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몸에 기생하는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또는 사자충)은 사자의 몸속에서 사자의 살을 파 먹으며 자라서 결국 백수의 제왕인 사자를 죽게 만든다는 벌레다.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든다는 승려(스님; 비구, 비구니)들 중에도 사자충들이 많이 있다. 자신이 사자충인 줄 알기도 하고 또는 모르기도 한, 또는 다른 사람과 신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조차도 최면을 거는 여러 종류의 사자충들이 참 많이 있다.
이들은 스승의 정법正法(바른 가르침)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변질시켜 자신들의 개인적, 집단적 사리사욕을 채우고 결국은 스승의 가르침을 죽이는 사자충 같은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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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은 붓다Buddha의 가르침을 뜻하는 빠알리어 담마Dhamma(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붓다Buddha는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를 뜻하는 고대인도어로 일반명사다. 고타마Gautama 붓다Buddha(석가모니불)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불佛 또는 불타佛陀는 고대인도어 붓다Buddha를 중국어(한문)로 음사한 것이다. 우리말(한국어, 한글)로는 부처라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法은 '깨달은 내용'(깨달음의 내용)과 '깨닫는 방법'(깨달음의 길)을 통칭한 것이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깨달은 내용'은 '존재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깨닫는 방법'은 '팔정도(깨달은 자가 되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를 닦는 수행'이다.
부파불교(소승불교)든, 상좌불교든, 대승불교든, 중관불교든, 유식불교든, 밀교(금강승불교, 티벳불교)든, 선종(선불교)이든, 화엄종(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든, 일본 법화종(남묘호렌게쿄, 나무묘법연화경교,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 국제창가학회 SGI)이든, 조계종(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든, 천태종(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든...
부처님이 가르치신 '깨달은 내용'(존재의 실상과 진리)과 '깨닫는 방법'(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변질 없이 바르게 가르치지 않는 불교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정법正法을 가르치는 불교가 아니다.
정법正法을 파괴하는 자(사자충)들에 대한 부처님의 경고가 『법法 아님 등의 품, 앙굿따라니까야, A1:10:1~42』에 기록되어 있다. 외부 세력이 아니라 내부의 사자충들에 의해 정법이 파괴되는 것이라고 붓다께서는 경고하신다.
"비구들이여, 법法(붓다의 가르침)이 아닌 것을 법法(붓다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비구(사자충)들이 있다. 그들은 많은 중생(생명의 무리)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괴로움이 된다. 또한 그들은 많은 악업을 쌓고 정법을 사라지게 한다.
비구들이여, 법法(붓다의 가르침)을 법法(붓다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말하는 비구들이 있다. 그들은 많은 중생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괴로움이 된다. 또한 그들은 많은 악업을 쌓고 정법을 사라지게 한다."
"비구들이여, 여래(如來; 자연의 이치/법칙, 즉 연기의 이치/법칙에 따라 그렇게如 온來 자; 붓다께서 자신을 지칭하시는 호칭)가 설하지 않은 것과 선언하지 않은 것을 여래가 설했고 선언했다고 말하는 비구들이 있다. 그들은 많은 중생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괴로움이 된다. 또한 그들은 많은 악업을 쌓고 정법을 사라지게 한다.
비구들이여, 여래가 설했고 선언한 것을 여래가 설하지 않았고 선언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비구들이 있다. 그들은 많은 중생들에게 손해가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불행이 되고, 많은 중생들에게 해로움이 되고 괴로움이 된다. 또한 그들은 많은 악업을 쌓고 정법을 사라지게 한다."
우리 불자들은 혹시 어떤 경전이 불설佛說(붓다께서 설하신 것)인지 비불설非佛說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또는 '어리석은 선지식'(사자충)을 추종한 탓에 위와 같은 죄를 짓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볼 일이다.
<출처 : http://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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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正法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하 가섭(깟사빠) 존자가 부처님께 '정법正法이 사라지는 이유'를 묻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깟사빠여, 황금과 유사한 것이 세상에 생기지 않으면 황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황금과 유사한 것이 세상에 생기면 황금은 사라지게 된다. 그와 같이 유사정법이 세상에 생기지 않는 한 정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유사정법類似正法이 세상에 생기면 정법正法은 사라지게 된다.
깟사빠여, 자연현상이 정법을 사라지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 쓸모 없는 인간(사자충)들이 나타나서 이 정법을 사라지게 만든다."
