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법法 (2019.5.18 재수정)
법法은 붓다의 가르침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 또는 빠알리어 담마Dhamm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달마達磨는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음역)한 것이다.
붓다Buddha는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를 뜻하는 고대인도어로 일반명사다. '고타마Gautama 붓다Buddha'(이른바 석가모니불)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불佛, 즉 불타佛陀'는 고대인도어(산스크리트어 & 빠알리어) 붓다Buddh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음역)한 것이다. 우리말(한국어, 한글)로는 '부처'라고 음역한다.
그러면 깨달은 자, 븟다는 무엇을 깨달았나?
붓다는 법法을 깨달았다.
붓다는 법法을 깨닫고 나서 법法을 가르쳤다.
붓다의 가르침인 법法은 '깨달음의 내용'(붓다 자신이 깨달은 내용인 법法)과 '깨닫는 방법'(붓다 자신이 깨달은 방법인 법法; 깨달음의 길)을 통칭한 것이다.
붓다가 가르친 '깨달음의 내용'은 '존재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다.
붓다가 가르친 '깨닫는 방법'은 '팔정도(깨달은 자가 되는 또는 깨달음에 이르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를 닦는 수행'이다.('팔정도를 닦는 수행'에 대한 상세 내용은 여기 를 참조해 보세요)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경'에서 사리뿟따(사리불, 사리자)가 설명하듯이, 붓다가 듣는 사람의 수준(근기)과 처지에 맞춰서 설한 모든 가르침(설법)은 사성제 가르침에 포괄되고, 붓다가 듣는 사람의 수준(근기)과 처지에 맞춰서 가르친 모든 수행법(이른바 37조도품 등)은 사성제('고집멸도'성제) 중 도성제로 가르친 '팔정도를 닦는 수행'에 포괄된다.
.
붓다는 실상(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를 완전히 바르게 깨닫고 나서 언어란 실제가 아니라 실제의 근사치일 뿐임을 명확히 이해했기 때문에 자신이 깨달은 내용(실상과 진리)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 즉 어떤 말(Word; 언어)로 어떤 용어와 표현으로 어떤 수준으로 어떻게 설(설명)할 것인가?를 매우 고심했다.
붓다는 소수의 지배계층이 사용하던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당시 붓다가 활동하던 갠지스 강(항하恒河) 유역에서 대중(일반인 또는 민중)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고대인도 민중어인 마가다어(당시의 공용어 역할을 했던 마가다어는 당시 갠지스 강 유역에서 가장 큰 국가였던 마가다국의 민중어)를 사용해서 듣는 사람의 수준(근기; 경험, 소질, 적성, 성향, 성격, 여러가지 능력-이해력, 인내력, 집중력.. 등)과 처지(처해 있는 상태; 사정이나 형편, 환경, 상황.. 등)에 맞춰서, 비유적, 우화적, 시(게송)적, 문학적, 함축적, 서술적, 분석적, 종합적, 논리적, 과학적(=경험적+합리적) 표현 등 다양한 표현 방법을 사용해서, 당시의 다양한 대중들(예컨대, 브라만 계급 ... 불가촉천민 계급, 정치인, 군인, 상인, 농민, 노예 ... 남녀노소 등)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법法('실상과 진리' 그리고 '팔정도와 팔정도를 닦는 수행')에 대한 다양한 수준의 많은 설법說法(법法을 설명說明함)을 했다.
그러나 마가다Māgadha어는 사장되었고 마가다어와 가장 (거의) 유사한 고대인도어가 빠알리Pāli어인데, 이 빠알리어가 후대 제자들이 붓다의 말씀(가르침, 설법; 法)을 기록한 경전 모음인 니까야Nikāya를 기록하는데 사용되었다. 빠알리어는 붓다의 말씀(Word)을 경전으로 기록하던 시대에 가장 널리 가장 많이 사용되던 고대인도 민중어였기도 하다. (참고로 2001년 기준으로 인도에는 총 3,372개의 언어가 존재하며 이중 1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사용 중인 언어는 216개, 헌법이 인정한 지정 언어는 22개이다)
붓다의 설법을 기록한 경전 모음인 니까야를 보면 붓다가 설법 시 사용한 언어(용어와 표현)는 장엄한 문체나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매우 소박하면서도 적확(=적절+명확)하다.
