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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가슴에 새겨진 탁발의 감동


수 십 년간 외도를 헤매다 천만다행으로 부처님 법을 만났지만, 재가자가 수행에만 몰두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세속에 저질러 놓은 일이 있어 그 책임을 다 해야겠기에 안거를 마치고 만행을 떠나는 스님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들 놈이 대학을 마칠 무렵 소위 철밥통이라 부르던 직장을 미련없이 버리고 곧장 미얀마로 가서 머리를 깎았다. 직장 다니면서 몇 차례 입소했던 경력이 있던터라 선원장님께 출가 승낙을 받아 당일에 사미계와 비구계를 받고 수행을 시작했다.

출가와 환속이 자유로운 미얀마이지만 삶과 죽음의 궁극적 의문을 풀지 않고는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일체의 외출을 하지 않고 정진하던 중 외국인 수행자인 내게도 탁발에 참여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른 새벽 고참 스님으로부터 승복차림새를 점검받고 자세한 주의사항을 들은 뒤 발우하나를 메고 맨발로 행렬의 맨 뒤에 따라나섰다. 처음 경험하는 탁발의 설레는 마음은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잔뜩 주눅이 들기에 충분했다.

마을에 당도하자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길 옆에 신심깊은 신도들이 맨발로 서서 공앙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발우에 일일이 밥을 퍼주고, 어떤 이는 과일이나 우유같은 귀한 공양물을 길바닥에 무릎을 꿇은채 공손하게 발우에 담아 주었다.

마침내 차례가 와서 내 발우에 퍼주는 밥을 처음 받을 때 미묘한 감정이 복받쳐 왔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따뜻한 밥을 지어 어줍잖은 초짜 승려인 내게 바치는 그들의 신심과 정성에 가슴이 뭉클하며 눈시울이 젖어오는 것을 승가의 위의를 생각하며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아, 같은 밥을 먹어도 그 밥의 가치와 무게는 이렇게 다르구나, 이 밥을 먹고 열심히 수행하지 않으면 나는 신도들의 밥을 훔치는 도둑이라는 날선 생각을 하며 아스팔트 위를 칼끝처럼 걸었다.

길게 늘어선 신도들의 공양행렬과 눈이 마주 치지 않게 걷고 있는 그 때 저 앞에 행색이 남루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한 소녀가 허리가 굽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공양물을 정성껏 받쳐들고 쪽문을 나오는 것이 보였다.

가난하고 불편한 몸이지만 지극한 신심의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며 또 다시 울컥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세속의 온갖 풍파와 고난 속에서도 오직 부처님 법과 승가에 의지하여 자신의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바치는 정성에 가슴 밑바닥이 아프게 저려 왔다.

공교롭게도 그 소녀의 하나뿐인 공양물은 내 차례와 맞닥드렸고 그것이 내 발우에 담기는 순간 뜻모를 눈물이 왈칵 쏱아지는 것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초짜 수행자의 알팍한 근엄함에 쌓여 있던 연민과 자책의 감정이 가슴깊은 곳에서 올라오며 참았던 눈물보가 터졌는지 굵은 눈물 방울이 맨발 위로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 내가 진정 스님이구나! 신도들의 공양물을 받고 온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죽어라 수행해야 하는 청정비구들의 행렬에 내가 있는 것이다. 나는 과연 이 밥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이 밥을 받기에 부끄럽지 않은 수행을 하였는가? 나의 계행은 티없이 맑고 깨끗한가? 양심의 밑바탕에서부터 이런 물음이 끝없이 올라오며 몸과 마음이 가난한 신도들의 청정심에 내 게으름과 계행에 끼인 때를 씻어 내고 있었다.

이렇게 눈물과 함께한 첫 탁발의 경험은 선원에서 수행하는 내내 나의 신심을 복돋우고 대분심과 일체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일깨웠으며, 스님으로서 서릿발같은 계행을 수지하고 지켜나가는 밑거름이 되고 방향타가 되었다.

또한 재가자로 돌아 왔을 때도 우리가 왜 승가를 받들고 스님들을 공경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한 손으로 손뻑을 칠 수 없듯승가와 재가자는 서로를 바라보는 거울이자 하늘을 나는 새의 양 날개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예의는 사람을 그에 걸맞게 만들어 준다. 재가자가 승가를 이처럼 공경하면 스님들은 계행을 어기며 방일할 수 없고, 승가가 청정하고 수행정진하는 풍토이면 재가자는 승가를 존경하고 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귀하신 부처님 법이 따르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더럽혀지고 있다. 우리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이런 모습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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