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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미지의 섬


<미지의 섬>


대학 3학년 때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뜬 나는 인도로 가기로 결심했다. 인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던 때라서 왜 갑자기 그런 결심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미지의 신비한 나라로 가고 싶었다. 방세를 못 내 여기저기 전전하던 시절, 내가 사는 세상이 상자 속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내일 인도로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친구들은 몹시 놀라며 눈물까지 보였다. '역시 넌 달라!' 하며 밥과 술을 사 주고, 몇 푼 안 되는 돈을 굳게 쥐어 준 이도 있었다. 가진 책과 물건들을 하루 만에 모두 나눠 주고, 이튿날 연극부 후배들의 부러움 반 걱정 반의 환송을 받으며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세상일에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나는 외국 여행을 하려면 여권과 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비행기표도 없었다. 늘 무임승차로 기차를 탔듯이 비행기도 그렇게 탈 수 있으리라 생각했거나,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공항으로 갔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렇게 아침마다 공항으로 가서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거대한 비행기 동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며칠 후 학교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울먹이며 붙잡는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며 떠난 나를 우연히 목격한 여자친구는 반가움보다 배신감이 더 컸다. 친구들의 시선을 피해 한동안 학교 건물 뒤쪽으로 다니거나 술에 취해 나타나 "진정한 인도는 마음속에 있다!"고 떠들곤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눈먼 자들의 도시>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우화 <미지의 섬>에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느 날 그 남자가 왕의 성문 앞에 가서 "배 한 척만 빌려 달라!"고 소리친다. 성의 청소부 여인이 그 요청을 전달하고, 자신의 평판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왕이 직접 문 앞으로 나온다. 남자는 "배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왕의 질문에 "미지의 섬을 찾아가려 한다."고 대답한다.

왕은 말한다.
"이제 미지의 섬은 없다."
남자가 말한다.
"미지의 섬이 없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모든 섬이 지도에 있지 않는가."
"알려진 섬만 지도에 있을 뿐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네가 찾아가려는 미지의 섬은 어디에 있는가?"
"제가 그것을 말할 수 있다면, 그 섬은 미지의 섬이 아닙니다."
왕이 다시 묻는다.
"그런 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섬이 있다고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지의 섬이 없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멀리 쫓아 보내려는 심정에서 왕은 남자에게 배 한 척을 주라고 명령한다.

배를 구했지만 남자는 바다로 나아갈 수 없었다. 배 조종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항구 관리원은 선장 자격증도 없는 그에게 바다에서 난파될 게 뻔하니 포기하라고 충고한다. 선원들도 구할 수 없었다. '미지의 섬'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선원들에게 미지의 섬을 설명할 수 없었다. 한 선원은 말한다.

"미지의 섬은 존재하지 않소. 당신의 머릿속에만 있을 뿐이오. 왕의 지리학자들이 사방을 뒤지면서 지도를 만들었고, 이제 미지의 섬은 남아 있지 않소."

유일하게 남자를 따라나선 사람은 왕궁의 청소부 여인이었다. 궁전을 닦고 쓸면서 허비한 인생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 위에서 여인은 왕의 철학자가 한 말을 전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의 섬이라고 그 철학자는 말했어요."
남자가 말한다.
"섬을 보기 위해서는 그 섬을 떠나야 하는 법이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에게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을 볼 수 없는 법이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으며 조류를 타고 항해를 시작한다.

사라마구가 말하는 '미지의 섬'이 나에게는 '미지의 사람'으로 읽혔다. 모든 인간은 미지의 섬이다. 이후 25년 넘게 해마다 인도 여행을 떠났지만, 나는 '인도'라는 장소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포함한 '인간 존재'를 알기 위해 여행을 계속한 것이다. 나와 타인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떠나야 한다는 진리를 되새기면서. 완벽한 항해사가 그린 지도라 할지라도 내 앞의 사람은 여전히 미지의 섬이라는 진실을 깨달으면서.


사진_김포공항으로 떠날 무렵, 대학 캠퍼스 안에서 이산하 시인과 함께 (사진 제공_이산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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