훗날 등장하는 금강경류, 화엄경류, 정토경류, 법화경류 경전들의 화려하고 장엄한 문체와는 확연히 구분된다.(이러한 점도 훗날 등장하는 이들 경전들이 붓다가 직접 설법한 것을 기록한 경전, 소위 불설 경전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또한 이들 경전들에는 '팔정도를 닦는 수행'에 대한 내용은 없고, 유명무실해진 용어로서의 팔정도는 어쩌다 가끔 등장한다)
언어는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한 이래,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인식경험을 기호화(개념화)한 것이다. 언어는 실제가 아니라 실제의 근사치(개념)일 뿐이다. 실제에 가까운 것도 있지만 실제와 아주 먼 것도 있다. 붓다는 실상과 진리를 깨달은 후 이러한 점을 매우 잘 알았기 때문에 언어의 사용, 즉 적확(=적절+명확)한 용어와 표현의 사용에 매우 고심했다. 이것이 우리들이 붓다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을 공부할 때 붓다가 사용한 용어와 표현을 왜곡없이 바르게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영어나 중국어(한문), 한국어(한글) 경전 등 번역된 경전을 읽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
붓다의 적멸寂滅[pari-Nibbāna; 무여(의)열반] 후 얼마 동안은 제자 아라한들이 붓다의 말씀(가르침, 법法)을 합송으로 후대에 전달했다. 합창을 하면 한 사람이 틀린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처럼 합송으로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붓다의 말씀(가르침, 법法)에 대한 변질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수록 아라한의 수가 줄어들고 전쟁 등의 장애요소가 생기고 부처님 말씀(가르침, 법法)을 전파하는 지역이 넓어지면서 문자로 기록하여 전달할 필요가 생겼다.
니까야는 붓다와 그 제자들의 언행록言行錄(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을 적어 모은 기록)이다. 이 언행록에 실려 있는 제자들과 함께하는 붓다의 생활(行)은 매우 소박하면서도 정갈하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설법(법法을 설명)하는 붓다의 언어(言) 또한 매우 소박하면서도 적확(적절+명확)하다.
니까야는 붓다의 최초 설법인 초전법륜경에서부터 마지막 설법인 대반열반경에 이르기까지를 고대인도어(빠알리어)로 기록하여 모아 놓은 경집(경전 모음집)으로 경의 길이와 설법 주제에 따라 다섯 종류로 분류되어 있으므로, 5부五部(Pañca Nikāya)라고도 한다. 5부는 다음과 같다.
•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 장부長部) : 붓다의 설법을 기록한 각각의 경은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등의 대승경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것들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길이가 긴 경 34개가 3품品(vagga)으로 분류되어있다. 대념처경(대념처경과 대동소이한 념처경은 중부中部에 속해있음), 대반열반경, 사문과경, 범망경 등이 디가 니까야(장부長部)에 속해있다.
•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 중부中部) : 중간 길이의 경 152개를 3편으로 분류했다. 제자, 사문 등의 질문에 붓다가 답한 경이 많다. <마하삿짜까 경(Mahasaccaka Sutta); 이 경은 니간타(니간타Nigantha 나타뿟다Nataputta; 자이나교의 교주, 고행주의자)의 제자(혹은 후예 또는 아들)인 삿짜까가 질문한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 등에 관한 질문에 붓다가 답한 경임. 이 질의응답 중에 붓다 자신이 깨달음을 이루게 된 전후 과정, 이른바 붓다의 성도(정각을 이룸) 과정을 삿짜까에게 설(설명)한 내용이 있음>도 맛지마 니까야로 분류되어 있다.
•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 Nikāya, 상응부相應部) : 짧은 길이의 경 2,889개를 상응하는 주제별로 5품으로 분류했다. 상윳따 니까야는 상응하는 설법 주제의 경들을 비교해 보면서 불법佛法(붓다의 가르침)을 공부하기에 좋다.
