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가르친 정신세계의 실상實相(실제 모습)과 진리眞理(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마음은 인연因緣(직간접조건; 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몸(물질작용; 사대작용[註1])과 상호의존 작용하여 미시(순간순간, 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일생)적으로 매 순간 생멸(생기소멸) 변화하는 정신작용('수상행식' 작용)의 인과 연기적 흐름현상(줄임말로 연기현상)이다." - 붓다
"나는, 중생衆生(생명의 무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이란 단지 '무상無常(a·nicca;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생멸 변화함), 고苦(dukkha; 근원적 괴로움을 내포하고 있음), 무아無我(an·attā; 비실체)'라는 특성을 지닌 몸(물질작용)과 마음(정신작용)의 '인연(직간접조건)에 따른 상호의존'(연기) 작용이 일으키는 인과 연기적 흐름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수행을 통해서 직접 통찰(깊이 관찰)하여 깨달았다." -붓다
붓다는 우주 자연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모든 존재(또는 현상)를 크게 '정신작용이 있는 존재'(유정; 생명, 생물, 생명현상, 생명체)와 '정신작용이 없는 존재'(무정; 무생물, 물질, 물질현상. 물체)로 분류했다.
붓다는 무정(무생물)의 작용(또는 구성 요소) 무더기를 통칭하여 고대 인도어로 '루빠rūpa(물질, 물질작용, 물질현상; 색色) 칸다khandha(집합, 집적, 쌓임, 무더기; 온蘊)'라는 용어를 사용했다(한문으로 색온色蘊). "루빠(물질, 물질현상, 물질로 이루어진 물체)는 '형상과 색깔'을 지니는 것이 그 특징"이라는 붓다의 설법(법法을 설명함)에 따라 표의문자인 한문(중국어)의 특성 상 한 글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루빠를 '색色'이라는 한 글자로 번역했다.
붓다는 유정(생명, 생물)이 무정(물질, 무생물)과 다른 작용(또는 구성 요소) 무더기를 통칭하여 고대 인도어로 '나마nāma(정신, 정신작용, 정신현상; 명名) 칸다khandha(집합, 집적, 쌓임, 무더기; 온蘊)'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표의문자의 특성 상 한 글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나마를 '명名'이라고 번역했는데, naming 작용이 정신작용의 대표적인 작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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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는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실체實體[註2])가 아니라 '직간접조건(인연)에 따라 서로 상호 의존'(연기) 작용하여 매 순간 생멸 변화하며 순환(삼사라)하는 인과 연기적인 현상, 줄임말로 연기현상이다. 연기현상과 자연현상은 동의어다. 우주 자연에 실존하는 삼라만상, 즉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유정(생명, 생명현상, 생명체, 생물)과 무정(물질, 물질현상, 물체, 무생물)은 모두 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이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몸(色, 물질, 물질작용 무더기; 사대 작용 무더기)과 마음(名, 정신, 정신작용 무더기;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이 '조건(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 인연)에 따라 상호 의존'(연기) 작용하여 매 순간 생멸 변화하며 순환흐름(삼사라)을 계속하는 인과 연기적인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이다.
마음은 인연(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서 몸과 상호 의존 작용하여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며 변화하는(생멸 변화하는)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를 통칭한 것이다. 수受(감각 받음受) 작용에서부터 식識(앎) 작용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정신작용인 '수상행식' 작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생명체의 인식작용이다.
인간의 경우 인식작용('수상행식' 작용)은 인식정보(여섯 감각)를 육근六根(여섯 감각 기관 또는 기능'[註3])에 의존한다. 이렇게 육근에 여섯 감각의 인식정보를 의존하여 인식작용('수상행식' 작용)이 진행되면 인식작용 중에 신체와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심소心所(쩨따시까; 감정, 기억, 업 등의 마음의 내용 성분)가 작용한다.
쩨따시까(감정, 기억, 업 등)는 루빠(물질, 몸, 사대 작용 무더기, 색온)와 나마(정신,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 '수상행식' 온)가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발생하는 마음(心)의 내용 성분(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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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신보다 마음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표현합니다. 몸(육체, 신체, 육신)을 포함한 물질(물체)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지므로 쉽게 인식되는 대상입니다. 어려서부터 서양식 교육을 받고 자란 현대인들에게 물질은 친숙한 용어, 명칭, 개념입니다.
현대 문명을 물질문명이라고 합니다. 현대 사회가 물질만능주의라는 비판도 많이 합니다. 현대 물질문명은 유럽(서양)을 위주로 르네상스(14~16세기) 이후에 발달한 자연과학(물리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문명입니다. 르네상스는 신神 중심 문화인 1000년 중세 암흑기가 쇠퇴하고 인간 중심 문화가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고, 신의 능력이 아닌 인간의 능력으로 자연을 이해하려는 근대 자연과학이 태동되었습니다.
근대 자연과학이 다루는 대상은 물질이었습니다. 자연과학의 짧은 기간 동안의 눈부신 성공(?)에 자극을 받아서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학적 사고방식이 각광을 받게 되면서 인문사회과학, 경제과학, 생명과학, 심리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과학이라는 말과 과학적 사고방식이 확대되었습니다. 물질을 다루던 자연과학은 다른 분야에 과학이란 용어가 사용되면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물리학物理學, 물질세계(物)의 이치(理)를 다루는 학문(學)’으로 한정하여 불립니다. 물리학은 기본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다루는 대상에 따라 천체우주 물리학, 원자 물리학, 소립자 물리학, 양자역학 등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서양과학은 기본적으로 모두 물리학입니다. 현대인은 서양과학, 즉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서양식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서양식 교육과 서양과학(물리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습니다.
서양과학(물리학)에서 우주자연의 물질세계를 탐구하는데 사용하는 탐구방식과 접근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탐구방식 : 인간의 5감각을 바탕으로 한 인식능력(인간의 5감각을 미시-거시적으로 확장시켜주는 원자현미경, 입자가속기, 천체망원경 등의 과학도구를 사용하여 확장된 인식능력), 즉 신(神)의 능력이나 초능력이 아닌 인간의 능력을 사용하여 경험적•합리적 이해를 통해 경험적•합리적 방법으로 대상(물질세계)을 '있는 그대로' 관찰 탐구(조사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통상 ‘과학적(= 경험적+합리적) 탐구방식’이라고 부릅니다.
서양과학(물리학)은 물질세계만을 직접 관찰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정신세계가 제외된 반쪽의 과학입니다.
• 접근방식(특히 19세기까지의 물리학) : 대상을 의심 없이 당연히 실체로 생각(가정)하고 (일종의 선입견 또는 편견입니다) ‘대상의 기본(근본) 실체實體’를 탐구(조사 분석)하는 접근방식입니다.
2600년 전에 붓다(고타마 붓다, 석가모니 부처 또는 고타마 싯달타; BC 624?~544?)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포함한 우주자연의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탐구하는데 사용한 탐구방식과 접근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탐구방식 : 인간의 6감각을 바탕으로 한 인식능력(팔정도 수행의 사마타-위빠사나를 통해서 확장된 인식능력)을 사용하여 경험적•합리적 이해를 통해 경험적•합리적 방법으로 대상(물질세계와 정신세계,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 탐구(조사 분석)하는 ‘과학적(= 경험적+합리적) 탐구방식’입니다.
• 접근방식 :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인간의 능력으로 인식 관찰되는 ‘대상의 기본(근본) 작용(作用; kicca)’을 '있는 그대로' 관찰 탐구(조사 분석)하는 접근방식입니다. (대상이 어떤 것인지, 실체인지 아닌지 등은 탐구가 끝나봐야 압니다)
실체인지 아닌지는 잘 몰라도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물질, 물체에는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 인식 관찰되는 ‘작용’이 있습니다. 원자, 소립자, 쿼크, 전자, 빛, 해, 달, 별, 지구, 은하, 천체天體 등도 감각을 통해 인식되는 ‘작용’이 있습니다. 어떤 ‘작용’도 없으면 이름, 명칭조차도 붙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음(또는 정신세계)에 대해서 탐구(조사 분석)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실체인지 아닌지 잘 몰라도 우리는 ‘마음작용, 심행心行’을 인식 관찰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물체의 물질작용과는 다른, 생명체의 작용들을 통칭하여 '마음, 마음작용 또는 정신, 정신작용'이라고 이름붙인(명칭한) 것입니다.
바람이라는 실체를 볼 수는 없지만 인과 연기적인 바람작용을 인식 관찰할 수 있습니다. 소립자, 쿼크라는 실체를 볼 수는 없지만 소립자, 쿼크라는 인과 연기적인 물질작용을 과학도구를 통해서 인식 관찰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실체를 볼 수는 없지만 인과 연기적인 마음작용(정신작용)을 인식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라는 실체를 볼 수는 없지만 감정이라는 인과 연기적인 마음작용(정신작용)을 인식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작용(kicca)’에 대해 추구하면 '우주자연, 물질-정신세계'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실제모습)과 진리眞理(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양과학(물리학)이 발견한 물질세계의 실상과 진리'와 ‘붓다가 발견하고 가르친 물질-정신세계의 실상과 진리’의 공통점은 둘 다 신의 능력을 빌리거나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인간의 감각을 바탕으로 한 인식관찰 능력)을 사용하여 경험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를 통해 경험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대상을 탐구하는 ‘과학적(= 경험적+합리적)’ 탐구방식을 사용헸다는 점입니다. 차이점은 ‘접근방식(method of approach)’입니다. 서양과학(물리학, 특히 근대 자연과학)이 사용한 접근방식은 ‘물질의 기본(근본) 실체實體’를 탐구하는 접근방식입니다. 붓다가 사용한 접근방식은 ‘물질(몸)과 정신(마음)의 기본(근본) 작용’을 탐구하는 접근방식입니다.
같은 과학적(= 경험적+합리적) 탐구방식을 사용하더라도 ‘기본(근본) 실체’로 접근하는 방식보다 ‘기본(근본) 작용’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선입견이나 편견 없는 보편타당한 접근방식으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실상(실제 상태/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통찰을 가져다줍니다.
물론 붓다가 사용한 2600년 전의 용어와 표현방식과 현대 과학(물리학)이 사용하는 용어와 표현방삭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물질문명의 폐해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양에서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19세기 이후에 붓다의 가르침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언어적인 문제, 즉 용어와 표현방식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붓다의 가르침 사이에 간과하기 쉬운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추구하는 목적'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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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물체), 기계 vs. 생명(생명체)
물체와 생명체의 다른 작용을 통칭하여 ‘마음, 정신작용 또는 수상행식 작용’이라고 부릅니다. 마음(정신작용)은 ‘수상행식(受想行識)' 작용 무더기(蘊)의 통칭한 것입니다. 생명의 마음은 ‘수상행식 작용’ 뿐입니다. ‘수상행식 작용'(정신작용 또는 마음)이 있으면 생명입니다.
생명체의 신체도 책상, 의자 등과 같은 물체도 모두 물질입니다. 그러나 생명체의 신체와 책상(물체)은 그 작용이 분명히 다릅니다. 그 다른 작용이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발견할 수 있는 그 다른 작용들을 찾아서 하나의 카테고리(범주, 바구니)에 넣어 봅시다. 그리고 그 카테고리(작용들 또는 작용 무더기)의 이름(명칭)을 ‘마음, 마음작용 또는 정신, 정신작용’이라고 부릅시다. 마음이 실체인지 아닌지 잘 몰라도 우리는 그 작용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1) 생명체는 빛, 소리, 냄새, 음식, 뜨거움, 차가움 등 외부 환경 또는 대상에 반응합니다. 책상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생명체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작용’이 있습니다. 이런 작용을 카테고리에 넣습니다. 이러한 작용은 책상에는 없는 마음이라고 부르는 카테고리의 작용입니다.
(2) 생명체는 ‘움직이는 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작용도 카테고리에 넣습니다. 이 작용도 책상에는 없는 마음이라는 카테고리의 작용입니다.
(3) 생명체는 시시각각 변해 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책상의 변화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책상은 노화해서 부서질 뿐입니다. 생명체도 노화하지만 털이 자라고, 손톱이 자라고, 상처가 낫는 등의 ‘재생작용’도 있습니다. 생명체는 노화하면서 재생도 하지만 책상은 단지 노화할 뿐입니다. 이것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재생작용’은 대표적인 갈애작용 중 하나입니다. 갈애작용에 의한 몸과 마음의 상호의존(연기) 작용 중 하나입니다. 갈애는 '생명체 윤회의 에너지(원동력)이자 생명체 진화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4) '먹는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음식물이라는 물질을 음식물이라고 판단하는 작용과 먹으려고 의도하는 작용 등은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5) ‘잠자는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6) ‘생식, 신체복제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생식, 신체복제’ 작용도 대표적인 갈애 작용 중 하나입니다.
