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은 어떻게 법(法; 현상, 실상과 진리)을 '있는 그대로'(여실히) 보실 수 있었을까?
『삼매경(사마디 숫따), SN.III.I.i.5; 쌍윳따니까야 제3권 칸다(무더기) 쌍윳따(상응), 제1편, 제1품, 제5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바른 삼매(正定)'를 계발해야 한다. 충분한 삼매가 있으면, 현상[Dhamma, 法; 연기현상]을 ‘있는 그대로'(여실히) 바르게 볼 수 있다. 현상(法)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면 현상(法)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色) 작용 무더기의 일어남과 사라짐, 감각(느낌; 受)·표상(想)·상카라(行)·식(識; 의식+무의식) 작용 무더기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요히 잘 집중된 비구는 오온(색·수·상·행·식 작용 무더기)과 그 원인(연기; 인因-직접조건/직접원인과 연緣-간접조건/간접원인) 그리고 그것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잘 안다. 그 원인이 일어날 때 오온이 일어나고, 그 원인이 소멸될 때 오온도 소멸되는 것을 비구는 분명히 보고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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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짜[acca; 1.진리 2.사상제] 쌍윳따(상응) 품의 『삼매경(사마디 숫따), SN.V.XII.i.1』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바른 삼매'(正定)를 계발하라. 바른 삼매를 얻으면 비구는 담마(法)를 ‘있는 그대로'(여실히) 바르게 안다. 비구가 무엇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가?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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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념처경[大念處經; Maha Sati-Patthana Sutta, 신수심법(身受心法)에 대한 사띠 확립의 큰 경], 디가니까야 D22)』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네 가지 바른 선정[禪; jhāna, 색계 삼매]인가?
여기, 비구는 모든 감각적 욕망을 버리고, 모든 불선한 것들[不善法]을 떨쳐 버리고, (집중 대상에 대한) 위딱까[탐색적 작용]와 위짜라[회귀반성적 작용]가 (아직) 있는 상태(위딱까-위짜라, 즉 마음의 미세한 진동 혹은 동요가 아직 있는 상태)에서, (감각적인 욕망과 불선법, 또는 세속, 또는 신체 감각을) 멀리 떠남에 의해서 생겨난 희열[삐띠]과 행복[수카]이 있는, 그리고 (삐띠와 수카에 대한) 마음의 전일성[심일경성心一境性, 찟따-에깍가따]을 갖춘 첫 번째 선정[초선정, 初禪]을 성취하여 거기에 머문다."
<역주 : 이것이 욕계[欲界; 감각적 욕망의 세계]를 벗어난 색계[色界; (미세한) 물질의 세계]에 속하는 삼매[禪, 禪定, 색계 삼매, jhana]의 첫 번째 단계다. 이 초선정은 다섯 감각에 대한 인식 활동의 일시적인 정지와 오개[五蓋; 다섯 가지 덮개]의 일시적인 소멸과 마음집중의 힘을 통해서 얻어진다.
부처님께서는 삼매를 색계 삼매(물질을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와 무색계 삼매(비물질을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로 구분하셨는데, 특히 색계 삼매를 자나(jhāna, 선禪; 선禪은 자나..선나..선으로 변천된 자나의 한문 음사)라고 칭하셨다. 한문 경전에서는 대개 자나를 선(禪) 또는 선정(禪定)이라고 하는데, 정(定)은 사마디(Samādhi, 삼매三昧; 삼매三昧는 사마디의 한문 음사)를 한문으로 뜻 번역한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선정(禪定)은 '자나사마디'(선삼매禪三昧)다.
첫 번째 선정에서 작용하는 마음의 다섯 가지 요소(작용 또는 현상)를 초선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라고 한다. 자신이 든 삼매가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초선정인지 아닌지는 마음 상태(또는 마음 작용)에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요소가 있는지를 점검하고 확인함으로써 판단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진정 무엇인가(어떤 것인가)는 초선정에서 나온 직후에 초선정 상태를 반조(返照;되돌아 비추어 봄)해서 스스로 확인하고 알아내야 한다.
• 위딱까[vitakka, 尋, 尋求] : 니밋따[nimitta, 相, 因相, 理由, 전조前兆, 계표界標, 現相, 표상表相; 초선정 삼매 상태에 진입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마음 상태에 대한 물질적 표상; 경우에 따라서는 니밋따 없이 초선정에 드는 경우도 있음]가 아니라, 지복[至福; 삐띠와 수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여 움켜쥐는 탐색(찾음, 추구) 작용. 위딱까는 일종의 집착 작용이기도 하다.