• 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 증지부增支部) : 짧은 길이의 경 2308개를 11장章(nipāta)으로 분류했다. 설법 주제가 수數와 관계가 있는 짧은 길이의 경을 모아 그것을 1에서부터 11까지 장의 번호별로 분류했다
• 굿다까 니까야(Khuddaka Nikāya, 소부小部) : 결집이 끝난 후 이상의 네 가지 니까야에 들어 있지 않은 경이나 후대에 추가된 것 등을 합하여 다시 모은 것으로 알려진 15~18개의 경이다. 부파에 따라 굿다까 니까야를 논장(아비담마Abhidhamma 삐따까Piṭaka)에 포함시키기고 굿다까 삐따까(Khuddaka Piṭaka, 소전小典)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붓다의 설법을 고대인도어(빠알리어)로 기록한 니까야에 수록된 경의 수효는 총 5,400개 정도이다. 이중 상대적으로 긴 설법을 기록한 경은 34개, 중간 정도의 설법을 기록한 경은 152개이고, 나머지 5,000개 이상의 경은 짧은 설법을 기록한 경이다.
붓다는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가능한 한 간단명료하게 법法을 설한 것으로 보인다. 붓다는 장대한 강의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니까야는 붓다가 평생 동안 설한 법문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설법들의 집성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개개의 설법은 각각 하나의 경經을 이루고 있는데, 그것을 단경單經이라고 한다. 니까야는 이러한 많은 단경으로 이루어진 경집(경전 모음집)이다. 단경의 수가 많기 때문에 전승을 위해 기억하기 쉽도록 분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빠알리어로 기록된 니까야를 산스크리트어로 옮겨서 편찬한 경전모음인 아가마를 (산스크리트어 대승경전인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정토경 등이 중국에서 한창 번역되던) AD 4~5세기 이후에 다시 중국어(한문)로 번역 편찬한 경전모음이 아함경阿含經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진 아함경이다.
아함阿含은 산스크리트어 아가마āgam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한 것으로 법장法藏 또는 전교傳敎라고 한역된다. 산스크리트어 아가마āgama의 뜻은 전승傳承, 즉 붓다(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해서 전해져 내려왔다는 뜻이다. 아함경阿含經(아가마 수트라)은 '붓다의 말씀(가르침, 법法)을 전하는 경전 모음'이라는 뜻이다. 아함경은 장長아함, 중中아함, 잡雜아함, 증일增一아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장아함만이 산스크리트어 본이 남아 있고 나머지 산스크리트어 본은 유실되어 전래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산스크리트어 본이 남아 있는 장아함이 가장 적은 권수로 22권(30경)이며 나머지는 각각 60권(222경), 50권(1,362경), 51권(1,362경)이다. 아쉽게도 방대한 분량의 산스크리트어 본이 유실된 것이다.
니까야와 아함경은 생각보다 꽤 차이가 있다. 그 원인은 첫째, 옛날에는 요즘처럼 정보의 전달이 상대적으로 원활하고 정확하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보다 번역 시 오류가 상대적으로 많다. 둘째, 언어학적으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산스크리트어가 (빠알리어 또한) 표음문자로서 어미 굴절의 현상을 나타내는 언어인데 반하여, 시나-티베트어족에 속하는 중국어(한자)는 표의문자로서 단음절로 이루어진 언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전의 미묘한 내용을 서로 다른 구조의 언어로 번역하는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하였을 것이다.(참고로 한글과 영어는 표음 문자다) 셋째, 산스크리트어로 번역 편찬한 경전(아가마 수트라)과 산스크리트어로 저술 편찬한 경전(대승경전)을 중국에서 번역하던 시대의 중국인들은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과 같은 주요 대승경전에 비해서 아함경(아가마 수트라)을 그리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함경(아가마 수트라)의 번역에 상대적으로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고 번역이 상대적으로 정교하지 못하고 허술하다.
.
붓다(佛)의 가르침(敎)을 뜻하는 불교佛敎는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서 성립된 이래, 그 보편성으로 말미암아 국경을 넘어 각 지역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불교의 전파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중국·한국·일본 그리고 베트남 북부지역 등의 동북아시아권에서는 대승불교가, 스리랑카·미얀마·태국 등의 남아시아권에서는 상좌불교가 뿌리를 내렸다.
