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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알아보는 눈을 갖는 일은 어떤 조언보다 값지다. 한 여성이 남편을 잃고 딸과 함께 살았다. 딸이 성년이 되어서도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그녀 자신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두 사람은 소유한 물건들을 하나씩 팔아 생계를 이었다. 마침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남편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져 온 사파이어 보석 박힌 금목걸이마저 팔지 않으면 안 되었다.여성은 딸에게 목걸이를 주며 어느 보석상에게 가서 팔아 오라고 일렀다. 딸이 목걸이를 가져가 보여 주자 보석상은 세밀히 감정한 후, 그것을 팔려는 이유를 물었다. 처녀가 어려운 가정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는 말했다."지금은 금값이 많이 내려갔으니 팔지 않는 것이 좋다. 나중에 팔면 더 이익이다."보석상은 처녀에게 얼마간의 돈을 빌려주며 당분간 그 돈으로 생활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내일부터 보석 가게에 출근해 자신..
나무들 나무들이 잎을 꺼내고 있다 무언가 말하려는 것처럼 새로 난 싹들이 긴장을 풀고 퍼져 나간다 그 푸르름에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있다 나무들은 다시 태어나는데 우리는 늙기 때문일까? 아니다, 나무들도 죽는다 해마다 새로워 보이는 비결은 나무의 나이테에 적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매년 오월이면 있는 힘껏 무성해진 숲은 끊임없이 살랑거린다 작년은 죽었다고 나무들은 말하는 듯하다 새롭게 시작하라고, 새롭게, 새롭게 — 필립 라킨 (류시화 옮김) 소리내어 읽을 때 좋은 시가 있다. 내게는 이 시가 그렇다. 잎의 은유로 인생의 순환을 노래한 명시다. 시인은 이것을 산문으로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숨결은 시만이 전할 수 있다. 나무들이 잎의 혀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모든 것은 죽는다고. 모든 어제는 가고 없다고...
유리잔이 되지 말고 넓은 호수가 되라 명상의 세계에 입문하여 마음의 새로운 차원에 눈을 떴다. 생각과 감정에 지배당하며 살다가 그것들 너머의 순수 존재를 경험했다. 에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이것과 저것, 나와 너의 구분을 초월하니 평화와 기쁨이 찾아왔다. 문제는 주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에고를 주장하며 생각과 감정으로 나를 괴롭혔다. 아무리 설명해도 파도의 세계에 사는 그들은 나처럼 바다의 차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진리를 놓고 그들과 자주 논쟁을 벌여야 했다. 채식주의자가 되어 음식의 신성함을 경험했다. 감자, 고구마, 콩, 버섯 등 건강한 먹거리를 주식으로 하니 내가 대지와 연결되어 있음이 느껴졌다. 여행 중에도 매일 아침 채소들을 사다가 식사를 하고, 비행기 안에서도 미리 준비한 현미 주먹밥과 홍..
누구도 우연히 당신에게 오지 않는다 나는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고 믿는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내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대학 졸업 후 중학교 임시 교사가 된 나는 시를 써야 할 시간에 자음접변과 구개음화를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 괴로웠다. 선배 교사와 저녁을 먹으며 고뇌를 말했더니, 그는 '석 달만 지나면 그런 고민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감자탕 속 통감자를 건져 먹으며 말했다. 내게는 그 말이 '석 달 후에는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서운 의미로 들려 그다음 날 사..
인생의 만트라 전에 알던 한 여성은 음식을 먹기 전에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하고 주문을 외었다. 맛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마살라(양념)를 뿌리듯 자못 진지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도 그 주문을 왼다고 했다. "그렇게 한다고 맛없는 음식이 정말로 맛있어지겠어?" 하고 묻자, "그럼요, 이건 강력한 만트라예요!"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완벽한 음식만 맛있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어느새 나도 전염이 되어 고구마를 삶으면서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하고 주문을 외게 되었다. 그러면 평범한 고구마가 호박 고구마로 변신하는 기분이 든다. 물론 자기최면이다. 하지만 맛은 본래 음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 속에 있다고 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꿀의 단맛은 우리의 뇌가 진화 과정에서 그것을 달게 느끼도록 ..
