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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선방일기_지허스님

1. 지허스님 선방일기 책소개 『선방일기』는 1973년 에 처음 연재되었던 글로서 모두 2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때로는 담백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전개되며 철저히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선승(禪僧)의 존재감과 눈물나게 인간적인 수행자의 두 모습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이번 발간에는 독자들이 좀 더 선방의 분위기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당시 선방 모습을 고증한 23컷의 일러스트가 추가되어 있다. 담백한 문장으로 수행 이면의 이야기들을 살갑게 풀어놓고 있다. 결핵에 신음하던 스님이 바랑을 챙기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내복을 그 스님의 바랑에 챙겨주며 가슴 아파하는 수행자의 모습, 수행에서 낙오해 뒷방에서 부표처럼 떠도는 수행자의 모습, 모든 욕구를 떠난 곳으로 가고자 하는 수행자들이 식욕을 견디지 못해 바둥..
2. 10월 1일 상원사행 -상원사 옛 도인 체취에 감회가… - -김장울력하며 食物 소중함 알아- 나는 오대산의 품에 안겨 상원사 선방을 향해 걸어 나아갔다.지나간 전쟁 중 초토작전으로 회진(灰塵)되어 황량하고 처연하기 그지없는 월정사에 잠깐 발을 멈추었다.1천3백여 년 풍우에 시달린 9층 석탑의 탑신에 매달린 풍경소리에 감회가 수수롭다. 탑전에 비스듬히 자리 잡은 반가사유보살상이 후학 납자를 반기는 듯 미소를 지우질 않는다.수복 후에 세워진 건물이 눈에 띈다.무쇠처럼 단단하여 쨍그렁거리던 선와(鮮瓦)는 어디 가고 각목기둥이 웬일이며,열두 폭 문살문은 어디 가고 영창에 유리문이 웬일인가. 당대의 거찰이 이다지도 초라해지다니.그러나 불에 그을린 섬돌을 다시 찾아 어루만지면서 복원의 역사를 면면히 계속하고 있는 원력스님들을 대하니 고..
3. 10월 2일 산사의 겨울채비 아침공양이 끝나자 방부를 드렸다. 장삼을 입고 어간(대웅전 한가운데)을 향해 큰절을 세 번 한다. 본사와 사승(師僧)그리고 하안거 처소를 밝히고 법명을 알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선착스님들은 환영도 거부도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부장불영(不將不迎)할 뿐이다. 법계의 순에 따라 좌석의 차서(次序)가 정해진다.비구계를 받은 나는 비구석 중 연령순에 따라 자리가 주어졌다.내가 좌정하자 입승스님이 공사를 발의했다.공사란 절에서 행해지는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는 일종의 회의를 말함인데 여기서 의결되는 사항은 여하한 상황이나 여건 하에서도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작게는 울력으로부터 크게는 산문 출송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공사를 통하여 채택되고 결정된다. 본래 절 생활이란 주객이 없고 자타가 인정되지 않고 다만 ..
4. 10월 5일 메주 쑤기 울력 원주스님의 지휘로 메주 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대중생활이고 보니 언제나 분업은 철저히 시행된다.콩을 씻어 삶는 것으로부터 방앗간을 거쳐 메주가 되어 천장에 매달릴 때까지의 작업과정에서 대중 전체의 손이 분업 형식으로 거치게 마련이다.입이 많으니 메주의 양도 많지만 손도 많으니 메주도 쉽게 천장에 매달렸다.스무 말들이 장독에는 수년을 묵었다는 간장이 새까맣다 못해 파랗고 흰 빛까지 드러내 보이면서 꽉 차 있지만 어느 때 어떤 종류의 손님이 얼마나 많이 모여 와서 간장을 먹게 될지 모르니까 언제나 풍부히 비축해 두어야 한다는 원주스님의 지론이다. 동안거를 작정한 선방에서 겨울을 지내자면 김장과 메주 작업을 거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은 선객들의 불문율로 되어있는 관습이다.김장과 메주 울력이 끝난 다음에 온 스님들..
5. 10월15일 드디어 결제일 삼동결제(三冬結制)에 임하는 대중이 36명이다. 아침공양이 끝나자 공사가 열렸고 결제방이 짜여졌다. 결제방이란 결제 기간에 각자가 맡은 소임이다.36명의 대중을 소임별로 적어보면조실(祖室 1인)- 산문의 총사(總師)격으로 선리(禪理)강화 및 참선지도유나(維那 1인)- 포살(계행과 율의) 담당병법(秉法 1인)- 제반시식(諸般施食)담당입승(立繩 1인)- 대중통솔주지(住持 1인)- 사무총괄(寺務總括)원주(院主 1인)- 사중 살림살이 담당지전(知殿 3인)- 불공(객전각)담당지객(知客 1인)- 손님안내시자(侍者 2인)- 조실 및 주지 시봉다각(茶角 2인)- 차 담당명등(明燈 1인)- 등화(燈火)담당종두(中 1인)- 타종 담당헌식(獻食 1인)- 귀객식물(鬼客食物) 담당원두(園頭 2인)- 채소밭 담당화대(火臺 2인)..