남아시아권에서는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빠알리어 경집(니까야)을 자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반면에 중국은 인도 대승불교의 여러 종파가 산스크리트어로 저술 편찬한 대승경전들(반야금강경류, 화엄경류, 법화경류, 정토경류 등)을 모두다 자국어(중국어; 한문)로 번역하여 받아들였다. (니까야의 산스크리트어본에 해당하는 아가마도 아함경으로 한역했지만 중국불교는 아함경을 그리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후한後漢 시대부터 당唐·송宋 시대에 이르기까지 천 년간에 걸쳐 국가가 주도한 번역 역사의 과정에서, 인도에서 유입된 불교는 중국의 사상(제자백가 사상, 도교사상, 유교사상 등) 및 문화와 융합되어 변질되면서 독자적인 중국불교를 성립시켰다.
참고로 대승불교권에는 티벳도 포함된다. 티벳에는 인도 대승불교의 한 종파인 밀교(또는 금강승불교)가 전파되었다. 티벳불교는 인도의 대승경전을 티벳어로 번역한 경전을 사용한다. 인도와 인접한 티벳은 인도와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불교(밀교, 금강승불교)를 받아들였고 티벳어는 그 창제 목적부터 산스크리트어 번역의 용이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같은 대승불교권이지만 티벳어 번역경전은 중국어(한문) 번역경전과 많이 다르며, 티벳불교 또한 중국불교와 매우 많이 다르다.
.
'물 수水 + 갈 거去'의 합성어인 법法은 '물 흐르듯 가는 것'이라는 뜻으로 ‘물이 자연의 법칙(질서, 이치)에 따라 흘러간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글자는 물이 끊임없이 흘러가되 거기에는 일정한 길(질서, 이치, 법칙)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즉 법法은 '자연의 질서, 자연의 이치, 자연의 법칙'을 의미하는 단어다.
다르마(담마)를 법法으로 한역한 것은 어느 정도 적절한 번역이었다. 그러나 다양한 뜻을 가진 다르마(담마)를 모두 법法으로 한역한 번역의 경직성(그리고 무아無我와 같은 부적절한 번역)은 한역(한문 번역) 경전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으며 한역 경전을 기반으로 불교를 접하는 승려들과 특히 일반 사람들에게 불교(붓다佛의 가르침敎)를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종교로 만들고 말았다.
번역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왜냐하면 번역자가 원저자와 유사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한 원본을 훼손하지 않고 전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불교 경전과 같은 경우에 번역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라서 적절한 번역 용어를 찾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원 용어를 그냥 사용하고 원 용어에 대한 설명을 하는 편이 낫다.
무아無我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빠알리어) 아낫따an·Atta[산스크리트어 an·Atman]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an·Atta(an·Atman)는 'Atta(Atman;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 실체)가 아니다(an)'라는 뜻이다.
(영어 un·happy의 un처럼 빠알리어와 산스크리트어에서 an은 단어 앞에 붙는 부정형 어두인데 모음으로 시작하는 단어 앞에 붙는다. Nicca처럼 자음으로 시작하는 단어 앞에는 a가 붙는다. 'a·Nicca, 항상Nicca하지 않다a', 즉 매 순간 변한다. 아닛짜a·Nicca는 '무상無常, 항상無함이 없다無'로 한역했는데, 무상은 별로 오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무아無我, 나(我)는 없다(無)'라는 말과 '아낫따an·Atta, 나(를 포함하여 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는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Atta]가 아니다[an]'라는 말의 차이는 천지 차이다. 특히 부처님 가르침(佛敎, 佛法)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을 전체적으로 잘 이해한 후에는 그 차이가 미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
다르마Dharma[담마Dhamma]라는 용어의 기원은 BC 2000~1000에 걸쳐서 성립된 인도의 고전인 《베다》에까지 소급된다. 베다시대의 다르마는 천칙天則(리타rita) 등과 함께 자연계의 법칙, 인간계의 질서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 후 브라마나·우파니샤드 시대(BC 1000~100)에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행위’를 규정하는 것에까지 그 사용 범위가 확대되었다.