작고 고요한 소리 1 성직자가 되기 위해 종교학과에 입학한 청년이 있었다. 하지만 신입생 때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어 항생제 부작용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꿈은 물거품이 되고 학업도 중단해야만 했다. 의사는 치료의 일환으로 춤을 권했다. 전직 발레 무용가를 소개받아 생애 최초로 춤을 접했고, 춤 치료 덕분에 다리가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 내면에서 멈추지 말고 춤을 추라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애초에 가려고 했던 인생 방향과 달랐기 때문에 무시했지만, 결국 그 목소리에 따라 계속해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춤을 추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신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무용단의 일원이 되었다. 발레로 되찾은 건강과 젊음을 온전히 춤에 쏟았다. 춤이 그의 신학이 되었다. 이 ..
이름 붙여주기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게스트하우스의 방마다 어김없이 기다리는 손님이 있다. 다름 아닌 도마뱀이다. 현지에선 ‘칩칼리’라 부르는 이 불청객들은 낮에는 밖에서 일광욕을 즐기다 저녁이면 벽의 구멍으로 들어와 천정과 벽에 달라붙어 있다. 날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에 전구 옆에서 시끄럽게 싸우기까지 한다. 누워 있는 내 얼굴 위로 추락한 적도 있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는 말은 순 거짓이고, 노란색 파충류가 살에 닿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했다. 물론 도마뱀이 더 많이 놀랐다. 그 후 잠들면서도 녀석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은 투숙객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들에 너그럽거나 무관심해서 도마뱀을 쫓아내지 않는다. 한번은 배낭 속에 웅크리고 있는 녀석을 발견한 적도 있다...
미지의 섬 대학 3학년 때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뜬 나는 인도로 가기로 결심했다. 인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던 때라서 왜 갑자기 그런 결심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미지의 신비한 나라로 가고 싶었다. 방세를 못 내 여기저기 전전하던 시절, 내가 사는 세상이 상자 속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내일 인도로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친구들은 몹시 놀라며 눈물까지 보였다. '역시 넌 달라!' 하며 밥과 술을 사 주고, 몇 푼 안 되는 돈을 굳게 쥐어 준 이도 있었다. 가진 책과 물건들을 하루 만에 모두 나눠 주고, 이튿날 연극부 후배들의 부러움 반 걱정 반의 환송을 받으며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세상일에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나는 외국 여행을 하려면 여권과 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
모주드, 설명할 수 없는 인생을 산 사람의 이야기 1. 모주드, 집을 떠나다 모주드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그는 작은 마을의 평범한 관리였는데그렇게 무게와 길이를 재는 사람으로남은 인생을 마칠 것 같았다. 어느 날 그가 집 근처에 있는오래된 건물의 정원을 거닐고 있는데홀연히 신비의 영적인 안내자 키드르가모습을 나타내었다.연초록 빛깔의 눈부신 옷을 입고서ㆍㆍㆍㆍㆍㆍ키드르가 말했다.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아!너의 직장을 그만두고사흘 후에 강가로 나를 만나러 오라.“그리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2. 모주드, 강물에 뛰어들다 모주드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직장의 최고 책임자를 찾아가자기는 떠나야만 한다고 말했다.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자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불쌍한 모주드! 드디어 미쳐 버렸군!”하지만 마을에는 그의 일..