(7) 슬픔, 기쁨, 괴로움, 화남 따위의 ‘감정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8) ‘생각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9) ‘지각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10) ‘기억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11) ‘의도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12) ‘비교, 판단, 분별하는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등등
물체의 물질 작용과는 다른, 위와 같은 생명체의 작용이 ‘마음’이라고 부르는 카테고리의 작용입니다. 이러한 ‘마음’이라는 작용은 인간뿐만이 아니고 차이는 있지만 개, 고양이, 지렁이, 미생물, 아메바, 박테리아, 바이러스도 그리고 욕계-색계-무색계 범천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라는 작용이 있으면 ‘생명’ 또는 ‘중생衆生(생명의 무리)‘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마음이라는 작용‘과 ’물질(신체, 몸)이라는 작용‘이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는 것을 ‘생명체’라고 부릅니다.
신체는 고정된 물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기능이 있는 기계(로봇)같은 물체에 가깝습니다. 미생물이나 바이러스는 일견一見 단순한 기계 같지만 생명으로서의 작용을 분명히 다하고 있습니다. 미생물이나 바이러스의 전형적인 생명으로서의 작용은 환경(대상)에 반응하고, 환경이 적합한지 판단 분별하고, 자신을 오래 유지하려는 노력인 갈애작용의 일환으로 재생작용과 생식(신체복제)작용 따위를 합니다.
기계와 다른 이러한 작용이 마음이라는 작용입니다. 이러한 '마음이라는 작용'이 있으며 또한 기계와 같이 움직이는 기능이 있는 물체를 우리는 '생명체'라고 부릅니다. ‘마음이라는 작용이 있는가? 없는가?’에 의해서 물질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작용'을 탐구하면 마음(정신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통찰이 생깁니다.
붓다는 경험적·합리적(과학적)인 이해와 경험적·합리적인 수행의 직접적인 통찰(깊은 관찰) 경험을 통하여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실상과 진리를 탐구(조사 분석)하고 나서, 물질작용과는 다른 생명체의 작용의 특징은 한마디로 '식識(앎, 알음알이) 작용, 대상을 아는 작용 또는 요즘시대의 표현으로 인식작용'이며 그것의 구체적인 여러 가지 작용들을 다시 큰 범주에서 대분류하여 수온受蘊(감각 받음受 작용 무더기), 상온想蘊(상想 작용 무더기), 행온行蘊(행行 작용 무더기), 식온識薀(식識 작용 무더기)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또한 붓다는 '정신(名) 작용의 대분류 무더기인 '수상행식受想行識' 온(蘊)'에 ‘물질(色) 작용 무더기인 색온色蘊'을 합쳐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다섯 무더기’라는 의미로 오온五蘊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수상행식受想行識' 작용 무더기를 통칭하여 ‘마음, 정신작용 또는 인식작용’이라고 부릅니다. 마음은 ‘인식(수상행식) 작용’이라고 부르는 정신작용입니다.
마음을 ‘과학적(= 경험적+합리적)’으로 조사 분석해 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작용, 인식(수상행식) 작용’ 뿐입니다. 눈에 무언가 보이면 자동적으로 인과 연기적인 인식(수상행식) 작용이 진행됩니다. 처음부터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내(我)’가 있어서 그 ‘내(我)’가 인식(수상행식)하고 싶은 것만을 선택해서 인식(수상행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인식(수상행식)하는 작용, 마음’이 있으면 생명입니다. 바이러스로부터 인간을 포함하여 욕계-색계-무색계 범천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명의 무리, 중생衆生입니다. 모든 생명은 인식(수상행식) 작용이 있습니다. 그 인식(수상행식) 작용을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정신(名; 수상행식) 작용과 물질(色; 사대) 작용이 연기(인연-직간접조건에 따라 서로 상호의존) 작용하여 일으키는 인과 연기적인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을 생명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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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nama, 名;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
수온受蘊(감각 받음/受 작용 무더기), 상온想蘊(지각/표상/想 작용 무더기), 행온行蘊(의도/업 형성/반응/行 작용 무더기), 식온識蘊(앎/알음알이/識 작용 무더기)
인간이 안근眼根(시각 감각기관, 눈)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 또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습니다.
빛이 사물에 부딪히면 빛은 사물의 색깔(色)-형상 정보를 갖고 반사됩니다. 이렇게 반사된 빛이 우리 눈에 부딪히면 식識 작용과 함께 색-형상 정보(감각) 받음 작용을 포함한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가 인과 연기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인간의 인식작용(정신작용) 메커니즘을 붓다가 가르친 용어로 표현하면, 육근(6 根indriya, 여섯 감각 기관 또는 기능; '안이비설신의' 근)과 육경(6境, 육근의 대상; 색성향미촉법)과 육식(6識;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이 연기(인연-직간접조건 따라 상호의존)적으로 접촉(觸)하면 그에 따라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이라는 정신작용들이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 수온受蘊 : 고대인도어 '웨다나vedanā 칸다khandha'의 한문의역(漢譯). (물질적, 정신적 6가지) 감각(느낌) 또는 감각받음/受 작용 무더기.
육근(6가지 감각 기능indriya)과 육경(육근의 대상)과 육식이 연기(인연-직간접조건에 따라 상호의존)적으로 접촉하면 여섯 가지 감각 받음(受) 작용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받은 여섯 가지 감각에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인 '고(苦; 싫음), 낙(樂; 좋음), 불고불낙(싫지도 좋지도 않음)'의 느낌이 동반됩니다.
여섯 가지 인드리야Indriya(根; 감각 기능 또는 기관)를 통해 들어온 여섯 가지 감각(6入)에 동반되는 이러한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감정(느낌)은 마음('수상행식' 작용)이 엄청나게 빠르게 회전하면서 (과거의 상카라行가 개입되고) 증폭되어, 일상적인 의식 수준에 도달할 때는 갈망(욕망; 탐), 혐오(성냄; 진), 어리석음(무지; 치)의 갈애(딴하)로 발전 진행됩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12연기에서 설(설명)하신 '수受(웨다나vedanā) --> 애愛(갈애; 딴하taṇhā)' 단계의 진행입니다.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점점 더 미세한 초기의 감각과 초기의 감정을 사띠(사념처 중의 수념처)하여 관찰할 수 있게 되면 이러한 마음(찟따; 나마와 심소) 작용의 매 순간 인과 연기적인 생멸변화(anicca; 무상)를 '지식으로서(지식차원에서)의 이해'(문혜聞慧와 사혜思慧; 듣거나 읽어서 아는 지혜와 사유지혜)를 넘어서 수행의 통찰(깊은 관찰) '경험으로서(경험차원에서)의 이해'(수혜修慧; 수행지혜/통찰지혜)가 계발啓發(열리고 발전향상)됩니다.
여섯 가지 감각 중에서 특히 신체감각은 상대적으로 관찰이 용이합니다. 시각(눈의 감각)이나 청각(귀의 감각)의 경우에 비해서 외부 대상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 신체의 내면에서) 관찰할 수 있어서 자신의 직접적인 통찰(깊은 관찰) 경험으로 anicca(무상)를 체험자각(실감)하는 데 유리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감각보다 신체감각(느낌)을 그냥(이유 없이) 신뢰합니다(ex: 그냥 느낌이 좋다, 싫다, 나쁘다). 사념처(신수심법 네 가지에 대한 사띠 확립) 수행을 수념처, 특히 신체감각으로 시작하는 것은 이러한 장점이 있습니다.
신체감각은 물질작용(신체 사대 작용; 요즘시대의 표현으로 신체 생화학 작용)과 정신작용이 상호작용하여 미세한 수준(또는 찰나/무의식/심층의식 수준)과 거친 수준(또는 일상의식/표면의식 수준)에서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며 변화(생멸변화)하는 현상(changing phenomenon; anicca dhamma)입니다. 신체의 모든 부위(세포, 궁극적으로 물질의 최소 단위인 깔라빠)에는 감각(사대 작용이 일으키는 감각)이 있지만, 거친(일상의식) 수준의 식識에는 인지되지 않으며 거친 사띠로는 관찰되지 않습니다. 사마타(바른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로 점점 더 강력한 고요집중의 사띠를 계발하면 할 수록 점점 더 미세한 수준의 감각, 궁극에는 사대 작용이 일으키는 깔라빠kalāpa의 감각과 깔라빠의 미시(순간순간, 찰나)적인 생멸현상이 관찰(위빠사나)됩니다.
• 상온想蘊 : 고대인도어 '산냐saññā 칸다khandha'의 한문의역. 지각/상념/개념/기억 재생/표상(지각표상; imaging)/想 작용 무더기.
사람의 기억은 여섯 감각의 경험에 대한 아我(또는 에고, 我相)와 아我의 감정이 개입된 주관적인 image(실제가 아닌 이미지)입니다.
• 행온行蘊 : 고대인도어 '상카라saṅkhāra 칸다khandha'의 한문의역. 의도/형성/반응/行 작용 무더기. 업業(또는 습관, 기억) 형성 작용.
사람을 포함한 중생(생명의 무리)의 상카라는 아我(에고), 아상我相('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 '나我'에 대한 집착)이 개입된, 조건 지어진 업業 형성(또는 반응) 작용이며, 대상(감각, 느낌)에 대한 갈망(욕망; 탐) 또는 혐오(성냄; 진)의 반응입니다. 상카라는 습관 지어진(습관적) 반응이며 그에 이어지는 업 형성 작용입니다.
바른 상카라를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카라saṅkhāra(行, 행위; 業)가 모여서 현재의 습관과 현재의 생활을 만들고 현재의 내 모습과 현재의 내 삶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 식온識蘊 : 고대인도어 '윈냐나vinnāṇa 칸다khandha'의 한문의역. 앎/알음알이/識 작용 무더기.
인식(수상행식) 작용이 인식정보(여섯 감각)를 육근(여섯 감각 기능 또는 기관)에 의존하면 인식(수상행식) 작용 중에 신체와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 작용하여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심소心所(감정, 기억, 업, 번뇌 따위의 마음의 내용성분)가 작용합니다. 몸(신체 사대작용)과 마음(심소를 포함한 마음작용)은 '인연(직간접조건)에 따라 서로 상호의존'(연기) 작용을 합니다. 몸과 마음은 서로 상호의존 작용을 하며 상호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예컨대 기쁨의 전율을 느낀다거나, 기쁨(또는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거나, 분노에 치가 떨린다거나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거나, 술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명확한 구분과 이해를 위해서, 인식(수상행식) 작용인 나마nāma(名, 정신작용; 4 mental khandha, 즉 feeling受, perception想, mental formations行 and consciousness識)는 요즘시대의 표현으로 비유하자면 프로세스process(또는 기능function)인 셈이고 (감정, 기억, 업, 번뇌 따위 등) 마음의 내용 성분(elements)인 제따시까cetasika(心所심소)는 콘텐츠(또는 콤포넌츠)인 셈입니다.
나마nāma(名; '수상행식' 작용)와 제따시까cetasika(心所)를 통칭하여 찟따citta(心; heart, the focus of man’s emotional nature as well as intellectual function)라고 합니다. 한글로는 (두루뭉술하게) 마음이라고 합니다. 생명체의 정신-물질 작용(kicca; function, faculty)을 통칭하여 '나마nāma(名; 수상행식 작용)-루빠rūpa( 色, 사대 작용), 명색名色' 또는 '오온五蘊(색수상행식 온)'이라고 합니다.
찟따citta(心)를 물(H2O) 자체(體)에 비유하면 제따시까cetasika(心所)는 물에 녹아있는 내용 성분인 셈입니다. 더러운 물, 깨끗한 물, 홍차, 녹차, 커피.. 등은 물(H2O)이라는 점에서는 한 가지지만 거기에 녹아있는 내용 성분이 다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더러운 흙탕물을 고요하게 정화하여 맑고 깨끗한 청정한 물로 만드는 것처럼 마음을 고요하게 정화하여 청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요하고 맑은 물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춥니다.
정신작용('수상행식' 작용; 마음)과 물질작용(사대작용; 몸)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매 순간 생멸변화'(무상; a·nicca)합니다. 붓다의 표현처럼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정신작용)의 빠르기는 (번갯불이나 슈퍼컴퓨터의 연산속도.. 등) 물질작용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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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죽음 vs 일생의 죽음
사람은 몸(물질작용; 사대작용, '지수화풍' 작용 무더기)과 마음(정신작용; 인식작용,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이 연기(조건 따라 상호의존) 작용하여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인과 연기적 흐름현상(연기현상, 생명현상, 자연현상)이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유정)에는 모두 다 인식(수상행식) 작용이 있다. '인식하는 작용'(수상행식 작용, 정신작용, 마음)이 있으면 바이러스, 아메바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명의 무리, 중생衆生(satta)'이다. 참고로 유정(정신작용이 있는 존재; 생명, 생명체)과 중생(생명의 무리)은 동의어다.
