도 파먹고 싶도록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오면 ‘그래, 괜찮다’라며다정하게 맞이하여그것을 어루만져 주고보살펴 주었더니, 그랬더니 정말 그것은 괜찮은 것이었고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으며나아가 그것은 삶의 한 면을 비쳐주는잔잔한 거울이자 같이가야 할덤덤한 친구였다. 그 친구 성품은본시 고요하고 적막할 따름이라한 생각만 거두면삼천대천 세계가 허공이고삼라만상이 입을 다물어오히려 그 근처가 바로 人天에서는 누릴 수 없는현묘한 곳으로 들어가는 문 앞이니 우는 소리하며여러 사람 번거롭게 하지 말고잘 접대하고 보살피면서친하게 지낼 일이다.
마음공부 모처럼 산행을 하였다. 눈부신 가을하늘과 붉게 물든 단풍에 젖어 가벼운 발걸음을 옮길 때, 트로트 가요를 크게 켠 사람이 뒤를 쫒아오고 있다. 피해갈 수 없는 좁은 산 길, 거슬리는 마음이 스물스물 일어나는 게 보였다. 문득, 며칠 전 일이 생각났다.트로트 음악을 항상 옆에 끼고 사는 순박한 동네형님과 버섯을 따러 산에 갔다. 마침 녹음기가 고장이 났는지 한 곡만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무려 한나절을 들어야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똑 같은 것을 친한 형님의 것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모르는 사람의 음악은 왜 귀에 거슬렸을까?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 할 때의 일이다. 죽음을 앞 둔 환자들의 대소변을 갈 때 무엇보다 지독한 냄새가 참기 어려웠다. 맨손으로 그것을 처리해도 별 거부반응이..
걱정거리 살면서 걱정거리 없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원하는 것이 있는 한 걱정은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다.특히,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할 때도 걱정은 생기게 마련이다. 이 때 현명한 선택을 방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걱정하는 마음’이다.편안한 것과 즐거운 일에는 탐욕이 생겨 그것을 자꾸만 취하고자 한다. 반대로 괴로움이 생기면 회피하고 벗어나고자 한다. 이것이 마음의 속성이다. 사실, 불안과 걱정과 등의 괴로움은 그 자체보다 그것을 회피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문제다.그렇게 할수록 마음은 더 많은 것을 지어내고 이것저것을 끌어다 붙이며 자신을 정당화하고 합리화시키려 한다. 그것은 결코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 점점 더 걱정과 괴로움의 무게를 눈덩이 굴리듯 굴려갈 뿐이다.다만 할 일은 그것을 ‘알아차..
관계로부터의 자유 나의 친구들, 가족들,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 그리고 내가 무엇이라고 이름붙여 부르는 사람들이여, 내가 생각하는 그대들이 내가 가진 하나의 개념이지 그대들의 실재가 아님을 이제 알겠으며 이렇게 말하는 나도 내가 아님을 알겠다. 내가 알고 있는 그대들의 모습이 친구, 선배, 후배, 동료, 도반, 페친라는 이름과 관계속에 지어진 허상이며, 또한, 내가 생각하는 그대들의 모습이 조건지어진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고, 그대들이 생각하는 나 역시 그대들의 조건지어진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니, 그대들이 생각하는 나를 지속시키며 그대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기대를 충족시키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그 어떤 마음도 쓰지않고 그냥 있는대로 살면 좋겠다. 그대들 역시 개념속에 있는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거나 나..
나라고 여겼던 것 빈 몸으로 왔기에 젊어서는 구하고, 채우고, 얻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짐이되고 스스로를 결박하는 도구가 됨을 알게 될 때, 미련없이 버릴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모처럼 날이 맑아 빨래를 널어 놓으니 내 허물을 벗어 놓은 것 같다.그대, 부족한 나와 함께 하느라 수고 많으셨네 편히 쉬시게.죽는 날 내 몸과 '나라고 여겼던 것'에게도 이렇게 말하면 좋겠다.
