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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본격적인 팔정도 바와나의 첫 단계]


■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본격적인 팔정도 바와나의 첫 단계]

몸과 마음의 '행(行)을 닦음(修)'이라는 뜻을 지닌 '수행(修行)'은 '경작하다, 계발(열고 발전향상)하다'라는 뜻을 지닌,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바와나(bhāvan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행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니 바와나는 '계발 수행', 팔정도 바와나는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 또는 '정각으로 가는 여덟(八)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正) 길(道)을 계발하는 수행'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수행(팔정도 바와나)의 바른 이해와 바른 실천을 위해, 빠알리어(갠지스 강 유역의 고대인도의 민중어 중 하나로 부처님 말씀을 경전으로 기록하던 당시에 가장 널리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고대인도 민중어)로 기록된 경전모음인 니까야와 한문 번역 경전 그리고 한글과 영어 번역 경전 등의 관련 내용을 참조하여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팔정도 바와나의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 = 사마타' 단계에 관련된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용어를 함께 사용해서 우리말로 소상히 서술하여 옮기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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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계발 수행) = 사마타' 단계

팔정도 바와나의 세 번째 단계인 사마타(사마디 바와나;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 단계를 '좌선수행(Sitting Meditation, 좌선 명상수행; 좌선자세로 앉아서 하는 수행) 또는 본격적인 팔정도 계발 수행'의 첫 단계라고 하기도 한다. 

부처님께서 당신의 성도(정각을 이룸) 과정을 설(설명)하신 <삿짜까 숫따, 맛지마니까야 M36>에 상세히 설해져 있듯이 이 단계의 수행은 본격적인 수행지혜(바와나빤냐)를 계발하는 직접적인 기반이 되며, 

멸진(누진 또는 상수멸)의 성취와 함께 심(心)해탈과 혜(慧)해탈과 삼명(三明, 세 가지 밝은 지혜; 숙명명, 천안명, 누진명)을 완성하고 팔정도 바와나와 정각을 완성하는 직접적인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머리로 바르게 이해한 지식(문혜聞慧, 사혜思慧)과 실라(계戒) 바와나를 실천해서 계발한 청정한 삶(생활)을 바탕으로, 숲 속이나 동굴 또는 조용한 사찰 같은 한적한 장소(수행처)에서 좌선자세로 앉아 잡념 없이 마음을 고요히 집중하는 사마타(사마디/삼매/정定 바와나)를 통해서 바른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 단계다

부처님께서 누누이 강조하셨듯이 실라(계戒) 바와나를 실천해서 계발된 청정한 삶(생활)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본격적인 팔정도 계발 수행인 사마타(정定/사마디/삼매/선정 계발 수행; 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와 위빠사나(사마타 후에 하는 통찰경험 차원의 깊은 혜慧/빤냐/반야/지혜 계발 수행;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를 해야만 수행의 효과와 성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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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어떻게(HOW)"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여실히) 보실 수 있었을까?

부처님께서 자신과 세상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고 완전히 바르게 깨닫기 위해 실천한 팔정도 바와나(실라-사마타-위빠사나) 중에서 사마타는 인간의 '일상적인 감각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과 세상이,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성주괴공)적 수준에서,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생멸 변화하며 순환(삼사라 Samsara)하는 실상(존재의 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여실히) 바르게 통찰(깊이 꿰뚫어 관찰)할 수 있는 수단(극대화된 정신능력;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계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자면, 오늘날 과학도구(원자현미경, 입자가속기, 구름상자 등)를 사용하여 원자 이하 수준으로 물질을 관찰한 물리학자(정확히는 핵, 양자 물리학자)들의 관측에 의하면 물질(정확히는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쿼크 또는 소립자 또는 아원자)은 1초에 10^23번 찰나 생멸한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물리학자(정확히는 천체, 우주 물리학자)들은 과학도구(천체 전파망원경 등)를 사용하여 우주를 관찰하고 우주의 마이크로파(극초단파)와 우주를 통틀어 보이는 빛의 스팩트럼을 관측한 결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약 137억 년 전의 거대한 폭발(빅뱅 Big Bang)로 생긴 후 팽창하여 형성되었고 아직도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물질의 미시적 수준의 찰나 생멸 변화나, 우주의 거시적 수준의 성주괴공(팽창-수축) 생멸 변화 같은 실상은 인간의 (눈과 같은) 감각기관이 가지는 일상적인 감각 능력으로는 관찰할 수 없다