6. 10월 20일 선방의 생태 -자신에게 비정할수록 견성길 열려--선객은 밥·옷·잠 3부족 불문율- 선방의 구성원은 극히 복합적이다. 실제적인 이질성과 내용적인 다양성이 매우 뚜렷하다.먼저 연령을 살펴보면 16세의 홍안으로부터 고희의 노안(老顔)에까지 이른다.세대적으로 격(隔)이 3대에 이른다. 물론 세수와 법랍(스님이 된 뒤로부터 치는 나이)과는 동일하지 않지만.다음에 출신 고장을 살펴보면 8도 출신들이 제각기 제 고장의 독특한 방언을 잊지 않고 수구초심(首丘初心: 고향을 잊지 않음)에 가끔 젖는다.대부분의 북방 출신들은 노·장년층이다. 학력별로 살펴보면 사회적인 학력에서는 교문을 밟아보지 못했는가 하면,대학원 출신까지 있다.불교적인 학력(강원)에서는 ‘초발심자경문’도 이수치 않았는가 하면 대교(大敎)를 마치고 경장(經藏)에 통달한..
7. 10월25일 선객의 운명 선방에 전래되는 생활규범이 있으니 그것은 두량 족난 복팔분(頭凉 足煖 腹八分: 머리는 시원하게, 발은 따뜻하게, 배는 만복(滿腹)에서 2분이 모자라는 8분)이다.의식주의 간소한 생활을 표현한 극치이다. 선방에는 이불이 없다. 좌선할 때 깔고 앉는 방석으로 발만 덮고 잠을 잔다.그래서 선객의 요품(要品)중의 하나가 바로 방석이다.이주할 때에는 바랑에 넣어가지고 다닌다. 선방의 하루 급식량은 주식이 일인당 세 홉이다.아침에는 조죽(朝粥)이라 하여 죽을 먹고, 점심에는 오공(午供)이라 하여 쌀밥을 먹고,저녁에는 약석(藥石)이라 하여 잡곡밥을 약간 먹는다.부식은 채소류가 위주고 가끔 특식으로 콩을 원료로 한 두부와 김, 미역을 보름달을 보듯 맛볼 수 있다. 선객이 일년에 소비하는 물적인 소요량은 다음과 같다.*..
8. 10월30일 포살-삭발·세탁 그믐이다. 삭발하고 목욕하고 세탁하는 날이다.보름과 그믐에는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을 제도하는 날이기 때문에 세탁을 한다.특히 겨울철에는 내복을 입어야 하고 내복에는 이 따위가 있기 때문에 세탁을 하면 살생을 하는 결과가 된다.겨울철 목욕탕과 세탁장 시설이 협소하니 노스님들에게 양보하고젊은 스님들은 개울로 나가 얼음을 깨고 세탁을 하고목욕은 중요한 부분만 간단히 손질하는 것으로 끝낸다.날카롭게 번쩍이는 삭도(削刀승려의 머리칼을 깎는 칼)가 두개골을 종횡으로 누비는 것을 바라볼 때는 섬뜩하기도 하지만 내 머리카락이 쓱쓱 밀려 내릴 때는 시원하고 상쾌하다.바라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 때문이다. 오후에는 유나(維那 총림의 모든 규율과 규칙을 총괄하는 스님)스님의 포살이 행해진다.삼장(경·율·론)중에서 율장..
9. 11월3일 선방의 풍속-지대방 생리 선방의 역사는 뒷방에서 이루어진다. 뒷방의 생리를 살펴보자.큰방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기다랗게 놓인 방이 뒷방(혹은 지대방)이다.일종의 휴게실이다. 개인 장구가 들어 있는 바랑이 선반 위에 줄줄이 담을 쌓고 있어서 누구나가 드나든다. 휴게시간이면 끼리끼리 모여앉아 법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잡담도 한다.길게 드러누워 결가부좌에서 오는 하체의 피로를 풀기도 하고 요가도 한다.간병실과 겸하고 있어 병기(病氣)가 있으면 치료도 한다.옷을 꿰매는가 하면 불서(佛書)를 보기도 한다. 편지를 쓰기도 하고 일기도 쓴다.어느 선방이거나 큰방 조실(祖室 선(禪)으로 일가를 이루어서 정신적 지도자로 모셔진 스님)이 있음과 동시에 뒷방 조실이 있다. 큰방 조실은 법력으로 결정되지만 뒷방 조실은 병기(病氣)와 구변(口辯)이 ..