다르마Dharma[담마Dhamma]라는 말은 인도 사회에서 현재도 보편적으로 두루 사용되고 있는 일상어다. 아이들도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힌두교(Hinduism; 힌두는 인도대륙을 의미하는 신두라는 말에서 유래됨) 또는 인도교는 서구 사람들이 지칭하는 말이고 인도 사람들은 힌두교를 '사나타나Sanātana 다르마Dharma'(영원한 다르마)교라고 부른다.
이처럼 담마(다르마)라고 하는 인도어는 매우 다양하고 폭넓은 의미를 가지는 말이므로, 우리가 「담마는 이런 의미다」라고 한마디로 고정하여 번역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인도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담마(다르마)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자.
당연하게 일어나는 사건
세상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을 「담마」라고 말한다. 피할 수 없는 것, 아무리 애써도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아침의 다음은 낮이 된다든가, 겨울이 되면 춥다든가, 봄이 되면 따뜻해져 꽃이 피는 등,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은 담마인 것이다. 즉 자연법칙을 포함하여 당연하게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담마라고 한다. 예를 들어 「시간이 지나면 밤이 되는 것」은 누가 바꾸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 「그것은 담마야!」라고 말한다.
본연의 모습
「본연의 모습(실상)」을 담마라고 말한다. 또한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본연의 모습」도 담마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때의 담마는 도덕적인 가치관 또는 희망하는 가치관으로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사람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담마야!」라고 말한다. 「담마야」라고 말하면, 「그것은 담마이니까 당연한 일이다」라는 뉘앙스가 된다. 「당신에게는 어떤 담마도 없다」라고 말하면, 「당신은 예의범절이 없는, 몰상식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된다.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본연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사람, 예의범절이 없는 사람, 인간으로서 도덕적이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 「담마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도덕한 범죄자는 「아담마a·Dhamma의 사람」(담마가 아닌 사람, 담마를 부순 사람, 담마가 없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지키고 따라야 할 것
「지켜야 할 신념」도 담마다. 인도에서 「사람은 무엇에 따라서 행해야 하는 것인지요?」라고 물었다면, 「물론 담마에 따라야 합니다」라고 곧바로 대답이 되돌아온다. 「지켜야 할 것」이란 자신의 안에 있는 고귀한 것, 「따라야 할 것」이란 자신의 밖에 있는 고귀한 것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담마」라고 하는 말을 사용한다. 즉, 무엇인가 고귀한 것, 자신의 생명같이 중요한 것, 「전부를 잃어도 이것만은 지키고 따르겠어」라고 생각되는 것도 「담마」인 것이다.
삶의 방법으로서의 가르침
우리에게 삶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분의 말씀도 「담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들이 일생 따라야 할 가르침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선하게 증장시키는 가르침도 「담마」라고 말한다.
법칙
담마에는 「법칙」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다. 예를 들어 과학에서 발견하는 「물질은 어떤 법칙에 따라 어떻게 작용하고 어떻게 반응하는 것인가」라는 것도 담마다. 물론 인과 법칙도 담마다. 부처님께서는 인과 법칙을 설하셨으므로, 이 의미에서 「부처님께서는 담마를 설하셨다」라고 할 수가 있다.
법률과 그 이념
법률도 담마라고 말한다. 재판관은 「담마를 지키고 담마에 따라 판결하는 사람」이다. 또, 법률을 만들거나 정치를 할 때는 어떤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 정치나 법률에는 이상으로서의 이념이 있다. 그러한 법률을 만들게 하고 정치를 구현하게 하는 이념과 같은 것도 「담마」라고 말한다. 법률가나 정치가나 왕은 「담마」를 지키고, 「담마」에 따라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상
(물질, 정신적인) '모든 것은 「현상」이다' 라는 의미에서의 모든 것도 「담마」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인도에서 「담마(다르마)」라는 말은 매우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말을 배울 때부터 「담마(다르마)」라는 말을 듣고 사용한 인도 사람은 문장의 맥락에서 용이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이 올바르게 그 의미를 번역하는 것은 어려운 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부처님 말씀(가르침, 설법; 법法을 설명함)을 기록한 경전모음(니까야)에서 담마(다르마)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진리와 그 진리의 합리성을 가리킨다.
