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출신의 위대한 스승 아잔차는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날씨 좋은 어느 날, 신혼 부부가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숲속을 걷는데 어디선가 '꼬옥, 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말했다.
"닭이 있네."
남편이 말했다.
"닭이 아니라 거위야."
아내가 말했다.
"아냐, 닭이야. 저 소리는 닭이 내는 게 틀림없어."
남편이 약간 짜증을 내며 말했다.
"고집 부리지 마. 닭은 저런 식으로 울지 않아. 닭은 ‘꼬꼬댁!' 하고 울지. '꼬옥, 꼭!' 하고 우는 건 거위야."
그때 또다시 '꼬옥, 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말했다.
"거봐, 거위가 분명하지?"
아내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날 바보로 아는 거야? 나도 닭과 거위는 구분할 줄 알아. 저건 닭이야."
남편이 열이 뻗쳐 말했다.
"잘 들어! 저건 거위라니까. 누가 뭐래도 거위가 틀림없어. 알겠어?"
아내도 지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쳐도 저건 닭이야."
"정말 미치겠네! 몇 번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저건 거위라니까. 당신은 정말이지..."
그가 더 심하게 화를 내려는 순간 또다시 '꼬옥, 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저 봐. 닭이잖아."
아내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는 순간, 남자는 자신이 왜 그녀와 결혼했는지 깨달았다. 그는 반성하며 말했다.
"미안해, 여보. 잘 들어보니 당신 말이 옳아. 저건 닭이야."
관계의 갈등은 대부분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의 논쟁에서 비롯된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게 구분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편견과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상대방의 그름을 지적한다.
당신은 옳다. 그러나 당신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 단순한 진리를 인정하지 않을 때 관계가 취약해진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에고의 난폭함이 있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논리만큼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없다.
페르시아 시인 루미는 '옳고 그름의 관념 저 너머에 들판이 있다. 그곳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다.'라고 썼다. 에고는 자신이 항상 우위에 서려고 하며, 상대방의 옳음을 인정하면 자신의 존재가 취약해진다고 느낀다. 그래서 옳고 그름의 판단은 금방 에고의 싸움이 된다. 에고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도 고되게 한다. 에고를 내려놓는 일이 곧 영혼을 돌보는 일이다.
한 은퇴한 남자가 랍비를 찾아와 더 이상 아내와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아내가 집 안으로 염소 두 마리를 데리고 들어오는 바람에 냄새를 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랍비가 자초지종을 물으려는 찰나, 남자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난 아무 불평하지 않았어요. 아내가 그다음에는 소를 침실로 데려왔는데도 어떻게든 냄새를 견뎠어요."
랍비가 물었다.
"아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혹시 이유를 설명하지 않던가요?"
남자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혀 한마디도 없었어요."
그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만이라면 이러지 않아요. 어젯밤에는 말과 망아지까지 데리고 들어왔어요. 냄새가 지독하다 못해 숨조차 쉴 수 없어요. 40년 동안 잘 살아왔는데 그 여자가 부부 관계를 악몽으로 만들고 있어요. 이대로는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어요."
남자를 진정시키며 랍비가 제안했다.
"냄새가 그렇게 지독하면 일단 집의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시키면 어떨까요?"
그러자 남자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창문을 열면 내가 집 안에서 키우는 흰 비둘기 아흔 마리가 모두 날아가 버려요."
photograph_André Kertész
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