인간의 경우에 마음이란, 여섯 감각 기능(또는 기관; indriya)의 여섯 가지 감각(인식정보)에 대해 인과 연기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수상행식’ 작용의 무더기를 통칭하여 ‘인식작용 또는 마음’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마음, 인식(수상행식) 작용’은 여섯 감각 기관의 인식 정보(여섯 감각)에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있다. 그런데 여섯 감각 기관의 감각(인식 정보) 자극이 반드시 기쁨의 자극은 아니다. 그러나 인식 작용 자체는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상관없이 인식 정보만 있으면 충분하다. 인식 정보만 있으면 인식 작용을 계속할 수 있다.
밖에서 들어오는 인식 정보(감각)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눈, 귀, 코 등의 오감각(물질감각) 기관이 망가지거나 외부 정보가 차단되면 인식 작용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은 스스로 인식 정보(감각)를 만드는 자급자족 작용(kicca, 또는 function, 기능)도 갖추고 있다. 끝없이 생멸 변화하는 (망상을 포함한) 생각과 감정, 그리고 기억 따위가 여섯 번째 감각(육감, 정신감각)으로서 항상 준비되어 있다.
만약에 사람이 밀실 속에 갇혀서 오감각이 제한되거나 또는 명상(수행)을 하면서 오감각을 차단하려고 하면 망상이 더욱 극성을 부린다. 끊임없이 ‘에고ego(我)의 자기 표현, 자기 해석(판단, 분별)인 망상’이 떠오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의 망상이 다음의 망상을 만든다. 천 년, 만 년이라도 망상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은 육체가 먼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인식(수상행식) 작용에는 인식 정보가 없게 되는 순간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인식 정보(감각, 느낌)가 고苦인지, 낙樂인지, 불고불낙不苦不樂인지, 또는 선善인지 악惡인지는 인식 작용 자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인식 정보만 있으면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인식 작용을 계속할 수 있다. 그것은 죽음으로도 멈출 수 없다.
인식 작용('수상행식' 작용, 마음)은 인식 정보(여섯 감각)를 육근(여섯 감각 기능)에 의존하여, '나(我)'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 흐름을 계속한다.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생멸하는) 마음('수상행식' 작용)의 물결 흐름은 그 물결을 지속시키는 에너지가 있는 한 계속된다. 마음의 물결 흐름을 지속시키는 에너지(원동력)는 갈애(taṇhā; 물질, 정신적 여섯 감각에 대한 갈망과 집착) 혹은 갈애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인식(수상행식) 작용 자체다.
인식 작용('수상행식' 작용)이 인식 정보(여섯 감각)를 의존하던 육근(여섯 감각 기능, 육신, 몸)이 사고를 당하거나 노화하여 그 기능(작용)을 다하면 물질세계의 '시공간(시간-공간)을 초월하여'[註4] (다른 표현으로, 물질세계의 시간-공간을 통한 '오고 감이 없이')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곳(장소, 세계)에서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물질토대(몸, 감각 기관)에 인식 정보(감각)를 의존하여,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일생) 순환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인식 작용('수상행식' 작용)의 인과 연기적인 생멸 흐름의 순환[삼사라, 윤회]을 계속한다.
붓다는 말한다.
“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색수상행식' 무더기들이 모든 순간(찰나)마다 생겨나고 사라질 때, 오! 비구들이여, 그 모든 순간(찰나)마다 그대들은 태어나고 죽는다.”
붓다가 가르친 죽음과 윤회(자연현상의 인과 연기적 순환)는 매 순간(찰나khana)의 죽음과 윤회이며 그런 죽음과 윤회로부터의 해방(해탈, 열반)이다. 반면에 세간에서 관심이 있는 한 생(一生)의 죽음과 윤회는 죽은 후 다음 생의 세계는 어떤 곳인지? 다음 생의 몸은 어떤 몸일지? 가 초미의 관심이 되는 그런 죽음과 윤회다.
이것이 붓다가 수행의 통찰(깊은 관찰) 경험을 통해서 발견하고(깨닫고) 설說(설명說明)한 인간을 포함한 유정(정신작용이 있는 존재; 생명, 생명체, 또는 중생-생명의 무리)의 존재 방식과 삼사라samsāra(계속되는 생멸 흐름의 순환, 윤회)에 대한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다.
여기서 삼사라samsāra는 '순환(circulation), 계속된 흐름(continuous flow)'이라는 뜻을 지닌 고대인도어다. '바퀴(輪)처럼 계속 돌고 돎(廻), 바퀴(輪)처럼 회전(廻)하면서 계속 굴러감' 이라는 뜻을 지닌 윤회輪廻는 부처님께서 사용히신 고대인도어 삼사라samsāra를 한문(중국어)으로 번역한 것이다.
생명체가 한 번 생로병사하는 생멸(생기 소멸) 순환에 걸리는 시간(또는 기간)을 '일생一生(a life cycle period)'이라하고, 우주가 한 번 성주괴공하는 생멸(생기 소멸) 순환에 걸리는 시간(또는 기간)을 '일겁一劫(a world cycle period)'이라고 한다. 겁劫 또는 겁파劫波는 고대인도어 깝빠kappa를 한문(중국어)으로 음사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루빠(色; 물질, 물질작용) 무더기'(색온)는 수정란 단계에서 하나의 세포로 존재한다. 하지만 계속 분열하며 집적되어 태어날 때는 약 3조 개의 세포 무더기(집적/쌓임)가 되고, 어른이 되면 평균적으로 약 60조 개까지 늘어난다. 그 중 약 50만 개의 세포가 1초 간에 소멸되고 동시에 약 50만 개 세포가 생기(생성)된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상관 없이, 그런 일상적인 매 순간의 생멸(생기 소멸) 순환[삼사라; 윤회]의 반복 과정으로 '나'라는 생명체의 몸(물질현상, 물질 작용 무더기; 색온)이 유지된다.
나의 몸(물질현상, 물질 작용 무더기; 색온)을 구성하는 세포의 일상적 수준의 생멸 순환[삼사라; 윤회] 주기는 (세포의 기능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5-30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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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1] 물질의 '사대(지수화풍) 작용'
붓다가 발견하고 설(설명)한 ‘물질(rūpa)을 형성하는(bhūta) 기본(mahā) 작용’은 (1)무거움(중력 또는 질량) 작용, 지地(pathavi) 작용 (2)‘수축, 응축, 인력, 잡아당김’ 작용, 수水(apo) 작용 (3)‘팽창, 척력’ 작용, 풍風(vayo) 작용 (4)‘변화, 열’ 작용, 화火(tejo) 작용이다. 붓다가 설한 '물질色을 형성하는 네四 가지 기본大 작용(또는 요소)'을 한문(중국어) 번역 경전에서는 ‘사대四大 또는 사대색四大色’이라고 부른다.
"루빠rūpa(물질, 물질현상, 물질로 이루어진 물체)는 '형상과 색깔'을 지니는 것이 그 특성이다."라는 붓다의 설법(법法을 설명함)에 따라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 상 한 글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루빠를 '색色'이라는 한 글자로 번역했다.
물질(물체)은 정신과는 달리 물질세계의 공간을 차지하는 형상(형태)을 지니기 때문에 '형상의 변화(변형)'는 물론이고 '차지하는 공간의 변화(변형; 아인슈타인과 현대 물리학자들이 설명하는 공간의 휘어짐, 빅뱅 이후 우주 공간의 팽창, 수축)' 또한 물질세계의 근본적인 특성(성질)이다.
붓다가 설(설명)한 물질을 형성하는 기본 작용인 사대四大(지수화풍地水火風) '작용'을 요즘 시대의 표현인 물리학 용어를 빌려서 ‘힘’으로 표현하는 쪽이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고 부처님이 가르치신 의미에도 가깝다. 마하부따루빠mahā-bhūta-rūpa(사대색四大色)를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물질色을 형성하는 네四 가지 기본大 작용(힘)’이다
참고로 현대물리학에서 설명하는 우주의 물질세계를 형성하는(지배하는) 4대 힘(작용)은 '강력(강한 상호작용), 약력(약한 상호작용), 전자기력(전자기 상호작용), 중력(gravity 상호작용)'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대물리학이 말하는 4대 힘(작용)의 설명보다 붓다가 가르친 사대 작용의 설명이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몸(신체, 육신, 육체)을 포함한 우주자연의 물질세계의 실상(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를 더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질의 기본 구성체(물질의 최소단위; 부처님이 사용하신 용어로는 깔라빠kalāpa)인 원자도 물질이기 때문에 극미하지만 얼마간의 ‘地(pathavi, 무거움, 중력 또는 질량) 작용(힘)‘이 있다. 이 무거움(질량, 地) 작용은 다른 작용, ’水(apo, 수축인력) 작용’에 의해서 잡아당겨져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또 다른 작용, ‘風(vayo, 팽창척력) 작용’에 의해서 어느 정도 밖으로 당겨져 형체적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또 다른 작용, ‘火(tejo, 변화) 작용’에 의해서 끊임없이 매 순간 변하고 있는 것이다. '고정불변(상주불변; 늘 동일)하고 독립적인 존재'(실체實體)로서의 원자는 없다. 원자(깔라빠)로 구성된 모든 물질(물체, 육체)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깔라빠(물질의 최소단위, 원자) 그리고 깔라빠(원자)로 구성된 모든 물질(루빠; 물체, 몸)은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미시(찰나)-일상-거시(성주괴공 일겁; 생로병사 일생)적으로 매 순간 생멸(생기 소멸) 변화하며 순환(삼사라, 윤회)하는 ’사대四大 작용(힘)’의 ‘역학적力學的 인과 연기 연속체’ 또는 ‘인과 연기적인 흐름현상', 줄임말로 '연기현상'이다.
이처럼 사대(지수화풍) 작용이 인연(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서로 상호의존 작용하면(연기 작용하면, 인연 화합하면) 깔라빠(물질의 최소단위, 원자)라고 인식된다.
위 글은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설(설명)하신 '물질(rūpa)을 형성하는(bhūta) 기본(mahā) 작용'(사대 작용; '지수화풍' 작용)과 관련된 설법(법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소상히(자세하고 분명하게)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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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2] 실체實體(라틴어: substantia, 영어: substance)
실체實體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화할 수 있는 성질, 상태, 작용, 관계 등의 근저根底에 있으면서 사물을 떠받치고 있는 항존, 불변, 독립적인 기본 존재’. 실체實體(라틴어: substantia)는 예로부터(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와 소크라테스-플라톤 시대로부터) 철학의 기본 개념이었다. [다음, 네이버, 위키백과 등의 사전에서 발췌]
실체는 '고정불변(상주불변; 늘 동일)하고 독자(스스로 독립)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철학적 용어이자 과학적 용어다. 실체는 데모크리토스가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원자론('고대 원자론')과 소크라테스-플라톤이 '이데아(실체의 세계)'를 설명하면서부터 널리 정착된 용어다.
이데아는 우리들이 경험하는 늘 변화하는 현상세계(현실세계)의 배후(근저)에 있다고 소크라테스-플라톤이 주장하는 항존, 불변, 독립적인 실체의 세계다.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실체는 현실이 아닌 상상 또는 관념(개념) 속의 존재다.
물리학자들이 입자가속기와 거품상자라는 양자역학 실험 장치를 통해 측정한 바로는 물질은 1초에 10^23 번 생멸 변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일상적인 눈의 감각(광학적 감각, optical sense)으로는 내 몸을 비롯한 물질의 매 순간 인과 연기적인 생멸 변화를 도저히 볼 수가 없다
모든 사물이 '독립적이고 고정불변한 존재'(실체)가 아니라 서로 상호 의존하여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생멸 변화하는 것(anicca, 無常)이라는 사실을 과학지식으로서 지식차원에서는 이해했다고 해도,
수행을 통해서 계발되는 극대화된 정신(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내면을 직접 통찰(깊이 관찰)하여 직접 경험(체험)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일상적인 오감각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과 그것에 길들여진 우리의 마음(의식+무의식)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모든 사물을 서로 연관 없이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실체)라고 착각하고, 내 몸을 비롯하여 내 것이라고 인식되는 모든 것(물질, 정신적인 모든 것; 내 물건, 내 사람, 내 생각, 내 느낌.. 등)에 대해서 굉장한 집착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 착각(감각의 착각, 인식의 착각; 일종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지도 못하고, 우리들의 연민(자비)의 범위를 모든 살아있는 생명(중생; 생명의 무리)과 그 자체로 아름다운 대자연 전체로 확장하지도 못하고, 좁쌀만 한 에고의 감옥에 갇힌 채 (대다수는 갇혀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이 우주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서로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실체)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식차원에서는 누구보다도 명확히 이해하고, "우리들의 임무는 (아인슈타인 자신이 일종의 감옥이라고 표현한) '인식의 착각'으로부터 벗어나 우리 자신을 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글을 남긴 아인슈타인 자신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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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3] 인간의 '여섯 감각 기관 또는 기능'
서양 과학(생물학)에서는 인간의 감각 기관은 다섯 가지라고 설명하지만, 붓다는 인간의 감각 기관(또는 기능)은 여섯 가지(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고 설(설명)했다.