또한, 과학도구를 사용하여 물질의 미시적 수준의 찰나 생멸과 우주의 거시적 수준의 생기(빅뱅) 팽창을 관측한 물리학자라도, 자신과 세상이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성주괴공)적 수준에서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생멸 변화하며 순환(삼사라)하는 실상(존재의 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은 볼 수 없다. 이것이 물리학자에게 부처님과 같은 지혜가 생기지 않는 이유다

한문, 한글 번역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실상을 여실히 꿰뚫어 본다'는 말은 '인간의 일상적인 감각 능력의 장벽(한계)을 극복하고 자신과 세상(우주자연의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실상(존재의 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을 여실히(있는 그대로) 꿰뚫어 본다(깊이 관찰한다, 통찰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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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正精進)은 고대 인도어 삼마(sammā) 와야마(vāyāma)를 한역한 것이다. 정정진(바른 노력/정진)은 사마디(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계발 수행)를 바르게 정진하는 노력이며, 또한 나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듣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면서 바르게 살려는 노력이다

바른 노력(정진)을 달리 표현하면 아(我) 또는 아상(我相;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심)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더 많이 '놓아버리는' 노력이다

특히 사마타(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로 바른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수행이 점점 깊어질수록 자기 자신(我)의 의지의 표현인 노력조차도 점점 더 많이 놓아버리는 것이 바른 노력(정정진)이다. 왜냐하면 수행이 깊어질수록 노력조차도 미세한 집착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초선정에 들어선 이후의 단계에서는 얼마나 더 많이 놓아 버리고 얼마나 더 마음('수상행식' 작용)이 고요해 지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궁극에는 다 놓아버리고 일어나고 사라지는(생멸하는) '수상행식' 작용(마음)이 고요히 멈출 때까지(상수멸을 성취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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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 바와나를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이해해서 바르게 실천하면, 바른 수행(팔정도 바와나)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수행은 자기 자신(我)과의 싸움이 아니라 그 아(我)를 놓아버리는 것이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아(我)의 자기 주장인 의지를 더 굳건히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이 깊어질수록 그 아(我)의 의지를 더 놓아버리는 것이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자기 자신(我)의 의지의 표현인 노력조차도 더 많이 놓아버리는 것이다

요컨대 고통스럽고 괴로운 수행은 바른 수행이 아니다. 바른 수행(팔정도 바와나)은 점점 더 편안하고 행복하다. 물론 몸과 마음에 배인 습관으로 인한 수행초기의 어려움은 개인차에 따라 누구나 어느 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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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正念)은 고대 인도어 삼마(samma) 사띠(sati)를 한역한 것이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 념(念)으로 번역하는 고대인도어 사띠(Sati)는 부처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에서 '전념함, (되)새김, 기억함, 전념하여 또는 마음챙겨 알아차림, 삼빠자나(sampajāna; 대상에 대한 바른 알아차림, 빤냐로 봄/앎), 깨어있음'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영어 경전에서는 'mindfulness(주의깊음, 마음챙김), memory(기억함), recognition(알아차림), consciousness, intentness of mind, wakefulness(깨어있음) of mind, alertness, lucidity of mind, self-possession, self-consciousness' 등으로 번역한다.

념(念)은 '지금(今)+마음(心)'의 합성어다. 사띠(Sati)를 한글로 번역하면, '지금(현재 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또는 작용)을 마음챙겨 전념하여(바르게 기억하여 또는 바르게 새겨) 알아차림' 정도로 표현하면 유사하다

선정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에서 사띠는 '대상에 전념함(대상에 마음챙김, 대상을 기억함)'과 '대상을 알아차림'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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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正定)은 고대 인도어 삼마(samma) 사마디(samādhi)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정(定)은 사마디를 한문 의역(번역)한 것이고, 삼매(三昧)는 사마디를 한문 음역(음사)한 것이다. 삼매는 '몰아(沒我) 고요집중' 정도로 표현하면 유사하다