• 위짜라[vicara, 伺, 伺察] : 위딱까(일종의 집착 작용)에 의해 멀어지는 초선정의 지복을 다시 무의식적으로 (집착을 반성하고) 놓아버림으로써 지복으로 반복하여 되돌아가는 회귀반성적 작용. 위딱까-위짜라 반복 과정은 '초선정 상태의 미세한 흔들림(마음의 미세한 진동, 동요)'이다.
• 삐띠[piti, 喜, 喜悦] : 고요한 희열, 기쁨. (수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다소 거친 기쁨)
• 수카[sukha, 樂, 快樂, 安樂, 幸福] : 깊고 고요한 행복, 평온하고 아늑한 행복감.
• 에깍가따[ekaggata, 전일성, 일경성一境性], 찟따-에깍가따[citta-ekaggata, 심일경성心一境性] : 마음이 완전히 한 곳으로 고요히 모여 있는 상태, 순수 고요집중. 고요한 멈춤, 시간의 멈춤, 시공(時空) 초월, 영원함, 비이원성(非二元性; 무분별) 등으로 느껴지기도(경험되기도) 한다.
청정도론(淸淨道論)에 의하면, 위딱까는 물병을 잡는 행위에 비유되고, 위짜라는 잡은 물병을 놓아버리는 (집착을 닦고 놓아버리는) 행위에 비유된다. 초선정 삼매 상태처럼 수행의 대상에 마음이 완전히 몰입되어 있을 때, 위딱까는 산만함이 없어지고 탐색하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 초선정[初禪]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하고 있지만, 이 두 가지는 두 번째 선정[二禪] 이후에는 완전히 없어진다.
초선정에서는 '지복(至福; 지극한 행복), 삐띠(고요한 희열; 다소 거친 기쁨)와 수카(고요한 행복)'에 대한 '미묘하고도 확실한 자각[正念과 知正; 사띠와 삼빠자나sampajāna]의 심일경성[찟따-에깍가따]'을 이루며 삐띠와 수카는 구분되지 않는다. 세 번째 선정[3선정, 三禪]에 도달해서야 이 둘(삐띠와 수카)이 분리되고 수행자는 3선정[三禪]에서 나온 후에 반조를 통해 삐띠와 수카를 구분하게 된다.
‘삐띠와 수카’는 물질세계(오감각의 세계, 감각적 욕망의 세계, 욕계欲界)의 어떤 것도 능가(초월)하는 ‘지복(至福, 지극한 행복, 더 없는 행복)’으로 경험된다. 마음 상태에 위의 다섯 요소가 존재하고, 물질적인 오감각(신체 감각)의 인식(전오식前五識)을 포함하여 그 외의 어떤 것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때가 (색계) 초선정의 삼매 상태이다.
삼매(三昧)는 고대인도어 사마디[Samādhi]를 한문으로 음사한 것이다. 삼매는 '한 가지 대상에 대한 순수한 집중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를 말한다. 보통 독서삼매에 빠졌다고 할 때, 독서에 대한 정신집중으로 고요한 상태에 빠졌다는 의미이다. 깨어있는 상태로 고요한 것이지 졸면서 고요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하나의 대상에 심취하여 어느 순간 자기(我)를 잊어버리면 그 무아지경(無我之境, 沒我之境, 삼매)의 행복은 매우 크다. 독서삼매라든가 진짜 삼매와 약간 닮은 상태조차도 매우 행복하다. 음악이나 춤 등에 빠져서 어느 순간 자기를 잊어버리고 어느 정도라도 근사 삼매(유사 무아지경, 근사 몰아지경)의 희열과 행복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은 그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한다. 수행이 깊어지면서 경험하는 진짜 '바른 삼매'[삼마 사마디, 正定]는 그 희열[삐띠]과 행복[수카]이 더욱 더 크고(至福) 차원이 높다.
삼매는 일상의식으로는 알 수도 없고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지극한 행복(至福), 신성한 황홀경, 마음의 청정함, 청정한 성스러움, 고요한 멈춤, 자아[自我; 스스로(自) 나(我)라는] 의식 사라짐, 비이원성(무분별), 궁극성, 시간의 멈춤, 시공(시간-공간) 초월 등의 느낌이 부수적으로 동반되는 체험이므로, 그 체험(느낌)은 수행자를 압도한다.