10. 11월7일 고행–유물과 유심의 논쟁 견성은 육체적인 자학에서만 가능할까. 가끔 생각해보는 문제다.우리 대중 가운데 특이한 방법으로 정진하는 스님들이 있다.흔히들 선객을 괴객(怪客)이라고 하는데 이 선객들이 괴객이라고 부르는 스님들이다.처음 방부 받을 때 논란의 대상이 된 스님은 명등(明燈)스님이다. 이 스님은 생식을 하기 때문이다. 시비와 논란의 우여곡절 끝에 방부가 결정되어 공양 시간에 뒷방에서 생식하기로 합의되었다. 그래서 소임도 간편한 명등이 주어졌다. 수두(水頭)스님은 일종식(하루에 한끼만 먹음)을 하고 원두스님은 오후불식을 한다. 그리고 간변(看病)스님은 장좌불와(눕지 않고 수면도 앉아서 취함)를 한다.욕두(浴頭)스님은 묵언(黙言)을 취한다. 개구성(開口聲)이란 기침뿐이다. 일체의 의사는 종이에 글을 써서 소통한다. 그 초라한 선..
11. 11월15일 본능과 선객 상원사의 동짓달은 매섭게 차갑다. 앞산과 뒷산 때문에 밤도 무척이나 길다.불을 밝히고 먹는 희멀건 아침 죽이 꿀맛이다.오후 다섯시에 먹은 저녁은 자정을 넘기지 못하고 완전소화가 되어위의 기능이 정지 상태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상원사 김치가 짜냐? 주안 염전의 소금이 짜냐?”고 물을 정도로상원사 김치는 짜기로 유명하다.그런 김치를 식욕이 왕성한 젊은 스님들은 나물 먹듯이 먹는다.식욕을 달래기 위해서다.하기야 상원사 골짜기의 물은 겨울에도 마르지 않으니까염도(鹽度)를 용해시킬 물은 걱정 없지만. 선객에게 화두 다음으로 끈질기게 붙어 다니는 생각이 있으니그것은 식사(食思: 먹는 생각)다.출가인은 욕망의 단절상태에 있지 않고 외면 내지는 유보상태에 있을 뿐이라고이 식욕은 강력히 시사해주고 있다.그러면서 인..
12. 11월20일 올깨끼와 늦깨끼 ☪ 11월20일 올깨끼와 늦깨끼 조실스님 시자(侍者)는 열여섯 살이요, 주지스님 시자는 열아홉살이다.스무살 미만의 스님은 이들 두 사람뿐이다.나이도 어리지만 나이에 비해 체구도 작은 편이어서 꼬마스님들로 통한다.조실스님 시자가 작은 꼬마요, 주지스님 시자가 큰 꼬마다.작은 꼬마스님은 다섯살때 날품팔이 양친이 죽자 이웃 불교 신도가 절에 데려다 주어서절밥을 먹게 되었고 큰 꼬마스님은 불교재단에서 운영하는 동해안의 낙산보육원 출신이다. 낙산보육원에서 간신히 중학을 마치고 곧장 절밥을 먹었다고 한다.모두가 고아다. 작은 꼬마는 절밥을 12년 먹었고 큰 꼬마는 4년째 먹는다. 꼬마스님들은 대중들의 귀여움을 받는다. 측은해서도 그렇고 가상해서도 그렇다.그런데 꼬마스님들의 사이는 여름 날씨 같은 것이어서 변덕이 심..
13. 11월23일 식욕의 배리 (한밤중의 감자구이) ☪ 11월23일 식욕의 배리(背理 사리에 맞지 않음) 겨울철에 구워먹는 상원사의 감자맛은 일미다.선객의 위 사정이 가난한 탓도 있겠지만 장안 갑부라도 싫어할 리 없는 맛이 있다.요 며칠 전부터의 일이다. 군불 땐 아궁이의 꽃불이 죽고 알불만 남으면고방에서 감자를 몇 됫박 훔쳐다가 아궁이에 넣고 재로 덮어버린다.저녁에 방선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날 감자구이 담당 스님이아궁이로 감자를 꺼내러 간다. 뒷방에서는 공모자들이 군침을 흘리면서 기다린다. 감자는 아궁이에서 몇 시간 동안 잿불에 뜨뜻하게 잘 구워졌다.새까만 껍질을 벗기면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맛은 틀림없이 삶은 밤맛이다.서너개 먹으면 허기가 쫓겨 간다. 잘 벗겨 먹지만 그래도 입언저리가 새까맣다.서로를 보며 웃는다. 스릴도 있고 위의 사정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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