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三昧, 사마디Samādhi]
삼매(三昧)는 고대인도어 사마디[Samādhi]를 중국어(한문)로 음사한 것이다. 영어로는 concentration(집중), absorption(전념), ecstasy(황홀경, 무아지경) 등으로 번역한다.
삼매는 '한 가지 대상에 대한 순수한 집중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를 말한다. 보통 독서삼매에 빠졌다고 할 때, 독서에 대한 정신집중으로 고요한 상태에 빠졌다는 의미이다. 깨어있는 상태로 고요한 것이지 졸면서 고요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하나의 대상에 심취하여 어느 순간 자기(我)를 잊어버리면 그 무아지경(無我之境, 沒我之境, 삼매)의 행복은 매우 크다. 독서삼매라든가 진짜 삼매와 약간 닮은 상태조차도 매우 행복하다. 음악이나 춤 등에 빠져서 어느 순간 자기를 잊어버리고 어느 정도라도 근사 삼매(무아지경, 몰아지경)의 기쁨과 행복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은 그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한다. 수행이 깊어지면서 경험하는 진짜 '바른 삼매'(삼마 사마디, 正定)는 그 기쁨(삐띠)과 행복(수카)이 더욱 더 크고(至福) 차원이 높다.
삼매는 일상의식으로는 알 수도 없고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지극한 행복(至福), 신성한 황홀경, 마음의 청정함, 청정한 성스러움, 비이원성, 궁극성, 시간의 멈춤, 시공(시간-공간) 초월 등의 느낌이 부수적으로 동반되는 체험이므로, 그 체험은 수행자를 압도한다
그러나 삼매에서 나온 후 그 체험이 서서히 잦아들어 사라지고 다시 일상의식으로 돌아오면, 다시 번뇌가 되살아난다
삼매 상태의 경험은 절대자, 신, 신격화된 부처, 예수, 알라, 브라만, 샤머니즘의 장군신, 조로아스터교(중국에서는 불을 숭상한다 해서 배화교라 불렸다)의 거룩한 불의 신 .. 등의 은총이나 강림 따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경험(신비체험)이 아니라,
언제 하든(BC 500년에 하든 AD 2017년에 하든), 어디서 하든(인도에서 하든 한국에서 하든 미국에서 하든), 누가 하든 상관 없이 조건이 갖춰지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과학적 경험처럼, 언제 하든 어디서 하든 누가 하든 상관 없이 조건이 갖춰지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누구에게나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마음의 몰아 고요집중 상태'에 대한 경험이므로 일종의 과학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은 아니다.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에 들어가면 외부의 오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물질 감각, 신체 감각)이 전혀 인식되지 않고(전오식 사라짐; 오감각으로부터의 해탈?) '나(我) 또는 내 몸'이 사라진 듯이 느껴진다. 무아(無我)라고 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自)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자아의식, 아상我相)이 삼매 상태에서는 한시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여기서 몰아(沒我)는 아상[我相;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 또는 자아의식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잠길 몰沒) 상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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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삼매'(正定, 삼마 사마디; 바른 몰아 고요집중) 상태를 경험하게 하는 수행(수련, 훈련)을 붓다(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마디 바와나(계발 수행) = 사마타'라 칭하셨다. 부처님께서는 팔정도를 '바와나(계발 수행)'의 측면에서 세 부분으로 그룹핑하여 가르치셨는데, '바른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을 지칭하는 사마타(사마디 바와나)는 '정정진(바른 노력/정진)·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 바와나를 통칭한 것이다.