연기緣起는 담마라고 하는 말이 이 뜻이다. 연기의 이치는 보편타당한 진리, 즉 보편적이고(예외가 없고) 타당한(합리적인) 진리(진실한 이치)라는 말이다. 이것은 보편적인(예외가 없는) 법칙의 의미와도 상통한다.
② 법칙과 그 법칙의 보편성을 가리킨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는 부처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인간이 있든 없든 전혀 상관이 없는, 우주자연의 법칙이고 존재 방식이다. ‘생명과 물질의 세계가 어떤 식으로 생·멸(생기·소멸)하고 변화하는가?' 라는 그 실상(실제 모습)을 명확히 설(설명)한 보편적인(예외가 없는) 법칙(담마)이다. 그 담마는 신에 의해서 창조되거나 신에게 계시를 받아서 알게 된 것이 아니다. 물론 부처님이 만든(창조한) 것도 아니다. 단지 부처님께서는 수행을 통해서 그 담마를 발견한 사람일 뿐이다.
요컨대 담마(法)는 보편적인(예외가 없는) 우주자연의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이다.
③ 인간이 지켜야 할 바른 도리, 즉 윤리성을 가리킨다.
담마를 기록한 아소카 왕의 법칙문法勅文은 상기한 합리성과 윤리성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④ 붓다Buddha(석가모니불,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 불법佛法[Buddha-dhamma]을 가리킨다.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 중 법보 등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며, 나아가 붓다의 가르침(佛法)을 기록한 경전經典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법통法統·법호法號·법회法會·법고法鼓·법등法燈 등은 모두 불법佛法의 의미이다. 그리고 불법佛法(석가모니불의 가르침)은 합리성·보편성·윤리성이 있으므로 ①, ②, ③의 의미도 당연히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⑤ 실상과 진리를 가리킨다.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인 존재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가리킨다.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사실(실상)과 진리’를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가르치셨다.
⑥ 사물事物을 가리킨다.
이 세상(우주자연)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모든 사물(삼라만상),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과 물질-정신적인 것을 모두 포함한 일체 모든 것을 가리킨다. 일체법一切法[諸法; sabbe dhamma],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제법諸法 등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다.
사물을 실체(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은 부처님의 12처十二處(6근+6경) 설법(법法을 설명함)에 잘 나타나 있다. 여섯 인식기관[六根: 眼·耳·鼻·舌·身·意]과 그에 대응하는 여섯 인식대상[六境: 色·聲·香·味·觸·法]에서 법法은 인식·사고 기능을 하는 의意[mano]의 대상이다. 이때의 법은 마음[또는 뇌기능; 마노, 意]속에 일어나는 인식의 대상(현상 또는 정신 감각)이다. 모든 존재는 독자적으로(독립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또한 주관과 객관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서 그 존재의의를 갖는 것이다.
⑦ 현상을 가리킨다.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우주자연; 법계法界)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모든 사물(삼라만상)은 고정불변(늘 동일)하고 독립(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적으로 매 순간 생멸 변화하는 하나의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이다. 영원불변한 신이나 영혼같은 상상(또는 개념, 관념) 속의 존재는 실존(실제 존재)하는 담마(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가 아니다.
나를 포함하여 세상(우주자연)에 실존(실제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변치 않는 동일하고 독립적인 실체(Atta, Atman)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an),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적으로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며 변하는(a·Nicca-無常한) 하나의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으로 존재한다.