생명체는 종에 따라 감각 기관(또는 기능)과 감각 기관을 통한 인식 방식은 제각기 다르지만 모든 생명체(유정, 중생; 생명의 무리)는 모두 인식 작용('수상행식' 작용)이 있다는 점에서는 한 가지다.
오감五感(오감각; 다섯 가지 물질 감각) 기능은 생명체의 종에 따라 다섯 가지가 모두 있거나 일부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제 육감六感(정신 감각) 기능이 없는 생명체는 없다
붓다가 중생衆生(생명의 무리)들이 지닌 정신 감각 기능을 설(설명)할 때 사용한 마노-인드리야는 이 정신 감각 기능(function, faculty; Indriya)을 지칭하는 것이다. 의근意根은 고대 인도어 '마노-인드리야Mano-Indriy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의근意根은 인간이 지닌 여섯 가지 감각 기능(6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근根) 중 하나다.
마노-인드리야(의근意根, 정신 감각 기능)는 인간 뿐만 아니라 개, 고양이, 지렁이, 아메바, 바이러스 등 모든 생명체(유정, 중생)에게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 기능이다.
지렁이, 아메바, 바이러스 등에게는 보거나 듣는 시각, 청각 기능 등은 없을지 모르지만 판단 분별하는 기능(작용)인 마노-인드리야(정신 감각 기능)은 있다. 뇌세포가 없는 지렁이, 아메바, 바이러스도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생명현상을 지속하기에 적합한지를 판단 분별하는 기능(작용)이 있다.
인간의 경우 마노-인드리야(의근意根)는 뇌를 주요 기반(물질 토대)으로 한 정신 감각 기능이다.
마노mano(意) 작용은 외부 대상이 없어도 인식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꽃이 없어도 꽃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을 돌연 회상하고, 지금 일어난 것처럼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작년에 죽은 친구와 함께 10년 전 여행 갔을 때를 회상하며 미소 지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제 육감, 여섯 번째 감각, 정신 감각’ 작용인 마노mano 작용이다.
붓다는 '인간에게는 육근六根(여섯 가지 감각 기관/기능)이 있다. 다섯 가지 물질감각(오감각)과 정신 감각을 합하여 인간의 감각은 여섯 가지다.'라고 설(설명)했다.
눈은 빛의 감각만을, 귀는 소리의 감각만을 인식한다. 그러나 눈으로 들어 온 빛을 '아름다운 꽃'으로 판단 분별하는 인식 작용은 마노mano(意)의 인식 작용이다. 귀로 들은 소리를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아름다운 노래'로 판단 분별하는 인식 작용은 의意(mano)의 인식 작용이다. 인간의 경우, ‘오감각의 인식 작용, 전오식前五識 작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대량의 인식 작용이 ‘의意(mano)의 인식(識) 작용, 즉 의식意識 작용’에서 일어난다.
인간에게도 개에게도 코가 있으나 인간이 코로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개에 비해 매우 적다. 인간은 보통 수 회 이상 연속해서 같은 냄새를 맡으면 그 냄새를 알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인간의 오감각 기관(안이비설신)의 감각은 같은 감각이 계속되면 무뎌진다. 쾌락이든 고통이든 인간의 오감각은 강도가 더 세지거나 다른 종류로 바뀌지 않는 한 둔화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 감각 기능인 ‘의근意根(마노 인드리야), 뇌를 기반(물질토대)으로 한 정신 감각 기능‘의 작용(기억 작용, 생각 작용 등)에서는 쾌락이든 고통이든 같은 강도의 감각이 계속 재현되거나 오히려 증폭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에는 인식 작용이 있다. 그러나 인식 범위는 생명체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다. 인간은 오감각 기관(기능)을 통한 인식 범위가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동물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다, 위대한 생명체다’라고 자칭(스스로 칭)하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정말 생각보다 꽤 좁은 오감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러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기억, 생각 등의 정신 감각을 인식 대상으로 하는 '뇌를 기반으로 한 정신 감각 기능인 의근意根'과... '의근意根(정신 감각 기능)의 작용'(기억 작용, 생각 작용 등)을 극도로 강화한 것이다.
인간은 오감각 기관을 통해서 인식한 다섯 가지 감각에 대해서 '의근意根의 인식(識) 작용, 즉 의식意識 작용' 속에서 길게, 길게 ‘생각, 사고思考’를 수 없이 반복해서 회전시킨다. 그렇게 생각(사고)을 수 없이 반복하고 회전시켜서 방대한 지식과 개념(또는 관념)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방대한 지식 중에 많은 지식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오만한 인간의 '인간(人) 중심적이고 자기(我) 중심적인' 지식들로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는 무관한 지식들이다. 인간의 지식이나 극도로 강화된 사고(생각) 작용(기능)이 좋게 쓰이는 측면도 있지만 좋지 않게, 심지어는 인간 자신에게 조차도 해롭게 쓰이는 측면도 매우 많다.
지식이 더 많으면 더 똑똑해(?) 지지만, 더 행복해 지지는 않는다. 지식이 많다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인간은 대부분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지나치게 '쓸데없는 생각'(망상; 자신과 남을 괴롭히는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간다. 그런 망상을 포함한 물질-정신 감각에 대한 갈애와 집착이 줄어들수록 인간의 행복지수는 늘어난다.
요컨대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좁은 오감각 기능(기관)의 인식 범위와 신체 능력의 단점을 ’뇌를 기반(물질 토대)으로 한 정신 감각 기능인 의근意根과 그 능력(특히 생각 작용/기능의 능력)을 극도로 강화'하여 보완하면서, 인과 연기적인 순환(윤회)의 진화 과정을 거쳐온 생명체다. 갈애(딴하taṇhā; 여섯 가지 물질, 정신 감각에 대한 갈망과 집착)는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유정, 중생) 순환(윤회)의 원동력(에너지)이자 진화의 원동력이다.
인간에게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지나친 망상(쓸데없는 생각) 작용은 이러한 인과 연기적인 진화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부작용)인 셈이다.
위 글은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설(설명)하신 인간의 '여섯 감각 기능(indriya, 또는 기관)'과 마음의 작용(kicca)에 관련된 설법(법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소상히(자세하고 분명하게)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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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4] 물질세계의 '시공간(시간-공간)을 초월하여' (다른 표현으로, 시간-공간을 통한 '오고 감이 없이')
이 우주가 생기生起하여 팽창하는 작용을 현대 물리학에서는 ‘빅뱅Big-Bang’이라고 표현한다.
빅뱅 시, 물질이 생기하면서 동시에 물질이 차지하는 시공간(시간과 공간)도 함께 생기하여, 시공간(시간-공간)과 물질은, 부처님의 표현으로는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관계', 양자역학의 표현으로는 ‘시時-공空-양자量子(질량)수 관계', 상대성이론(아인슈타인)의 표현으로는 '시공간(시간-공간)과 질량의 등가 관계'를 형성하고, 매 순간 변화하는 물질-시간-공간의 팽창 흐름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매 순간 변하고 팽창하며 흐르는 시공간(시간-공간)과 함께 물질이 인과 연기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며 분산하여 오늘 날 우리가 보는 우주(해, 달, 지구, 별, 은하 등의 물질 그리고 시공간..시간-공간)가 되었다.
붓다의 설법(법을 설명함)에 따르면, 현재의 우주는 생기하여 팽창 중에 있지만 인연(직간접조건)이 다하면 수축하여 소멸하고 다시 생기하는 인과 연기적인 생멸(생기 소멸)의 순환(삼사라; 윤회輪廻, 바퀴輪처럼 돌고 돎廻)을 계속한다. 좀 더 상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대 작용('지수화풍' 작용, 물리학 표현으로는 우주 4대 상호작용, 즉 강한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 전자기 상호작용, 중력 상호작용)이 연기(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다른 표현으로 인연 화합하여) 물질이 생기하면 그와 동시에 물질이 차지하는 시공간(시간-공간)도 함께 생기하여, 물질은 시간-공간과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 관계를 형성하고, 미시(찰나)-일상-거시(성주괴공, 일겁一劫)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인과 연기적인 순환(삼사라, 윤회)을 계속한다.
서로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 관계에 있는 물질세계의 물질-시간-공간은 한 세트로 함께 생기 소멸 한다.
생명체가 죽는 순간, 즉 생명체의 정신작용('수상행식' 작용, 인식 작용)이 인식 정보(여섯 감각)를 의존하고 있던 육근(여섯 감각 기관; 육신, 몸, 물질)과의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물질세계의 아무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 정신(정신작용)은 물질(물질작용)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물질세계의 시간-공간과의 관계도 (한 세트로) 함께 끊어진다.
그리고 정신작용('수상행식' 작용 중에서 금생의 마지막 식이자 다음 생의 최초의 식인 재생연결식)은 물질세계의 '시공간(시간-공간)을 초월하여' (다른 표현으로, 물질세계의 시간-공간을 통한 '오고 감이 없이')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곳(장소, 세계)에서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물질토대(몸, 감각 기관)에 인식 정보(감각)를 의존하여,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일생)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정신작용('수상행식' 작용, 인식 작용)의 인과 연기적인 생멸 흐름의 순환(삼사라, 윤회)을 계속한다.
위 글은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설(설명)하신 삼사라Samsāra(계속되는 생멸 흐름의 순환, 윤회)에 관련된 설법(법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소상히(자세하고 분명하게)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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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들은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의 맨 처음 단계(교학 단계; 예비 단계 또는 준비 단계)인 '지식(교학) 차원의 혜慧(빤냐, 반야; 지혜)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을 위해,
빠알리어(갠지스강 유역의 고대인도 민중어 중 하나)로 기록된 경전모음인 니까야와 한문(중국어) 번역 경전인 아함경 그리고 한글과 영어 번역 경전 등의 관련 내용을 참조하여,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설(설명)하신, 정신세계의 실상實相(실제 모습)과 진리眞理(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에 관련된 부처님의 설법(법法을 설명함)들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소상히(자세하고 분명하게)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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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선, 이 작은 글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배운 바는 없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정말로 가르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교양 있고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 또한 고타마 싯달타, 석가모니 부처님을 매우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지만) 이 글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호칭을 그냥 "붓다 또는 부처"(님자도 안 붙이고)라 한 것에 대해 신심 깊은 불자님들이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글은 학술적(과학적) 성격이 강한 일종의 개요, 소개 또는 입문서이고, 이 글을 불자보다는 불자가 아닌 사람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좀 어색하더라도 그냥 "붓다 또는 부처"를 고집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붓다의 가르침은 비관주의(염세주의)도 낙관주의도 아닙니다. 어느 편이냐 하면, 붓다의 가르침은 삶과 세계에 대하여 사실주의의 관점(View-point of Realist)에 서있으며 사실주의(또는 현실주의)적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므로 사실주의(또는 현실주의)입니다. 불교는 대상(모든 존재; 자기 자신, 생명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헛된 기대 속에 살도록 우리들을 거짓으로 달래지도 않고, 온갖 종류의 허구적인 가상의 공포와 죄책감(원죄 따위)으로 우리들을 겁주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나는 무엇인가?, 나를 둘러싼 세계(물질세계와 정신세계)는 어떠한 것인가?‘를 '있는 그대로'(여실히) 적확하고 객관적으로 알려주며, 또한 완전한 자유(해탈), 평화, 큰 사랑(또는 모든 존재를 차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사랑하는 바른 사랑, 또는 '나我'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 자비), 큰 지혜(또는 존재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 빤냐, 반야) 그리고 완전한 행복(열반)에 이르는 길(팔정도)과 그 길을 닦는(계발하는) 수행법(실천법)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줍니다.
모든 존재가
붓다의 가르침(담마)을 따라
완전한 자유와 평화,
분별 집착 없는 바른 사랑과
완전한 행복에 머물기를...
