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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자신을 이끄는지 마음챙겨 알아차려 보세요!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사람은 자기 자신을 주관과 객관으로 분리할 수 있다. 사람의 이런 능력(?)은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파괴하는 자살로 이끌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해탈로 이끌 수도 있다.
부처님이.....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몸과 마음의 작용...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신체감각과 정신감각을... 객관적으로 사띠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번뇌와 고통의 뿌리를 제거할 수 있고...정각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신 것은 실로 놀라운 발견이다.
부처님은 정각을 증득하시고 나서, 자신의 수행 경험을... 시행착오를 빼고 '경험적+합리적 = 과학적'으로 정리하여... 팔정도라 이름짓고, 이를 계발하는 수행 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셨다.
8정도를 닦는 수행을 실實수행으로 좁혀 가면... 사띠와 사마디가 남는다.
남방에서 수행의 부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마디를 약하게 하고 사띠를 강조하는 것.
다른 하나는 사마디를 강조해서 선정에 들어가는 것. 그렇게 선정에 들어갔다 나온 후에 더욱 강력해진 사띠로 이어보면서 깊이 관찰하는 것.
한 가지 대상(예: 숨)에 대한 사띠의 고요한 집중은 선정에 들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선정에 들어갔다 나온 후에 극도로 고요히 집중된 사띠는... 몸과 마음, 몸과 마음의 작용, 그리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여러 가지 현상을 사띠하여 이어보면서 통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래서 사마디를 약하게 하고 사띠를 강조하는 수행으로는.... 깨달음에 도달하기가 불가능하다.
사마디를 약하게 하고 사띠로 관찰하는 것을 강조하는 수행이.....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말하는 순수(?) 위빠사나 수행이다.....찰나삼매, 찰나사마디를 이용한다는 위빠사나 수행.......
이 방법이든, 저 방법이든.... 결국 다 사띠가 중요한 것이다.......
사띠는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기초이자 토대이다.
재가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사띠를 하는 것에 즐거움..기쁨과 행복감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한 연구를 해야 한다. 어떻게 사띠를 하는 것에 재미를 붙여서 조금이라도 더 사띠를 할 수 있을까?...하는 연구를 해봐야 한다..... 사띠하는 것에 재미를 붙여서 습관을 들이는 방법을... 심도 있게 연구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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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띠란 결국 지켜보기다......
무엇을 지켜보는가?..... 대상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다.......
어떻게 지켜봐야 하는가?......... 자신의 몸과 마음의 행동, 말, 생각 등을... 영화를 보듯이, 다른 사람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지켜봐야 한다.
사띠란...결국... 자기 자신을 행위자와 관찰자로 나누어서 지켜보는 것이다.
'행위자를 관찰자가 지켜보는 것이다'.....🌳🌳🌳🌳🌳🌳🌳
행위자의 행行...즉, 행동身, 말口, 의도意... (감각, 생각, 감정)을 관찰자가 지켜보는 것이다.....
행行하는 것은 다 오온이다.....단지 나는 지켜보는 자로 만족하자.
행동, 말, 의도, 감각, 생각, 감정은 다 오온의 작용(行)이다.........
관찰자 역시 오온에 속하지만, 일단은 순수한 마음이라고 해두자.
일상에서의 사띠가 발전되면..... 좌선(坐禪)과 행선(行禪)으로 이어지게 된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행위자를 지켜보게 해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행위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라는 관점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보는 자가 행위하는 자에 함몰되면..... 영화 속 주인공을 지켜보는 관객이 되지 않고... 영화 속 주인공에 함몰되어 같이 눈물 흘리며 울고 웃고 성내게 된다.......
관찰자가 행위자에 함몰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사띠를 놓쳤군...행위자에 함몰되었군...하면서 다시 처음의 그 위치에 다시 관찰자를 둔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신수심법 오온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관찰자가 서서히 분리하게 된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관찰자를..... 행위자인 몸과 마음, 오온에서 분리해놓고 본다.......그러다가 관찰자가 행위자에 함몰되면... 관찰하는 것을 망각하고 같이 아프고 슬프고 웃고 성내고 그런다........
그럴 때 ‘놓아버리기’를 하는 것이다..... 난 관찰자이지 행위자가 아닌데, 내가 아플 필요가 무엇인가?... 행위자가 아픈 것이지, 관찰자인 내가 아픈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하는 작은 지혜가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집성제의 실천인 ‘놓아버리기’....... 즉, 몸과 마음의 감각에 대한 갈망과 혐오의 갈애...그러한 갈애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려라'...라는 집성제 실천의 초기단계다.
