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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김치와 삼겹살로 엮은 드라마


김치와 삼겹살로 엮은 드라마>

히말라야자락 '다람콧'이라는 산골에서 민박할 때의 일입니다. 몇 달 째 김치나 고기와는 인연이 먼 채 생활한 탓인지 입맛도 없고 기운이 축 쳐지던 어느 날 지붕을 쳐다보니 기왓장이 얇고 널찍한 돌판으로 덮여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문득, 저 돌기왓장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기가 막힐 것 같은 꽤나 창의적인 생각이 번쩍드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마당 귀퉁이에는 지붕에 올리고 남은 돌판이 두어 장 눈에 뛰었습니다.

먼저,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가 그 지역을 어슬렁거리며 주린 하이에나처럼 고기를 갈망하던 한국청년 둘을 포섭하여 삼추위(삼겹살 추진위)를 결성하고 각자에게 임무를 부여하였습니다.

그 젊은이들에게 배낭 여행계의 할배급이며 '남 아무개옹'으로 불려지는 제가 당연히 위원장이자 스폰서가 되었고 삼겹살에 필수인 김치를 담그는 게 저의 주 임무였습니다.

그곳은 티벳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드물지 않게 배추가 있고 마치 손톱깎아 놓은것처럼 아주 작은 마늘쪽도 있습니다. 

그놈을 사서 배낭에 짊어지고 가파른 산 길로 한 시간 넘게 걸어올라와 절이고 한국에서 가져온 고춧가루와 버물여 김치를 담구었지요. 그리곤 주둥이를 자른 큰 패트병 세 개에 담아 냄새 때문에 주인집 헛간에 놓아두었는데, 그 맛이 과히 감동적(?)이었습니다.

다음날 각 대원들은 임무에 따라 그 지역 전체 푸줏간을 뒤진 끝에 삼겹살은 아니지만 어렵게 돼지고기를 구해 얇게 썰고 땔감 등을 장만하여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였습니다.

돌판에 고기가 지글지글 기막히게 익어가자 때 맞춰 담가둔 김치를 가지러 갔는데 헐! 김치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 아니겠습니까?

헛간을 이잡듯 뒤지고 대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샅샅이 수색해도 흔적도 없으니 참말로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지요. 

그 때 마침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주인집 딸래미 '니뚜'양이 보이길래 요래조래 생긴 걸 보았냐며 헛일 삼아 물어 봤더니, 

니뚜 양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아, 그거요, 하도 이상한 냄새가 나서 보았더니 썪은것 같아서 버렸는데요' 이러는 겁니다.

뭐시라? 그걸 버려? 
이런된장, 버릴게 따로있지 뭘 버려! 고마 달려가 꿀밤을 한 대 주고 싶었습니다. 욕구에 굶주린 짐승은 제 먹이를 건드리면 사나워지게 되어있는 법입니다.

내가 그눔의 초승달같은 마늘까느라 밤새 눈알이 빠질뻔 했는디, 이누무 가스나가 시방 뭐라카노, 에이 망할, 등등 온갖 욕지거거리가 입술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걸 빨아 먹느라 혼이 났습니다. ㅎㅎ

그 때, 마침 외출에서 돌아온 주인장 Mool씨가 좋은 냄새에 화색을 띄고 달려와서는 무슨 고기나며 물어보길래, 돼지고기라니까 기겁을하고 도망가며 알 수 없는 힌디어로 막 욕을 해 대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인도에서 돼지고기는 카스트의 최하층 천민들이나 먹는 것이라나 뮈라나요! 제기럴,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Mool씨는 꽤나 양반축에 속했나 봅니다.

모른긴 해도 Mool씨는 우리에게 '에이ㅡ천하에 비천한 쌍것들 같으니라고, 지옥에나 떨어져라, 어쩌구 하는 욕을한 게 분명합니다. 내가 금쪽같은 김치버린 제 딸래미에게 하려던 욕이 금방 과보를 받아 돌아온 것 입니다.

타국에서 삼겹살 맛 좀 보려다 졸지에 우리는 '불가촉 천민'보다 못한 불상놈에 '냄새나는 썪은 배추'를 먹는 이상한 족속으로 전락했습니다. 만일 나의 선친께서 이 광경을 목도하셨다면 매우 비분강개하실 일이 틀림 없습니다.

그나저나 돌판에 구운 돼지고기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습니다. 그 아까운 김치만 안버렸으면 금상첨화에 고추장이었는디 . . . . 

김치와 삼겹살을 두고 각자의 안경을 끼고 벌인 해프닝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내가 애써 담근 귀한 김치는 니뚜양에게 냄새나는 썩은 배추였고, 우리가 갈망하던 삼결살은 Mool씨에게 천민들이나 먹는 천박한 음식이었습니다.

산다는 게 참 그렇습니다. 
때론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고 심지어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마저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장 싫어하고 경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은 상대적입니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없고 틀린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문화와 관습과 반복된 경험이 축적된 것이고, 그래서 이미 마음속에 조건지어진 것입니다.

그 조건 지어진대로 반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각자가 보고 느끼는 세상이며, 결국 좋고 나쁘고 기쁘고 슬픈 그 모든 것은 그러한 우리 마음의 반영인 것입니다.

내가 어떤 조건지어진 마음을 가졌느냐에 따라 그에 걸맞는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그 드라마에 울고 웃는 게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드라마에 취해 열중하는 동안 그것은 드라마가 아니고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순간순간 매의 눈으로 알아차리지 않으면 드라마가 막을 내릴 때 쯤이나 알게 되겠지요. 그것이 내가 각본을 쓰고 감독하고 주연한 한 편의 드라마였음을. . .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은 내 드라마에 공짜로 출연해 준 고마운 조연이었으며, 그 조연들의 생각이나 행동마저도 내 식으로 해석하여 각본을 쓰고 그에 맞는 연기를 펼쳤다는 사실을. . . 

이상은 제가 김치와 삼겹살을 놓고 인도땅에서 펼친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관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순간순간 좋은 드라마 연출하시기바랍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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