"마음은 인연因緣(직간접조건; 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몸(물질작용; 사대작용[註1])과 상호의존 작용하여 미시(순간순간, 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일생)적으로 매 순간 생멸(생기소멸) 변화하는 정신작용('수상행식' 작용)의 인과 연기적 흐름현상(줄임말로 연기현상)이다." - 붓다
"나는, 중생衆生(생명의 무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이란 단지 '무상無常(a·nicca;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생멸 변화함), 고苦(dukkha; 근원적 괴로움을 내포하고 있음), 무아無我(an·attā; 비실체)'라는 특성을 지닌 몸(물질작용)과 마음(정신작용)의 '인연(직간접조건)에 따른 상호의존'(연기) 작용이 일으키는 인과 연기적 흐름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수행을 통해서 직접 통찰(깊이 관찰)하여 깨달았다." -붓다
붓다는 우주 자연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모든 존재(또는 현상)를 크게 '정신작용이 있는 존재'(유정; 생명, 생물, 생명현상, 생명체)와 '정신작용이 없는 존재'(무정; 무생물, 물질, 물질현상. 물체)로 분류했다.
붓다는 무정(무생물)의 작용(또는 구성 요소) 무더기를 통칭하여 고대 인도어로 '루빠rūpa(물질, 물질작용, 물질현상; 색色) 칸다khandha(집합, 집적, 쌓임, 무더기; 온蘊)'라는 용어를 사용했다(한문으로 색온色蘊). "루빠(물질, 물질현상, 물질로 이루어진 물체)는 '형상과 색깔'을 지니는 것이 그 특징"이라는 붓다의 설법(법法을 설명함)에 따라 표의문자인 한문(중국어)의 특성 상 한 글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루빠를 '색色'이라는 한 글자로 번역했다.
붓다는 유정(생명, 생물)이 무정(물질, 무생물)과 다른 작용(또는 구성 요소) 무더기를 통칭하여 고대 인도어로 '나마nāma(정신, 정신작용, 정신현상; 명名) 칸다khandha(집합, 집적, 쌓임, 무더기; 온蘊)'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표의문자의 특성 상 한 글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나마를 '명名'이라고 번역했는데, naming 작용이 정신작용의 대표적인 작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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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는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실체實體[註2])가 아니라 '직간접조건(인연)에 따라 서로 상호 의존'(연기) 작용하여 매 순간 생멸 변화하며 순환(삼사라)하는 인과 연기적인 현상, 줄임말로 연기현상이다. 연기현상과 자연현상은 동의어다. 우주 자연에 실존하는 삼라만상, 즉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유정(생명, 생명현상, 생명체, 생물)과 무정(물질, 물질현상, 물체, 무생물)은 모두 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이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몸(色, 물질, 물질작용 무더기; 사대 작용 무더기)과 마음(名, 정신, 정신작용 무더기;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이 '조건(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 인연)에 따라 상호 의존'(연기) 작용하여 매 순간 생멸 변화하며 순환흐름(삼사라)을 계속하는 인과 연기적인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이다.
마음은 인연(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서 몸과 상호 의존 작용하여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며 변화하는(생멸 변화하는)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를 통칭한 것이다. 수受(감각 받음受) 작용에서부터 식識(앎) 작용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정신작용인 '수상행식' 작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생명체의 인식작용이다.
인간의 경우 인식작용('수상행식' 작용)은 인식정보(여섯 감각)를 육근六根(여섯 감각 기관 또는 기능'[註3])에 의존한다. 이렇게 육근에 여섯 감각의 인식정보를 의존하여 인식작용('수상행식' 작용)이 진행되면 인식작용 중에 신체와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심소心所(쩨따시까; 감정, 기억, 업 등의 마음의 내용 성분)가 작용한다.
쩨따시까(감정, 기억, 업 등)는 루빠(물질, 몸, 사대 작용 무더기, 색온)와 나마(정신,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 '수상행식' 온)가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발생하는 마음(心)의 내용 성분(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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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신보다 마음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표현합니다. 몸(육체, 신체, 육신)을 포함한 물질(물체)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지므로 쉽게 인식되는 대상입니다. 어려서부터 서양식 교육을 받고 자란 현대인들에게 물질은 친숙한 용어, 명칭, 개념입니다.
현대 문명을 물질문명이라고 합니다. 현대 사회가 물질만능주의라는 비판도 많이 합니다. 현대 물질문명은 유럽(서양)을 위주로 르네상스(14~16세기) 이후에 발달한 자연과학(물리학)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문명입니다. 르네상스는 신神 중심 문화인 1000년 중세 암흑기가 쇠퇴하고 인간 중심 문화가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고, 신의 능력이 아닌 인간의 능력으로 자연을 이해하려는 근대 자연과학이 태동되었습니다.
근대 자연과학이 다루는 대상은 물질이었습니다. 자연과학의 짧은 기간 동안의 눈부신 성공(?)에 자극을 받아서 사회 전반에 걸쳐 과학적 사고방식이 각광을 받게 되면서 인문사회과학, 경제과학, 생명과학, 심리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과학이라는 말과 과학적 사고방식이 확대되었습니다. 물질을 다루던 자연과학은 다른 분야에 과학이란 용어가 사용되면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물리학物理學, 물질세계(物)의 이치(理)를 다루는 학문(學)’으로 한정하여 불립니다. 물리학은 기본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다루는 대상에 따라 천체우주 물리학, 원자 물리학, 소립자 물리학, 양자역학 등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서양과학은 기본적으로 모두 물리학입니다. 현대인은 서양과학, 즉 물리학으로 대표되는 서양식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서양식 교육과 서양과학(물리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습니다.
서양과학(물리학)에서 우주자연의 물질세계를 탐구하는데 사용하는 탐구방식과 접근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탐구방식 : 인간의 5감각을 바탕으로 한 인식능력(인간의 5감각을 미시-거시적으로 확장시켜주는 원자현미경, 입자가속기, 천체망원경 등의 과학도구를 사용하여 확장된 인식능력), 즉 신(神)의 능력이나 초능력이 아닌 인간의 능력을 사용하여 경험적•합리적 이해를 통해 경험적•합리적 방법으로 대상(물질세계)을 '있는 그대로' 관찰 탐구(조사 분석)하는 방식입니다. 통상 ‘과학적(= 경험적+합리적) 탐구방식’이라고 부릅니다.
서양과학(물리학)은 물질세계만을 직접 관찰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정신세계가 제외된 반쪽의 과학입니다.
• 접근방식(특히 19세기까지의 물리학) : 대상을 의심 없이 당연히 실체로 생각(가정)하고 (일종의 선입견 또는 편견입니다) ‘대상의 기본(근본) 실체實體’를 탐구(조사 분석)하는 접근방식입니다.
2600년 전에 붓다(고타마 붓다, 석가모니 부처 또는 고타마 싯달타; BC 624?~544?)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포함한 우주자연의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탐구하는데 사용한 탐구방식과 접근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탐구방식 : 인간의 6감각을 바탕으로 한 인식능력(팔정도 수행의 사마타-위빠사나를 통해서 확장된 인식능력)을 사용하여 경험적•합리적 이해를 통해 경험적•합리적 방법으로 대상(물질세계와 정신세계,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 탐구(조사 분석)하는 ‘과학적(= 경험적+합리적) 탐구방식’입니다.
• 접근방식 :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인간의 능력으로 인식 관찰되는 ‘대상의 기본(근본) 작용(作用; kicca)’을 '있는 그대로' 관찰 탐구(조사 분석)하는 접근방식입니다. (대상이 어떤 것인지, 실체인지 아닌지 등은 탐구가 끝나봐야 압니다)
실체인지 아닌지는 잘 몰라도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물질, 물체에는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 인식 관찰되는 ‘작용’이 있습니다. 원자, 소립자, 쿼크, 전자, 빛, 해, 달, 별, 지구, 은하, 천체天體 등도 감각을 통해 인식되는 ‘작용’이 있습니다. 어떤 ‘작용’도 없으면 이름, 명칭조차도 붙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음(또는 정신세계)에 대해서 탐구(조사 분석)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실체인지 아닌지 잘 몰라도 우리는 ‘마음작용, 심행心行’을 인식 관찰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물체의 물질작용과는 다른, 생명체의 작용들을 통칭하여 '마음, 마음작용 또는 정신, 정신작용'이라고 이름붙인(명칭한) 것입니다.
바람이라는 실체를 볼 수는 없지만 인과 연기적인 바람작용을 인식 관찰할 수 있습니다. 소립자, 쿼크라는 실체를 볼 수는 없지만 소립자, 쿼크라는 인과 연기적인 물질작용을 과학도구를 통해서 인식 관찰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실체를 볼 수는 없지만 인과 연기적인 마음작용(정신작용)을 인식 관찰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라는 실체를 볼 수는 없지만 감정이라는 인과 연기적인 마음작용(정신작용)을 인식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작용(kicca)’에 대해 추구하면 '우주자연, 물질-정신세계'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실제모습)과 진리眞理(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양과학(물리학)이 발견한 물질세계의 실상과 진리'와 ‘붓다가 발견하고 가르친 물질-정신세계의 실상과 진리’의 공통점은 둘 다 신의 능력을 빌리거나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인간의 감각을 바탕으로 한 인식관찰 능력)을 사용하여 경험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를 통해 경험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대상을 탐구하는 ‘과학적(= 경험적+합리적)’ 탐구방식을 사용헸다는 점입니다. 차이점은 ‘접근방식(method of approach)’입니다. 서양과학(물리학, 특히 근대 자연과학)이 사용한 접근방식은 ‘물질의 기본(근본) 실체實體’를 탐구하는 접근방식입니다. 붓다가 사용한 접근방식은 ‘물질(몸)과 정신(마음)의 기본(근본) 작용’을 탐구하는 접근방식입니다.
같은 과학적(= 경험적+합리적) 탐구방식을 사용하더라도 ‘기본(근본) 실체’로 접근하는 방식보다 ‘기본(근본) 작용’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선입견이나 편견 없는 보편타당한 접근방식으로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실상(실제 상태/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통찰을 가져다줍니다.
물론 붓다가 사용한 2600년 전의 용어와 표현방식과 현대 과학(물리학)이 사용하는 용어와 표현방삭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물질문명의 폐해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양에서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19세기 이후에 붓다의 가르침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언어적인 문제, 즉 용어와 표현방식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붓다의 가르침 사이에 간과하기 쉬운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추구하는 목적'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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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물체), 기계 vs. 생명(생명체)
물체와 생명체의 다른 작용을 통칭하여 ‘마음, 정신작용 또는 수상행식 작용’이라고 부릅니다. 마음(정신작용)은 ‘수상행식(受想行識)' 작용 무더기(蘊)의 통칭한 것입니다. 생명의 마음은 ‘수상행식 작용’ 뿐입니다. ‘수상행식 작용'(정신작용 또는 마음)이 있으면 생명입니다.
생명체의 신체도 책상, 의자 등과 같은 물체도 모두 물질입니다. 그러나 생명체의 신체와 책상(물체)은 그 작용이 분명히 다릅니다. 그 다른 작용이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발견할 수 있는 그 다른 작용들을 찾아서 하나의 카테고리(범주, 바구니)에 넣어 봅시다. 그리고 그 카테고리(작용들 또는 작용 무더기)의 이름(명칭)을 ‘마음, 마음작용 또는 정신, 정신작용’이라고 부릅시다. 마음이 실체인지 아닌지 잘 몰라도 우리는 그 작용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1) 생명체는 빛, 소리, 냄새, 음식, 뜨거움, 차가움 등 외부 환경 또는 대상에 반응합니다. 책상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생명체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작용’이 있습니다. 이런 작용을 카테고리에 넣습니다. 이러한 작용은 책상에는 없는 마음이라고 부르는 카테고리의 작용입니다.
(2) 생명체는 ‘움직이는 작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작용도 카테고리에 넣습니다. 이 작용도 책상에는 없는 마음이라는 카테고리의 작용입니다.
(3) 생명체는 시시각각 변해 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책상의 변화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책상은 노화해서 부서질 뿐입니다. 생명체도 노화하지만 털이 자라고, 손톱이 자라고, 상처가 낫는 등의 ‘재생작용’도 있습니다. 생명체는 노화하면서 재생도 하지만 책상은 단지 노화할 뿐입니다. 이것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재생작용’은 대표적인 갈애작용 중 하나입니다. 갈애작용에 의한 몸과 마음의 상호의존(연기) 작용 중 하나입니다. 갈애는 '생명체 윤회의 에너지(원동력)이자 생명체 진화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4) '먹는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음식물이라는 물질을 음식물이라고 판단하는 작용과 먹으려고 의도하는 작용 등은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5) ‘잠자는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6) ‘생식, 신체복제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생식, 신체복제’ 작용도 대표적인 갈애 작용 중 하나입니다.