- 『유사정법경, 상윳따니까야, S16:13』 中에서
부처님께서는 유사정법의 출현을 엄중히 경고하셨다.
유사정법이 세상에 생기면 정법은 사라지게 된다. 정법이 사라지는 이유는 비불설非佛說을 불설佛說(부처님께서 설하신 것)로 둔갑시켜 유통하는 자(사자충)들 때문이다.
인류 역사 이래 가장 고귀한 가르침인 불법佛法(붓다佛의 가르침法)이 인도에서는 왜 사라지게 되었을까? 단순히 이슬람 군대(외부 세력)의 침략 때문이었을까? 외부 세력이 아니라 내부의 사자충들에 의해 정법이 파괴되는 것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법法 아님 등의 품, 앙굿따라니까야, A1:10:1~42』과 『유사정법경, 상윳따니까야, S16:13』에서 경고하신다.
사실 스리랑카에 '부처님(佛) 말씀(가르침, 설법; 法)을 고대인도어(빠알리어; 갠지스강 유역의 고대인도 민중어)로 기록한 경전'(오늘날 '초기경전' 또는 '니까야'라고 불림)을 전하지 못했다면 부처님의 원음은 지구 상에서 완전히 소멸했을 것이다. 간담이 서늘한 일이다.
인도에서 정법을 사라지게 한 '유사정법'은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사유해 볼 일이다.
<출처 1: http://blog.daum.net/
<출처 2: http://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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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佛敎(부처님佛 가르침敎)의 발원지는 인도다. 그러나 현재 인도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이고, 불교는 겨우 0.9%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밖에는 이슬람교가 변형된 시크교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도에는 불교 유적만 있고 불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왜 사라지게 되었을까?
그 주요 원인으로 대개 이슬람 세력의 인도 침략을 꼽는다. 그러나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원인에는 단순히 이슬람의 침략만이 아니라 그 외에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8세기 초(AD 712년), 이슬람 칼리파 세습왕조인 우마이야 왕조의 장군 무하마드 빈 카심이 신드와 펀잡 지방을 정복하면서 이슬람이 인도에 들어오게 되었다. 15세기까지 지속된 이슬람의 인도 정복 결과 델리 술탄 왕조와 같은 이슬람 국가가 인도대륙에 수립되었으며, 이후 16세기에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굴제국이 세워져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8세기 초부터 인도대륙을 정복하기 시작한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사원이 파괴되면서 불교는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이 인도대륙을 침공했을 때 인도대륙에는 불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힌두교도 있었고 자이나교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힌두교는 물론 자이나교도 살아있고, 심지어 조로아스터교(배화교) 조차도 살아있다.
힌두교의 복잡한 다신교적 일신론(택일신교; 3~4억에 달하는 힌두교 신들 중에는 비슈누신의 화신으로서의 부처와 예수 그리고 알라까지도 들어가 있다. 이 신들 중에서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주신을 택일하는 택일신교)은 이슬람교의 엄격한 일신론의 영향을 받아 15세기~18세기에 걸쳐 펀잡 지방에서 발생한 시크교(세계적으로 다섯 번째로 큰 종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게 되고, 힌두교는 다시 부활하여 인도대륙과 주변국가를 종교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8세기에 이슬람이 침공하기 이전에 인도대륙에서 불교는 이미 대중적 지지 기반을 상실한 상태였고, 불교의 생명력은 이미 병든 상태였다. 그리하여 불교는 이슬람 침공으로 완전히 쇠망할 수밖에 없었다.
무신론인 불교가 인도대륙에서 「초기불교 ―> 부파불교 ―> 대승 중관론 ―> 대승 유식론 ―> 밀교」로 변하면서 유아론有我論(진아론眞我論)과 수많은 신神의 개념(신격화된 부처들과 보살들)이 등장하고, 차츰 힌두화의 길을 걸으면서 힌두교와 별 차이가 없어지고, 불교는 자신의 독자성을 잃어갔다. 즉, 인도대륙에서 불교의 쇠망에는 불교 자체의 내부 변질이라는 내부적 요인이 근본적인 몫을 했다는 말이다.
당초 상인(장자)들과 재가신도 그리고 정치세력(브라만 계급의 정치, 사회, 경제적 지배에 대항하는 크샤트리야 계급인 왕들)의 지원을 받았던 불교는 승가에 필요한 모든 물자와 사원 조성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까지 지나치게(?) 풍부하게 시주 받아, 1세기경부터 불교교단은 장원제도莊園制度의 바탕 위에서 경제적 기반을 다져 엄청난 토지와 재산을 지니게 됐다. 이렇게 부를 축적하게 되니, 수행에도 게을러진 비구들은 탁발하려 하지 않고 사원에 들어앉게 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점차 잃어갔다.
