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델리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출발 지연 방송이 나왔다. 명상을 할 기회라 여기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때 한 인도인 남자가 어깨를 두드리며 "명상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가 명상 수행을 오래 했는데 바른 명상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사양할 겨를도 없이, 명상을 하려면 눈을 지그시 감고 척추를 똑바로 세운 후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다시 명상으로 돌아갔는데도 콧수염을 꼬부라뜨린 그는 내 앞에 앉아 '들숨~ 날숨~, 들숨~ 날숨~.' 하고 박자를 지시했다. 매우 만족해하는 투였지만 나는 박자가 너무 빨라 숨이 가빴다.
또 한 번은 북인도 바라나시로 가는 장거리 기차에서 영국인 여성과 동석하게 되었다. 바라나시 힌두대학에서 유학 중인 그녀는 조심해야 할 사항을 친절히 일러 주었다. 거리의 호객꾼과 환전상을 경계할 것, 게스트하우스와 릭샤와 보트는 무조건 반으로 깎을 것, 갠지스 강에는 들어가지 말 것, 거리의 간식과 골목의 소와 개와 원숭이를 조심할 것 등등이었다. 염려하는 마음이 고마워 해마다 바라나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었다.
여행 중에 종종 마주치게 되는 이가 있다. 여행에 대해 조언하는 사람이다. 어느 길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자신의 여행 철학과 경험을 쏟아붓느라 이것이 자신의 여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각자가 다른 방식의 여행을 할 권리가 있음을 망각한다.
스위스 심리학자 폴 투르니에는 분석한다.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좋은지 말해 줌으로써 자기만족을 느낀다."
어쩌면 여행에 가장 필요한 조언은 섣부른 조언자들을 멀리하라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여행에 대해 검색해 보라. 얼마나 많은 조언들이 있는가. 그것들을 읽다 보면 가장 성공적인 여행은 여행을 떠나지 않는 것이라 여겨질 정도이다. 실제로 '네가 찾는 것은 모두 네 안에 있으니 굳이 여행할 필요가 없다'는 충고도 있다.
지네가 걸어가는 것을 유심히 본 여우가 다가와 물었다.
"지네야, 넌 그 많은 다리를 어떤 식으로 움직이니?"
지네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언제나 그냥 걸어다녔어."
여우가 말했다.
"그럼 절대로 안 돼. 수백 개의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려면 어느 다리를 먼저 내딛고 어떤 다리를 그다음에 내딛을지 분명한 체계가 있어야만 해."
그다음부터 지네는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진실한 순간 속에서 여행을 하고 있다. 내딛는 발걸음이 다르다고 다른 사람의 여정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이해와 깨달음으로 타인의 과정과 목적지를 바꾸려 들지 말아야 한다. 각자의 진실한 마음에 따라 도시와 밀림과 사막을 여행할 수 있게 축복해 주는 것이 동료 여행자의 자세이다.
조언과 안내가 필요하면 스스로 책을 찾고 지도를 펼칠 것이다. '관광객은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모르고, 여행자는 자신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여행자는 현재의 순간에 존재하는 복을 누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를 인도하는 것은 바로 현재의 중첩되는 느낌들이다. 그리고 진정한 여행 후에 우리는 수다가 아니라 정신을 가지고 돌아온다.
나 자신도 여행 초보자로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면 참견쟁이가 되려고 한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면 어떤가? 잘못 올라탄 기차가 목적지로 데려다 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명상을 하다가 사념 때문에 호흡을 놓치면 좀 어떤가? 사념이야말로 명상의 훌륭한 안내자가 아닌가? 소똥을 밟고 미끄러진다고 소가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환한 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 속을 거니는 것도 좋은 일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많이, 할 수 있는 한 멀리, 할 수 있는 한 오래 여행하려고 이 행성에 왔다. 여행자에게 기차는 떠나는 것이 아니라 출발하는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따르는 여행의 조언은 길을 묻는 제자에게 붓다가 한 말이다.
"아무것도 믿지 말라. 그것을 어디에서 읽었든, 그것을 누가 말했든, 설령 내가 한 말이라도 의심하라. 직접 보고 경험한 뒤에, 자신의 이성과 상식에 부합되면 그것에 따라 살아가라."
photograph_Francesco Dell'Or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