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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문제의 뿌리 제4장. 문제의 뿌리 붓다가 말하기를 “고통의 진리는 그 바닥까지 탐색되어져야만 된다.”고 했다. 붓다가 깨달음에 이르기 전날 밤 그는 고통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뿌리뽑을 수 있는지를 알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앉았다. 고통이란 무엇인가? 붓다는 분명히 고통이 존재하는 것을 보았다. 고통은 아무리 싫어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통은 삶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다. 우리는 자궁 안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의식적인 기억은 없지만 우리는 모두 울면서 자궁 밖으로 나왔다. 그 누구도 웃으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만큼 출생은 그 자체가 엄청난 마음의 손상이다. 삶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병들고 늙는 고통을 직면하게 되어있다. 얼마나 더 병들고 더 빨리 늙어가느냐에 관계없이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제5장. 도덕적인 행위의 훈련 제5장. 도덕적인 행위의 훈련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지(無知)와 갈망(渴望)과 혐오(嫌惡)에서 비롯되는 고통의 원인을 뿌리뽑음으로써 고통을 뿌리뽑는 것이다. 붓다는 일찍이 인간은 왜 고통받며, 어떻게하면 그러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6년간의 고행끝에 그 목적을 성취했다. 그리고 붓다는 이후 45년간 자신이 발견한 길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붓다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고귀한 팔정도(八正道)라고 불렀다. 한번은 제자들로부터 그 길을 쉽게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붓다는 말했다. 모든 불건강한 행위를 삼가하고 건강한 행위를 닦아서 너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 이것이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이다. 이것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너무나 분명한 설명이다. 누구든지 해로운 행..
제6장. 집중훈련 제6장. 집중훈련 도덕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말과 행동을 통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고통의 원인은 정신적인 내용에 있기 때문에 만일 마음이 욕망이나 분노에 들끓고 있다면 아무리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삼가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당장은 욕망과 분노에 이글거리는 마음을 억누를 수 있지만 오래지 않아서 폭발하거나 아니면 안으로 병이 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해롭게 만든다.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 수천년 동안 모든 종교가 도덕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통제하는 일에 치중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거나 유혹을 받으면 쉽게 무너진다. 술과 담배가 해롭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제7장. 지혜의 훈련 제7장. 지혜의 훈련 도덕훈련이나 집중훈련은 붓다만이 가르친 유일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훈련은 붓다 이전의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던 기존의 훈련방법이었다. 붓다 역시 자유의 길을 찾아서 사문의 길을 걷던 당시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에게서 집중훈련을 배웠다. 그래서 도덕훈련이나 집중훈련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은 다른 전통적인 종교에서 주장하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붓다 또한 도덕적인 행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했고, 기도나 의식이나 명상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는 축복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덕훈련과 집중훈련은 단순히 정신적으로 깊이 전념해서 몰입되는 상태로 여기서 종교적인 신비경험 이나 황홀함이 가능하다. 집중의 수준이 초월상태까지 가지 않아도 실제로 아주 유익한 것..
제8장. 자각과 중도 제8장. 자각과 중도 자각(自覺)과 중도(中道), 이것이 위빠싸나 명상이다. 이 둘을 함께 훈련하는 사람은 고통으로부터 해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만일 이 자각(自覺)과 마음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고 평형을 유지하는 객관적인 입장인 중도(中道)를 취하지 못하면, 마음의 낡은 습관을 깨뜨리고 해방으로 가는 길에 진전을 이루기가 어렵다. 자각과 중도는 마치 새가 날기 위해서 두 날개가 필요하고, 수레가 움직이기 위해서 두 바퀴가 필요한 것처럼, 깨달음에 있어서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다. 그리고 만일 수레의 두 바퀴가 한 쪽은 크고 한 쪽은 작다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원을 그리면서 빙빙 돌게 되듯이, 명상을 하는 사람이 깨달음의 길을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각과 중도를 함께 균형있..
제9장. 목적 제9장. 목적 일어나는 본질을 가진 것은 무엇이든 또한 중단하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은 실재에 대한 경험을 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의 단순한 묶음이다. 우리 인간이 고통받는 원인은 실제로는 순간적이고 실체가 없는 순간적인 접촉에 집착을 발달시켜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감각기관과 감각대상 간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비영속적인 본질을 직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과제다. 자신 안에서 항상 변화하는 감각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일시적인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각이 일어날 때마다 반응하지 않고 그 감각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렇게..