인도에서 부파불교가 소승의 딱지를 받게 된 것도 부족함이 없는 사원에서 수행은 등한시 한 채 법에 대한 철학적(학문적) 연구에만 정신이 팔려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불교(붓다의 가르침)의 본분을 저버린 당 시대의 모습에 그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인도의 대중들은 이렇게 변질되어가는 불교를 차츰 등지게 되었다.
부파불교가 법法(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철학적 연구와 논장(아비담마, 아비다르마, 아비달마) 저술에만 몰두하고 부파 간의 경쟁과 논쟁에 정신이 팔려 하화중생의 본분을 저버렸지만, 그나마 한 가지 잘한 점은 '붓다의 말씀(가르침, 설법)을 기록한 경전'(오늘날 '초기경전', 또는 ‘니까야’-갠지스강 유역의 고대인도 민중어인 빠알리어로 기록된 경전모음)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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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불교는 왜 병들게 됐을까? 주요 원인은 힌두교 의식과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불교 본래의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즉, 7~8세기경 불교교단이 힌두교 의례의식(제사의례, 기도, 불공의식 등)을 받아들이고, 힌두교 박티사상 등을 받아들이면서 9~10세기경부터 불교는 힌두교와 구분할 수 없게 됐다.
또한 불설(붓다가 설한 것)이 아닌 방대한 불교경전을 편찬 저술했다가 이를 다시 요약본으로 만들고, 그 요약본을 다시 다라니(陀羅尼, dharani)로, 다라니를 만트라(mantra; 眞言)로 줄였는데, 일반인들은 방대하고 난해한 불교경전과 만트라로는 불교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점도 불교가 지지기반을 상실한 이유였다.
그러다가 보니 차츰 시주가 줄고 재가자의 발길이 멀어져가면서, 가난해진 승려들은 재가자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 신격화된 여러 보살들을 내세웠다. “힌두 신들이 부처님께 귀의해 보살이 됐기 때문에, 힌두 신전에 갈 필요가 없다. 여기로 오면 각종 보살이 신적인 능력으로 너희들의 소원을 이루어 줄 테니, 여기 와서 빌고 시주하도록 하라…” 이런 궁색한 자구책이 오히려 불교의 힌두화를 재촉했다.
그러한 상황에 이슬람 세력이 쳐들어와서 1203년 불교(정확히는 밀교)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비크라마실라 사원(밀교 사원)을 파괴함으로써 인도에서 불교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이상을 정리해보면, 인도에서 불교가 멸망한 원인은 크게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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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적 요인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된 것에는 아래와 같은 내부적 원인이 있었다.
(1) 불교의 학문화와 불교 수행의 변질
"지식은 아무리 많이 쌓아도 지혜가 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변질된 불교에서는 붓다(佛)가 가르친(敎) 수행인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 즉 정각으로 가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인 팔정도를 계발하는(닦는) 수행'이 유명무실(有名無實;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사라짐) 해졌다는 것이다.
인도의 불교는 한편에서는 붓다가 가르친 수행이 변질된 참선, 고행, 기도, 염불을 강조하고, 또 한편에서는 이론불교에 몰입 된채 민초들의 삶 구석구석에 세심한 눈길을 주지 못했다. 밑바닥 사람들은 하다못해 굿을 하던지 푸닥거리를 해야 고단한 삶에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 사는 재미라도 날텐데, 구체적으로 이해해서 실천할 수 있는 수행방법은 가르쳐 주지 못하면서 그저 벽만 쳐다보라거나 이해할 수도 없는 어려운 문자로 설법(법을 설명)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도대륙에서 불교가 소멸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은 대중을 외면한 부파불교가 소승의 딱지를 받게 되고, 부족함이 없는 사원에서 붓다가 가르친 바른 수행의 바른 실천보다는 법法에 대한 학문적(이론적, 철학적) 연구에만 몰두한 나머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본분을 상실하면서 인도의 민중들로부터 멀어진 데 있다.
