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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매장과 파종



스물네 살의 가을, 학교 부근에 월세방을 구했다. 유리창이 군데군데 깨진 낡고 오래된 4층 건물이었는데, 그중 한 층을 세 얻어 살림집으로 개조한 가족이 여분의 방 하나를 나에게 세준 것이다. 서울 근교의 한강변 창고에서 지내다 학교 앞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책을 벽에 쌓아 놓으면 겨우 누울 만큼 작은 방이었지만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고 무엇보다 세가 쌌다. 학교와 가까워서 수업을 빠질 염려도 적었다. 이미 한 번 낙제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또 낙제를 했다가는 제적당할 가능성이 컸다.

주인 격인 그 가족의 가장은 성격이 난폭하고 술주정을 일삼는 남자로, 내가 입주한 첫날부터 자기 아내와 딸에게 폭언을 퍼붓더니 손찌검까지 했다. 그 나이에 이미 나는 일 년 넘는 노숙 생활에다 강변 창고에서 물난리를 겪는 등 산전수전 다 겪은 터라 그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덩치 큰 남자가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는데 무섭지 않을 턱이 있겠는가? 너무 긴장해서 건물 한쪽에 있는 화장실을 발끝으로 걸어 다녀오는데 남자가 방문을 벌컥 열더니 나에게 소리쳤다.
"넌 앞으로 여기 화장실 절대로 쓰지 마! 우린 너한테 방을 세준 거지 화장실까지 세준 게 아냐."

말도 안 되는 횡포였다. 나는 방세에는 당연히 화장실 사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런 억지 주장을 할 거면 당장 돈을 돌려 달라고 당당하게 맞섰다, 라는 것은 마음만 먹은 것일 뿐 집주인에 대한 예의상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날부터 문학도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건물의 다른 층들에도 화장실이 있었으나 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그나마 내가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는 곳은 학교 정문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 화장실이었다. 내 방에서 그곳까지는 대략 700미터였다. 평소의 걸음걸이로는 10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볼일이 급한 사람에게는 때로 현기증이 날 만큼 먼 거리였다. 책을 읽으며 미적거리다가 엉덩이에 분사 엔진이 달린 사람처럼 전속력으로 달린 적도 여러 번이다. 그것도 자정 너머 인적 드문 길을. 아마 누군가가 초시계로 쟀다면 달리기 선수로 스카우트했을 것이다. 눈비 퍼붓는 악천후도 아랑곳할 수 없었다.


그 방에서 여섯 달 남짓 살았다. 귀가하기 전에 밖에서 최대한 볼일을 해결하고 들어갔지만, 강박관념이 생겨 새벽이나 한밤중에 어김없이 병원 응급실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다. 이른 아침 학교 정문에서 몇 번 마주친 국문과 교수가 나를 소리쳐 불렀으나 내가 못 들은 척하고 달려가자 낙제 점수를 줘서 대략 난감했다. 응급 상황인 사람을 자꾸만 불러 세운 그도 잘못이지만, 학생으로서 수업을 종종 빼먹은 내 책임이 더 컸다.


카뮈의 실존주의 소설에 반하고 니체의 초인 사상에 심취하고 바슐라르의 몽상 미학에 밑줄 긋던 이십 대, 오직 문학에 생을 전념하고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은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겠다고 혼자 촛불 켜놓고 서약했지만, 현실은 화장실 하나로 나를 녹초가 되게 만들었다. 원래는 배변이 필요 없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행성으로 향해 가던 나였는데…


하지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옷에 실수를 하는 불상사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이 불행하거나 상황에 정신이 갉아먹히지는 않았다. 설령 고통스럽고 신이 원망스러웠다 해도 이렇게 훗날 웃으며 추억할 수 있으면 되었지 않은가!


사실 이 글은 신의 섭리가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쓰려고 했던 것인데 주제와 연결시키기 어렵게 되었다. 나의 그 경험에 무슨 신의 섭리가 작용했겠는가? 다만 '매장'과 '파종'의 차이는 있다고 나는 믿는다.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둠 속을 전력질주해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매장된 것이 아니라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 류시화 산문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더숲출판사) 중에서.


* 저의 산문집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가 지난주 독일 스콜피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김혁숙 번역가에게 감사드리고,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은 이 기회에 독일인보다 먼저 읽으시기 바랍니다.

https://www.facebook.com/poet.ryushi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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