전 생애로 대답해야 하는 것 모주드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었다. 어느 마을의 평범한 관리였는데, 그렇게 무게와 길이를 재고 계산을 하며 평생 살아갈 것 같았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주위에서도 그렇게 여겼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 근처 오래된 숲길을 걷는데 눈부신 연초록색 옷을 입은 신비의 안내자가 나타나 말했다.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자여, 일을 그만두고 강으로 와서 나를 만나라." 그러고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졌다. 환영을 본 것이라 생각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모주드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직장의 최고 책임자를 찾아가 자기는 떠나야만 한다고 말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가 말했다. "불쌍한 친구! 정신이 이상해졌군. 그런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다니." 하지만 그의 자리를 ..
누군가를 안다는 것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잘 모른다는 것과 동의어일 때가 많다. 누군가를 안다고 믿지만, 그 사람을 향한 기대와 감정을 믿는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판단과 편견을 신뢰하는 것이다. 북인도 바라나시에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 갠지스강 바로 옆 라자가트라는 곳으로, 가트 계단에 앉아 강 건너 숲에서 떠오르는 아침해를 감상할 수 있다. 강에 떠가는 많은 배들과 순례자들도 명상 분위기를 더해 준다. 해마다 가다 보니 그곳 돌 계단에 유리잔과 생강 빻는 돌멩이와 낡은 가스 스토브 등을 늘어놓고 짜이(인도식 밀크티)를 끓여 파는 노인과 가까워졌다. 그가 끓이는 짜이가 입맛에 맞아, 일출을 보며 생강 짜이를 음미하는 것이 바라나시에서의 나의 정해진 아침 일과였다. 내..
별의 먼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이름으로 당신이 온다 해도 나는 당신을 안다. 몇 세기가 우리를 떨어져 있게 해도 나는 당신을 느낄 수 있다. 지상의 모래와 별의 먼지 사이 어딘가에 매번의 충돌과 생성을 통해 당신과 나의 파동이 울려퍼지고 있기에. 세상과 작별할 때 우리는 소유했던 것들과 기억들을 두고 간다. 사랑만이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것이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우리가 가지고 가는 모든 것. - 랭 리아브 (류시화 옮김) 우리 모두는 여행하는 영혼들이다. 별에서 별로,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그렇다면 영혼 안에 무엇을 지니고 여행하는가? 사랑인가, 그리움인가, 아니면 아픈 기억인가? 마야 안젤루는 썼다. 산파와 수의는 안다, 태어남은 힘들고 죽음은 야속하며 삶은..
당신은 옳다. 태국 출신의 위대한 스승 아잔차는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날씨 좋은 어느 날, 신혼 부부가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숲속을 걷는데 어디선가 '꼬옥, 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말했다. "닭이 있네." 남편이 말했다. "닭이 아니라 거위야." 아내가 말했다. "아냐, 닭이야. 저 소리는 닭이 내는 게 틀림없어." 남편이 약간 짜증을 내며 말했다. "고집 부리지 마. 닭은 저런 식으로 울지 않아. 닭은 ‘꼬꼬댁!' 하고 울지. '꼬옥, 꼭!' 하고 우는 건 거위야." 그때 또다시 '꼬옥, 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말했다. "거봐, 거위가 분명하지?" 아내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날 바보로 아는 거야? 나도 닭과 거위는 구분할 줄 알아. 저건 닭이야." 남편이 열이 뻗쳐 말했다. "..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여라.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여라.우리는 우리의 지금 이 순간, 내일도, 모레도 곧 다가오게 될 순간을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힘을 간과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며, 미래를 위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잃고,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는 우리가 마주할 부정적인 순간을 무조건 거부하게 되며, 우리가 인지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변화도 이룰 수가 없다.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를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만트라’를 연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계획을 바꿀 가능성을 인지했다는 것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열었음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영적 지도자 지두 크리스나 무르티의 명언 두 해결책 중, 가장 너그러운 것을 선택해라.”“경청을 해야 배울 수 있다. 경청은 조용한 행동이다. 오직 차분하지만, 독특한 방식으로 활발한 사람만이 배울 수 있다.”사회 안에 결속된 사람만이 근본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혹시 예상하지 못할 때 영감을 받은 적이 있는가? 영감은 우리가 예기치 않을 때, 마음과 정신이 평화 상태에 있을 때 찾아온다.”자유는 사랑에 있어 필수 요소다. 여기서 자유란 저항 운동으로부터의 자유, 원하는 것 모든 것을 하는 자유, 이기적인 마음을 따르는 자유들이 아닌, 이해로부터 비롯되는 자유를 자유다.”“세계 평화의 첫 걸음은 우리의 일상에서 시작된다.”“다 알고 있다는 사람을 조심해라.”“두려움은 지능을 부패시키고, 이기심의 하나다.”“피상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마..