<역주 : 연기緣起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고대인도어(빠알리어) 빠띳짜삼뭇빠따paṭiccasamuppāda[산스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因(직접조건, 원인, 직접적인 원인)과 연緣(간접조건, 간접적인 원인)에 따라서 생기生起함’의 줄임말이다. 한문(중국어) 경전에서는 산스크리트어 프라티트야삼무파다pratītyasamutpāda
연기緣起[paṭiccasamuppāda]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조건(직간접조건; 인연)에 따라 상호 의존하여 생기함(또는 발생함)’ 또는 ‘조건에 따른 상호의존에 의한 생기(또는 발생)’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예컨대, ‘사과나무는 사과 씨를 인因(직접조건)으로 해서 토양, 햇빛, 빗물 등을 연緣(간접조건)으로 해서 이들이 상호의존 작용해서 생기한다.’ 이를 연기라는 용어를 써서 표현하면, ‘사과나무는 사과 씨, 토양, 햇빛, 빗물 등이 연기(조건에 따라 상호의존) 작용해서 생기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세상(우주자연)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조건(인因-직접조건과 연緣-간접조건)에 따라 상호의존하여 생기하고(일어나고, 발생하고), 그 조건(인연)이 다하면 소멸한다'는 연기법은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정신적인 것이든지 간에 예외가 없는 우주자연의 법칙이다.>
연기법緣起法[Paṭiccasamuppāda Dhamma]은 연기법칙을 가리키기도 하고 연기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우주자연; 법계法界)에 실존하는 모든 것은 연기법칙이라는 우주자연의 법칙에 따라 생·멸(생기·소멸)하며 변화하는 연기적 현상(연기현상이자 자연현상)이다.
⑧ 깨닫는 방법을 가리킨다.
붓다Buddha는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를 뜻하는 고대인도어로 일반명사다. 고타마Gautama 붓다Buddha(석가모니 부처님)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면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나?
부처님은 법法을 깨달았다.
부처님은 법法을 깨닫고 나서 법法을 가르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法은 '깨달음의 내용'(부처님 자신이 깨달은 내용)과 '깨닫는 방법'(부처님 자신이 깨달은 방법)을 통칭한 것이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깨달음의 내용'은 '존재의 실상(실제 모습, 무상·고·무아;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법; 연기의 진리)'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깨닫는 방법'은 '팔정도(깨달은 자가 되는 또는 깨달음에 이르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를 닦는 수행'이다.
부처님은 수행을 통해서 실상과 진리를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바르게 깨닫고 나서, 자신의 수행 경험을 시행착오를 빼고 '경험적+합리적'으로 정리하시여, 자신과 같은 '깨달은 자'(붓다, 부처)가 되는, 달리 말하면 정각(무상정등각의 줄임말; 완전한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을 줄임말로 팔정도라 이름 짓고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 바와나bhāvanā는 계발 수행을 뜻하는 고대인도어)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셨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수행은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이 전부다.
부처님은 팔정도를 바와나(계발 수행, 계발하는 수행, 닦는 수행)의 관점에서 실라(계戒; 정어·정업·정명),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 빤냐(혜慧; 정견·정사유) 세 부분으로 그룹핑하시고, 설법(법을 설명함) 시의 편의를 위해 '사마디(정定; 정정진·정념·정정)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사마디 바와나)를 사마타, '사마타 후에 깊은 빤냐(혜慧; 정견·정사유)를 닦는(계발하는) 수행'(깊은 빤냐 바와나)을 위빠사나라고 이름 붙이셨다. ('실라 바와나'는 실라)
팔정도 바와나, 즉 실라(戒; 정어·정업·정명)•사마디(定; 정정진·정념·정정)•빤냐(慧; 정견·정사유) 바와나(계발 수행)를 한문 번역경전식 표현으로 말하면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이고 부처님이 사용한 고대인도어로 말하면 '실라•사마타•위빠사나'다.
부파불교(소승불교)든, 상좌불교든, 대승불교든, 중관불교든, 유식불교든, 밀교(금강승불교, 티벳불교)든, 선종(선불교)이든, 화엄종(화엄경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든, 일본 법화종(남묘호렌게쿄, 나무묘법연화경교, 법화경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 종파, 국제창가학회 SGI)이든, 조계종(금강경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든 ...
부처님이 가르치신 '깨달음의 내용'(존재의 실상과 진리; 무상·고·무아, 연기법)은 어느 정도 유사하게 가르친다 할지라도, 부처님이 가르치신 '깨닫는 방법'(실천법, 수행법)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을 변질 없이 바르게 가르치지 않는 불교는 부처님이 가르치신 법法(깨달음의 내용과 깨닫는 방법)을 온전히 가르치는 불교가 아니다.
.