'사띠(알아차림) 초점 확립 계발 수행'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정정진(바른 정진)·정념(바른 사띠)·정정(바른 삼매) 계발 수행’을 통해서 사띠(알아차림) 대상의 범위를 점점 줄여가면 마침내 사띠(알아차림)의 초점이 하나로 모여져 고요히 집중되는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의 첫 단계인 초선정 삼매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삼매(몰아 고요집중) 상태에 들어가면 외부의 오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물질 감각, 신체 감각)이 전혀 인식되지 않고(전오식 사라짐; 오감각으로부터의 해탈?) '나(我) 또는 내 몸'이 사라진 듯이 느껴진다. 무아(無我)라고 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自) 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자아의식, 아상我相)'이 삼매 상태에서는 한시적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여기서 몰아(沒我)는 아상('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잠길 몰沒) 상태를 의미한다

초강력 고요집중의 사띠는 초선정 삼매 상태에서부터 계발되는데 4선정(네 번째 단계의 선정) 삼매 상태에서 극대로 개발된다. 삼매에 들었다 나오면 삼매 상태에서 계발된 초강력 고요집중의 사띠(알아차림) 능력이 "한시적"으로 유지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약해진다

삼매에서 계발되는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은 삼매의 깊이와 수행자가 처한 주변상황(경계)에 따라 다르지만 4선정 삼매 상태에 들었다 나온 경우 길게는 수 일 동안 "한시적"으로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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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삼매를 색계삼매(물질을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 와 무색계삼매(비물질을 집중 대상으로 드는 삼매)로 구분하셨는데, 특히 색계삼매를 자나(jhāna, 선禪; 선禪은 자나..선나..선으로 변천된 자나의 한문 음사)라고 칭하셨다. 한역 경전에서는 대개 자나를 선정(禪定)이라고 하는데, 정(定)은 사마디(삼매)를 한문으로 뜻 번역한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선정(禪定)은 '자나사마디'(선삼매禪三昧)다. (이하 '색계삼매, 자나'를 '선정 또는 선정 삼매'로 표기).

부처님께서는 사마타(삼매 계발 수행; 사띠 초점 확립 계발 수행)의 집중 대상은 반드시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당신께서 가르치신 여러 가지 집중 대상 중에서 호흡(아나빠나)이 가장 수승(훌륭)하다고 추천하셨다. 즉 부처님께서는 '아나빠나(들숨날숨, 호흡) 사띠'를 통해서 바른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방법을 가장 추천하셨다(<안반수의경, 아나빠나 사띠 숫따> 참조)

왜냐하면 호흡은 우리 몸에 있는 수 많은 작용(신체 작용; 물질 작용) 중에서 '무의식적인 작용이면서도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또한 '자연적인 작용이면서도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작용이며, 탐(갈망)과 진(혐오)과 치(탐, 진에 대한 집착의 어리석음)를 일으키지 않는 작용으로 죽을 때까지 우리 몸에 항상 있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사마타에서 호흡은 사띠(알아차림)를 거친 수준(거친 감각, 일상의식/표면의식/의식 수준)에서 미세한 수준(미세한 감각, 심층의식/잠재의식/무의식 수준)으로 건너가게 하는 아치형태의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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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의 자유자재

어쩌다 한 번 경험하는 선정 삼매는 바와나빤냐(수행지혜, 통찰지혜; 사념처에 대한 미시-일상-거시적인 통찰경험을 통해서 생기는 수행지혜)를 계발하는데 쓸모가 없다

팔정도 바와나를 완성하고 정각을 증득하기 위해서는 선정의 자유자재를 계발해야 한다

사마타(선정 삼매 계발 수행)를 숙달시켜서 선정의 자유자재를 계발하면 할 수록 위빠사나(사마타로 계발된 초강력 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한 깊은 정견-정사유 바와나)를 통해서 바와나빤냐(수행지혜, 통찰지혜)를 더 발전 향상시킬 수 있고 팔정도 바와나 전체가 더 발전 향상된다

사마타에 숙달된 수행자로서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머무는 사람이라면 손가락 튕길 사이에도 입정할(선정 삼매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심신(心身)이 안정된 상태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깊은 잠에 드는 사람과 유사한 능력(?)인 셈이다