념(念)은 '지금(今)+마음(心)'의 합성어로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 인도어 사띠(Sati)를 3~4세기 경에 중국에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사띠를 한글로 번역하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또는 작용)을 '지금 현재순간 마음챙겨 전념하여 알아차림' 정도로 표현하면 유사하다
부처님께서는 삼매를 색계 삼매(물질을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 와 무색계 삼매(비물질을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로 구분하셨는데, 특히 색계 삼매를 자나(jhāna, 선禪; 선禪은 자나..선나..선으로 변천된 자나의 한문 음사)라고 칭하셨다. 한역 경전에서는 대개 자나를 선정(禪定)이라고 하는데, 정(定)은 사마디(삼매)를 한문으로 뜻 번역한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선정(禪定)은 '자나사마디'(선삼매禪三昧)다. (이하 '색계 삼매, 자나'를 '선정 또는 선정 삼매'로 표기).
부처님께서는 사마타(삼매 계발 수행; 사띠 초점 확립 계발 수행)의 집중 대상은 반드시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당신께서 가르치신 여러 가지 집중 대상 중에서 호흡(아나빠나)이 가장 수승(훌륭)하다고 추천하셨다. 즉 부처님께서는 '아나빠나(들숨날숨, 호흡) 사띠'를 통해서 바른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방법을 가장 추천하셨다(<안반수의경, 아나빠나 사띠 숫따> 참조)
왜냐하면 호흡은 우리 몸에 있는 수 많은 작용(신체 작용; 물질 작용) 중에서 '무의식적인 작용이면서도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또한 '자연적인(자동적인) 작용이면서도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작용이며, 탐(갈망, 욕망)과 진(혐오)과 치(탐, 진에 대한 집착의 어리석음)를 일으키지 않는 작용으로 죽을 때까지 우리 몸에 항상 있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사마타(삼매 계발 수행)에서 호흡은 사띠(알아차림)를 거친 수준(거친 감각, 의식/일상의식/표면의식 수준)에서 미세한 수준(미세한 감각, 무의식/잠재의식/심층의식/아뢰야식/바왕가 수준)으로 건너가게 하는 아치형태의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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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경고하셨듯이 선정 삼매 계발 수행을 위한 집중 대상은 반드시 ‘욕망과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바르게 검증된 대상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이 비록 고귀한 대상, 어떤 신이나 부처의 형상이라 할지라도), 자칫하면 그릇된 ‘욕망과 집착의 삼매’가 되어버려서 자신도 모르게 삶을 망치게 될 수도 있다.
예컨대, 무속 종교(샤머니즘)의 장군신과 같이 사이비 종교에서 만들어낸 어떤 신의 형상을 대상으로 한 유사 삼매 상태(소위 접신 상태 등)의 경험(초자연적인 신비체험)에 현혹되어서 거기에 빠지면 삶을 망치게 될 수도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불의 신을 또 하나의 예로 들어 보자. 조로아스터교는 BC 6~7세기 경에 고대 페르시아 지역의 박트리아 지방에서 짜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종교다. 짜라투스트라는 샤머니즘적 다신교가 주류이던 당시 세계에서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신 신앙을 정립하였으며 그로 인해 조로아스터교는 여러 종교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서는 불을 숭상한다 해서 배화교(拜火敎)라 불렸다.
이들은 집중하여 몰입하는데 효과가 좋은 불을 집중 대상으로 한 개인적, 집단적인 근사 삼매체험을 자신들이 숭상하는 거룩한 불의 신의 은총이나 강림 따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신비체험(종교적 신비체험)의 종교의식으로 활용하여 자신들의 신을 증거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조로아스터교(배화교) 뿐만아니라 샤머니즘의 샤먼(무당)이래로 다신교이든 유일신교이든 자신들이 믿는 신을 증거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여러 형태의 근사 삼매체험이 활용되었다. 만약 개인적, 집단적인 여러 형태의 근사 삼매체험이 없었다면 여러 형태의 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과 그 신을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여러 형태의 종교(Religion)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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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에는 물질(色)을 집중 대상으로 삼매에 드는 '색계 삼매'(선정)와 비물질(無色)을 집중 대상으로 삼매에 드는 '무색계 삼매'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무색계(無色界; 비물질세계) 삼매를 선정(禪定, Jhāna자나, 선나, 禪)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바른 삼매(삼마Samma 사마디Samādhi; 정정正定)에는 육신 의존도와 마음('수상행식' 작용)의 상태에 따라 아래와 같이 '색계 삼매'(선정)와 '무색계 삼매' 각각 네 단계가 있다.