인도에서 본 죽음의 모습 지난 몇 년간 겨울철에 나는 인도 캘커타에 있는 마더테레사 하우스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일했던 ‘니르말흐리데이’라는 곳은 벵갈어로 ‘죽음의 집’이란 뜻이다. (봉사라는 말을 쓰기 싫어 그냥 일이라 표현했음 : 무급노동)즉,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걸인들 중에서 가장 상태가 심각하여 그대로 두면 며칠 내로 사망할 것 같은 분들만 모셔와 죽음이라도 편안히 맞게 돌봐주는 일종의 호스피스 병동인 셈이다.흔히 `죽음의 집`이라하면 매우 분위기가 심각할 것 같지만,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겉모습은 제법 낙천적이고 늘상 분위기가 무겁지는 않다. 상태가 좋아진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도 떨고 농담도 하며 심지어 흥이나면 노래하고 춤을 추는 이도 있다. 나는 여기서 숱한 죽음들과 함께 했는데, 몇 ..
나의 꿈은.. 사람들은 꿈을 꾸라고 한다. '꿈이 없는 자는 산 송장'이라고 까지 한다.하지만 내 꿈은 꿈이 없는 것이다.그 꿈이 욕망에 근거하는 것이든 자신의 발전과 인격을 고양하는 것이든더 이상 그 꿈이란 것에 생각과 행동이 갇혀있지 않으며 그것때문에 위선을 행하지 않으며 그것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 것이다.오직 애쓰야 할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공기를 마시며 이 순간의 숨을 쉬는 것이다.그럼에도 매일 꿈을 꾸는 건 내게 아직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원하는 게 많기 때문이다.무언가가 되고 싶은 꿈 무언가를 얻고 싶은 꿈 무언가를 하고 싶은 꿈 그 무언가를 원하는 모든 꿈이 사라지는 날 비로소 내 꿈은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그 꿈도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다.
가슴에 새겨진 탁발의 감동 수 십 년간 외도를 헤매다 천만다행으로 부처님 법을 만났지만, 재가자가 수행에만 몰두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세속에 저질러 놓은 일이 있어 그 책임을 다 해야겠기에 안거를 마치고 만행을 떠나는 스님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아들 놈이 대학을 마칠 무렵 소위 철밥통이라 부르던 직장을 미련없이 버리고 곧장 미얀마로 가서 머리를 깎았다. 직장 다니면서 몇 차례 입소했던 경력이 있던터라 선원장님께 출가 승낙을 받아 당일에 사미계와 비구계를 받고 수행을 시작했다.출가와 환속이 자유로운 미얀마이지만 삶과 죽음의 궁극적 의문을 풀지 않고는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일체의 외출을 하지 않고 정진하던 중 외국인 수행자인 내게도 탁발에 참여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이른 새벽 고참 스님으로부터..
수행이란 삶이 편안하고 환란이 없을 때 고요함과 마음의 평화와 무욕과 무위를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큰 금전적 손해를 보고, 일신이 병들고 남들에게 무시와 모욕을 당하고 심지어 죽음이 닥쳐도 평화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모름지기 수행자는 온갖 경계에 부딪혀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들 한다.하지만 완전히 깨달은 무학의 도인이거나 감정 자체가 없는 목석이 아닌 이상 어찌 번뇌 앞에 흔들리지 않겠는가?다만, 공부인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비록 걱정하고 우왕좌왕하더라도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며, 기쁘고 좋은 일이 생겼을 때도 들뜨고 흥분된 마음의 흐름을 읽어 낸다.심지어 걱정거리가 없고 편안한 상태에서도 "아는 마음'이 끊이지를 않아 그 속에 숨은 무상함과 괴로움을 꿰뚫어 낸다. 무릇 공부인이 마..