부처님께서는 '깨달음(해탈, 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팔정도)을 설(설명)하셨고 그 길을 닦는 방법(수행법; 깨닫는 방법)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을 설(설명)하셨지만, 그 길은 각자가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담마는 각자, 자기 자신이, 스스로 수행하고 노력하여 실제로 그 성과를 자기 자신이 경험하는 가르침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담마는 현명한(슬기로운) 사람 각자에게 경험되는 가르침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이 가르침(담마; 法)은 현세에 유익하고
시간을 초월하고
'와서 보라' 할 만하고
실생활에 적용되고
슬기로운 사람 각자에게 경험된다."
<맛지마니까야>
.
모든 존재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正法)을 따라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기를...
May all beings
fillowing the Buddha's sammā Dhamma
be happy.. be peaceful.. be liberated(모든 괴로움과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벗어나기를, 해탈하기를)...
.
_________________
Post Script : 아비담마(아비다르마)
붓다의 가르침(담마, 다르마)에 대한 주석서(참고서)인 아비담마(또는 아비다르마, 아비달마, 논장; 달마達磨는 다르마의 한문 음사)는 바르게 참고해서 부처님(붓다)의 가르침을 바르게 실천(수행)하는데(즉 부처님이 가르친 수행을 바르게 실천하는데) 도움이 될 때에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청정도론이라는 아비담마가 수행에 있어서 부동의 준거라고 말하는 남방 불교의 어느 종파(전통)처럼 아비담마나 아비다르마(아비달마, 논장)를 절대화(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붓다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설법; 법法을 설명함)은 깨달음의 길을 안내하는 안내판 또는 깨달음의 언덕을 향해 가는데 필요한 뗏목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가르침조차도 부동의 준거로 삼지 말고 다만 바르게 참고해서 바르게 수행하여, "여래如來(자연의 이치/법칙에 따라 그렇게如 온來 자; 붓다가 자신을 지칭하시는 호칭)의 경험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의 경험으로 깨달음을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셨다.
붓다께서 누누이 강조하셨듯이 (붓다의 가르침/설법/안내판/경전이 매우 훌륭하기는 하지만) 안내판(경전의 detail)에 집착하거나 안내판을 절대화(또는 목적화)해서 목적지(깨달음, 해탈, 열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각자의 깨달음(해탈, 열반)의 증득(증명경험으로 득함)은 부처님의 경험이 아니라 개개인 각자의 경험인 바, 깨달음(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과정)의 인과 연기적인 경험(구체적 경험)은 누구나 완전히 같지도 완전히 다르지도 않으나 어찌 되었든 개개인마다 다른 각자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
참고로 수많은 주석서 중에서 제법 알려진 주석서 목록은 아래와 같다.
아비다르마[abhi-dharma, 아비달마] ; 북방 부파불교, 대승불교, 선불교의 논서 또는 주석서
(1) 북방 부파불교의 아비달마 : 계신족론, 구사론, 대비바사론, 발지론, 법온족론, 성실론, 순정리론, 식신족론, 품류족론, 현종론
(2) 인도 및 중국 대승불교의 아비달마 : 금강삼매경론, 대승광오온론, 대승장엄경론, 대승기신론(기신론소, 별기, 의기, 의소), 해심밀경, 대승아비달마경, 대승아비달마잡집론, 대승아비달마집론, 대승오온론, 대지도론, 무량수경종요, 삼론(백론, 십이문론, 중론), 삼론현의, 섭대승론, 유식20론, 성실론, 성유식론, 안락집, 원돈성불론, 원종문류, 유가사지론, 유식30송, 정토론주, 천태삼대부(마하지관, 법화문구, 법화현의), 천태사교의, 해심밀경소, 현양성교론, 홍명집, 화엄경탐현기, 화엄오교장, 화엄일승법계도
(3) 중국 선불교의 아비달마 : 간화결의론, 무문관, 벽암록, 신심명, 십우도, 이입사행론, 임제록, 정혜결사문, 종경록, 종용록, 증도가, 직지심체요절
아비담마[abhi-dhamma] ; 남방 부파불교 또는 상좌부불교의 주석서 : 청정도론, 발지론發智論, 6족발지六足發智, 대비바사론, 구사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