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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수달의 깨달음..!


티베트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히말라야 어느 골짜기에 수달이 사는 호수가 있다. 달 밝은 밤이면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수면으로 올라온다. 그러면 호숫가 나무 위를 배회하던 올빼미가 재빨리 내려와 수달의 손에서 물고기를 낚아챈다. 얼핏 보면 올빼미가 수달의 먹이를 빼앗는 것 같지만, 조금만 관찰하면 수달이 자발적으로 물고기를 내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음 날 밤이 되면 수달은 어김없이 물고기를 잡아 물 위로 떠오르고, 나무에서 기다리던 올빼미가 또다시 날아 내려와 낚아채 간다.

수달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끝없이 자기를 희생하며 물고기를 잡아다 바칠 뿐이다. 올빼미는 수고하지 않고도 매일 밤 맛있는 식사를 즐기지만, 수달은 긴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올빼미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고, 매일 밤 물고기를 잡기 위해 분투해야 하며, 자신은 굶더라도 올빼미를 배불리 먹여야 한다. 수달이 조금만 늦어도 올빼미는 배고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수달은 올빼미의 감정에 동화되어 어찌할 줄 모르고 연신 자맥질을 한다.

아무리 봐도 이 관계는 매우 불균형적이고 불공평하다. 올빼미의 요구를 계속 충족시켜 주면서도 수달은 심리적 만족조차 얻지 못한다. 오히려 올빼미가 자기를 떠날까 봐 불안해하며 넓은 호수를 등지고 나무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그럴수록 올빼미는 더 당당하고 당연하게 수달의 노고를 가로챈다. 자신도 뚜렷한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수달은 언제까지고 올빼미의 육체적 정신적 노예가 되어, 갈수록 덩치가 커져 가는 올빼미를 위해 더 많은 물고기를 찾아 헤맨다.

수달이 약하고 올빼미가 강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실제로 수달은 야행성이라서 밤에 강하며, 물새의 발을 물고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기도 한다. 올빼미가 추격할 수 없는 깊이로 얼마든지 잠복할 수 있다. 그러나 올빼미 소리가 들리면 수달은 최면에 걸린 듯 자신도 모르게 복종한다.

이 수달과 올빼미의 관계를 티베트어로 '렌착'이라 부른다. ‘렌착'은 간단히 말해 '전생에 진 빚(karmic debt)'을 의미한다. 전생이나 전전생에 수달이 올빼미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 갚는 중이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렸거나, 강제로, 혹은 속임수를 써서 금품을 빼앗았다면, 한 달 후든 일 년 후든 십 년 후든 그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당신은 자동적으로 부채감과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생에 그런 행위를 저질렀다면, 이번 생에 구체적으로 기억하진 못할지라도 그 부채감과 죄책감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것이 렌착이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종속되고 봉사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티베트인들은 심심풀이 삼아 도박을 즐겼는데, 돈이 없기 때문에 작은 돌을 가지고 내기를 했다. 이때 돌 몇 개라도 빚을 지고 갚지 않으면 다음 생에서 그 사람의 종이 되어 몇 배로 갚게 된다고 믿었다. 렌착은 그런 사후관이 낳은 해석이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일을 전생의 인과관계에 이유를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베트 불교의 스승들은 원인이 무엇이든 현재에 쌓는 업에 깨어 있으라고 말한다. 수달과 올빼미의 관계가 그렇다. 수달의 애착은 기쁨도 보상도 없는 자기희생에 불과하며, 올빼미의 만족할 줄 모르는 착취는 돌이킬 수 없는 영적 타락으로 이어진다. 둘 사이에서 얻어지는 긍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올빼미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충실하느라 수달은 자신의 삶을 산 적이 없다. 설령 전생의 빚이 원인이라 해도, 이번 생의 불건강한 관계는 다음 생의 또 다른 불행한 관계로 악순환될 수밖에 없다.

올빼미가 없으면 수달은 넓은 호수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수달이 없으면 올빼미는 충분히 맹금류로 살아갈 수 있다. 이 단순한 자각이 렌착을 끊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가 렌착인지 진정한 애정인지 알아차려야 한다. 그 관계가 순수한 기쁨을 주는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있는가? 자기희생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결과와 성장을 가져다주는가?

나는 내 삶의 중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능력이 있음을 믿는가?

이 우화의 결말은 당신이 써 보길 바란다.
"어느 날, 수달은 깨달았다……"


photograph_Kylli Spa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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