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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인도에서 본 죽음의 모습



지난 몇 년간 겨울철에 나는 인도 캘커타에 있는 마더테레사 하우스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일했던 ‘니르말흐리데이’라는 곳은 벵갈어로 ‘죽음의 집’이란 뜻이다. (봉사라는 말을 쓰기 싫어 그냥 일이라 표현했음 : 무급노동)

즉,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걸인들 중에서 가장 상태가 심각하여 그대로 두면 며칠 내로 사망할 것 같은 분들만 모셔와 죽음이라도 편안히 맞게 돌봐주는 일종의 호스피스 병동인 셈이다.

흔히 `죽음의 집`이라하면 매우 분위기가 심각할 것 같지만,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겉모습은 제법 낙천적이고 늘상 분위기가 무겁지는 않다. 

상태가 좋아진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도 떨고 농담도 하며 심지어 흥이나면 노래하고 춤을 추는 이도 있다. 나는 여기서 숱한 죽음들과 함께 했는데, 몇 년 전에 체험한 죽음 하나를 소개한다.

비록 가죽만 남은 앙상한 몸이지만 눈이 암소처럼 크고 순하며, 키도 큰 젊은 환자 한 분이 계셨다. 짧은 영어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환자분인데, 가끔 피를 토하면서도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는 순한 분이다.

처음들어 오신 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드리고, 바디 오일을 바르며 팔다리를 주물러 드렸더니 한숨까지 내쉬며 너무 좋아하셨다. 그 후로는 내가 올 때마다 저 멀리 있는 침상에서 손짓을 하며 반겼고, 서로를 '마이 프렌드'라 부르며 유난히 정이 들었다.

경험상 얼마 남지 않았음이 직감으로 느껴지고 때로 극심한 고통이 보이는데도, 늘 평온을 유지하려 애쓰고 가끔 농담을 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셨다. 

거의 매일 맛사지를 해 드렸는데, 그날따라 자비로 사 온 바디 오일이 떨어져 못해드렸더니, 처음으로 약간 시무룩한 표정이어서 많이 아쉬웠다. 

다음날 정신없이 바쁘게 다니다가 그분께 못해드린 맛사지를 해드리려고 가서 `오늘 어떠시냐` 물어도 대답이 없고 숨이 약간 거칠어 있었다.

앉아서 맛사지를 막 시작하는데 며칠전 새로 들어온 환자가 갑자기 똥오줌 범벅을 해 놓은터라 부랴부랴 벗기고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히고 다시 돌아와 맛사지를 시작했다.

그런데 손이 차갑고 숨소리가 들리지 않아 자세히 관찰을 하니 그 짦은 사이 그 분은 조용히 홀로 운명하신 것이었다. 뒤늦게 수녀님들이 오고 의사가 와서 눈을 뒤집고 보았지만 이미 가신 주검의 확인이었다.

평생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지 못했을 마이 프렌드는 그 흔한 수녀님들의 기도소리 한 자락 듣지 못하고 가셨다. 내 마지막 마사지는 끝내 다 받지 못하고 의리없게 작별 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한채 그렇게 가셨다. 그렇지만 아주 드물게 눈도 감고 입도 반듯이 다문채 그저 잠이 든 모습이었다.

잠시 후 혈육하나, 울음소리 하나 없는 병실 한 켠에서 인도인 스텝 두 명과 함께 대충 몸을 닦아 드리고 아래위가 붙은 흰색 인도 전통 옷 한 벌을 입히고 천으로 아래 위를 사탕 싸듯이 묶고 들것에 얹어 옆 창고로 옮겼다. 

늘 그렇듯 그분의 시신은 다음날 아침 바로 곁에 있는 강가의 화장터(가트)에서 나무토막타듯 불태워져 남은 재는 빗자루에 쓸려 옆 강물로 버려졌다.

그날 정신없이 일을 마치고 나오는 병동 앞 너저분한 거리에는 여느때 처럼 숱한 노숙인들이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있고, 하늘을 보니 붉은 해는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슬픔이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 올라오며 굵은 눈물 방울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전철을 타고 숙소 근처에 와서 그 비정한 거리의 노점에 홀로 앉아 그래도 내 한 몸 살겠다고 볶음밥 한 접시를 먹는데 자꾸만 목이 메이고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동안 덧없이 사그러지는 숱한 죽음들 속에 참고 참았던 눈물보가 터졌는지 허름한 숙소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서도 뜨거운 눈물이 베개닢을 하염없이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거기서 흘린 마지막 눈물이었다. 그 모든 것은 내 감정의 편린일 뿐, 누구나 그 곳을 향하여 가고 있으며 엄연히 죽음은 존엄한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숱한 죽음들과 함께 하며 서서히 알아갔기 때문이다.

누구나 죽음은 당장 내일이라도 만날 수 있는 늘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는 것이기에, 특별할 것도 유난스런 것도 없는 것 일진데도 우리는 늘 그것을 남의 일처럼 애써 외면하며 있을 뿐이다.

그러나 죽음과 그 이후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삻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니, 죽음만큼 삶의 의미를 부여 하는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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