내가 아픈 것이 아니다.....난 관찰자이다, 관찰하는 내가 아플 이유가 없다....... 행위자가 아픈 것이다........행위자가 아픈데, 관찰자가 같이 따라가서 아픈 것은 멍청한 짓이다........이런 작은 지혜가 수행의 체험으로 생기게 되면서, 관찰자가 행위자로부터 자연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놓아버리기..방하착의 연습이고.....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사성제 중의 집성제의 실천...갈애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라는 실천이다..... 그것이 갈애의 연기를 끊고 소멸시켜 가는 초기단계의 과정이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미세한 자아식, 에고식은 아라한에 가서 완전히 끊어진다..... 아나함에서는 감각적 욕망은 사라졌지만, 미세한 자아식, 에고식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또한 미세한 우월의식인 아만, 존재하려는 무의식적인 미세한 욕구 등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행위자....이놈의 행동, 말, 생각 등을 관찰자가 지켜보는 것에서.......특별한 노력 없이도 관찰자가 분리되어 행위자를 지켜보게 될 때, 때로는 아무 의도 없이 행동하고 있는 자기를 빤히 지켜보는 자가 있다고 느껴질 때...........사띠가 강력해지는 것이다.
아직 다 소멸되지 않은 무의식적인 습관의 경향성(업業)은... 관찰자가 행위자에 무의식적으로 함몰되어 우비고뇌하면서 허우적거리게 만든다...무의식적으로 행위자에 끌려가게 만든다...
그렇지만 꾸준한 지켜보기 연습, 훈련, 수련, 수행을 통해서... 이 관찰자에게 무의식적으로 작은 지혜의 싹이 트게 된다........아직 원하는 궁극의 지혜는 아니지만..... 작은 지혜가 무의식적으로 관찰자에게서 싹이 터서... 행위자에게 함몰되는 관찰자를 제어하게 된다......
이것이 사띠와 삼빠자냐는 결국 함께 간다...라는 의미이다.
수행의 힘이 약한 상태에서는 탐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 탐심을 다루는 법에 능숙하지 못하므로 탐심이라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게 된다. 하지만 수행의 힘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면... 탐심이 일어나는 순간 탐심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수행에 의해 어느 정도 길러지고 무의식에 새겨진 지혜의 힘으로 탐심의 진행은 차단된다.
이것이 수행에 의해 길러진 사띠의 힘과 수행에 의해 길러지고 무의식에 새겨진 지혜의 힘에 의해서 번뇌가 무의식적으로 제어되는 과정이다.
사띠 수행을 하다보면..... 거친 사띠에서부터... 점점 더 세밀한 사띠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준의 사띠가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거친 지혜에서부터... 점점 더 세밀한 지혜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준의 지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사띠의 연습, 훈련, 수련, 수행은 매우 중요하다..... 하면 한 만큼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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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구체적인 행선이나 좌선으로 연결시켜 본다.
좌선을 한다......
자신을 지켜본다.......나는 관찰자.................다리에 통증이 생긴다...아프다.
아픈 것은 행위자..........
관찰자가 행위자에 함몰되면 아픈 다리를 풀게 한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작은 지혜가 생겨서.......아픈 것은 몸과 마음, 즉 오온이지, 즉 행위하는 놈들이지... 관찰자가 아픈 것은 아니지 않은가?...하는 지혜가 무의식적으로 일어남으로 다리 푸는 것을 막게 한다.
이러한 것이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구별되는... 수행으로서 얻은 무의식에 새겨진 지혜의 차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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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정신(마음)은 수.상.행.식 무더기(온)로 이루어져 있다.........문제를 일으키는 마음은 거의다가 행온이다.....즉 움직이게 하는 것들은 거의다 행온이다....... 이것의 대표적인 것이 오개(五蓋)다..다섯 가지 장애...감각적 욕망, 악의, 나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회의적 의심.
사띠의 일차 목적은 고요함이다.........
고요해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움직이지 않기 위해서 행위자와 관찰자가 분리되어야 한다.
관찰자가 행위자에게 함몰되어.....몸이나 마음이 움직이게 하려는 충동이 생길 때..... 이것을 멈추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무의식에 새겨진 작은 지혜다.
즉 사띠와 삼빠자냐는 같이 간다.
몸이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인...다섯 가지 장애(五蓋)는... 다 행위자인 것이다....... 관찰자가 지켜보면서.....움직임이 멈춰지고..... 대표적인 다섯 가지 행위자인 오개(五蓋)가 사라질 때 선정에 드는 것이다........ 움직이게 하는 요소들, 즉 행위자는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때 행위자는 없다............오직 관찰자만 있다.