정진을 고르게 유지해야 한다 텃밭에 나가 밭을 일구는데 실전 농학박사이자 30년 경력의 농사 유단자이신 윗 밭 아주머니께서 일갈 하셨다.'일이라는거이 그렇게 후닥닥 후닥닥 하면 힘이들고 싫증나서 못햐. 그저 설겅설겅혀야 힘이 들지 않는법이여'그렇잖아도 빨리 일을 끝 낼 요량으로 무리하게 힘을 쓰는 자신을 읽고 있는데, 존경하옵는 농사 스승님께서 송곳처럼 지적하신 것이다.예전에 미얀마 선원에 갈 때 마다 만나는 태국 수행자가 있었다. 몇 해를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소에서 같은 처소에서 수행을 했다.그는 성격도 느긋하고 수행하는 것도 뭔가 열심히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건성건성하는듯 하지만 늘 꾸준하고 한결 같았다. 우연한 기회에 인터뷰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그의 수행 수준이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었다한국에서 온 수행자..
나의 수행 이야기 요즘 페북의 글들을 접하다면 어쩌면 그렇게 불교이론에 박학다식한 분들이 많은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그 어려운 공이니 유식이니, 중관이니 하는 것들을 줄줄이 꿰면서 댓글로 갑론을박 하는 것을 보면 나같이 무지한자는 감히 명함도 내밀기 어렵고 글쓰기가 두려워진다. 이에못지 않게 수행이 높은 분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수행에 대한 작은 경험담이라도 언급하면 어려운 선문답을 툭 던지며 시험에 들게 하니, 올린 글에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크게 경을 칠 거 같아 조심스럽기 짝이없다. 나는 깊고 넓은 불교이론이나 철학은 잘 모른다. 수행도 미얀마를 오가며 공부를 조금 했다고 하나 그 깊이가 일천하기 짝이 없다.한 때 명상이나 불교관련 책들을 읽고 무언가 깨달은 듯 착각하여 선문답을 읊어대며 잘난체 한 적도 있었..
나도 몰래 사라져버린 번뇌 조그만 집 한 채를 짓는데 뜻대로 되는 게 없다. 집짓고 나면 늙어버린다는 말이 실감난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도모하는 일은 원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원하는 바가 있으니 번뇌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현실적인 것은 현실적으로 풀어야 한다. 그러나 도저히 풀 수 없는 것이나 풀어봐야 실효성이 없는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번뇌를 지켜보고 있으면 그것을 회피하며 어떻게든 빨리 해소하고픈 조급한 마음이 읽혀진다. 그런 마음이 점점 더 번뇌를 키운다. 결국, 번뇌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번뇌가 생기면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으로 인해 괴롭다.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뛰는 신체적 증상도 동반한다. 에고(Ego)는 평정을 유지하려 부단히..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않고 우리가 있는대로 본다` 인도출신 `앤소니 드 멜로` 신부의 말이다. 사람들은 사물을 자신의 관점에서 보고 해석하는데, 그 관점의 상당부분은 사회적 통념과 문화와 교육에 의해 주입된 것 들이다.아침에 한적한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까악까악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였다. 그것이 까마귀라는 것이 인지되자 불길함과 관련된 이미지가 영화필름처럼 스쳐갔다. 그냥 새소리일 뿐이었을 것이 까마귀로 인식되자 그와 관련된 관념들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이다. 까마귀에 대해 조건 지어진 마음이 대상을 만나자 그에 마땅한 마음을 만들어 낸 것이다.원점에서부터 생각하면 `어떤 새`에게 까마귀라는 이름이 붙고, 문화와 사회적 통념은 그것들에 특정한 딱지들을 붙였으며, 개인의 경험이 결합..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온 인도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온 인도. 무슨 귀중품을 놓고 간 것도 아니고 목빼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무얼 그리 부리나케 다시 와야 했는가? 말이 필요없다. 살아있는 생선처럼 삶의 비린내가 펄펄 나는 빠하르간즈와 꼴까따의 너저분한 골목길, 그리고 마더 하우스, 거기에 그 답이 있었다.
