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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찾는 것은 이미 마음속에


찾는 것은 이미 마음속에. . . 

문명의 때가 덜묻은 아주 조용한 곳을 찾아 한 달만 살고 오자고 길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인도 북단 히말라야 자락의 라다크는 해발 3,400m의 고원인데다 이동을 하려면 해발 5,000m의 아찔한 고개들을 넘어야 합니다.

라다크 자체도 오지이지만 거기서도 관광객이 찾지 않는 조용한 마을을 현지 스님의 소개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버스가 어찌나 낡았던지 의자시트는 새까맣게 절은 때가 빤질빤질 윤이나고 차체는 여기저기 녹이 슬어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워낙 고산지대라 현지 주민들은 햇빛에 검게 타고 쭈그러진 얼굴에 행색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티벳불교의 독실한 신자인 그들은 참 순박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삼 일에 한 번 있는 버스는 진즉부터 만원이었는데 오랜만에 나온 읍내에서 생필품을 한 보따리씩 사 들고 탔고, 휴대품중에는 살아있는 닭이나 심지어 염소까지 버스 바닥에 배를 턱하니 깔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탈 수 없을 만큼 사람과 물건들이 들어찼는데, 틈사이를 비집고 이번엔 뭔 요상한 물건들을 마구 싣는 것이었습니다.

헉, 이건 휘발유통?
그래요, 숨도 쉬기 어려운 만원버스에 서말들이 휘발유 통 여섯 개를 마구 구겨 싣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곤 그 위에 사람들이 의자삼아 태연자약하게 앉았는데, 거 참 하는 탄식이 입술 사이를 저절로 비집고 나왔습니다.

쓴 입맛을 쩝쩝 다시며 이제 곧 출발하려니 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버스 천장이 우당탕탕 하면서 뭐가 또 실리는데, 

화~따~ 
이건 또 뭣이여, LP 가스통이 얼추 대여섯 개가 허술한 지붕으로 올라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죽자, 다 죽어~ 
버스 굴러 떨어지면 휘발유통 불붙고 가스통 펑펑 터지면 그눔의 썩어 문드러질 덧없는 시체 찾아 따로 돈들여 화장 할 일도 없이 말끔히 처리될 터이니, 아주 잘 된 일이여. 
그래 오냐~~ 
갈 때 까지 가 보자~♬ 

젠장, 
가스통과 사람과 염소를 사이 좋게 싣고 가는 길이 장관인데 왼쪽은 오금이 저리도록 까마득한 낭떠러지, 오른쪽은 언제 쏟아져 내릴지 모르는 바위산이 위태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길이 얼마나 급한 S자인지 버스가 한 번에 코너를 돌지 못해 까마득한 낭떠러지에서 후진을 한두 번 하고 나서 올라가는데 머리끝이 쭈뼛쭈뼛 하였습니다.

제기럴, 고물버스 수동기어 잘못 들어가는 날에는 후진하다 그대로 굴러 떨어지고 기름통 폭발, 가스 폭발~~ 
구경거리 혼자 보기 아깝겠구먼!

잔뜩 독기를 품은 채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가스통, 기름통과 그 험한 길은 아랑곳없이 순박하고 천진한 얼굴로 오랜만에 사돈 만난 사람처럼 웃고 떠드는 아낙네들을 보니 기가막힐 노릇이었습니다.

버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자기들 언어로 떠드는 내용이란 아마도 대ㅡ충 이런 것인듯 싶었습니다.

'아따 개똥 엄마, 뭘 글케 마이 샀슈'
'별거 아뉴, 요새 우리 집 양반 기운이달려 씨암탉 한 마리 사고 보약 한 재 지었슈, 깔깔깔. . . .'

힐끗 버스 안 풍경을 둘러보니 열심히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하는 사람, 하찮은 공산품 몇 개를 신주단지처럼 사들고 가는 남루한 차림의 할배, 뭔누무 장을 보자기가 삐져나오도록 봐가지고 가는 아지매, 연신 만트라를 외며 염주를 돌리는 중년의 남자. . .

그야말로 살 냄새, 땀 냄새로 가득한 버스 안은 생생한 삶의 현장이었으며, 차라리 그것은 하나의 종교요, 경전 그 자체였습니다. 이들의 이 순박한 모습은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는 부처이자, 종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갑자기 얼어붙었던 마음이 눈녹듯 하며 무얼 그리 혼자 살겠다고 까칠해 가지고 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며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이 순진하고 신심 지극한 사람들과 같이 가는 황천길도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겠는가? 내가 이 분들보다 잘 난 것이 뭐있고 더 귀한 것이 뭐가 있다고 홀로 걱정을 싸매고 있단 말인가?

보아하니 불심 가득한 이분들 몽땅 극락행일터니 갑자기 단체로 들이닥친 극락 문앞이 혼란한 틈을 타 나도 슬그머니 따라들어 가면 그냥 봉 잡는 것이여.

그렇게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사이 그 고물버스는 여섯 시간 넘게 산넘고 물건너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사한 도착은 애초에 내가 걱정을 하든 안하든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모두 아무 문제없었는데, 바보같이 나만 문제를 만들어 무거운 짐을 지고 왔습니다. 기왕에 버스를 탔으면 그 짐은 바닥에 내려둬도 될 것을 버스에 타고서도 그대로 들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은 내가 찾던 관광객의 때가 묻지 않는 매우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스님 혼자 거처하시는 암자에 여장을 풀고 기쁨의 환호성을 지른지 겨우 하룻밤이 지났습니다. 

갑자기 해머 드릴로 바위깨는 소리가 종일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불행이도 마을 불탑 건설 공사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조용한 곳을 찾아 죽을 고생을 하며 히말라야 오지중의 오지를 찾아갔지만 세상에 조용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수행처마저도 사람사는 곳이라 이런저런 일로 시끄럽고 또 미운 사람도 있고 이쁜 사람도 있더군요.

아마도 내 마음이 조용해 지기 전까지 세상에 조용한 곳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조용하다면 세상 어디나 조용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집에 누워있어도 마음은 어디론가 줄달음치고 있습니다. 어디를 향하던 이런저런 생각과 걱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대부분은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걱정과 함께 애써 도착한 목적지 또한 전혀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찾는 그 모든 것은 이미 마음 속에 늘 갖추져 있는 것들 입니다. 진정 찾아야 할 것은 마음 속에 있다는 것을 점차 이해하면서 조용한 곳을 찾던 나의 긴 방황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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