네 종류의 사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들, 두번째는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사람들, 세번째는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들, 네번째는 빛에서 빛으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첫번째, 어둠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들 이란 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면서 더러운 말을 하고, 못된 행동을 하고, 나쁜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나쁜 업을 짓고 죽은 후에도 나쁜 곳으로 가야 합니다. 두번째,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사람들 이란 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지만 온화한 말을 하고, 착한 행동을 하고, 좋은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좋은 업을 짓고 죽은 후에는 좋은 곳에서 태어납니다. 세번째,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들..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가? 지금, 내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가? 사람은 외부 환경을 바꾸거나 개선 시킬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다.중요한것은 품고 있는 뜻과 의지의 방향이다.자신을 지배하는 마음의 욕구와 열망, 생각을 바르게 갖고, 온전히 따름으로써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마음의 눈으로 살피는 것을 자기 성찰이라 부른다. 건사하지 않고 방치한 정원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이내 잡초가 우거지고 황폐해진다.마음이 곧 정원이다. 마음에 깃든 생각들을 수시로 건사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잡념들로 가득 차게 된다.그렇게 되면 인생은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갈 수도 있다. 마음의 텃밭에 어떤 씨를 뿌리는 가는 오로지 자기에게 달려있다. 생각은 어느 순간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며, 그것은 곧 현실로 나타난다. 고결한 생각을 품었다면정당한 노력을 기울..
의식의 확장 몇 해 전 네팔 카트만두에서 지낼 때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온갖 사념과 번민이 밀려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인생의 과도기였고, 여행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럴 때가 있는 법이다. 어딘가를 향해 간다고 부지런히 걸었지만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도 불분명했고, 솔직히 말해 그 어딘가가 정말로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깨달음은 멀고 허무는 가까웠다. 정신이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을 넘을 정도로 며칠씩 밤을 지새곤 했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도 생생한 꿈에 쫓기다 눈을 뜨면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러고는 마냥 뜬눈으로 새벽의 미명을 맞이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그 무렵 카트만두 근교 언덕에 위치한 티베트 절 코판 곰파의 명상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잠을 못 자니 강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떤 길을 가든 그 길과 하나가 되라 대학 시절, 자취방 얻을 돈이 없어 학교 숲에서 밤을 지새곤 했다. 비가 내리거나 추운 날은 문리대 휴게실 창문을 넘어 들어가 커튼을 뜯어 덮고 잔 뒤 아침 일찍 다시 걸어놓고 나왔다. 자연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장발에 수세미머리를 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신발 밑창은 떨어져 걸을 때마다 펄럭이고, 밤을 견디기 위해 여름에도 검정 바바리코트를 들고 다녔다. 누가 봐도 전혀 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존심 때문에 사정을 밝히지 않아서 오해를 많이 받았다. 문학한다는 핑계로 일부러 지저분하게 다닌다고 비판하는 교수도 있었고, 정신이상자라고 멀리하는 이도 있었다. 나를 특히 싫어한 국문학과 선배가 있었는데, 그는 늘 깨끗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회사원처럼 서류 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의 ..
