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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작고 고요한 소리



<작고 고요한 소리>

1

성직자가 되기 위해 종교학과에 입학한 청년이 있었다. 하지만 신입생 때 디프테리아에 감염되어 항생제 부작용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꿈은 물거품이 되고 학업도 중단해야만 했다.

의사는 치료의 일환으로 춤을 권했다. 전직 발레 무용가를 소개받아 생애 최초로 춤을 접했고, 춤 치료 덕분에 다리가 조금 나아졌다. 그런데 내면에서 멈추지 말고 춤을 추라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애초에 가려고 했던 인생 방향과 달랐기 때문에 무시했지만, 결국 그 목소리에 따라 계속해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춤을 추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신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무용단의 일원이 되었다. 발레로 되찾은 건강과 젊음을 온전히 춤에 쏟았다. 춤이 그의 신학이 되었다. 이 청년 테드 숀은 스물다섯 살에 뉴욕으로 가서 운명적으로 여성 무용가 루스 세인트데니스를 만난다. 루스는 테드에게 무용 파트너가 되어 주었을 뿐 아니라 테드가 가진 무용가로서의 가능성과 창조성에 눈을 뜨게 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해 데니숀 무용학교를 설립하고 몸, 마음, 정신이 일치된 무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미국 현대무용에 크게 공헌한 세 명의 무용가이며 안무가인 마사 그레이엄, 도리스 험프리, 찰스 와이드먼이 이 학교에서 배출되었다.

결혼 생활의 갈등과 재정 문제로 무용학교가 문을 닫자, 테드 숀의 삶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그때 내면에서 남성 무용수로만 구성된 무용단을 조직하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당시에는 남성 무용가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스스로 실패의 길을 선택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테드는 내면의 목소리에 따랐고, 이 남성 무용단은 미국 전역과 유럽을 순회하며 눈부신 공연을 선보였다. 테드 숀의 노력으로 미국 최초의 무용 축제인 제이콥스 필로우 댄스 페스티벌이 시작되었으며, 미국 대학 교육 과정에 최초로 무용과가 생겼다.

우리의 인생을 결정 짓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이 아니다. 그 사건들이 우리의 삶에 어느 정도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조개를 부순다고 해서 진주까지 부서지는 것은 아니다. 상실과 고통의 순간들을 신의 선물로 바꾸는 것은 인간이 지닌 ‘자아의 연금술’이다. 오늘날 미국 무용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숀의 생애에 대해 시인 마크 네포는 이렇게 썼다.

"위기에 직면할 때 우리 영혼의 목소리는 고통의 밑바닥에서 해결책을 알려 준다. 이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 목소리를 믿으면 재탄생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온몸으로 실천할 용기만 있으면 놀라운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더는 장애가 되지 않을 때까지 어떤 장애물이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온전한 인간이 되는 길이다."

2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이 있었다.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데려간 쇼에서 인디언들의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소년은 도서관의 아동서적 코너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책을 모두 읽고, 성인 도서로 분류된 인디언 관련 서적까지 섭렵했다. 그러다가 비극이 찾아왔다. 열다섯 살 때 집에 불이 나 할머니가 사망하고 부모는 전 재산을 잃었다.

교수가 되기 위해 컬럼비아대학원에서 중세문학을 전공하던 그는 어느 날부턴가 내면에서 ‘숲으로 가라’는 작고 고요한 소리를 들었다. 어렸을 때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본 인디언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결국 그는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뉴욕 근교 우드스탁이라는 시골로 들어간다. 소로우의 월든 호수 생활을 따라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스물다섯 살 때의 일이다.

1년에 20달러를 내기로 하고 오두막을 구해 5년을 지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먹고 사는 일이 걱정되면 유치한 방법이긴 하지만 스스로 주술을 걸었다. 서랍에 1달러 짜리 지폐를 넣어 두고 "여기 1달러가 있는 동안은 난 빈털터리가 아니야." 하고 말했다. 그것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웃음과 유머 감각이 그를 생활고에서 구해 주었고, 가난은 물질에 매이지 않는 자유 정신을 커지게 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독서에 몰두했다. 하루를 4시간씩 4등분해, 3은 책을 읽고, 나머지 1은 자유롭게 지냈다. 한 작가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작가가 읽은 모든 책을 읽었다. 신이 도와서, 몇 년 뒤 돈을 받기로 하고 책을 빌려 준 서점 주인이 있었다. 이 시기의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15년 후 그는 다양한 신화 속 영웅들이 가진 인간 정신의 원형을 집대성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을 썼다. 수많은 상을 수상한 이 책은 신화와 심리학을 연결한 기념비적인 저서가 되었다.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리는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이야기이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하라는 대로 따르라고 캠벨은 말한다. 인생의 지도는 마음속에 있으니 행복하겠다 싶으면 그 길로 나아가라고. 머리는 가슴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슴의 소리를 외면하고 남이 하는 대로, 남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삶은 캠벨의 말대로 황무지이다. 자신에게 덧씌워진 껍질을 벗고 진지하게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변신'이고 '부활'이다.

3

절벽에 매달린 등반가가 있었다. 발이 미끄러져 균형을 잃고 굴러 떨어지다가 생명 유지 밧줄에 간신히 매달린 것이다. 안개가 자욱했고 추위가 엄습했다. 해가 있던 자리에 어둠이 빠르게 밀려왔다. 그 상황을 어떻게 견뎌낼지 막막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 신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한다. 그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졸음에 빠져드는 순간, 신이 그에게 나타났다. 그는 다급히 신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신은 그에게 살아남으려면 밧줄을 끊으라고 말했다. 그 길밖에 없다고. 그러고는 사라졌다.

등반가는 신이 자신을 버렸다고 절망했다. 그렇게 아침이 올 때까지 극한 추위 속에서 밧줄에 매달려 있는 그를 마을 사람들이 발견했다. 거의 사망 직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면에서 불과 1미터 높이에 매달려서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밧줄을 끊어 자신의 목숨을 구하지 않았는가? 신의 목소리로도 불리는 자기 내면의 소리를 그는 듣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후회하며 마지막 눈을 감았다.


painting_Christian Schl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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