(7) 슬픔, 기쁨, 괴로움, 화남 따위의 ‘감정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8) ‘생각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9) ‘지각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10) ‘기억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11) ‘의도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12) ‘비교, 판단, 분별하는 작용’도 카테고리(마음)의 작용입니다. 등등
물체의 물질 작용과는 다른, 위와 같은 생명체의 작용이 ‘마음’이라고 부르는 카테고리의 작용입니다. 이러한 ‘마음’이라는 작용은 인간뿐만이 아니고 차이는 있지만 개, 고양이, 지렁이, 미생물, 아메바, 박테리아, 바이러스도 그리고 욕계-색계-무색계 범천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라는 작용이 있으면 ‘생명’ 또는 ‘중생衆生(생명의 무리)‘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마음이라는 작용‘과 ’물질(신체, 몸)이라는 작용‘이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는 것을 ‘생명체’라고 부릅니다.
신체는 고정된 물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기능이 있는 기계(로봇)같은 물체에 가깝습니다. 미생물이나 바이러스는 일견一見 단순한 기계 같지만 생명으로서의 작용을 분명히 다하고 있습니다. 미생물이나 바이러스의 전형적인 생명으로서의 작용은 환경(대상)에 반응하고, 환경이 적합한지 판단 분별하고, 자신을 오래 유지하려는 노력인 갈애작용의 일환으로 재생작용과 생식(신체복제)작용 따위를 합니다.
기계와 다른 이러한 작용이 마음이라는 작용입니다. 이러한 '마음이라는 작용'이 있으며 또한 기계와 같이 움직이는 기능이 있는 물체를 우리는 '생명체'라고 부릅니다. ‘마음이라는 작용이 있는가? 없는가?’에 의해서 물질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생명'이라고 부릅니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작용'을 탐구하면 마음(정신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통찰이 생깁니다.
붓다는 경험적·합리적(과학적)인 이해와 경험적·합리적인 수행의 직접적인 통찰(깊은 관찰) 경험을 통하여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실상과 진리를 탐구(조사 분석)하고 나서, 물질작용과는 다른 생명체의 작용의 특징은 한마디로 '식識(앎, 알음알이) 작용, 대상을 아는 작용 또는 요즘시대의 표현으로 인식작용'이며 그것의 구체적인 여러 가지 작용들을 다시 큰 범주에서 대분류하여 수온受蘊(감각 받음受 작용 무더기), 상온想蘊(상想 작용 무더기), 행온行蘊(행行 작용 무더기), 식온識薀(식識 작용 무더기)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또한 붓다는 '정신(名) 작용의 대분류 무더기인 '수상행식受想行識' 온(蘊)'에 ‘물질(色) 작용 무더기인 색온色蘊'을 합쳐서 생명체를 구성하는 ‘다섯 무더기’라는 의미로 오온五蘊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수상행식受想行識' 작용 무더기를 통칭하여 ‘마음, 정신작용 또는 인식작용’이라고 부릅니다. 마음은 ‘인식(수상행식) 작용’이라고 부르는 정신작용입니다.
마음을 ‘과학적(= 경험적+합리적)’으로 조사 분석해 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작용, 인식(수상행식) 작용’ 뿐입니다. 눈에 무언가 보이면 자동적으로 인과 연기적인 인식(수상행식) 작용이 진행됩니다. 처음부터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내(我)’가 있어서 그 ‘내(我)’가 인식(수상행식)하고 싶은 것만을 선택해서 인식(수상행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인식(수상행식)하는 작용, 마음’이 있으면 생명입니다. 바이러스로부터 인간을 포함하여 욕계-색계-무색계 범천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명의 무리, 중생衆生입니다. 모든 생명은 인식(수상행식) 작용이 있습니다. 그 인식(수상행식) 작용을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정신(名; 수상행식) 작용과 물질(色; 사대) 작용이 연기(인연-직간접조건에 따라 서로 상호의존) 작용하여 일으키는 인과 연기적인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을 생명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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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nama, 名;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
수온受蘊(감각 받음/受 작용 무더기), 상온想蘊(지각/표상/想 작용 무더기), 행온行蘊(의도/업 형성/반응/行 작용 무더기), 식온識蘊(앎/알음알이/識 작용 무더기)
인간이 안근眼根(시각 감각기관, 눈)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 또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습니다.
빛이 사물에 부딪히면 빛은 사물의 색깔(色)-형상 정보를 갖고 반사됩니다. 이렇게 반사된 빛이 우리 눈에 부딪히면 식識 작용과 함께 색-형상 정보(감각) 받음 작용을 포함한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가 인과 연기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인간의 인식작용(정신작용) 메커니즘을 붓다가 가르친 용어로 표현하면, 육근(6 根indriya, 여섯 감각 기관 또는 기능; '안이비설신의' 근)과 육경(6境, 육근의 대상; 색성향미촉법)과 육식(6識;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이 연기(인연-직간접조건 따라 상호의존)적으로 접촉(觸)하면 그에 따라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이라는 정신작용들이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 수온受蘊 : 고대인도어 '웨다나vedanā 칸다khandha'의 한문의역(漢譯). (물질적, 정신적 6가지) 감각(느낌) 또는 감각받음/受 작용 무더기.
육근(6가지 감각 기능indriya)과 육경(육근의 대상)과 육식이 연기(인연-직간접조건에 따라 상호의존)적으로 접촉하면 여섯 가지 감각 받음(受) 작용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받은 여섯 가지 감각에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인 '고(苦; 싫음), 낙(樂; 좋음), 불고불낙(싫지도 좋지도 않음)'의 느낌이 동반됩니다.
여섯 가지 인드리야Indriya(根; 감각 기능 또는 기관)를 통해 들어온 여섯 가지 감각(6入)에 동반되는 이러한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감정(느낌)은 마음('수상행식' 작용)이 엄청나게 빠르게 회전하면서 (과거의 상카라行가 개입되고) 증폭되어, 일상적인 의식 수준에 도달할 때는 갈망(욕망; 탐), 혐오(성냄; 진), 어리석음(무지; 치)의 갈애(딴하)로 발전 진행됩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12연기에서 설(설명)하신 '수受(웨다나vedanā) --> 애愛(갈애; 딴하taṇhā)' 단계의 진행입니다.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점점 더 미세한 초기의 감각과 초기의 감정을 사띠(사념처 중의 수념처)하여 관찰할 수 있게 되면 이러한 마음(찟따; 나마와 심소) 작용의 매 순간 인과 연기적인 생멸변화(anicca; 무상)를 '지식으로서(지식차원에서)의 이해'(문혜聞慧와 사혜思慧; 듣거나 읽어서 아는 지혜와 사유지혜)를 넘어서 수행의 통찰(깊은 관찰) '경험으로서(경험차원에서)의 이해'(수혜修慧; 수행지혜/통찰지혜)가 계발啓發(열리고 발전향상)됩니다.
여섯 가지 감각 중에서 특히 신체감각은 상대적으로 관찰이 용이합니다. 시각(눈의 감각)이나 청각(귀의 감각)의 경우에 비해서 외부 대상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 신체의 내면에서) 관찰할 수 있어서 자신의 직접적인 통찰(깊은 관찰) 경험으로 anicca(무상)를 체험자각(실감)하는 데 유리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감각보다 신체감각(느낌)을 그냥(이유 없이) 신뢰합니다(ex: 그냥 느낌이 좋다, 싫다, 나쁘다). 사념처(신수심법 네 가지에 대한 사띠 확립) 수행을 수념처, 특히 신체감각으로 시작하는 것은 이러한 장점이 있습니다.
신체감각은 물질작용(신체 사대 작용; 요즘시대의 표현으로 신체 생화학 작용)과 정신작용이 상호작용하여 미세한 수준(또는 찰나/무의식/심층의식 수준)과 거친 수준(또는 일상의식/표면의식 수준)에서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며 변화(생멸변화)하는 현상(changing phenomenon; anicca dhamma)입니다. 신체의 모든 부위(세포, 궁극적으로 물질의 최소 단위인 깔라빠)에는 감각(사대 작용이 일으키는 감각)이 있지만, 거친(일상의식) 수준의 식識에는 인지되지 않으며 거친 사띠로는 관찰되지 않습니다. 사마타(바른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로 점점 더 강력한 고요집중의 사띠를 계발하면 할 수록 점점 더 미세한 수준의 감각, 궁극에는 사대 작용이 일으키는 깔라빠kalāpa의 감각과 깔라빠의 미시(순간순간, 찰나)적인 생멸현상이 관찰(위빠사나)됩니다.
• 상온想蘊 : 고대인도어 '산냐saññā 칸다khandha'의 한문의역. 지각/상념/개념/기억 재생/표상(지각표상; imaging)/想 작용 무더기.
사람의 기억은 여섯 감각의 경험에 대한 아我(또는 에고, 我相)와 아我의 감정이 개입된 주관적인 image(실제가 아닌 이미지)입니다.
• 행온行蘊 : 고대인도어 '상카라saṅkhāra 칸다khandha'의 한문의역. 의도/형성/반응/行 작용 무더기. 업業(또는 습관, 기억) 형성 작용.
사람을 포함한 중생(생명의 무리)의 상카라는 아我(에고), 아상我相('나我'라는 상대相적 분별식, '나我'에 대한 집착)이 개입된, 조건 지어진 업業 형성(또는 반응) 작용이며, 대상(감각, 느낌)에 대한 갈망(욕망; 탐) 또는 혐오(성냄; 진)의 반응입니다. 상카라는 습관 지어진(습관적) 반응이며 그에 이어지는 업 형성 작용입니다.
바른 상카라를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상카라saṅkhāra(行, 행위; 業)가 모여서 현재의 습관과 현재의 생활을 만들고 현재의 내 모습과 현재의 내 삶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 식온識蘊 : 고대인도어 '윈냐나vinnāṇa 칸다khandha'의 한문의역. 앎/알음알이/識 작용 무더기.
인식(수상행식) 작용이 인식정보(여섯 감각)를 육근(여섯 감각 기능 또는 기관)에 의존하면 인식(수상행식) 작용 중에 신체와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 작용하여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심소心所(감정, 기억, 업, 번뇌 따위의 마음의 내용성분)가 작용합니다. 몸(신체 사대작용)과 마음(심소를 포함한 마음작용)은 '인연(직간접조건)에 따라 서로 상호의존'(연기) 작용을 합니다. 몸과 마음은 서로 상호의존 작용을 하며 상호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예컨대 기쁨의 전율을 느낀다거나, 기쁨(또는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거나, 분노에 치가 떨린다거나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거나, 술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명확한 구분과 이해를 위해서, 인식(수상행식) 작용인 나마nāma(名, 정신작용; 4 mental khandha, 즉 feeling受, perception想, mental formations行 and consciousness識)는 요즘시대의 표현으로 비유하자면 프로세스process(또는 기능function)인 셈이고 (감정, 기억, 업, 번뇌 따위 등) 마음의 내용 성분(elements)인 제따시까cetasika(心所심소)는 콘텐츠(또는 콤포넌츠)인 셈입니다.
나마nāma(名; '수상행식' 작용)와 제따시까cetasika(心所)를 통칭하여 찟따citta(心; heart, the focus of man’s emotional nature as well as intellectual function)라고 합니다. 한글로는 (두루뭉술하게) 마음이라고 합니다. 생명체의 정신-물질 작용(kicca; function, faculty)을 통칭하여 '나마nāma(名; 수상행식 작용)-루빠rūpa( 色, 사대 작용), 명색名色' 또는 '오온五蘊(색수상행식 온)'이라고 합니다.
찟따citta(心)를 물(H2O) 자체(體)에 비유하면 제따시까cetasika(心所)는 물에 녹아있는 내용 성분인 셈입니다. 더러운 물, 깨끗한 물, 홍차, 녹차, 커피.. 등은 물(H2O)이라는 점에서는 한 가지지만 거기에 녹아있는 내용 성분이 다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더러운 흙탕물을 고요하게 정화하여 맑고 깨끗한 청정한 물로 만드는 것처럼 마음을 고요하게 정화하여 청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요하고 맑은 물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춥니다.
정신작용('수상행식' 작용; 마음)과 물질작용(사대작용; 몸)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매 순간 생멸변화'(무상; a·nicca)합니다. 붓다의 표현처럼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정신작용)의 빠르기는 (번갯불이나 슈퍼컴퓨터의 연산속도.. 등) 물질작용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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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죽음 vs 일생의 죽음
사람은 몸(물질작용; 사대작용, '지수화풍' 작용 무더기)과 마음(정신작용; 인식작용, '수상행식' 작용 무더기)이 연기(조건 따라 상호의존) 작용하여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인과 연기적 흐름현상(연기현상, 생명현상, 자연현상)이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유정)에는 모두 다 인식(수상행식) 작용이 있다. '인식하는 작용'(수상행식 작용, 정신작용, 마음)이 있으면 바이러스, 아메바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명의 무리, 중생衆生(satta)'이다. 참고로 유정(정신작용이 있는 존재; 생명, 생명체)과 중생(생명의 무리)은 동의어다.