의도가 제2선정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초선정에서 관찰자...사띠의 대상은 지복이다........나중에 제4선정에서 평정으로 연결된다... 이것의 완성이 8정도의 정정正定 중에서 색계 삼매인 자나의 완성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달리 표현하면 6근이... 어느 정도 청정하지 못하면, 결코 선정에 들어갈 수 없다.....
설사 스킬로 선정에 들어가더라도... 금방 튕겨 나온다.
색계 삼매의 완성인 제4선정에 이르렀을 때..... 마음의 힘...고요하게 집중된 사띠의 힘이 매우 강력하게 된다........ 이것이 8정도의 정견과 정사유를 더 강하게 하는 역할을 해준다.
그러다가 최종목적지...상수멸...에서는.......마지막 붙잡고 있는 관찰자마저도 사라지게 된다.....
그것을 열반이라고 한다....그것을 언어도단, 언어로 표현할 길이 끊어졌다..머리로는, 지식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하고... 체험한다고 한다.
결국 마음이 족쇄에서 풀려난다.....마음이 집착하지 않는다.....마음에서 번뇌가 사라진다.......탐진치나 갈애가 생길 건덕지조차 없다.
실實수행, 특히 재가자의 실수행은 우선... 행위자와 관찰자를 분리해서 사띠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행위자가 아픈 것이지, 관찰자인 내가 아픈 것이 아니다........
행위자에 함몰되지 않고 사띠가 이어보면서 지속되면........ 행위자에게 통증이 일어나고...지속되고...사라지고........
행위자에 함몰되지 않고 계속 깊은 사띠가 이어보면서 지속되면........ 행위자 역시 일어나고 사라지고....사라지고....붕괴되고......
자, 내가 아프다....내 다리가 아프다......이것이 에고의식, 자아의식이다...
나라고 여겨지는 다리가 아픈 것이지, 관찰자가 아플 이유가 없다........
이 관찰자가 행위자인 아픈 다리에 함몰되지 않고 계속 사띠하여 이어보면서 지켜보면..... 그 행위자 역시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게 된다.......이러면서 행위자에 대해서 집착함을 버리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4성제 중의 하나인 집성제 실천의 시작인 것이다........집착을 버려라.......놓아버려라......방하착 해라............
이러한 것들 역시, 자기가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다 공염불일 뿐이다.
실수행 없는 지혜는 지식일 뿐이다.
재가자의 실수행은.....
일상생활에서의 사띠 수행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자비심으로 남을 도와줄 때도 조심해야 한다.....
예컨대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사줄 수 있고, 돈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이 그런 것에 길들여지게 되어, 생계에 대한 일을 등한시하고 나태함이 몸에 배이게 되면... 자비심으로 이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악업을 짓게 유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비慈悲는 부처님이 사용한 고대인도어 '멧따-까루나'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자비(멧따-까루나)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나(와 너)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이타적인 지혜로운 바른 사랑'...줄여서, '지혜로운 바른 사랑'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지혜가 없는 자비는 부처님이 가르친 자비(멧따-까루나)가 아니다.....
자비가 없는 지혜 또한 부처님이 가르친 지혜가 아니다.......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이른바...'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이유다.
부처님이 강조하셨듯이... 8정도를 닦는 수행을 바르게 실천하면... '지혜와 자비'가 함께 계발된다.
우리가 5계를 지키겠다고 서원한다.......
그런데 하나를 어겼다. 마음이 괴롭다. 집착함 때문에 괴롭다.....
나는 안돼...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면.....이것이 자신에 대한 악의다.
이 마음 역시도 조건생 조건멸이다........
사띠함을 놓쳐서 그랬으니 괴로운 마음도 순간인 것이다. 놓아버리고 다시 새로운 선善한 마음을 갖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자비희사 사무량심 중에서.........
자애(멧따) 수행은 선천적으로 자애심, 동정심이 많은 사람들한테 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인들한테는 이것이 어렵다......
자애 수행의 기본은 자신에 대한 악의를 없애는 자애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에 대한 악의가 생각 외로 거의 다... 깊이 박혀있다.
그런데 사띠 수행을 통해서 어느 정도 고요한 마음을 유지한 상태에서 자애 수행을 하면... 자애 수행이 쉽게, 강력하게 될 수 있다.