• 색계 삼매(jhāna, 선정) : 초선정, 2선정, 3선정, 4선정
• 무색계 삼매 : 공무변처(空無邊處) 삼매, 식무변처(識無邊處) 삼매, 무소유처(無所有處) 삼매,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삼매
색(色)은 물질을 뜻하는 고대 인도어 루빠(Rupa)를 한역한 것이다. '루빠(Rupa; 물질, 물체)는 색깔과 형상을 가진 것이 그 특징'이라는 부처님의 설명에 따라 한 글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색(色)이라고 한역했다. 색계(色界)는 ‘물질(色) 세계(界)’라는 뜻이다.
자나(색계 삼매; 선정) 바와나(계발 수행)를 위한 집중 대상을 고대 인도어로 ‘까시나(kasina; 집중을 돕는 데 사용되는 특질을 표상하는 물질적인 것)'라고 하는데 니밋따(nimitta; 초선정 삼매 상태에 진입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마음 상태에 대한 물질적 표상, 바른 초선정 삼매 상태에서는 니밋따가 사라짐)를 만들어 내는 물질적인 것들이다. 지, 수, 화, 풍, 청, 황, 적, 백, 제한된 허공, 빛, 사대(四大; '지수화풍' 작용), 호흡(아나빠나; 안반安般) 등이 까시나에 속한다.
무색계(無色界)는 ‘물질(色) 없음(無)의 세계(界) 또는 비물질 세계’라는 뜻이다. 무색계 삼매는 허공(空)이나 식(識) 같은 비물질 세계에 속하는 것을 집중 대상으로 삼매에 드는(심일경성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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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계 삼매(선정) 4단계
(1) 초선정 삼매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을 버리고 불선한 상태를 떠나서 초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초선정은 (세속 또는 감각적 욕망 또는 신체 감각을) 멀리 벗어남에서 생긴 '고요한 희열(기쁨; 삐띠piti)과 행복(수카sukha)'이 충만한 상태로서, 마음의 '탐색적인 작용(위딱까vitakka)과 회귀반성적인 작용(위짜라vicara)'의 반복 과정이 함께 한다. 삐띠와 수카에 대한 미묘하고도 확실한 자각(알아차림; 사띠)인 '심일경성(에깍가따ekaggata)'이 동반된다."
- <장아함; 디가니까야, DN I, 182>
• 위딱까(vitakka 尋, 尋求) : 니밋따(nimitta; 초선정 삼매 상태에 진입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마음 상태에 대한 물질적 표상)가 아니라, 지복(至福; 삐띠와 수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여 움켜쥐는 탐색(찾음, 추구) 작용. 위딱까는 일종의 집착 작용이기도 하다.
• 위짜라(vicara, 伺, 伺察) : 위딱까(일종의 집착 작용)에 의해 멀어지는 초선정의 지복을 다시 무의식적으로 (집착을 반성하고) 놓아버림으로써 지복으로 반복하여 되돌아가는 회귀반성적 작용.
위딱까-위짜라 반복 과정은 '초선정 상태의 미세한 흔들림(마음의 미세한 진동, 동요)'이다.
• 삐띠(piti, 喜, 喜悦) : 고요한 희열, 기쁨.
• 수카(sukha, 樂, 快樂, 安樂, 幸福) : 깊고 고요한 행복, 평온하고 아늑한 행복감.
• 에깍가따(ekaggata, 一境性), 심일경성(心一境性) : 마음이 완전히 한 곳으로 고요히 모여 있는 상태, 순수 고요집중. 고요한 멈춤, 시간의 멈춤, 시공(時空) 초월, 영원함, 비이원성(非二元性; 무분별) 등으로 느껴지기도(경험되기도) 한다.