인간의 경우에 마음이란, 여섯 감각 기능(또는 기관; indriya)의 여섯 가지 감각(인식정보)에 대해 인과 연기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수상행식’ 작용의 무더기를 통칭하여 ‘인식작용 또는 마음’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마음, 인식(수상행식) 작용’은 여섯 감각 기관의 인식 정보(여섯 감각)에 끊임없이 자극을 받고 있다. 그런데 여섯 감각 기관의 감각(인식 정보) 자극이 반드시 기쁨의 자극은 아니다. 그러나 인식 작용 자체는 즐거움이든 괴로움이든 상관없이 인식 정보만 있으면 충분하다. 인식 정보만 있으면 인식 작용을 계속할 수 있다.
밖에서 들어오는 인식 정보(감각)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눈, 귀, 코 등의 오감각(물질감각) 기관이 망가지거나 외부 정보가 차단되면 인식 작용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은 스스로 인식 정보(감각)를 만드는 자급자족 작용(kicca, 또는 function, 기능)도 갖추고 있다. 끝없이 생멸 변화하는 (망상을 포함한) 생각과 감정, 그리고 기억 따위가 여섯 번째 감각(육감, 정신감각)으로서 항상 준비되어 있다.
만약에 사람이 밀실 속에 갇혀서 오감각이 제한되거나 또는 명상(수행)을 하면서 오감각을 차단하려고 하면 망상이 더욱 극성을 부린다. 끊임없이 ‘에고ego(我)의 자기 표현, 자기 해석(판단, 분별)인 망상’이 떠오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의 망상이 다음의 망상을 만든다. 천 년, 만 년이라도 망상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은 육체가 먼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인식(수상행식) 작용에는 인식 정보가 없게 되는 순간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인식 정보(감각, 느낌)가 고苦인지, 낙樂인지, 불고불낙不苦不樂인지, 또는 선善인지 악惡인지는 인식 작용 자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인식 정보만 있으면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인식 작용을 계속할 수 있다. 그것은 죽음으로도 멈출 수 없다.
인식 작용('수상행식' 작용, 마음)은 인식 정보(여섯 감각)를 육근(여섯 감각 기능)에 의존하여, '나(我)'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 흐름을 계속한다.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생멸하는) 마음('수상행식' 작용)의 물결 흐름은 그 물결을 지속시키는 에너지가 있는 한 계속된다. 마음의 물결 흐름을 지속시키는 에너지(원동력)는 갈애(taṇhā; 물질, 정신적 여섯 감각에 대한 갈망과 집착) 혹은 갈애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인식(수상행식) 작용 자체다.
인식 작용('수상행식' 작용)이 인식 정보(여섯 감각)를 의존하던 육근(여섯 감각 기능, 육신, 몸)이 사고를 당하거나 노화하여 그 기능(작용)을 다하면 물질세계의 '시공간(시간-공간)을 초월하여'[註4] (다른 표현으로, 물질세계의 시간-공간을 통한 '오고 감이 없이')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곳(장소, 세계)에서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물질토대(몸, 감각 기관)에 인식 정보(감각)를 의존하여,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일생) 순환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인식 작용('수상행식' 작용)의 인과 연기적인 생멸 흐름의 순환[삼사라, 윤회]을 계속한다.
붓다는 말한다.
“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색수상행식' 무더기들이 모든 순간(찰나)마다 생겨나고 사라질 때, 오! 비구들이여, 그 모든 순간(찰나)마다 그대들은 태어나고 죽는다.”
붓다가 가르친 죽음과 윤회(자연현상의 인과 연기적 순환)는 매 순간(찰나khana)의 죽음과 윤회이며 그런 죽음과 윤회로부터의 해방(해탈, 열반)이다. 반면에 세간에서 관심이 있는 한 생(一生)의 죽음과 윤회는 죽은 후 다음 생의 세계는 어떤 곳인지? 다음 생의 몸은 어떤 몸일지? 가 초미의 관심이 되는 그런 죽음과 윤회다.
이것이 붓다가 수행의 통찰(깊은 관찰) 경험을 통해서 발견하고(깨닫고) 설說(설명說明)한 인간을 포함한 유정(정신작용이 있는 존재; 생명, 생명체, 또는 중생-생명의 무리)의 존재 방식과 삼사라samsāra(계속되는 생멸 흐름의 순환, 윤회)에 대한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다.
여기서 삼사라samsāra는 '순환(circulation), 계속된 흐름(continuous flow)'이라는 뜻을 지닌 고대인도어다. '바퀴(輪)처럼 계속 돌고 돎(廻), 바퀴(輪)처럼 회전(廻)하면서 계속 굴러감' 이라는 뜻을 지닌 윤회輪廻는 부처님께서 사용히신 고대인도어 삼사라samsāra를 한문(중국어)으로 번역한 것이다.
생명체가 한 번 생로병사하는 생멸(생기 소멸) 순환에 걸리는 시간(또는 기간)을 '일생一生(a life cycle period)'이라하고, 우주가 한 번 성주괴공하는 생멸(생기 소멸) 순환에 걸리는 시간(또는 기간)을 '일겁一劫(a world cycle period)'이라고 한다. 겁劫 또는 겁파劫波는 고대인도어 깝빠kappa를 한문(중국어)으로 음사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루빠(色; 물질, 물질작용) 무더기'(색온)는 수정란 단계에서 하나의 세포로 존재한다. 하지만 계속 분열하며 집적되어 태어날 때는 약 3조 개의 세포 무더기(집적/쌓임)가 되고, 어른이 되면 평균적으로 약 60조 개까지 늘어난다. 그 중 약 50만 개의 세포가 1초 간에 소멸되고 동시에 약 50만 개 세포가 생기(생성)된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상관 없이, 그런 일상적인 매 순간의 생멸(생기 소멸) 순환[삼사라; 윤회]의 반복 과정으로 '나'라는 생명체의 몸(물질현상, 물질 작용 무더기; 색온)이 유지된다.
나의 몸(물질현상, 물질 작용 무더기; 색온)을 구성하는 세포의 일상적 수준의 생멸 순환[삼사라; 윤회] 주기는 (세포의 기능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5-30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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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1] 물질의 '사대(지수화풍) 작용'
붓다가 발견하고 설(설명)한 ‘물질(rūpa)을 형성하는(bhūta) 기본(mahā) 작용’은 (1)무거움(중력 또는 질량) 작용, 지地(pathavi) 작용 (2)‘수축, 응축, 인력, 잡아당김’ 작용, 수水(apo) 작용 (3)‘팽창, 척력’ 작용, 풍風(vayo) 작용 (4)‘변화, 열’ 작용, 화火(tejo) 작용이다. 붓다가 설한 '물질色을 형성하는 네四 가지 기본大 작용(또는 요소)'을 한문(중국어) 번역 경전에서는 ‘사대四大 또는 사대색四大色’이라고 부른다.
"루빠rūpa(물질, 물질현상, 물질로 이루어진 물체)는 '형상과 색깔'을 지니는 것이 그 특성이다."라는 붓다의 설법(법法을 설명함)에 따라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 상 한 글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루빠를 '색色'이라는 한 글자로 번역했다.
물질(물체)은 정신과는 달리 물질세계의 공간을 차지하는 형상(형태)을 지니기 때문에 '형상의 변화(변형)'는 물론이고 '차지하는 공간의 변화(변형; 아인슈타인과 현대 물리학자들이 설명하는 공간의 휘어짐, 빅뱅 이후 우주 공간의 팽창, 수축)' 또한 물질세계의 근본적인 특성(성질)이다.
붓다가 설(설명)한 물질을 형성하는 기본 작용인 사대四大(지수화풍地水火風) '작용'을 요즘 시대의 표현인 물리학 용어를 빌려서 ‘힘’으로 표현하는 쪽이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고 부처님이 가르치신 의미에도 가깝다. 마하부따루빠mahā-bhūta-rūpa(사대색四
참고로 현대물리학에서 설명하는 우주의 물질세계를 형성하는(지배하는) 4대 힘(작용)은 '강력(강한 상호작용), 약력(약한 상호작용), 전자기력(전자기 상호작용), 중력(gravity 상호작용)'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대물리학이 말하는 4대 힘(작용)의 설명보다 붓다가 가르친 사대 작용의 설명이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몸(신체, 육신, 육체)을 포함한 우주자연의 물질세계의 실상(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를 더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질의 기본 구성체(물질의 최소단위; 부처님이 사용하신 용어로는 깔라빠kalāpa)인 원자도 물질이기 때문에 극미하지만 얼마간의 ‘地(pathavi, 무거움, 중력 또는 질량) 작용(힘)‘이 있다. 이 무거움(질량, 地) 작용은 다른 작용, ’水(apo, 수축인력) 작용’에 의해서 잡아당겨져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또 다른 작용, ‘風(vayo, 팽창척력) 작용’에 의해서 어느 정도 밖으로 당겨져 형체적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또 다른 작용, ‘火(tejo, 변화) 작용’에 의해서 끊임없이 매 순간 변하고 있는 것이다. '고정불변(상주불변; 늘 동일)하고 독립적인 존재'(실체實體)로서의 원자는 없다. 원자(깔라빠)로 구성된 모든 물질(물체, 육체)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깔라빠(물질의 최소단위, 원자) 그리고 깔라빠(원자)로 구성된 모든 물질(루빠; 물체, 몸)은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미시(찰나)-일상-거시(성주괴공 일겁; 생로병사 일생)적으로 매 순간 생멸(생기 소멸) 변화하며 순환(삼사라, 윤회)하는 ’사대四大 작용(힘)’의 ‘역학적力學的 인과 연기 연속체’ 또는 ‘인과 연기적인 흐름현상', 줄임말로 '연기현상'이다.
이처럼 사대(지수화풍) 작용이 인연(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서로 상호의존 작용하면(연기 작용하면, 인연 화합하면) 깔라빠(물질의 최소단위, 원자)라고 인식된다.
위 글은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설(설명)하신 '물질(rūpa)을 형성하는(bhūta) 기본(mahā) 작용'(사대 작용; '지수화풍' 작용)과 관련된 설법(법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소상히(자세하고 분명하게)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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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2] 실체實體(라틴어: substantia, 영어: substance)
실체實體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화할 수 있는 성질, 상태, 작용, 관계 등의 근저根底에 있으면서 사물을 떠받치고 있는 항존, 불변, 독립적인 기본 존재’. 실체實體(라틴어: substantia)는 예로부터(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와 소크라테스-플라톤 시대로부터) 철학의 기본 개념이었다. [다음, 네이버, 위키백과 등의 사전에서 발췌]
실체는 '고정불변(상주불변; 늘 동일)하고 독자(스스로 독립)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철학적 용어이자 과학적 용어다. 실체는 데모크리토스가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원자론('고대 원자론')과 소크라테스-플라톤이 '이데아(실체의 세계)'를 설명하면서부터 널리 정착된 용어다.
이데아는 우리들이 경험하는 늘 변화하는 현상세계(현실세계)의 배후(근저)에 있다고 소크라테스-플라톤이 주장하는 항존, 불변, 독립적인 실체의 세계다.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실체는 현실이 아닌 상상 또는 관념(개념) 속의 존재다.
물리학자들이 입자가속기와 거품상자라는 양자역학 실험 장치를 통해 측정한 바로는 물질은 1초에 10^23 번 생멸 변화한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일상적인 눈의 감각(광학적 감각, optical sense)으로는 내 몸을 비롯한 물질의 매 순간 인과 연기적인 생멸 변화를 도저히 볼 수가 없다
모든 사물이 '독립적이고 고정불변한 존재'(실체)가 아니라 서로 상호 의존하여 매 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생멸 변화하는 것(anicca, 無常)이라는 사실을 과학지식으로서 지식차원에서는 이해했다고 해도,
수행을 통해서 계발되는 극대화된 정신(고요집중의 사띠) 능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내면을 직접 통찰(깊이 관찰)하여 직접 경험(체험)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일상적인 오감각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일상적인 인식과 그것에 길들여진 우리의 마음(의식+무의식)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모든 사물을 서로 연관 없이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실체)라고 착각하고, 내 몸을 비롯하여 내 것이라고 인식되는 모든 것(물질, 정신적인 모든 것; 내 물건, 내 사람, 내 생각, 내 느낌.. 등)에 대해서 굉장한 집착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 착각(감각의 착각, 인식의 착각; 일종의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지도 못하고, 우리들의 연민(자비)의 범위를 모든 살아있는 생명(중생; 생명의 무리)과 그 자체로 아름다운 대자연 전체로 확장하지도 못하고, 좁쌀만 한 에고의 감옥에 갇힌 채 (대다수는 갇혀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이 우주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서로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실체)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식차원에서는 누구보다도 명확히 이해하고, "우리들의 임무는 (아인슈타인 자신이 일종의 감옥이라고 표현한) '인식의 착각'으로부터 벗어나 우리 자신을 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글을 남긴 아인슈타인 자신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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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3] 인간의 '여섯 감각 기관 또는 기능'
서양 과학(생물학)에서는 인간의 감각 기관은 다섯 가지라고 설명하지만, 붓다는 인간의 감각 기관(또는 기능)은 여섯 가지(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고 설(설명)했다.