인도에서 초기불교가 차츰 분열하여 부파불교가 되면서 소위 아비달마불교(아비다르마불교, 아비담마불교)라는 이론중심의 불교가 번성하고, 승려들은 대중을 위한 노력보다 붓다가 거부했던 형이상학적 논의(논쟁)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즉, 부파불교는 일반인을 위한 대중적인 노력보다 형이상학적인 논의에 치중하는 불교이론의 전문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신도들이 사원을 찾아가면, 연기, 팔정도, 사성제 할 때까지는 좋았는데, 차츰 공空, 색즉시공 .. 중관론, 유식론이 등장하면서 알아듣기 어려워진 것이다. 힌두교는 그냥 절대전능한 신을 믿으면 되는데, 까다로운 이론을 우선시하는 학문화된 이론불교는 점차 대중들에게서 멀어지게 됐다.
승가(수행자 집단)는 붓다가 가르친 수행(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자신들도 바르게 실천하고 대중들에게도 바르게 가르치는 자리이타의 노력보다는 형이상학적 논의에 치중하는 이론불교(아비달마불교)로 변질되고, 또 한편으로는 힌두화한 변질된 기복불교가 성행하면서, 일부 대승 승려들은 달마(보리달마, 5~6세기에 중국에서 선불교, 선종을 포교한 인물)처럼 인도를 벗어나 동쪽(중국, 티베트 등)으로 떠나가게 된 것이다.
불교가 난해하고 어려운 이론으로 무장하고 대승화되면서, 단순하게 힌두 신들에게 기도하고, 복을 빌고, 제사지내며 살던 단순한 대중에게 거부감이 나타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론보다는 가까이에서 항상 눈에 보이는 신상을 믿는 것이 편하고 일시적이나마 손쉽게 심리적인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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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초 찬드라굽타 2세의 아들 쿠마라굽타 1세에 의해 학문불교(이론불교)의 중심인 나란다(Nalanda, 那爛陀) 대학이 창건됐다. 현장이 구술 기록한 대당서역기에 의하면 7세기 중반(640년경)에 만 여명의 학생과 천 오백 여명의 교수가 있었던 이 대학의 기숙사와 수도원의 방에는 학승과 수행승 그리고 그들을 시중드는 하인들이 기거했다.
그리하여 나란다 대학으로 대표되는 학문불교는 토론과 교리공부를 통해 귀족과 지식층만을 위한 ‘학문화의 길’을 걸었다. 대중들로부터 멀어진 이런 학문불교는 그들만의 세계에 천착하면서 대중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데 인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승원(사찰)과 대학에서 학문연구에 몰두하고, 자기들끼리의 지적 유희에 빠져있는 사이 서민 대중들은 불교에 등을 돌리고 힌두교로 빠져들었다.
불교는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평등과 지혜와 자비(나와 너를 초월한 분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를 설파하는 멋진 교의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은 자기 학문에만 몰입하고, 부파 간의 경쟁과 논쟁에만 몰두한 나머지 자신들의 바른 수행은 물론이고 대중들을 소홀히 했다.
인도 대중들이 오랜 세월 동안 브라만교와 힌두교에 의해 세뇌되어 관습화된 카스트제도의 불평등과 불편함, 그리고 박티사상(붓다의 자비사상을 바탕으로 브라만사상, 토속신앙, 이슬람 수피사상을 교묘하게 혼합하여 민초들에게 어필한 힌두교 신앙운동이 박티신앙 또는 박티사상이다)에 점점 더 길들여 감에 따라 불교의 평등정신에 큰 매력을 못 느끼고 불교의 우수성은 인도 대중들에게 힘을 잃어갔다.
사정이 이러하니 악순환만 거듭되어 신도와 승려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브라만교가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토속신앙은 물론이고 힌두화한 불교마저도 흡수하여 재 탄생한 브라만교의 후신인 힌두교를 당해내기 어려웠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의 불교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교훈이다.
이 외에도 불교 멸망의 여러가지 내적 요인이 많겠으나 확실한 것은, 붓다가 가르친 바른 수행(팔정도를 닦는 수행)이 단절된 채 대중들과 유리된 승려 중심의 승원불교는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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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佛)의 가르침(法)을 지식(학문)으로만 공부하면 행복해지지 않는다. 붓다가 가르친 바른 수행(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바르게 실천하여 스스로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행복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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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교의 힌두화
인도대륙에서 불교의 쇠퇴를 이야기 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의 하나가 ‘불교의 힌두화’다.
살아 생전에 종교(Religion) 창시지가 되기를 거부하는 의사를 누누이 밝히고 강조한 붓다는 자신의 사후에 자신에 대한 우상화(형상의 우상화, 부처의 신격화)와 가르침에 대한 우상화(관념의 우상화, 가르침의 절대화)를 통해서 Religion(‘re다시+lig신과 결합하는+ion것’이라는 의미)로서의 신격화된 부처를 숭배하는 불교가 발생하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경계했다.
