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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귀한 인연 미얀마


어떤 가볍게 시작된 인연은 뜻밖에 사람을 거기에 오래 묶어두기도 하고, 또 어떤 무거운 인연은 두번 다시 그곳을 찾지 않게 하기도 한다. 

십여년 전 인도여행에서 지친 심신을 달랠 겸 방콕으로 건너가 카오산 거리를 헤매다 어떤 베테랑 여행자로부터 미얀마의 어느 해변에 가면 바닷가재를 단돈 몇 만원에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며칠 후 바로 미얀마로 향했다.

그 때만 해도 미안마는 지독한 군부독재 시절이었고 아웅산 수치 여사는 가택연금 상태였으며 미얀마에서 그녀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는 것은 금기였다.

이런 이미지 때문인지 여행객은 거의 없었고 물가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쌌다. 조식 포함된 오천원에서 몇 만원짜리 숙소가 허다했고 맛있는 음식들도 몇 천원이면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일찌기 미얀마사람들처럼 순박한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 불교도인 이들은 스쳐지나는 사람도 웃음으로 반기고 외국인을 아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대하곤 했다.

나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 별 생각없이 그저 싼물가에 맛있는 해산물에다 맥주나 실컷 마시며, 말하자면 먹고 놀자주의 정신으로 간 것 이었다.

당연히 맛있는 음식과 즐길거리를 찾아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헤매고 다니던 어느 날 만달레이의 한 시장 골목을 누비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고함 소리와 함께 와장창하는 소리가 들려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을 밀치고 다가가 보니, 난전 한 귀퉁이에 겨우 끼어든 좌판이 경비원인듯한 사람에게 박살이 나서 뒹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처음 장사를 나온듯한 촌티 나는 순박한 아낙이 잔뜩 주눅이 든 채 암소같이 큰 눈에서 소리도 없이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흐느끼고 있었다. 

여인의 출렁이는 어깨 뒤에는 세상근심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젖먹이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손가락을 쫄쫄빨며 옹알이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가슴 깊은 곳이 아프게 저려와 잠시 주저하다 용기를 내어 알량한 돈 몇푼을 여인의 주머니에 억지로 찔러주고 도망치듯 거리로 나와 인파속에 섞여 끓어 오르는 연민을 애써 잠재웠다.

그리고 잠시 길을 걷다 서둘러 숙소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라는 것이 트럭의 짐칸에 나무로 만든 의자를 두 줄로 걸쳐 놓은 것인데, 여러 아낙네들과 마주보고 앉아가자니 괜히 겸연쩍어 사탕하나 씩을 건냈다.

그 중 아기를 업은 남루한 차림의 한 여인은 얼른 사탕을 까서 아기 입에 넣어 주기에 한 개를 더 드렸더니, 이리저리 눈치를 보다가 얼렁 주머니에 집어 넣는 걸 보고 나는 트럭에서 내렸다. 

필경, 그 사탕은 집에 남은 또 다른 자식의 입으로 들어 가리라. 아, 세상의 어머니들이여!

갑자기 목이 메여오며 쑥쓰럽게도 그날 밤 숙소에 돌아와 잠을 청해도 낮에 본 두 장면이 오버랩되며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졌다. 이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 와서 몇 푼 안되는 돈으로 나혼자 잘 먹고 즐기며 온갖 호사를 누리는 내 여행이 죄스러워졌다.

늘 훌륭한 가치를 들먹이며 고귀한 진리를 논하는 내 경박한 입이 저 가난한 어머니의 좌판과 사탕하나의 천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천하 도인의 깨달음일지라도 저 가난한 아버지들 노동의 등짝에 핀 소금꽃과 순박한 미소만큼 거룩할까 라는 생각이 가슴을 치고 들어오며 내 가늘고 흰 손마디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무엇보다 이 빈곤한 도시의 맑은 눈빛의 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와 인간적 양심은 지켜야 되겠다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온갖 맛집과 싸고 질좋은 숙소와 관광명소 등이 빽빽히 적혀있는 여행정보들을 모조리 찢어버렸다.

그 후 내 여행은 훨씬 진지하고 겸손해 졌으며 현지인들의 삶에 한발짝 바싹 다가가 있었다. 

그리고 여행객들이 잘 살피지 않는 구석을 살피게 되었으며, 미얀마에는 부처님 법이 잘 전승되었고 그것을 실천하는 수 많은 위파사나 명상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들린듯 이끌려 간 그 곳에서 30여년 간 외도를 헤매던 내 방황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이어진 미얀마 행은 진리를 찾아 헤매는 방황이 아니라 진리로 향하는 발걸음 그 자체가 되었다.

결국, 여행은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고 경험의 내용 또한 달라지는 것이었다. 사는 것 또한 마찬 가지리라. 삶이 곧 여행이고 여행이 곧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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