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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정진을 고르게 유지해야 한다


텃밭에 나가 밭을 일구는데 실전 농학박사이자 30년 경력의 농사 유단자이신 윗 밭 아주머니께서 일갈 하셨다.

'일이라는거이 그렇게 후닥닥 후닥닥 하면 힘이들고 싫증나서 못햐. 그저 설겅설겅혀야 힘이 들지 않는법이여'

그렇잖아도 빨리 일을 끝 낼 요량으로 무리하게 힘을 쓰는 자신을 읽고 있는데, 존경하옵는 농사 스승님께서 송곳처럼 지적하신 것이다.

예전에 미얀마 선원에 갈 때 마다 만나는 태국 수행자가 있었다. 몇 해를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소에서 같은 처소에서 수행을 했다.

그는 성격도 느긋하고 수행하는 것도 뭔가 열심히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건성건성하는듯 하지만 늘 꾸준하고 한결 같았다. 

우연한 기회에 인터뷰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그의 수행 수준이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온 수행자들은 대체로 열심히 수행한다. 특히, 재가 수행자들은 모처럼 어렵게 시간내서 온 만큼 뭔가 이번에는 크게 한소식을 할 요량으로 목숨을 걸 각오로 뛰어든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악바리근성이 수행처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다. 오죽하면 어떤 선원의 사야도께서는 한국 수행자들이 열심히 하겠다고 하면 겁난다고까지 하셨을까.

수행처에서 그렇게 끝장을 볼 것 같이 수행하다 막상 한국에 와서 가정과 직장으로 돌아가면 수행처에서 조금 알았다는 것도 금새 다 까먹고, 경계에 부딪혔을 때는 아무짝에도 못쓰는 공염불이 되어버리는 것을 나도 익히 경험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거문고 줄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소나여, 그와같이 지나치게 열심인 정진은 들뜸으로 인도하고,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은 나태함으로 인도한다. 소나여, 그러므로 그대는 정진을 고르게 유지해야 한다" <소나경 Sona-sutta-A6:55>

이와같이 수행이란 꾸준히 하는 것이지 당장 끝장을 내고 한소식 하겠다는 것도 일종의 욕심인 셈이다. 특히, 재가자는 수행이 생활로 연결되어야 하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재가자가 지극한 원을 세워 한시절 수행처에서 절실히 수행하는 것도 때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수행처에서 단박 이르지 못하는 한, 결국 그것은 생활속에서 적용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알아차림(Sati))`이 끊어지지 않기 위한 기반을 쌓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재가자는 수행처에 있다가 다시 생업으로 돌아와야 하고, 설사 출가 수행자라고 하더라도 대중생활이 있는 것이고 참선하는 수좌스님도 만행을 통해 생활 속에서 실참하며 수행을 익어가게 하는 것 아니던가?

만약, 수행이라는 것이 산중이나 수행처에서만 가능하고 반드시 속세를 떠나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수행법은 오로지 스님들만 위한 것이지 중생들을 위한 수행법은 아닐 것이다.

또한, 수행처에서 알았다고 하는 것이 그저 고요한데 머물기나 하고 사바세계 저자거리에서 적용될 수 없다면 그 수행은 수행을 위한 수행일 뿐 일것이다.

재가자가 생활 속에서 수행한다는 게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습관을 잘 들이고 수행의 힘이 키워진다면 온갖 희로애락과 애증이 교차하는 저자거리처럼 좋은 공부처가 어디있겠는가?

비록, 때로는 놓치고 방황하며 오욕칠정을 수시로 넘나들더라도 끊임없이 사띠(Sati)를 챙기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생활속에서 마음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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