대승 불교의 신격화된 많은 부처들과 많은 보살들은, 대중들의 기복심리에 필요해 보이는 힌두교의 신들을 이름만 달리해 불교로 편입시킨 것이다. 이러다가 보니, 민초들은 별반 다를 것 없는 자기 집 근처의 힌두 신전에 있는 신들을 찾아가게 되었고, 그러면서 불교는 더욱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자 일부 대승 승려들은 달마(보리달마, 5~6세기에 중국에서 선불교, 선종을 포교한 인물)처럼 인도대륙을 벗어나 동쪽으로 가게 된 것이다.
“나는 지금 인도의 뿌네 대학에 다니면서 힌두교를 굳게 믿는 교수들 밑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그들은 서슴없이 불교와 힌두교는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왜 불교가 힌두교와 같은가라고 물으면 그들이 답하는 것은 힌두교의 사상과 불교의 사상(붓다가 설하지 않은 비불설 사상인 여래장 사상 등의 대승불교의 사상)이 같다는 것이다. 우리(불교인)가 아무리 그들과 같지 않다고 말해도 그들은 여전히 불교와 힌두교는 같다고 말할 것이다. 이제 방편이라는 이름으로 오해를 받을만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계속 변명하기보다는 차라리 오해 받지 않을 붓다(석가모니 부처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 허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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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도대륙에서 부처님 가르침이 변화된 불교(초기불교 ―> 부파불교 ―> 대승 중관불교 ―> 대승 유식불교 ―> 밀교)와 브라만교가 변화된 힌두교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예컨대 유가행파瑜伽行派 또는 요가차라(산스크리트어: योगाचार Yogācāra)라고 불리는 유식불교는 AD 4세기에 인도의 무착(아상가) 승려가 만든 대승불교 종파다. 여기서 유가瑜伽는 요가Yoga를 한문으로 음사한 것이다. 유식불교는 유식종唯識宗, 유식유가행불교, 유가행유식불교, 요가불교라고도 불린다.
고타마 싯달타 붓다(BC 624~544)의 가르침에 의해 BC 6세기말경에 불교가 출현한 후인 BC 4~2세기경에 편찬 저술된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ītā>는 바가바드Bhagavad(성스러운 자, 지극히 존귀한 자)의 기타Gītā(歌頌, 노래)라는 뜻이다.
카스트제도의 신분이나 남녀 차별(카스트제도에서 여성은 최하층 계급인 불가촉 천민보다도 낮은 계급으로 취급된다)은 물론이고 모든 중생(생명의 무리)에 대한 '자비, 분별(차별) 집착 없는 지혜로운 바른 사랑'을 가르친 붓다의 가르침은 바가바드 기타의 박티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신神에 대한 헌신'을 힌두교 용어로 박티Bhakti라 한다. 박티사상은 신에 대한 박티(헌신, 신애信愛)는 카스트제도의 신분이나 남녀의 차별을 초월하여 모두 최고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사상으로 정통 브라만교 사상과는 다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열렬한 신애信愛(헌신; 박티)의 정(정신, 감정)과 박티사상의 대중적인 인기는 사상적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브라만교가 이를 승인하기에 이르렀고 훗날 힌두교는 박티운동을 일으키게 된다. 힌두교에서 <바가바드 기타> 경전이 차지하는 위상은 비유하자면 기독교에서 신약성경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힌두교의 박티운동은 붓다의 자비사상을 바탕으로 브라만사상, 토속신앙, 이슬람 수피사상을 아전인수我田引水(자기 논에 물 댄다는 뜻으로, 무슨 일을 자기에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이르는 말) 격으로 교묘하게 혼합한 박티사상(박티신앙)을 인도 대중들에게 전파한 힌두교의 신앙운동이다. 박티신앙 운동 또는 박티사상 운동이라고도 한다.
힌두교는 힌두이즘을 바탕으로 브라만교(바라문교), 토속신앙, 불교, 자이나교, 이슬람교를 아전인수격으로 혼입하여 엄청난 수효의 신(3~4억에 달하는 힌두교 신들 중에는 부처와 예수, 알라까지도 들어가 있다. 부처는 비슈누신의 아홉 번째 화신이라고 주장한다)에 대한 다신교적 일신교(택일신교; 수많은 신들 중에서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주신을 택일하는 택일신교. 예컨대 비슈누신파, 시바신파, 크리슈나신파, 칼리신파, 가네쉬신파, 락슈미신파, 인드라신파, 석가모니신파.. 등등) 신앙이 혼재된 매우 복잡한 종교다.
