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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저도 작가님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작년 콜카타 기차역에서 만난 청년 여행자가 말했다.

“저도 작가님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눈썹 사이에 붉은색 빈디(인도 여성이 이마에 찍는 작은 점)를 붙인 청년의 여자친구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려 한껏 자유로운 표정으로 두 사람을 껴안아 주었다.

내 글을 읽었거나 번역서를 여러 권 소유하고 있는 이들은 그 젊은이처럼 나에 대해 자유롭고, 열정적이며, 여행과 진리를 추구하는 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멋진 모습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구속을 거부하며, 꼭두새벽에 일어나(지금처럼) 글쓰기에 몰두하고, 북극성으로 방향을 정하는 뱃사람처럼 망망대해의 세상에서 영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자가 과연 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의 다른 면이 있다. 나는 좋아하는 일과 사람에 기꺼이 구속당하며, 어떤 때는 열흘 동안 계속 잘 정도로 게으르고(이는 닦으려고 '노력'한다), 내 감각에 맞는 물건을 단호히 선호할 만큼 세속적이며, 여행에서 돌아오면 동면하는 동물처럼 집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한다(머리 긴 이유가 밝혀진다).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지혜롭고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자존감 넘치고 때로는 겸손하며, 때로는 높고 때로는 낮다. 때로는 뜨겁고 때로는 차가우며, 때로는 부드럽고 자애롭지만 때로는 냉정하고 무심하다. 때로는 다채로우나 때로는 빈약하고, 때로는 환희에 차고 때로는 침체된다. 확신 넘치면서도 자신 없고, 바다 같고 마른 강바닥 같다. 

자주 마음의 중심에 있으나 가장자리에서 맴돌곤 한다. 최고점과 최저점,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이런 모습의 나를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또한 당신이 마음에 들어 하든 배척하든, 그것이 나다. 그런 나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 역시 추호도 없다. 나는 이런 나와 함께 이 삶을 여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루하지 않다.

단것을 기피하지만 인도 여행 때는 당이 머리꼭지까지 치솟는 다디단 짜이를 하루라도 마시지 않으면 금단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나다. 담배 냄새를 역하게 싫어하면서도 바니안나무 아래서 돋보기안경 쓴 처음 만난 노인과 담배 나눠 피우는 걸 즐긴다. 여행을 좋아하나 비행기 타는 것을 답답해하고(유령처럼 기내를 어슬렁거린다), 그런가 하면 공항이나 기차역에서의 밤샘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나 자신이라 여기고 그 반대 모습의 나를 부정한다면 나는 내 삶을 불구나 위선으로 만드는 것이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당신과 나에 대해 상상하고 판단할 자유가 있다. 그렇다고 그 이미지에 당신과 나를 가두는 것은 존재가 가진 역동성을 억압하는 일이다. 타인의 이미지에 갇히는 것이 곧 감옥이다. 사람들은 작은 사건 하나에도 당신과 나에 대한 이미지를 바꿀 것이다.

자신의 어떤 면을 가꿀 수는 있지만, 자유는 편향된 모습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본얼굴 그대로일 때 여행은 자유롭다. 사실 그 밖의 어떤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풍부한 존재이며, 당신 역시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혹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큰 존재이다. 그것은 결코 모순과 역설이 아니다. 오롯이 당신과 나의 존재이다. 대양은 모든 강물을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바다'이다(확신 있게 말하지만 정확한 어원에 대해선 자신 없음).

책 출간 시점이 되면 편집부는 그 책을 읽을 독자를 나누고 판매 방향을 정하는데, 나는 그런 구분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떤 책을 읽을 특정한 독자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사람의 정신 안에는 시, 소설, 인문서, 자기계발 서적, 공상과학과 추리물, 심지어 만화책까지 읽는 다양한 면이 공존한다. 존재의 그 천 가지 얼굴이 우리의 삶과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부활』에 썼다.

"가장 널리 알려진 미신 중 하나는, 인간이란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똑똑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으로, 열정적인 사람과 무딘 사람 등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 사람은 악하기보다는 선할 때가 더 많고 멍청할 때보다는 똑똑할 때가 더 많고 무딜 때보다는 열정적일 때가 더 많다고 말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선하고 똑똑하다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악하고 멍청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분류한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람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강물은 어디에 있든 언제나 같은 물이다. 다만 강은 어떤 곳은 좁고 물살이 빠르고, 어떤 곳은 넓고 물살이 느리며, 어떤 곳은 맑고 어떤 곳은 흐리며, 어떤 곳은 차갑고 또 어떤 곳은 따뜻하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인간의 모든 특성을 맹아처럼 품고 있어서 어떤 때는 이런 특성이, 어떤 때는 저런 특성이 튀어나오는 것이다."(백승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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