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전체성(연기성)을 직접 경험한 자는 모든 존재들 속에서 자신을, 그리고 자신 속에서 모든 존재를 본다. 그렇게 그는 모든 것을 분별 없는 눈으로 본다.
He who 'Experiences' the Unity of life, sees his own Self in all beings, and All beings in his own self, and looks on everything with an Impartial eyes.
- 붓다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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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가르침을 배운다는 것은
곧 자기를 배움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곧 자기를 잊어버림이다.
자기를 잊어버림은
자기를 텅 비우는 일.
자기를 텅 비울 때
비로소 체험의 세계와 하나가 되어
그 어떤 것과도 대립하지 않고
해탈된(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자기를 알게 된다.
해탈된 자기란
부분이 아닌 전체인 자기를
가리킴이다.
(수행을 통해서)
존재의 전체성(연기성)을
직접 경험한 자는
모든 존재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 속에서 모든 존재를 본다.
그렇게 그는 우주자연의 모든 것을
분별 없는 눈으로 본다.
The Act of Learning Oneself
To really learn about Dhamma is none other than learning about self.
To really learn about self is none other than forgetting self.
Forgetting about self is the
complete emptying of self.
When the self is completely emptied out, only then can
you become one with the world of experience.
Opposed by not a single thing, the liberated self
becomes known.
A liberated self means
not a fragmented self, but a total self.
He who Experiences the Unity of being, sees his own Self in all beings, and All beings in his own self, and looks on everything with an Impartial eyes.
- 법정스님, <The selected Dh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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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생불멸(不生不滅)
불상부단(不常不斷)
불일불이(不一不異)
불래불거(不來不去)
생(生)/멸(滅), 상(常)/단(斷), 일(一)/이(異), 내(來)/거(去)의 여덟 가지 잘못된 견해를 파악할 때 참다운 공(空)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다.
(우주자연의 모든 것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상주하지도 않고, 단멸하지도 않으며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그러니 분별심이 없는 중도의 마음을 유지하라
- 용수(龍樹; 나가르주나), 팔부중도(중관)
용수(나가르주나)는 중관불교의 대표적 논서(사상서, 철학서)인 『중관론(中觀論 또는 중론)』을 AD 2세기경에 저술한 유명한 인도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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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들이 우주라 부르는 전체의 일부분인 한정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는 한 부분이다. 그는 일종의 광학적인 인식의 착각에 의해서, 그 자신과 그의 생각과 느낌을 전체의 다른 나머지 부분과 분리된 (독립적인) 어떤 것으로 경험한다.
이러한 (인식의) 착각은 우리들에게는 일종의 감옥이다. 그 착각은 우리들을 개인적 욕망에 구속시키고 우리들을 가장 친한 극소수의 사람에 대한 애착(또는 집착)에 구속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임무는 우리들의 compassion(자비; '나'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의 범위를 모든 살아있는 생명과 그 자체로 아름다운 대자연 전체로 확장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A human being is part of a whole, called by us the Universe, a part limited in time and space. He experiences himself, his thoughts and feelings, as something separated from the rest- a kind of optical* delusion of his consciousness.
This delusion is a kind of prison for us, restricting us to our personal desires and to affection for a few persons nearest us.
Our task must be to free ourselves from this prison by widening our circles of compassion to embrace all living creatures and the whole of nature in its beauty
- 알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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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수록된 부처님과 유명한 불교 문학자인 법정스님과 유명한 불교 철학자인 용수(나가르주나)와 저명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의 말씀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훌륭하고 좋은 말씀입니다.
다른 점은 부처님의 말씀에는 당신께서 완성하시고 가르치신 '구체적인 How'(구체적인 실천법)가 있다는 점입니다.
부처님께서 완성하시고 가르치신 '구체적인 How'인 '팔정도 바와나[註]'(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를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실천해서 완성하면, 존재의 전체성(연기성; 연기의 실상과 진리)을 직접 경험하고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한 자(부처)가 됩니다.
그는 모든 존재들 속에서 자신을, 그리고 자신 속에서 모든 존재를 봅니다. 그렇게 그는 세상(우주자연)의 모든 것을 분별 집착 없는 눈으로 봅니다.
또한 '팔정도 바와나'를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실천해서 완성하면, 우리들의 자비('나'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의 범위가 모든 살아있는 생명(중생; 생명의 무리)과 그 자체로 아름다운 대자연 전체로 확장되고 우리 자신을 (인식의 착각과 개인적 욕망과 애착 또는 집착이라는) 감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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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따라
지혜(Panna; 연기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와
자비(Metta; '나'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 속에서
진정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May all beings
following the Buddha's samma dhamma
within the Panna & Metta
really be liberated.. be peaceful..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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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팔정도 바와나 : 몸과 마음의 '행(行)을 닦음(修)'이라는 뜻을 지닌 '수행(修行)'은 '경작하다,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바와나(bhāvan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는 '계발 수행', '팔정도 바와나'는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정도로 옮기면 그 의미가 유사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팔정도를 '바와나(계발 수행)'의 관점에서 계(戒, 실라; 정어·정업·정명)•정(定, 사마디/삼매/선정; 정정진·정념·정정)•혜(慧, 빤냐/반야/지혜; 정견·정사유) 세 그룹으로 그룹핑하시고,
설법(법을 설명)하실 때의 편의를 위하여 '사마디(삼매/정定/선정) 바와나(계발 수행)'를 사마타,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반야/혜慧/통찰지혜) 바와나(계발 수행)'를 위빠사나라고 명칭하셨습니다. ('실라 바와나'는 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