요컨대 힌두교는 브라만신을 중심으로한 신앙과 힌두교에 비해 소수 정예의 신을 가진 브라만교가 엄청난 수효의 신과 다양한 신을 중심으로한 신앙을 가진 다신교적 일신교(택일신교)로 재 탄생된 종교다.
브라만교가 언제 힌두교로 바뀌었는지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힌두교는 BC 3세기경 일단 골격이 성립하였지만 AD 7∼10세기경에 지금의 다신교적 일신교(택일신교) 형태의 힌두교로 성립된 종교다.
15세기에 인도대륙의 동북부에서 시작된 힌두교의 박티운동(박티신앙 운동)은 삽시간에 인도 전역은 물론이고 주변 국가로 퍼져나갔다. 신에 대한 헌신(박티)으로 신에게 제사나 기도를 드린 후에는 반드시 재물을 헌공(보시, 기부; 박티)해야만 신의 은총(가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박티신앙은 힌두교의 재정을 풍부하게 했고 힌두교 교세 확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신에 대한 헌신, 그리고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통해 구원(해탈)에 이르는 것, 이를 박티신앙이라 한다. 즉 신을 사랑하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과 같고 그로 인해 지혜가 열리고 신에게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카스트제도의 신분과 남녀 차별을 떠나 구원(해탈)에 이르는 가장 손쉬운 길을 제시하는 박티신앙(박티사상)은 인도 대중들, 특히 서민층과 하급 계층, 그리고 (카스트제도에서 불가촉 천민보다도 낮은 계급으로 취급 받는) 여성들의 열광적이고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박티사상(박티신앙)의 대중적인 인기는 보살도를 강조하는 대승불교 사상과 부처의 신격화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여러 가지 내부적 요인과 힌두교 박티사상(박티신앙)의 대중적인 인기로 불교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불교교단은 힌두교의 박티사상(박티신앙)을 받아들이고, 힌두교에서 유입된 신격화된 보살들(힌두 신들이 부처님께 귀의해 보살이 됐다는 신격화된 보살들)과 신격화된 부처들(힌두교의 삼신인 브라만신, 비슈누신, 시바신과 유사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의 삼신불 등 수많은 신격화된 부처들)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7~8세기경부터는 힌두교의 의례의식(제사의례, 기도의식, 헌공의식, 불공의식 등)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여 불교의 가장 중요한 종교의식과 종교행사로 정착시키면서 9~10세기경부터 불교는 힌두교와 구분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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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적 요인
외부적 요인으로 힌두교의 융성과 힌두교의 경쟁 종교인 불교에 대한 집요한 박해, 그리고 이슬람의 침략에 따른 무자비한 파괴로 1700년 간 명맥을 이어온 인도 불교는 1203년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이슬람교도인 아프카니스탄의 투르크계 가즈니Ghazni 왕조는 986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도 정복을 시작했다. 이들은 북인도 원정에서 이민족의 이슬람교로의 개종, 노예 획득과 재물 약탈이 주된 목적이었으므로 점령지를 오랫동안 지배하지 않았지만 불교나 힌두교의 사원과 성지를 파괴하고 보물을 약탈했으며 승려를 살해하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참극을 자행했다.
그 후 이슬람교도인 구르Ghur 왕조에 이르러서, 1203년 당시 불교(정확히는 밀교불교)의 교단 근거지라 할 비크라마쉴라 사원(밀교불교 사원)이 파괴되면서 불교는 인도대륙에서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게 됐다.