제10장. 삶의 기술 제10장. 삶의 기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편견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편견은 자아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 가정을 토대로 우리는 자아를 우주의 중심으로 만들면서 자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서 자아는 오직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아에 대해서 얼마만큼 과장을 해서 생각하든지 관계없이 시간과 공간적으로 무한한 우주에 비한다면 정말로 무시해도 좋은 정도다. 자아에 관한 우리의 관념은 명백한 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 전부를 자기 충족을 찾는 데 바친다. 그러나 자의식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고통인가 하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욕구와 공포와 ..
부록1. 붓다의 가르침에서 감각의 중요성 부록 I 붓다의 가르침에서 감각의 중요성 붓다의 가르침은 자기 변형을 위한 수단으로서 자신에 대한 지식을 발달시키는 체계다. 자기 본질의 실재에 대한 실험적인 이해를 얻음으로써 우리가 그릇되게 행동하고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착각을 제거할 수 있다. 우리는 실재와 일치되게 행동함으로써 생산적이고 유용하고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것을 배운다. 자각에 대한 설명에서 붓다는 자기 관찰을 통해서 자기 지식을 발달시키는 실제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그 기법이 위빠싸나 명상법이다. ‘대체 내가 나라고 부르는 이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인가’ 그 ‘나’라고 부르는 것은 신체적인 측면의 몸과 정신적인 측면의 마음인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두 가지를 관찰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된다. 그런데 어떻게 우..
부록2. 진정한 믿음 부록 II 진정한 믿음 일전에 한 신도분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신과 인간이라고 하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설정하고 있으며, 그들 사이에는 인간이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신의 존재를 믿음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누구든지 교회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신앙의 주체와 신앙의 객체, 즉 무엇을 믿고 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없다. 게다가 하느님의 말씀은 일단 한글이고 한 권의 책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하느님에 대해서 매우 확신에 차 있고 성경구절도 줄줄 외우면서 가끔씩 만나는 모임에서 강력한 태도로 자신은 전지전능한 신을 믿는데 불교인은 인간인 부처를 믿는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은 물론 열성적으로 절에 다닌것은 아니지만 수 년간..
1.탐구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1. 탐구우리 모두는 평화와 조화를 갈망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것들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을 원한다. 사실 행복은 우리가 누릴 당연한 권리이다.그러나 행복은 쉽게 얻어질 수 없다. 반대로 싸워야 얻을 수 있다. 매 순간 마다 우리는 불안, 동요, 초조, 고통 등을 경험한다. 비록 어느 한 순간에 우리가 이런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해도 우리는 괴롭던 시간을 기억하고 그런 불안이 언젠가 다시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안다. 더욱이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의 고통에 직면한다.우리는 이런 불안들을 개인적 차원으로 한정시키지 않는다. 사건은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그 불만을 전가시킨다. 불행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환경은 불안하고 그 불안한 환경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 역시 불행과 심적 동요를 느낀..
2.출발점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2. 출발점 고통의 근원은 우리들 각자 내부에 존재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성품을 이해할 때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너 자신을 알라”고 모든 현자들은 충고한다. 우리는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뿐 아니라 세계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자신의 중요성과 유일성을 확신 하지만 그에 관한 지식은 단지 피상적일 뿐이다. 그 깊은 밑바닥을 전혀 알지 못한다.붓다는 그 자신을 검토함으로써 인간을 이해하려 했다. 모든 선입견들을 버리고 안으로부터 자아의 실재를 찾아 마침내 모든 존재는 물질(色)과 네 가지의 정신적인 의식(識), 인식(想), 감각(受), 의지(行)의 복합체(五蘊)임을 발견했다. 물..
3.고통의 직접적인 원인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3. 고통의 직접적인 원인현실 세계는 모든 사람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동화 속의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우리의 삶은 불안하고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고통이 어떤 원인으로 생겨나며, 또 그 고통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고통의 원인이 되는 사건이 우리가 조정하고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영역 속에서 제멋대로 발생한다면, 그 때 우리는 무력해지고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마저 포기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고통이 전능한 존재에 의해서 자의적으로 명령된다면, 더 이상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없도록 이 존재를 달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붓다는 우리의 고통이 그저 단순하게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
4.문제의 뿌리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4.문제의 뿌리고통의 문제는 끝까지 철저하게 탐구되어야 한다. 붓다는 말한다.(상응부) 붓다가 깨닫던 날 밤 그는 고통이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소멸되는지 알 때까지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으로 보리수 밑에 앉았다. 고통의 정의분명하게 고통이 존재함을 붓다는 보았다. 비록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통은 인생의 시작과 더불어 생긴다. 어머니 배 속에서의 생활을 기억할 순 없지만 태어나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탄생은 커다란 상처이다. 인생이 시작되면서 필연적으로 병과 늙음의 고통을 만난다. 그러나 비록 병에 걸리고 늙어 가지만 우리 모두는 죽기를 원치 않는다. 죽음은 정말로 큰 슬픔이다.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죽음에 직면한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육체적,..