우리가 희망을 잃을 즈음에 봄은 느릿느릿 나타난다. 옷자락에 야생화들을 끌면서 안개의 장막을 걷고 가느다란 비를 데리고 늦은 손님으로 와서 민들레 숨결을 우리 귀에 불어넣는다. 그래도 우리는 용서해 준다. 추위에 웅크린 겨울의 길들을 벗어나 우리의 충실한 스웨터들을 벗어던지고 두 팔을 활짝 벌려 봄을 반긴다. - 린다 패스턴 (류시화 옮김) 계절은 우리를 바꾼다. 하나의 느낌에서 다른 느낌으로. 겨울이 아직 위세를 떨치고 있는데 봄을 노래하는 것은 죄인가. 추위와 절망이 강타해 얼굴에 멍이 들 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언제 봄과 희망을 노래하는가. 촉토족 인디언은 ‘나는 겨울 한가운데서 여름을 보네’라고 노래했다. 내 집필실은 80년 된 목조 주택이라서 겨울이 혹독하다. 잠시 얹..
한 사람 고대 그리스 장편 서사시 와 에 비견되는 인도의 대서사시 는 기원전 10세기 경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긴 세월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인도인들이 "인생의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에 있다."라고 할 만큼 인간과 신, 삶과 죽음, 선과 악에 관한 내용이 와 를 합친 것의 10배 분량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심 이야기는 바라타 왕조의 왕좌를 놓고 벌어진 친족 간의 다툼으로 시작된다. 왕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 드리타라쉬트라는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이었기 때문에 차남 판두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드리타라쉬트라는 100명의 아들(카우라바)을 낳았고, 판두는 다섯 아들(판다바)을 낳았다. 이 아들들이 장성하면서 '장남이 왕위를 계승한다'는 원칙을 놓고 갈등이 일어났다. 판두가 죽자 카우라바 형제들은 자..
동화가 필요한 순간 동화와 현실 중간에서 살아가는 외국 친구가 한국에 와서 한 달 남짓 머물렀다. 거의 매일 만나서 함께 일을 한 후 점심을 먹고 시내를 산책하곤 했다. 겨울이었고 기록적인 한파가 연일 이어졌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도 히말라야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찻집이나 카페가 기웃거려졌다. 그런데 이 친구는 연신 감탄하며 "하늘 좀 봐! 정말 파란색이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찬 공기 탓인지 독특한 파란색이었다. 목이 긴 나는 추위가 파고들어 얼른 다시 움츠렸지만, 그 친구는 혹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가 인사동을 한 바퀴 돌고 조계사 경내를 지나 안국동과 정독도서관 앞뜰을 거쳐 삼청동과 가회동 쪽으로 긴 순례를 할 동안 계속 서울의 겨울 하늘이 지닌 아름다운 파란색을 예찬하는 것이었..
정원사가 있는 곳에 정원이 있다 '정원사가 있는 곳에 정원이 있다.' 이 말을 나는 좋아한다. 지금은 문을 닫은 로스앤젤레스의 보디트리 서점에서 발견한, 내 삶에 많은 영감이 되어 준 한 문장이다. 진정한 정원사는 특정한 정원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정원을 창조한다. 세상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만들어 나가듯이, 정원이 우리를 정원사로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가 정원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선 공동체를 운영하는 잰 초젠 베이스는 한 일화를 전한다. 어떤 식물학자가 선원을 방문해서 선원 주위에 있는 식물들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선원 주변을 걸어 다니는 동안 그 식물학자는 연신 행복한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놀라워요! 빨간 월귤나무가 정말 커요!" "세상에! 노랑제비꽃이 이렇게 많이 핀 건 처음..
가슴이 저절로 열릴 때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를 말해 주는 것은 나의 주의나 주장이 아니라 내가 은연중에 행하는 행동, 혹은 혼자 있을 때 하는 행위이다. 영혼과 의식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나 자신도 알아차림 없이 행하는 작고 사소한 행동들이 내 몸의 리듬을 결정하고, 마음을 드러내 보이며, 의식을 특정한 차원과 연결시킨다. 출판사에 새로 온 편집자가 인사차 찾아왔는데, 마침 내가 외부에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돌아왔더니 내 작업실의 강아지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무슨 마술을 걸었는지 그토록 예민한 궁금이가 벌렁 누운 채 그 편집자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내가 와도 보는 둥 마는 둥, 애정결핍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독자의 소포를 전해 주러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내가 원고를 탈고 중이어서 잠시 기다려야 ..
