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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생활 속의 수행_남상욱님

인생열차


인도의 기차만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 있을까? 한 기관차가 끌고 가는 여러 등급의 객차는 인도 사람들만큼이나 특색있다.

먼저 상위등급인 AC칸은 좌석이 깔끔하고 넓직하며 사람들 생긴 모습부터 다르다. 피부색도 대체로 희고 차림새도 좋으며 말 수가 적고 제법 점잖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며 나름 교양이 넘치는 사람들이 타는 이 칸은 조용한 분위기에 영자신문을 턱 하니 펼쳐들고 카스트 축에 들지도 못하는 외국인 따위는 아는체도 않는다.

반면, 중간 클래스인 SL칸은 온갖 인간군상들의 전시장이다. 수시로 창문을 두들기는 잡상인과 걸인들을 응대해야 하고, 절도에도 신경써야 하며 바퀴벌레와도 친하게 지내야 여행이 즐겁다. 볼 일 보러 가면 화장실 문화에 익숙치 못한 인도 서민들이 간혹 반대로 앉아 일을 보는 이들이 있어 금덩이들과도 태연자약 마주쳐야 한다. 그래도 이 칸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허풍도 떨고, 특히 외국인에게 체신머리 없는 호기심의 눈으로 온갖 참견을 다 하는 인도인들의 사람냄새, 땀냄새가 듬뿍 묻어나는 곳이다. 무엇을 물으면 개나 소나 다 나서서 아는체를 하며, 심지어 전혀 모르는 것도 자신있게 엉터리로 가르쳐 주는 훈훈한(?) 인간미를 발휘하기도 한다.

마지막 하위 클래스인 GL은 지정 좌석이 없어 열차가 도착하면 먼저 타려고 밀고 당기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연출된다. 자기 몸뚱이보다 큰 짐보따리에 좌석은 물론 바닥과 천정, 짐칸까지 사람들로 가득차고, 가끔은 닭, 염소같은 가축도 함께 탄다. 그래도 사람들은 시끌벅적 떠들고 웃고 싸우고 서로 돕기도 하며, 선반이나 바닥에 천연덕스럽게 벌러덩 누워 그 힘든 것들을 견뎌내며 목적지까지 간다.

어차피 인생도 같은 부류끼리 모여사는 것, 인도의 열차등급은 이 사회의 축소판 같아 매우 흥미롭다. 비록 삶에 정신적 등급은 없을지라도 물질적, 환경적 등급은 엄연히 존재하는 법, 우리는 지금 자신의 좌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현재의 클라스에 불평만 하고 있는지, 끝없이 상위클래스를 향해 목을 메고 있는지, 지금의 좌석을 잃을까봐 전전긍긍 하고 있는지, 다소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현재 클라스에서 재미있고 의미있고 행복하게 가고 있는지?

확실한 건 어떻게 가든 기차는 쉼없이 달리고 있으며, 결국은 각자의 종착역이 다가오는 건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종착역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알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의 삶의 선택은 바로 이런 사실을 가장 먼저 염두해 둔다. 이것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가장 근본적인 근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는 것은 종착역이 다가온다는 것이고 늙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언제든 미련없이 내릴 준비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 준비에서 명심할 것은 기차의 종착역은 짐보따리를 챙겨야 하지만 인생의 종착역은 모든 짐보따리를 두고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 짐보따리는 몸과 재물, 가족뿐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애증, 집착, 탐닉, 원한 등 종류가 아주 많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착역이 다가와도 끝까지 짐보따리를 움켜쥐고 있다가 강제로 끌려 내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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