5.도덕성의 훈련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5.도덕성의 훈련 수행이란 무지, 갈망, 혐오 등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여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작업이다. 이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붓다는 실천의 방법을 발견하고 몸소 가르쳤다. 붓다는 이 방법을 팔정도(八正道, the Noble Eightfold Path)라고 불렀다.모든 악을 삼가고 선을 행하며 그대의 마음을 정화시키라. 이것이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이 다.(법구경)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매우 명료한 가르침이다. 모든 사람들은 해로움을 주는 행동은 피하고 자비로운 행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해롭다든가 자비롭다는 것 혹은 건전하다든가 사악하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자신의 견해, 전통적인 믿음, 우리의 선호나 편견에 따라 이것들을 이해한다면..
6. 집중의 훈련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6. 집중의 훈련 계행을 지킴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고통의 진정한 원인은 정신적인 행동이다. 단순히 말과 행동을 삼가지만, 마음은 여전히 갈망과 혐오감 등의 건전하지 못한 정신적 행동으로 들끓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머지않아 곧 계를 파하고 갈망과 증오가 폭발하여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미칠 것이다.건전하지 못한 행동은 잘못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한다. 수천 년 동안 모든 종교는 도덕적 행위의 중요성을 가르쳐 왔다. 그러나 유혹이 밀어닥치면 마음은 곧 거기에 휩싸이고 계(戒)를 범하게 된다. 술은 해롭기 때문에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마시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면 그는 술을 마시고 다시 취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그..
7. 지혜의 훈련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7. 지혜의 훈련 붓다만이 도덕훈련(계, 戒, sila)과 집중훈련(정, 定, samadhi)을 가르친 것은 아니다. 그러한 훈련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 이미 널리 알려져 실천되고 있었다. 사실 붓다는 해탈의 길을 찾으면서 두 스승으로부터 집중훈련 수행법을 배워 수련했다. 붓다가 이 수행법을 설명하는 방식은 기존 종교의 스승들과 다르지 않았다. 모든 종교는 도덕적 행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또 기도, 의식, 단식, 금욕적 생활양식이나 여러가지 명상법을 통해서 환희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수행법의 목적은 단순히 정신적으로 깊이 전념해서 몰입되는 상태로 이것이 종교적인 신비주의자들이 경험한 황홀감이다.이런 집중은 초월의 수준까지 도달하지는 못해도 많은 도움을 준다. 혐오나 갈망에 빠져들 상황으로부터..
8. 알아차림과 평정심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8. 알아차림과 평정심 알아차림(慧)과 평정심(定),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이다. 이 둘을 함께 수행할 때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다. 어느 한 쪽이 결여되거나 약하면 목표에 이르는 수행의 길에서 진보가 없다. 마치 새가 날기 위해서 양 날개가 필요하고 마차가 움직이기 위해서 두 바퀴가 필요한 것처럼 알아차림과 평정은 똑같이 강해야 한다. 새의 한쪽 날개가 약하고 다른 쪽이 강하다든지 마차의 바퀴가 한 쪽이 작고 다른 쪽이 크다면 그것은 잘 날 수 없고 계속 앞으로 굴러갈 수 없다. 수행자는 수행의 길에서 알아차림과 평정의 능력을 동시에 발전시켜야 한다.우리는 마음과 물질이 가장 본질적인 수준에서는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동이나 생각과 같이 몸과 마음의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
9. 수행의 궁극적 목표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9. 수행의 궁극적 목표 “형성된 모든 것은 소멸되기 마련이다.”(상응부) 실재에 관한 이런 경험이야말로 붓다의 가르침에서 본질에 해당한다.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과정의 다발일 뿐이다. 우리의 고통은 실체가 없는 하루살이에 불과한 변화의 과정에 집착함으로써 발생한다. 만약 우리가 이 과정의 무상(無常)한 본질을 직접적으로 깨닫게 되면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사라진다. 끊임없이 변하는 내면의 느낌과 생각들을 관찰하여 그 자체의 덧없는 본성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수행자가 할 일이다.느낌과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에 따라가지 않고 일어나는 대로 사라지는 대로 그냥 바라본다. 그러면 오랫동안 마음에 조건지어진 무의식이 표면으로 튀어나와 사라진다. 조건지어진 것과 집착이 멈추면 고통이 ..
