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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마음공부



모처럼 산행을 하였다. 

눈부신 가을하늘과 붉게 물든 단풍에 젖어 가벼운 발걸음을 옮길 때, 

트로트 가요를 크게 켠 사람이 뒤를 쫒아오고 있다. 

피해갈 수 없는 좁은 산 길, 거슬리는 마음이 스물스물 일어나는 게 보였다. 

문득, 며칠 전 일이 생각났다.

트로트 음악을 항상 옆에 끼고 사는 순박한 동네형님과 버섯을 따러 산에 갔다. 

마침 녹음기가 고장이 났는지 한 곡만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무려 한나절을 들어야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똑 같은 것을 친한 형님의 것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모르는 사람의 음악은 왜 귀에 거슬렸을까?

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 할 때의 일이다. 

죽음을 앞 둔 환자들의 대소변을 갈 때 무엇보다 지독한 냄새가 참기 어려웠다. 

맨손으로 그것을 처리해도 별 거부반응이 없었지만, 나는 유독 냄새에 민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때, 

나도 마찬가지로 똑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인지하곤 크게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나의 것은 그냥 냄새일 뿐이라 무심코 지나쳤는데, 

왜 남의 것은 그렇게 싫어하는 마음이 생긴 것일까? 


우리는 살면서 매일 이런저런 마음들과 부딪히게 된다.

저 사람 참 시끄럽네. 저 차 정말 짜증나게 느리게 가는군. 

가을 날씨가 왜 이리 춥지. 저 집 개는 너무 짖어. 내 호의를 이렇게 몰라주다니.

더구나 거룩한 마음을 내어 봉사하러 가서도 

저 사람은 너무 성의가 없어. 내가 이런 일하러 여기 왔나. 

저게 무슨 도움이 되지? 저 환자는 너무 무례해. 

심지어 수행처에서조차 

저 사람은 청소에 도무지 협조 안 하는군. 저 사람 도대체 여기 왜 온 거야. 

하필 저기서 행선을 하지? 저 자리는 내가 맡아놓는 곳인데..

이런 분별들은 기본적으로 나의 행복을 깎아먹고 불행의 불을 지피는 연료가 된다. 

그러기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나 심히 공익에 반하는 것이 있다면, 

서로 풀어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이런것들의 대부분은 나의 번뇌일 가능성이 높다. 

대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나의 시각과 일으킨 마음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그저 자기의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내가 문제를 만들어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그러할 뿐인데, 내 마음이 이런저런 불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볼 일이다.

도덕과 정의와 공익을 부르짖는 외침 속에 

혹 나의 이기심과 조건지어진 마음이 지어낸 분노가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을 향하는 불평불만 속에 

내 마음은 어떤 도덕과 철학을 끌어다 붙이며 그들을 비난하고 있는지, 

단순한 현상 그 자체를 

어떻게 마음이 왜곡하며 수 많은 말을 지어내고 있는지 

알아차려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것들이 사실은 공부인의 훌륭한 공부거리이자 알아차림의 주요 대상들임을 자각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알아차림의 힘이 있다면, 

그들이 자신의 할 일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두라. 

그것이 생활속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공부짓는 도리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해 또는 싫어해, 

나는 기독교인 또는 불교인이야. 

나는 원칙주의자야.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나는 교수 또는 시인, 예술가야. . . 

이렇게 자기를 무엇이라고 규정해 놓은 것, 내가 신념으로 삼는 것, 

호칭으로 불려지는 것, 심지어 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해 놓은 것 조차 

자신의 자유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아닌지?

그러한 것이 조건이 되고 질료가 되어 나를 구속하고 때론 분노케 하며, 

나의 평화와 무한 자유를 방해하며 나를 얽어매는 사슬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모름지기 참된 공부인은 이 모든 것이 형성된 것임을 안다. 

그리고 형성된 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없고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질서를 집착없이 지켜간다.

비록 때론 넘어지며 휩쓸릴지라도 번뇌가 곧 좋은 공부거리임을 알기에 애써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없애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아 

그것의 품성을 이해고자 하는 것, 

그래서 그 모든 번뇌에 꺼둘리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공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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