이러한 (유사 또는 근사) 삼매의 체험(느낌)에 압도되어 미혹한(현혹된) 사람은 이 체험(느낌)을 자신이 믿는 어떤 '신(절대자, 신격화된 부처, 예수, 알라, 브라만, 샤머니즘의 장군신, 조로아스터교의 거룩한 불의 신 .. 등)과의 합일 또는 접신, 신의 은총이나 강림 따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신비체험이나 축복' 따위로 오해하기도 한다.
'바른 삼매'[正定, 삼마 사마디; 바른 몰아 고요집중] 상태를 경험하게 하는 수행(수련, 훈련)을 부처님께서는 '사마디 바와나(계발 수행) = 사마타'라 칭하셨다. 부처님께서는 팔정도를 '바와나(계발 수행)'의 측면에서,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세 부분으로 그룹핑하여 가르치셨는데, '바른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을 지칭하는 사마타[사마디 바와나]는 '정정진(바른 노력/정진)·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 바와나를 통칭한 것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위딱까-위짜라(마음의 미세한 진동, 동요)를 가라앉히고, (마음이 안으로 더욱) 고요[평온, 평정, 우빽카]한 상태에 머문다. (위딱까-위짜라가 없는) 삼매에 의해서 생겨난 희열[삐띠]과 행복[수카]이 있는, 그리고 마음의 정결함[浄, 浄潔, sampasadana]과 마음의 전일성[心一境性, citta-ekaggata]을 갖춘 두 번째 선정[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다시 비구들이여, (거친) 희열[삐띠]을 가라앉히고, (마음이 안으로 더욱 더) 고요[평온, 평정, 우빽카]한 상태에 머문다. 성인(예류자~아라한)들이 말하는 '고요함[평온, 평정, 우빽카]과 사띠를 지니고 행복[수카]에 머문다'고 하는, 수카(고요한 평정심에서 오는 행복감)에 대한 (더욱)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心一境性]을 갖춘 세 번째 선정[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미 희열[삐띠]과 슬픔은 완전히 끊어졌고, 이제 괴로움[둑카]도 즐거움[수카]도 떠나서(벗어나서, 뛰어넘어서), (둑카와 수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고요함[평온, 평정, 우빽카]에 의한 사띠의 청정함이 있는[또는, 우빽카와 사띠가 청정하게 된; upekkha-sati-parisuddhi], 그리고 우빽카(온전히 청정해진 고요함, 평온, 평정)에 대한 (더욱 더)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사띠와 삼빠자나]의 심일경성[心一境性]을 갖춘 네 번째 선정[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네 가지 바른 선정, 또는 (색계) 바른 삼매(正定)라고 한다."
長部(디가니까야) 22 <大念處經> DN II,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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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정법경(類似正法), 상윳따니까야 S16:13』에서 부처님께서는 여래가 가르친 '바른 삼매(正定)'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는 유사정법(類似正法)의 출현을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깟사빠여, 중생들이 하열해지고 시대가 혼탁해지고 정법(正法)이 사라질 때에는 학습계목은 더 많아지지만 구경의 지혜에 안주하는 비구들은 더 적어진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황금과 유사한 것이 세상에 생기지 않으면 황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황금과 유사한 것이 세상에 생기면 황금은 사라지게 된다. 그와 같이 유사정법이 세상에 생기지 않는 한 정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유사정법(類似正法)이 세상에 생기면 정법(正法)은 사라지게 된다."
"깟사빠여, 자연현상이 정법을 사라지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쓸모없는 인간(사자충)들이 나타나서 이 정법을 사라지게 만든다."
"깟사빠여, 여기 사부대중(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이 여래(부처님이 자신을 지칭하는 호칭)의 가르침에 따른 공부지음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여래가 가르친 '바른 삼매(正定)'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깟사빠여, 이런 유해한 현상이 나타나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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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경전들을 읽다 보면 법(法; 실상과 진리, 연기, 사성제)을 여실지견(如實之見; 있는 그대로 바르게 봄)하기 위해서 '바른 삼매(正定)'를 계발할 것을 누누이 강조하시고 당부하시는 부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바른 삼매를 계발하여 ‘자신과 세상’[身受心法]에 대한 사띠를 확립하고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여실히) 바르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