초선정에서는 '지복(至福; 지극한 행복), 삐띠(고요한 희열; 다소 거친 기쁨)와 수카(고요한 행복)'에 대한 '미묘하고도 확실한 자각(알아차림; 사띠), 심일경성(에깍가따)'을 이루며 삐띠와 수카는 구분되지 않는다. 3선정에 도달해서야 이 둘(삐띠와 수카)이 분리되고 수행자는 3선정에서 나온 후에 반조를 통해 삐띠와 수카를 구분하게 된다.
‘삐띠와 수카’는 물질세계(오감각의 세계, 감각적 욕망의 세계, 욕계欲界)의 어떤 것도 능가(초월)하는 ‘지복(至福, 지극한 행복, 더 없는 행복)’으로 경험된다. 마음 상태에 이 다섯 요소만 존재하고, 물질적인 오감각의 인식(전오식前五識)을 포함하여 그 외의 어떤 것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때가 (색계)초선정의 삼매 상태이다.
삼매는 일상의식으로는 알 수도 없고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지극한 행복(至福), 신성한 황홀경, 마음의 청정함, 청정한 성스러움, 고요한 멈춤, 자아(自我; 스스로自 '나我'라는) 의식 사라짐, 비이원성(무분별), 궁극성, 시간의 멈춤, 시공(시간-공간) 초월 등의 느낌이 부수적으로 동반되는 체험이므로, 그 체험(느낌)은 수행자를 압도한다
이러한 (초선정 또는 유사) 삼매의 체험(느낌)에 압도되어 미혹한(현혹된) 사람은 이 체험(느낌)을 자신이 믿는 어떤 '신(절대자, 신격화된 부처, 예수, 알라, 브라만, 샤머니즘의 장군신, 조로아스터교의 거룩한 불의 신 .. 등)과의 합일 또는 접신, 신의 은총이나 강림 따위에 의해서 발생하는 초자연적인 신비체험이나 축복' 따위로 오해하기도 한다.
자신이 든 삼매가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초선정인지 아닌지는 마음 상태(또는 마음 작용)에 위와 같은 다섯 가지 요소만이 있는지를 점검하고 확인함으로써 판단할 수 있다.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진정 무엇인가(어떤 것인가)는 초선정에서 나온 직후에 초선정 상태를 반조(返照;되돌아 비추어 봄)해서 스스로 확인하고 알아내야 한다.
(2) 2선정
초선정을 이루는 마음 상태(또는 마음 작용)의 다섯 요소인 ‘위딱까, 위짜라, 삐띠, 수카, 에깍가따’ 중에서 ‘마음의 미세한 요동(동요, 진동)인 위딱까와 위짜라’를 가라앉히고, 더 깊고 고요한 ‘삐띠, 수카, 에깍가따’, 이 세 요소만 남게 되면 2선정이다.
"수행자는 위딱까-위짜라(마음의 미세한 요동)를 가라 앉혀서 마음이 안으로 더욱 고요(평온, 평정; 우빽카)하고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위짜라가 없는 삼매에서 생긴 고요한 희열(삐띠)과 행복(숙카), 그리고 그 삐띠와 수카에 대한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알아차림; 사띠)의 에깍가따를 갖춘 2선정에 도달하여 머문다"
- <대념처경, Maha Sati Patthana Sutta, 디가니까야 D22)>
(3) 3선정
2선정에서의 비교적 거친 ‘삐띠(기쁨, 희열; 거친 지복)’를 가라앉히고, 더 깊고 고요한 집중이 이루진 가운데 더욱 더 깊고 고요한 ‘수카(고요한 지복)’와 ‘에깍가따(심일경성, 고요집중의 사띠)’만 남게 되면 이것이 3선정이다.
