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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유리잔이 되지 말고 넓은 호수가 되라



명상의 세계에 입문하여 마음의 새로운 차원에 눈을 떴다. 생각과 감정에 지배당하며 살다가 그것들 너머의 순수 존재를 경험했다. 에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이것과 저것, 나와 너의 구분을 초월하니 평화와 기쁨이 찾아왔다.


문제는 주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에고를 주장하며 생각과 감정으로 나를 괴롭혔다. 아무리 설명해도 파도의 세계에 사는 그들은 나처럼 바다의 차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진리를 놓고 그들과 자주 논쟁을 벌여야 했다.

채식주의자가 되어 음식의 신성함을 경험했다. 감자, 고구마, 콩, 버섯 등 건강한 먹거리를 주식으로 하니 내가 대지와 연결되어 있음이 느껴졌다. 여행 중에도 매일 아침 채소들을 사다가 식사를 하고, 비행기 안에서도 미리 준비한 현미 주먹밥과 홍당무를 가방에서 꺼내 경건하게 먹었다.

문제는 주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육식과 과식을 일삼으며 내 신경을 건드렸다. 불건강하고 반윤리적인 먹거리로 자신과 생태계 건강에 피해를 입히면 안 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았다. 뭇생명들의 목숨을 경시하는 그들의 태도를 지적하며 닭다리를 집어던졌지만 단 한 사람도 채식주의자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나와 함께 밥 먹는 것을 피했고, 나는 초식공룡처럼 혼자서 먹어야 했다.

그렇게 한 가지 진리에 눈을 뜰 때마다 세상을 비판하는 마음도 커져 갔다. 어느 해, 히말라야 일출을 보기 위해 네팔 포카라 근처 사랑콧이라는 산에 올랐다.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동이 틀 무렵, 나는 더 좋은 위치에서 감상하기 위해 계단식 밭의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 밭 끄트머리에 일인용 텐트가 하나 있고, 내가 다가가자 그 텐트 안에서 한 서양인 남자가 얼굴을 내밀며 대뜸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물러나지 않자 노란 염소 수염 기른 그 남자는 그곳은 자신이 명상하는 장소이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화를 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 넓은 히말라야 발치에서 작은 원을 그려 놓고서 자신의 장소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좁은 텐트 안에서 그러느니 밖으로 나와 일출을 감상하는 것이 더 명상적이지 않겠냐고 내가 지적하자 그는 밖으로 나와 돌멩이를 집어들 태세를 취했다. 나는 굳건한 평화주의자이지만, 어리석은 집단이나 사람과는 돌을 던지며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이마에 피를 흘리며 돌을 던질 수도 있었지만, 그가 서 있는 위치가 나보다 돌을 던지기에 더 유리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피했다. 그 순간, 자기가 믿는 세계 안에 갇혀 남에게 소리지르며 돌을 던지는 옹색함은 그 남자나 나나 차이가 없음을 깨달았다.

인생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과 불만족을 늘어놓는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스승이 그를 불러 물 한 잔을 가져오게 하고는 소금 한 줌을 타서 마시게 했다. 그리고 물었다.
"맛이 어떤가?"
제자가 말했다.
"너무 짜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스승이 근처 호숫가로 데리고 가서 호수에 소금 한 줌을 뿌리고는 제자에게 호수의 물을 한 모금 맛보게 했다. 그리고 맛이 어떠냐고 묻자 제자가 말했다.
"시원합니다."
스승이 "소금 맛이 나느냐?"고 묻자 제자는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스승은 제자에게 조언했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넓은 호수가 되라."
삶과 세상의 문제는 소금과도 같다는 것이다. 소금의 양은 같지만, 우리가 얼마만 한 넓이의 마음으로 그것을 인식하는가에 따라 문제의 정도가 달라진다.


사진_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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