고독 고독을 사랑하려면 강해야 한다. 튼튼한 다리를 가져야 하고 틀을 벗어나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 감기에 걸리거나 오한이 나고 목이 부을 수도 있다. 도둑들과 암살자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오후 내내 그리고 밤이 와도 계속 걸어야만 한다면 개의치 않고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겨울에는 앉을 자리조차 없을 것이다. 젖은 풀 위로 바람이 불고 흙투성이 축축한 돌들은 쓰레기로 덮여 있을 것이다. 어떤 진정한 위안도 없을 것이다. 전혀 없을 것이다. 어떤 의무도 구속도 없이 네 앞에 놓인 낮과 밤들을 전부 소유하는 것밖에는. -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일 (박명욱 옮김, 부분 수정) 피카소는 "큰 고독 없이는 어떤 진지한 작업도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니체는 "나의 고독은 사람들의 존재나 부..
로종 - 마음의 반응 방식 삶에서 누군가의 부당한 비난과 공격을 어디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가? 그것에 맞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마음 수행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왜 동일한 문제 앞에서 어떤 사람은 무너지는데 어떤 사람은 평정을 유지하는가? 인도의 보리달마가 중국에 선을 전했듯이, 아티샤는 티베트 불교에 중요한 역할을 한 벵골 출신의 승려이다. 티베트에는 7세기에 불교가 전파되었으나, 9세기 경 토착 신앙을 믿는 잔인한 왕 랑드라마의 탄압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11세기에 이르러 여러 수행자들이 인도로 건너가 공부하고, 인도인 스승들과 교류하면서 불교가 다시 꽃피어나기 시작했다. 이 스승들 중에서 으뜸 가는 이가 아티샤였다. 당시 인도에서 티베트까지의 여정은 몇 달 동안 걸어서 거친 밀림과 4,500미터 높이의 협곡을 통과해야 ..
수달의 깨달음..! 티베트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히말라야 어느 골짜기에 수달이 사는 호수가 있다. 달 밝은 밤이면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수면으로 올라온다. 그러면 호숫가 나무 위를 배회하던 올빼미가 재빨리 내려와 수달의 손에서 물고기를 낚아챈다. 얼핏 보면 올빼미가 수달의 먹이를 빼앗는 것 같지만, 조금만 관찰하면 수달이 자발적으로 물고기를 내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음 날 밤이 되면 수달은 어김없이 물고기를 잡아 물 위로 떠오르고, 나무에서 기다리던 올빼미가 또다시 날아 내려와 낚아채 간다. 수달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끝없이 자기를 희생하며 물고기를 잡아다 바칠 뿐이다. 올빼미는 수고하지 않고도 매일 밤 맛있는 식사를 즐기지만, 수달은 긴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올빼미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고,..
아무것도 믿지 말아라 - 붓다 지난해 델리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출발 지연 방송이 나왔다. 명상을 할 기회라 여기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때 한 인도인 남자가 어깨를 두드리며 "명상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가 명상 수행을 오래 했는데 바른 명상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사양할 겨를도 없이, 명상을 하려면 눈을 지그시 감고 척추를 똑바로 세운 후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고맙다고 말하며 다시 명상으로 돌아갔는데도 콧수염을 꼬부라뜨린 그는 내 앞에 앉아 '들숨~ 날숨~, 들숨~ 날숨~.' 하고 박자를 지시했다. 매우 만족해하는 투였지만 나는 박자가 너무 빨라 숨이 가빴다.또 한 번은 북인도 바라나시로 가는 장거리 기차에서 영국인 여성과 동석하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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