결국 불교의 고향 인도에서 불교가 쇠망한 원인은 다양한 신들로 이루어진 힌두교에 동화되어 정법을 지키지 못한 데 있다. 새로운 불교운동이라 할 대승불교가 등장했으나 대승불교 역시 초기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힌두화에 앞장섰다. 힌두화 된 불교는 붓다(석가모니 부처님)가 그토록 비판했던 주술주의(만트라; 진언, 신비한 주문, 비밀 주문 등) 의례주의(불공, 기도, 제사의례 등)를 불교 안에 도입했고, 불교는 서서히 힌두교에 동화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7세기(629년~645년)에 현장이 인도 곳곳을 탐방한 것을 구술 기록한 대당서역기의 내용 중에, “신드Sindh 지역의 수행승이 처자식과 함께 살면서 가축도 기르고 살생을 일삼는다.”는 대목이 있다. 이렇게 붓다의 가르침과 바른 수행의 전통이 단절된 승려들의 타락과 부패, 교단의 무능함, 신도 양성의 부재, 거기에 이슬람의 침공이 결정적으로 불교를 멸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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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브라만 사상의 환경 속에서 생겨난 불교였고 힌두교(브라만교의 전승)와 더불어 교리의 변천이 이루어졌으며 결국 힌두교 속으로 함몰되어버린 인도의 불교역사(佛敎史)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붓다의 생생한 진리의 가르침은 부파불교(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관념적인 교리변천(수많은 위경들과 아비담마, 아비다르마, 아비달마, 논서, 논장)을 거치면서 마침내 힌두교화 되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인도 땅에서 힌두교는 번성하고 마침내 불교가 사라진 것은 불교(붓다의 가르침)가 서서히 변형되면서 불교의 '진리로서의 생생한 생명력'과 '생생한 실천력, 즉 붓다가 가르친 실천법인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의 실천의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며,
소위 기도발이 더 좋은, 즉 영험한 신들이 더 많은 더 좋은 기복신앙인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과 어리석은 견해와 어리석은 믿음에 더 잘 부합하는) 힌두교만 믿으면, 힌두교화된(위경들을 통해서 힌두교의 신들과 비슷하게 부처들이 신격화되고, 교리사상적으로도 힌두교와 유사해진) 불교는 자동적으로 내포된다고 인도인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인도에서의 불교 멸망에는 여러 가지 내적, 외적 요인들이 많겠으나 확실한 것은, 붓다가 가르친 바른 수행(팔정도를 닦는 수행)이 단절된 채 대중들과 유리된 승려 중심의 승원불교, 학문불교, 기복불교는 결국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상이 인도대륙에서 불교가 멸망한 인도의 불교역사, 즉 초기불교 -> 부파불교(소승불교) -> 대승불교의 역사, 좀 더 상세히는 초기불교 ―> 부파불교/소승불교 ―> 대승 중관론 ―> 대승 유식론 ―> 밀교의 역사이다
인도에서의 불교 멸망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멸망해갔던 과정과 상황이 현재 한국불교가 처해 있는 상황과 너무 유사하기 때문이다. 즉, 힌두교가 불교를 대체했듯이 기독교가 불교를 대체해가고 있으며, 불교가 힌두화 했듯이 우리나라에선 49재나 천도재와 같은 방편불교가 성행하고, 제불보살을 신격화하는 기도의식과 기복불교가 성행하면서 기복으로 충당하는 사찰재정과 그 축재로 타락해가는 권력화된 한국불교 종단의 지도층,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붓다가 가르친 바른 수행인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이 오랜 세월 동안 단절되면서 변질된 수행풍토다.
그런가 하면 관세음보살로 대표 되는 ‘관음신앙’, 아미타불로 대표 되는 ‘정토신앙’, 지장보살로 대표 되는 ‘지장신앙’과 같은 타력신앙은 본질적으로 타력신앙의 종교인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어서 본질적으로 자력신앙의 종교인 불교의 특징이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기도로 소원을 성취하려 한다면 소위 기도발이 더 좋다는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낫다) 바로 이런 현상이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기복신앙인 힌두교에 점차로 동화되면서 멸망하게 된 현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우선 시급한 것은 불자(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자)들과 소통하기엔 너무 큰 간격을 지니고 있는 어렵고 난해한 (많은 위경을 포함한) 한문경전을 대체할 수 있도록, 붓다가 설한 경전을 우리말로 바르게 번역하고 널리 보급하여 불자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국불교의 미래에 내려진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붓다가 가르친 바른 수행인 '팔정도 바와나(바와나는 계발 수행을 뜻하는 고대인도어), 즉 실라(戒; 정어·정업·정명)•사마디(定; 정정진·정념·정정)•빤냐(慧; 정견·정사유)를 계발하는(닦는) 수행(한문 번역경전의 표현으로 말하면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이고 붓다가 사용한 고대인도어로 말하면 실라•사마타•위빠사나)'을 붓다가 설한 경전에 의거해서 올바르게 복원하는 문제가 한국불교의 미래에 내려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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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부처님께서는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어떤 신(브라만, 하느님, 신격화된 부처..)이나 어떤 신격화된 보살(천수천안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에게 복과 지혜와 사랑을 구하는 기도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바른 실천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가르쳤다
진정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어떤 위대한 존재(신, 브라만, 하느님, 여호와, 하늘님, 신격화된 부처,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등)에게 복(행복)과 지혜와 사랑을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진정으로 행복진다
부처님(佛) 가르침(法, 敎)을 지식(학문, 교학)으로만 공부하면 행복해지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가르친 바른 수행(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바르게 실천하여 스스로 지혜롭고 자비로운(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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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상) : 무엇이 정법(正法;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죽이는가? ; 유사정법의 출현, 불교수행의 변질, 학문불교와 기복불교
사진(좌하) : 5세기 초 찬드라굽타 2세의 아들 쿠마라굽타 1세에 의해 건립된 학문불교의 중심인 나란다(Nalanda, 那爛陀) 대학의 유적. 이 유적지를 살펴보면 학승과 수행승들의 기숙사에는 시중드는 하인들의 방이 승려의 방마다 딸려 있다. '지식은 아무리 많이 쌓아도 지혜가 될 수 없다.'