수행의 목적 수행의 목적도 궁극적으로는 행복의 추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건과 상황에 따라 왔다갔다 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는 출세간의 행복입니다. 모든 삶의 순간과 죽음과 그 이후까지도...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심지어 밥을 먹을때 조차 SNS를 놓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관계중독에 걸려 있다는 생각을 한다.세상을 이어주는 인터넷 망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것과의 대응관계 속에 에고의 의미를 부여하느라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모든 관계로부터의 자유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해서 휴대폰을 꺼 두었다. 홀로 차 한 잔을 들고 손끝에 와닿는 따뜻한 온기를 온전히 느끼며, 도시의 여러 소음들에 마음을 기울여 보았다.그리고 그 이면의 고요하고 적막하며 텅빔 속에 꽉 들어찬 충만감을 맛보면서 잠시나마 모든 관계로부터 온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에고(Ego)는 에고(Ego)는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를 찾고 스스로를 확대해 나간다.
아름다웠던 라오스여 내 기억속의 라오스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순수의 땅이었다.한적하며 때묻지 않은 자연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사람들은 순박하여 쳐다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때묻은 마음을 씻어주던 나의 이상향이자 불국토였다.6년여가 지난 지금, 이곳 방비엥은 거대한 호텔들이 들어서고, 거리의 음식점엔 고기굽는 냄새가 코를 찌르며, 미소를 잃은 현지 사람들은 불친절하기 짝이없다.자동차 타이어로 만든 고무튜브를 타고 내려오던 맑고 고요한 강에는 종일 관광객들을 실은 모터 보트가 요란스럽게 다니고, 각종 투어 차량들이 쉴새없이 골목을 누빈다.그리고... 이 무자비하도록 낯설게 변해버린 거리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한글 간판과,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분명, 변화는 어떤 요구에 ..
도를 즐기는 자의 모습 소는 자신이 얼마나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며, 얼마나 단단하고 날카로운 뿔을 가지고 있는지 따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저 한가하게 풀을 뜯을 뿐... 모름지기 도를 즐기는 자의 모습이다.
수행은 끊임없이 자각하는 것 며칠전 쓴 글에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이고 10년, 20년 전의 그놈도 지금의 이놈이라고 했다.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며, 10년 20년 전의 그놈도 지금의 이놈이 아니다.어제의 나는 어제의 대상에 일시적 인연으로 생성되었다가 소멸되었고, 오늘의 나는 새로운 대상에 새롭게 반응하며 일시적으로 또다른 나를 생성하고 있을 뿐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인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늘 기억을 기반으로 항상성을 찾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에고(Ego) 스스로가 생존해 나가는 오래된 습성때문이다. 깊이 통찰해보면 상존하는 나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모든것은 일시적 인연에 의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할 뿐.따라서 현재의 나는 언제나 새로운 나임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것, ..
늙어지면 얼마 전 가은을 통틀어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선친의 친구분께 식사대접을 해 드린 적이 있다. 젊어서는 참 여러모로 대단하신 분이었으나, 15년 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홀로 사시는 90대 어르신이다. 아직 정신도 맑고 건강도 그만저만 하신데, 식사 중 한마디씩 힘없이 던지는 말씀에 노년의 외로움과 막막함이 절절이 묻어났다.마을회관에 가도 한참 아래 분들만 있으니 상대할 사람이 없고, 친구들은 벌써 다 간지 오래이니 말 한마디 나눌 사람 없이 홀로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시란다. 이제는 정말 가고 싶은데 그것도 인력으로 되지 않는다며, 가끔 요양보호사인지 하는 사람이 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고 간다는 말씀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하였다.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시골에 홀로 남은 어르신들 중에 유독 남자노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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