10. 삶의 지혜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10. 삶의 지혜우리들 자신에 관한 편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아가 있다”(There is self)는 것이다. 이 같은 가정에 의해서 우리들 각자는 자아에 최고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또 우주의 중심으로 삼는다. 모든 무한한 세계 가운데 자아만이 오직 유일하다. 비록 셀 수 없는 많은 존재 가운데 오직 자아만이 유일하다는 것을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한다 해도, 우리는 자아의 존재와 그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자아를 과장시킨다 해도 시간과 공간의 광대함에 비교하면 그것은 하찮은 것으로 남는다. 자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분명하게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한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을 자아의 성공을 이룩하는 데 바친다.그러나 자아..
부록A. 붓다의 가르침에서 느낌(受)의 중요성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붓다의 가르침에서 느낌(受)의 중요성붓다의 가르침은 자기 자신에 관한 지식을 발전시킴으로써 자기를 변화시키는 조직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본성의 실재를 경험으로 이해하게 됨으로써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무지를 제거할 수 있다. 우리는 맞게 행동하는 법을 배우고 그래서 생산적이고 유용하며 행복한 삶으로 인도된다.염처경(念處經, Satipattana Sutta) “알아차림에 관한 설법”에서 붓다는 자기 관찰을 통한 자기에 대한 지식을 발전시키는 실제적인 방법을 제공한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법이다.자신에 관한 진리를 관찰하는 시도는 ‘자기’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과 몸, 신체와 정신이라는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이 양자를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몸과..
부록B. 느낌에 관한 경전의 말씀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인경스님) 느낌에 관한 경전의 말씀 경전 속에서 붓다는 자주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다음은 느낌에 관한 경전의 말씀 가운데 아주 작은 일부이다.많은 종류의 바람이 하늘을 스치고 지나가네.동쪽과 서쪽에서 북쪽과 남쪽에서 청명한 바람과 먼지바람이차갑거나 혹은 뜨거운 격렬한 폭풍과 부드러운 산들바람이바람처럼 우리의 몸뚱이 속에서도 느낌들이 일어나네.유쾌하기도 하고 혹은 슬픈 혹은 불쾌하지도 기쁨도 아닌 느낌들이뜨거운 정진으로 철저한 이해(正知)의 힘을 개발한 수행자는불어오는 느낌의 바람을 완전히 이해하리라.그리하여 철저한 이해로 인하여 현재의 이 삶 속에서 그 모든 삿된 생각으로부터 끝내 자유를 얻으리라.모든 조건지어진 세계를 뛰어넘어 일상의 삶에서 법을 실현하게 될 것이니라.(상응부) 어떻게 몸 안..
박경리님과 박완서님 사진(상) : 북한강과 남한강이 하나의 강으로 합쳐지는 두물머리 강안개 사진(하) : 박경리님과 박완서님 소설가 박경리씨는 운명하기 몇 달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아래 글은 박완서씨가 노년에 썼던 글입니다."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 .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
사람들은 고통을 싫어하지만, 고통의 원인을 좇아 다닙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싫어하지만 고통의 원인을 쫓아 다닙니다.
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새해 인사로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복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을 많이 받으라고 하는데 그럼 그 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복은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어떤 대상을 선별해서 주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사람을 가려서 복을 주고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편애에요. 그렇다면 그건 절대적인 존재일 수가 없습니다. 복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스스로가 지어서 받습니다. 따라서 복을 받으려면 먼저 복 받을 행동을 해야 합니다. 복 받을 마음씨(마음의 씨앗)를 지녀야 됩니다. 우리들 순간순간의 삶이 과연 복을 받을만한가? 내가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복을 받을만한가? 스스로 살펴야 됩니다. 복은 어떤 대상을 통해서 내가 복을 짓기도 하고 감하기..