사진(우하) : 조계종의 본찰인 조계사에서 종종 벌어지는 사자충들의 집단 난투극
사자의 몸에 기생하는 사자충은 사자의 몸속에서 사자의 살을 파 먹으며 자라서 결국 백수의 제왕인 사자를 죽게 만든다는 벌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든다는 승려(스님; 비구, 비구니)들 중에도 사자충들이 많이 있다. 자신이 사자충인 줄 알기도 하고 또는 모르기도 한, 또는 다른 사람과 신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조차도 최면을 거는 여러 종류의 사자충들이 참 많이 있다.
이들은 정법(正法; 스승의 바른 가르침)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변질시켜 자신들의 개인적, 집단적 사리사욕을 채우고 결국은 스승의 가르침을 죽이는 사자충 같은 존재들이다.
젊은이들 중에는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이나, 또는 중고등학교에서 과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할머니, 할아버지..)에게나 미신적 기복신앙인 불교(정확히는 변질된 불교)가 먹혔을지는 모르지만..." 이라고 말하거나 심지어 절을 '고상한 점집이나 품위 있는(격조 있는) 무당집'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사람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저도 한 때는 그러했듯이, 주변에 붓다의 가르침(佛法, 佛敎)에 대한 오해가 참 많습니다."붓다(佛)의 가르침(敎, 法)은 비과학적이다, 어렵다, 난해하다, 고리타분하다, 무익하다, 염세주의다, 비관주의다, 허무주의다, 이상주의다, 비현실적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실천이 불가능하다, 붓다가 가르친 수행은 너무 피상적이고 어렵고 고통스럽다, 불교는 미신적이다. (변질된 불교가 미신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변질된 불교경전이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난해하고 ... 비현실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변질 변형된 불교수행이 피상적이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들의 붓다의 가르침(불교佛敎)에 대한 오해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막연한 것인데 비해서, 한국(일본, 중국..) 사람들의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는 변질된 불교와 변질된 불교경전을 붓다의 가르침으로 잘 못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보다 잘 못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가 더 심각하고 오해를 깨는 것도 더 어렵습니다.
붓다께서 발견하시고 설(설명)하신 '우주자연(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실상(실제 모습)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일상적인 관찰능력’으로는 볼 수도 없고 따라서 이해가 잘 안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제가 붓다의 가르침(설법; 법을 설명함)을 공부하면서 이해한 것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제 자신의 공부와 실천(수행)을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제 자식들을 포함하여 붓다의 가르침(佛法, 佛敎)에 대한 오해로 가득 찬 요즘 젊은이들이 붓다의 바른 가르침(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담마, 다르마, 佛法)에 관심과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변질되지 않은 붓다의 바른 가르침(正法)과 바른 실천(팔정도 바와나;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이 오늘날에도 바르게 전승 전파되어 고통 받는 사람들 모두가 진정(眞正)으로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Moosim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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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길고 어려운 내용의 자료들을 짧은 지면에 간단하고 쉬운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붓다의 가르침 사진첩에 글들을 포스팅하는 이유는 붓다(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고 싶어하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바른 수행(팔정도 바와나; 팔정도를 계발하는 수행)을 바르게 실천하는데 목마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수행이 처음이시라면 담마코리아라는 곳을 추천합니다. 비용은 수행 후에 자율 보시입니다. 제 경험상 수행의 입문처로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