부처님 당시의 아라한들은 모두 손가락 튕길 사이에 입정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자재한 선정 능력을 지녔다고 전해진다. 경전에 기록된 선정의 자유자재는 아래와 같다

- 전향의 자유자재 : 언제든 선정의 조건들로 자유자재하게 전향함
- 입정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에 입정함
- 머묾의 자유자재 : 언제든 선정에 들어 자유자재하게 머물 수 있음
- 출정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에서 나올 수 있음
- 반조의 자유자재 : 언제든 자유자재하게 선정조건들과 선정상태를 반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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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바른 삼매(正定)'를 다음과 같이 설(설명) 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삼매(正定)'인가?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버리고 불선한 상태를 떠나서, 마음의 탐색작용(위딱까)과 회귀반성작용(위짜라)이 [아직] 있는 상태(위딱까-위짜라, 즉 마음의 미세한 진동 혹은 동요가 아직 있는 상태)에서, (세속 또는 감각적 욕망 또는 신체감각을) 멀리 벗어남에서 생긴 희열(삐띠)과 행복(숙카)을 갖춘 초선정 삼매에 도달하여 머문다

위딱까-위짜라(마음의 미세한 진동, 동요)를 가라 앉혀서 마음이 안으로 더욱 고요(평온, 평정; 우빽카)하고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위짜라가 없는 삼매에서 생긴 희열(삐띠)과 행복(숙카)만을 갖춘 2선정 삼매에 도달하여 머문다

[비교적 거친] 희열(삐띠)을 가라 앉혀서 마음이 안으로 더욱 더 고요(평온, 평정; 우빽카)하고 집중된 상태가 되어 성인(예류자 ~ 아라한)들이 말하는 '고요함(평온, 평정; 우빽카)에서 알아차림(사띠)을 갖추어 행복(숙카)에 머문다'는 행복(숙카)만을 갖춘 3선정 삼매에 도달하여 머문다

이미 희열(삐띠)과 고뇌는 완전히 끊어졌고 이제 괴로움(둑카)도 즐거움(숙카)도 뛰어넘어 청정한 고요함(평온, 평정; 우빽카)에서 집중의 알아차림(사띠)만이 있는 4선정 삼매에 도달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바른 삼매(正定)'라고 말한다" 

- <대념처경, Maha Sati Patthana Sutta, 디가니까야 D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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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바른 삼매(正定)'를 강조하시며 유사정법의 출현을 엄중히 경고하셨다

"깟사빠여, 중생들이 하열해지고 정법(正法)이 사라질 때에는 학습계목은 더 많아지지만 구경의 지혜에 안주하는 비구들은 더 적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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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황금과 유사한 것이 세상에 생기지 않으면 황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황금과 유사한 것이 세상에 생기면 황금은 사라지게 된다. 그와 같이 유사정법이 세상에 생기지 않는 한 정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유사정법이 세상에 생기면 정법은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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깟사빠여, 자연현상이 정법을 사라지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쓸모 없는 인간(사자충)들이 나타나서 이 정법을 사라지게 만든다.
...

깟사빠여, 여기 사부대중(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이 여래(如來는 '그렇게如 온來 자'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자신을 지칭할 때 사용하신 호칭)의 가르침에 따른 공부지음을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여래가 가르친 '바른 삼매(正定)'를 존중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으며 머문다. 깟사빠여, 이런 유해한 현상이 나타나면 정법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라지게 한다." 

- <유사정법경, 상윳따니까야 S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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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부처님께서 설(설명)하신 팔정도 바와나의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바와나(계발 수행) = 사마타'와 관련된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용어를 함께 사용해서 우리말로 소상히(자세하고 분명하게) 서술하여 옮긴 것입니다.

🗻 수행 방법(수행법)에 대한 지적인 이해는 수행의 받침대로써 매우 유익합니다. 그러할지라도 수행 그 자체는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입니다. 특히 본격적인 수행의 첫 단계인 사마타 단계에서부터의 수행은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입니다.

사마타(사마디 바와나; 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의 보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놓아버리기(Mindfulness, Bliss, and Beyond)』 아잔 브람 지음 | 혜안 비구 옮김>을 참조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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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 : 정각(正覺)에 이르는 바른 실천 [본격적인 팔정도 바와나의 둘째 단계;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바와나 = 위빠사나'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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