불교는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불교는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다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자신이 부처가 되는 자기 실현의 길이다 부처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곳은 부처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진리뿐 불교는 이와 같이 자기 탐구의 종교이다 자기 자신을 바르게 알면 세상을 바르게 알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바르게 사랑하면 세상을 바르게 사랑할 수 있다 - 법정스님 글 中에서 . 불교(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는 부처(석가모니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진리; 진실한 이치, 法)에 따라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다 그의 가르침(진리; 진실한 이치, 法)에 따라 자기 자신이 부처(깨달은 자)가 되는 자기 실현의 길이다 부처(석가모니 부처)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 그렇..
'자기 자신을' 모르는 비극적인 삶 아직도 이 세상에는 '자기밖에' 모르는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 글/사진 박노해 ______ 한 젊은이가 노인에게 물었다. "사랑과 지혜, 어느 것이 사람에게 더 중요할까요?" 노인이 그 젊은이에게 물었다. "오른 쪽 날개와 왼 쪽 날개, 어느 것이 새에게 더 중요하겠느냐?" Which is more important, Love or Wisdom? - 루미(Rumi) * 젤랄루딘 루미(Jelaluddin Rumi)는 고대 페르시아의 이슬람 명상가(수피)이자 시인 _____ Panna(correct wisdom) tell me I am nothing. Metta(correct love) tell ..
붓다(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 존재의 전체성(연기성)을 직접 경험한 자는 모든 존재들 속에서 자신을, 그리고 자신 속에서 모든 존재를 본다. 그렇게 그는 모든 것을 분별 없는 눈으로 본다. He who 'Experiences' the Unity of life, sees his own Self in all beings, and All beings in his own self, and looks on everything with an Impartial eyes. - 붓다 Buddha * 붓다의 가르침을 배운다는 것은 곧 자기를 배움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곧 자기를 잊어버림이다. 자기를 잊어버림은 자기를 텅 비우는 일. 자기를 텅 비울 때 비로소 체험의 세계와 하나가 되어 그 어떤 것과도 대립하지 않고 해탈된(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들 - 2 제가 여기에, 부처님께서 발견하시고 가르치신 무정(정신작용이 없는 존재; 비생명, 물체)과 유정(정신작용이 있는 존재; 생명, 생명체)의 윤회(삼사라, 순환)에 관한 글을 포스팅한 이유는 불자(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나 심지어는 스님(비구, 비구니)들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거나 그런 주장을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주장1] (인간의 일상적인 관찰 능력으로는) 전생(과거 생)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발견하시고 가르치신 윤회(삼사라)는 믿을 수 없다. [주장2] 부처님은 십이지연기(십이연기)를 설하지 않았다. [주장3] 윤회(삼사라)는 매우 비과학적인 가르침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힌두교의 가르침(아트만의 윤회)을 후대 불교도들이 차용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발견..
일생 및 일상 수준의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 十二緣起] 일생 및 일상 수준의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 十二緣起]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의 맨 처음 단계인 '지식차원의 지혜(慧;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을 위해, 빠알리어(갠지스 강 유역의 고대인도 민중어 중 하나)로 기록된 경전모음인 니까야(5부 니까야; 디가長 니까야, 맛지마中 니까야, 상윳따相應 니까야, 앙굿따라增支 니까야, 쿳다까小 니까야)와 한문 번역 경전(아함경阿含經; 장長 아함, 중中 아함, 잡雜 아함, 증일增一 아함) 그리고 한글과 영어 번역 경전 등의 관련 내용을 참조하여 부처님께서 지식차원에서 설(설명)하신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에 관련된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동원해서 소상히 옮기면 다음과 같다 I. 연기법[緣起法]과 십이지연기[十二支緣起, 十二緣起] “연..
삼사라[samsāra] : 계속되는 생멸 흐름의 순환 삼사라[samsāra] : 계속되는 생멸 흐름의 순환부처님은 우주 자연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크게 '정신작용이 있는 존재'(유정; 생명, 생물, 생명체)와 '정신작용이 없는 존재'(무정; 무생물, 물질, 물체)로 분류하셨다. 부처님은 무정(무생물)의 작용(또는 구성 요소) 무더기를 통칭하여 고대 인도어로 '루빠(물질, 물질 작용, 물질 현상; 색色) 칸다(집합, 집적, 쌓임, 무더기; 온蘊)', 한문으로 색온(色蘊)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다. "루빠(물질, 물질로 이루어진 물체)는 '형상과 색깔'을 지니는 것이 그 특징"이라는 부처님의 설법(법法을 설명함)에 따라 표의문자인 한문(중국어)의 특성 상 한 글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루빠를 '색(色)'이라는 한 글자로 번역했다.부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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