생명체는 종에 따라 감각 기관(또는 기능)과 감각 기관을 통한 인식 방식은 제각기 다르지만 모든 생명체(유정, 중생; 생명의 무리)는 모두 인식 작용('수상행식' 작용)이 있다는 점에서는 한 가지다.
오감五感(오감각; 다섯 가지 물질 감각) 기능은 생명체의 종에 따라 다섯 가지가 모두 있거나 일부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제 육감六感(정신 감각) 기능이 없는 생명체는 없다
붓다가 중생衆生(생명의 무리)들이 지닌 정신 감각 기능을 설(설명)할 때 사용한 마노-인드리야는 이 정신 감각 기능(function, faculty; Indriya)을 지칭하는 것이다. 의근意根은 고대 인도어 '마노-인드리야Mano-Indriy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의근意根은 인간이 지닌 여섯 가지 감각 기능(6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근根) 중 하나다.
마노-인드리야(의근意根, 정신 감각 기능)는 인간 뿐만 아니라 개, 고양이, 지렁이, 아메바, 바이러스 등 모든 생명체(유정, 중생)에게 있는 가장 기본적인 감각 기능이다.
지렁이, 아메바, 바이러스 등에게는 보거나 듣는 시각, 청각 기능 등은 없을지 모르지만 판단 분별하는 기능(작용)인 마노-인드리야(정신 감각 기능)은 있다. 뇌세포가 없는 지렁이, 아메바, 바이러스도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생명현상을 지속하기에 적합한지를 판단 분별하는 기능(작용)이 있다.
인간의 경우 마노-인드리야(의근意根)는 뇌를 주요 기반(물질 토대)으로 한 정신 감각 기능이다.
마노mano(意) 작용은 외부 대상이 없어도 인식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꽃이 없어도 꽃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을 돌연 회상하고, 지금 일어난 것처럼 감정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작년에 죽은 친구와 함께 10년 전 여행 갔을 때를 회상하며 미소 지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제 육감, 여섯 번째 감각, 정신 감각’ 작용인 마노mano 작용이다.
붓다는 '인간에게는 육근六根(여섯 가지 감각 기관/기능)이 있다. 다섯 가지 물질감각(오감각)과 정신 감각을 합하여 인간의 감각은 여섯 가지다.'라고 설(설명)했다.
눈은 빛의 감각만을, 귀는 소리의 감각만을 인식한다. 그러나 눈으로 들어 온 빛을 '아름다운 꽃'으로 판단 분별하는 인식 작용은 마노mano(意)의 인식 작용이다. 귀로 들은 소리를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아름다운 노래'로 판단 분별하는 인식 작용은 의意(mano)의 인식 작용이다. 인간의 경우, ‘오감각의 인식 작용, 전오식前五識 작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대량의 인식 작용이 ‘의意(mano)의 인식(識) 작용, 즉 의식意識 작용’에서 일어난다.
인간에게도 개에게도 코가 있으나 인간이 코로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개에 비해 매우 적다. 인간은 보통 수 회 이상 연속해서 같은 냄새를 맡으면 그 냄새를 알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인간의 오감각 기관(안이비설신)의 감각은 같은 감각이 계속되면 무뎌진다. 쾌락이든 고통이든 인간의 오감각은 강도가 더 세지거나 다른 종류로 바뀌지 않는 한 둔화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 감각 기능인 ‘의근意根(마노 인드리야), 뇌를 기반(물질토대)으로 한 정신 감각 기능‘의 작용(기억 작용, 생각 작용 등)에서는 쾌락이든 고통이든 같은 강도의 감각이 계속 재현되거나 오히려 증폭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에는 인식 작용이 있다. 그러나 인식 범위는 생명체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다. 인간은 오감각 기관(기능)을 통한 인식 범위가 다른 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동물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다, 위대한 생명체다’라고 자칭(스스로 칭)하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서 정말 생각보다 꽤 좁은 오감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러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기억, 생각 등의 정신 감각을 인식 대상으로 하는 '뇌를 기반으로 한 정신 감각 기능인 의근意根'과... '의근意根(정신 감각 기능)의 작용'(기억 작용, 생각 작용 등)을 극도로 강화한 것이다.
인간은 오감각 기관을 통해서 인식한 다섯 가지 감각에 대해서 '의근意根의 인식(識) 작용, 즉 의식意識 작용' 속에서 길게, 길게 ‘생각, 사고思考’를 수 없이 반복해서 회전시킨다. 그렇게 생각(사고)을 수 없이 반복하고 회전시켜서 방대한 지식과 개념(또는 관념)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방대한 지식 중에 많은 지식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오만한 인간의 '인간(人) 중심적이고 자기(我) 중심적인' 지식들로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는 무관한 지식들이다. 인간의 지식이나 극도로 강화된 사고(생각) 작용(기능)이 좋게 쓰이는 측면도 있지만 좋지 않게, 심지어는 인간 자신에게 조차도 해롭게 쓰이는 측면도 매우 많다.
지식이 더 많으면 더 똑똑해(?) 지지만, 더 행복해 지지는 않는다. 지식이 많다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인간은 대부분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지나치게 '쓸데없는 생각'(망상; 자신과 남을 괴롭히는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간다. 그런 망상을 포함한 물질-정신 감각에 대한 갈애와 집착이 줄어들수록 인간의 행복지수는 늘어난다.
요컨대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좁은 오감각 기능(기관)의 인식 범위와 신체 능력의 단점을 ’뇌를 기반(물질 토대)으로 한 정신 감각 기능인 의근意根과 그 능력(특히 생각 작용/기능의 능력)을 극도로 강화'하여 보완하면서, 인과 연기적인 순환(윤회)의 진화 과정을 거쳐온 생명체다. 갈애(딴하taṇhā; 여섯 가지 물질, 정신 감각에 대한 갈망과 집착)는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유정, 중생) 순환(윤회)의 원동력(에너지)이자 진화의 원동력이다.
인간에게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지나친 망상(쓸데없는 생각) 작용은 이러한 인과 연기적인 진화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부작용)인 셈이다.
위 글은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설(설명)하신 인간의 '여섯 감각 기능(indriya, 또는 기관)'과 마음의 작용(kicca)에 관련된 설법(법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소상히(자세하고 분명하게)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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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4] 물질세계의 '시공간(시간-공간)을 초월하여' (다른 표현으로, 시간-공간을 통한 '오고 감이 없이')
이 우주가 생기生起하여 팽창하는 작용을 현대 물리학에서는 ‘빅뱅Big-Bang’이라고 표현한다.
빅뱅 시, 물질이 생기하면서 동시에 물질이 차지하는 시공간(시간과 공간)도 함께 생기하여, 시공간(시간-공간)과 물질은, 부처님의 표현으로는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관계', 양자역학의 표현으로는 ‘시時-공空-양자量子(질량)수 관계', 상대성이론(아인슈타인)의 표현으로는 '시공간(시간-공간)과 질량의 등가 관계'를 형성하고, 매 순간 변화하는 물질-시간-공간의 팽창 흐름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매 순간 변하고 팽창하며 흐르는 시공간(시간-공간)과 함께 물질이 인과 연기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며 분산하여 오늘 날 우리가 보는 우주(해, 달, 지구, 별, 은하 등의 물질 그리고 시공간..시간-공간)가 되었다.
붓다의 설법(법을 설명함)에 따르면, 현재의 우주는 생기하여 팽창 중에 있지만 인연(직간접조건)이 다하면 수축하여 소멸하고 다시 생기하는 인과 연기적인 생멸(생기 소멸)의 순환(삼사라; 윤회輪廻, 바퀴輪처럼 돌고 돎廻)을 계속한다. 좀 더 상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대 작용('지수화풍' 작용, 물리학 표현으로는 우주 4대 상호작용, 즉 강한 상호작용, 약한 상호작용, 전자기 상호작용, 중력 상호작용)이 연기(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상호 의존) 작용하여 (다른 표현으로 인연 화합하여) 물질이 생기하면 그와 동시에 물질이 차지하는 시공간(시간-공간)도 함께 생기하여, 물질은 시간-공간과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 관계를 형성하고, 미시(찰나)-일상-거시(성주괴공, 일겁一劫)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인과 연기적인 순환(삼사라, 윤회)을 계속한다.
서로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 의존) 관계에 있는 물질세계의 물질-시간-공간은 한 세트로 함께 생기 소멸 한다.
생명체가 죽는 순간, 즉 생명체의 정신작용('수상행식' 작용, 인식 작용)이 인식 정보(여섯 감각)를 의존하고 있던 육근(여섯 감각 기관; 육신, 몸, 물질)과의 연기(조건에 따른 상호의존)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물질세계의 아무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 정신(정신작용)은 물질(물질작용)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물질세계의 시간-공간과의 관계도 (한 세트로) 함께 끊어진다.
그리고 정신작용('수상행식' 작용 중에서 금생의 마지막 식이자 다음 생의 최초의 식인 재생연결식)은 물질세계의 '시공간(시간-공간)을 초월하여' (다른 표현으로, 물질세계의 시간-공간을 통한 '오고 감이 없이')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곳(장소, 세계)에서 인과 연기적으로 상응하는 물질토대(몸, 감각 기관)에 인식 정보(감각)를 의존하여, 미시(찰나)-일상-거시(생로병사 일생)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정신작용('수상행식' 작용, 인식 작용)의 인과 연기적인 생멸 흐름의 순환(삼사라, 윤회)을 계속한다.
위 글은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설(설명)하신 삼사라Samsāra(계속되는 생멸 흐름의 순환, 윤회)에 관련된 설법(법法을 설명함)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소상히(자세하고 분명하게)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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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들은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의 맨 처음 단계(교학 단계; 예비 단계 또는 준비 단계)인 '지식(교학) 차원의 혜慧(빤냐, 반야; 지혜)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을 위해,
빠알리어(갠지스강 유역의 고대인도 민중어 중 하나)로 기록된 경전모음인 니까야와 한문(중국어) 번역 경전인 아함경 그리고 한글과 영어 번역 경전 등의 관련 내용을 참조하여,
부처님이 발견하시고 설(설명)하신, 정신세계의 실상實相(실제 모습)과 진리眞理(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에 관련된 부처님의 설법(법法을 설명함)들을 오늘날의 지식과 용어를 사용하여 소상히(자세하고 분명하게)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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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선, 이 작은 글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배운 바는 없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정말로 가르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교양 있고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저 또한 고타마 싯달타, 석가모니 부처님을 매우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지만) 이 글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호칭을 그냥 "붓다 또는 부처"(님자도 안 붙이고)라 한 것에 대해 신심 깊은 불자님들이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글은 학술적(과학적) 성격이 강한 일종의 개요, 소개 또는 입문서이고, 이 글을 불자보다는 불자가 아닌 사람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좀 어색하더라도 그냥 "붓다 또는 부처"를 고집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붓다의 가르침은 비관주의(염세주의)도 낙관주의도 아닙니다. 어느 편이냐 하면, 붓다의 가르침은 삶과 세계에 대하여 사실주의의 관점(View-point of Realist)에 서있으며 사실주의(또는 현실주의)적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므로 사실주의(또는 현실주의)입니다. 불교는 대상(모든 존재; 자기 자신, 생명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헛된 기대 속에 살도록 우리들을 거짓으로 달래지도 않고, 온갖 종류의 허구적인 가상의 공포와 죄책감(원죄 따위)으로 우리들을 겁주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나는 무엇인가?, 나를 둘러싼 세계(물질세계와 정신세계)는 어떠한 것인가?‘를 '있는 그대로'(여실히) 적확하고 객관적으로 알려주며, 또한 완전한 자유(해탈), 평화, 큰 사랑(또는 모든 존재를 차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바르게 사랑하는 바른 사랑, 또는 '나我'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 자비), 큰 지혜(또는 존재의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바른 지혜; 빤냐, 반야) 그리고 완전한 행복(열반)에 이르는 길(팔정도)과 그 길을 닦는(계발하는) 수행법(실천법)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줍니다.
모든 존재가
붓다의 가르침(담마)을 따라
완전한 자유와 평화,
분별 집착 없는 바른 사랑과
완전한 행복에 머물기를...
▶︎ 물질세계의 실상과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