현실에서 생활 할 때조차도..... 사띠가 부족하면, 결국 탐진치의 극단으로 간다....... 그래서 감각적 욕망을 참지 못해서 성추행, 성폭행을 저지르고...분노를 참지 못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다.....요새 그런 사건 많지 않은가?.....
실수행 없이... 경전 상으로만, 지식(교학)으로만 8정도를 공부한 사람 중에서도..... 그런 사건으로 성추행, 성폭력...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개연성은..... 미래에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지식으로 만든 논리, 지식을 꾸역꾸역 우겨 넣은...뇌의 지식적인(또는 의식적인) 작용을....... 실수행의 지속적인 반복 수행(훈련)으로 얻은 경험적인 지혜의 힘과는 비교할 수 없다.......
또한 실수행으로 얻은 경험적인 지혜의 힘은... 현실생활에서도 당연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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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출가한 비구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비구들보다도..... 오히려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세속인들에게...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수행이란 정신적 훈련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불법佛法은 교학과 수행이란 두 개의 축으로 되어 있다.
이 두 개의 축은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재가자에게... 더욱 절실히 적용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무엇이 '고멸도성제,
즉 고의 소멸로 가는 길걸음의 고귀한 진리'인가?
그것은 바로 '팔지성도, 즉 고귀한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길'이니,
그 여덟 부분은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이다.
- 『대념처경』 中에서
🧐 각주 : ● 길과 길걸음
팔정도는 열반으로 가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길이면서, 동시에 그 길을 걸어감 즉 길걸음이다. 열반으로 향하는 길이 있고, 바로 그 길을 걸어가는 길걸음에 의해 열반으로 이끌리는 것이다. 열반으로 향하는 바로 그 길을 직접 걸어갈 때에만 비로소 열반으로 이끌리기 때문에, 부처님이 설하신 팔정도는 길이면서 동시에 길걸음인 것이다.
참고로 중도中道는 부처님이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Majjhimā Paṭipadā'를 한문(중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majjhimā paṭipadā'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양 극단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는 길걸음'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 각주 : 『대념처경』과 『념처경』은 일상생활에서 신수심법을 사띠하는 수행과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모두 포함하여, ‘신수심법 네 가지에 대한 사띠를 확립하는 사념처수행에 대한 부처님의 설법을 기록한 경전이다.
부처님이 '사띠 확립 수행'으로 제시하는 길(방법)은 아나빠나사띠 수행을 기초 토대로 계발된 고요집중의 사띠능력을 사용하여 신수심법을 "이어보면서 머문다. 즉 '이어서 사띠하면서, 또는 사띠하여 이어보면서(관찰하면서)' 머문다"는 것이다.
요컨대 부처님이 『대념처경』과 『념처경』으로 설(설명)하신 '사념처四念處 수행'은 아나빠나사띠 수행을 기초 토대로하여 지관겸수 방식으로 신수심법에 대한 사띠를 빳타나하는 수행이다.
『대념처경』과 『념처경』은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실實수행에 있어서 매우(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실實수행으로 좁혀가면 사띠와 사마디(삼매)가 남는다. 사마타가 호흡 등 한 가지 대상에 '사띠를 집중하는' 것이라면, 위빠사나는 여러가지 대상을 '사띠하여 이어보는'(관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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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팔정도를 바와나의 관점에서 실라, 사마디, 빤냐 세 부분으로 그룹핑하고, '사마디(정定) 바와나'를 사마타,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 바와나'를 위빠사나라고 칭하셨다. ['실라(계戒) 바와나'는 실라]
부처님은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즉 계-정-혜를 닦는 수행, 계-정-혜 삼학, 실라-사마타-위빠사나, 팔정도 바와나'는 연기 방식으로 완성된다고 누누이 강조하셨다.
요컨대,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맨 처음 단계인 '지식(교학) 차원의 혜를 닦는 수행'으로 계발된 지식(교학) 차원의 이해를 바탕으로, 5계 등의 계율을 지키는 실천을 포함한 ‘실라를 닦는 수행’을 자발적으로 실천하여 청정한 생활을 닦고 여섯 감각기관(6근)을 단속하여 어느정도 바른 삼매-정정正定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를 계발할 수 있을 정도6근을 청정하게 닦는다.
어느 정도 닦아진 실라를 바탕으로 사마타가 계발되고, 사마타를 바탕으로 위빠사나가 계발된다. 발전향상된 사마타는 실라와 위빠사나를 더 발전향상시키고, 발전향상된 위빠사나는 사마타와 실라를 더 발전향상시키며, 발전향상된 실라는 다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더 발전향상시킨다. 이렇게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은 연기 방식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