"[비교적 거친] 희열(삐띠)을 가라 앉혀서 마음이 안으로 더욱 더 고요(평온, 평정; 우빽카)하고 집중된 상태가 되어 성인(예류자 ~ 아라한)들이 말하는 '고요함(평정; 우빽카upekkhā)에서 알아차림(사띠)을 갖춘 행복(수카)에 머무른다'는 수카(고요함에서 오는 행복감)에 대한 더욱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알아차림; 사띠)의 에깍가따를 갖춘 3선정에 도달하여 머문다"
- <대념처경, Maha Sati Patthana Sutta, 디가니까야 D22)>
(4) 4선정
3선정에서의 ‘수카’를 가라앉히고, 더욱 더 깊고 고요한 상태에서 '온전한 평정심(우빽카)에 대한 극도로 고요히 집중된 에깍가따(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만 남게 되면 이것이 4선정이다.
"이미 즐겁다거나 불쾌한 느낌은 끊어졌고, 이제 수행자는 괴로움(둑카)도 즐거움(수카)도 뛰어넘어 둑카와 수카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온전히 청정한 고요함(평정; 우빽카)에 대한 더욱 더 섬세하고도 확실한 자각(알아차림; 사띠)의 에깍가따를 갖춘 4선정에 도달하여 머문다"
- <대념처경, Maha Sati Patthana Sutta, 디가니까야 D22)>
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바와나; 사념처에 대한 깊은 관찰[통찰; 깊은 정견]과 깊은 분석-사유[깊은 정사유]를 통해서 통찰지혜를 계발하는 수행)에 필요한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뻭카(평정심; 탐[갈망]·진[혐오]·치[탐과 진에 대한 집착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평정한 마음 상태)'가 4선정에서 극대로 계발된다.
갈망(탐욕; 탐)과 갈망의 다른 측면인 혐오(성냄; 진) 그리고 어리석음(치)과 그로 인한 집착은 모두 딴하(tanhā; 갈애)의 한 측면이다. 갈망(탐욕; 탐, 좋아함)에 집착하기도 하고, 혐오(성냄; 진, 싫어함)에 집착하기도 하고, 어리석음(치)으로 인해 집착하기도 한다. 탐진치와 그로 인한 집착을 통칭하여 딴하(갈애)라고 한다. 딴하(tanhā; 갈애)는 둑카(dukkha; 존재의 근원적 괴로움, 苦)의 근본 원인이다(집성제).
4선정에서 극대로 계발된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뻭카(평정심)도 선정에서 나온 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잦아들어 사라지고 다시 탐진치와 번뇌가 되살아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강조하셨듯이, 삼매에서 나온 후 법열(法悅; 삼매 체험으로 생기는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취해서 허송세월하지 말고, 사마타(사마디/삼매 바와나)에서 계발되어 '한시적'으로 유지되는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와 우빽카(탐진치에서 한시적으로 벗어난 평온하고 평정한 마음 상태)를 이용해서 사념처를 '있는 그대로' 깊이 정견(바르게 관찰/통찰)-정사유(바르게 분석 사유)하여 '존재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지혜'(빤냐/반야)를 계발하는 수행(위빠사나)을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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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단계의 삼매(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삼매에서 나온 후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번뇌는 되살아나고 생사의 의문도 여전히 풀리지 않았으니, 이는 완전한 해탈과 열반이 아니다. 이 법은 빤냐(반야; 존재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바르게 아는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완전한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못 된다.”
- <성구경(聖求經; 성스러운 참구의 경), Ariyapariyesanaa Sutta, M26>, 《중부(中部; 맛지마 니까야 Majjhima Nikāya)》26경
사문 고타마 싯달타는, 마치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가듯, 숲 속의 코끼리처럼, 무소의 뿔처럼 홀로 암중모색하며 수행을 계속하여 마침내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을 완성하고 무상정등각(줄임말로 정각; 위 없는 완전한 바른 깨달음)을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함으로써 완전한 해탈(모든 번뇌, 괴로움, 苦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과 우빽카(완전한 평정, 평온, 평화), 멧따-까루나(자비; 분별 집착 없는 완전히 지혜로운 바른 사랑)와 닙바나(열반, 니르바나; 완전한 행복)의 경지(상태)에 도달한 '깨달은 자(붓다, 부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