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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無心님의 불교이야기

대념처경


《마하사띠빳타나 숫따(Mahā·Sati·Paṭṭhāna Sutta ; 사띠를 확립하고 정착하는 수행에 대한 부처님 설법을 기록한 긴 경; 大念處經)》 (2019.6.19. 재교정)

§1. 서언

"수행자들이여, 이 길은 중생(뭇 생명)들의 삶을 정화시키고, 근심과 슬픔과 번민을 극복하게 하고,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바른 길로 이끌어 마침내 무상정등각(위없이 평등하고 완전한 바른 깨달음; 줄임말로 정각)을 증득하게 하고 열반(닙비나nibbana, 니르바나; 완전한 행복)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ekāyana magga)’이니, 이름하여 '네 가지에 대한 사띠sati(마음챙겨 알아차림; 念)의 빳타나paṭṭhāna(확립 정착; 建立, 住立, 處)'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그것은 몸(身)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 감각(受)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 마음(心)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 그리고 법法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이다."

<각주 : '신수심법身受心法 네(四) 가지에 대한 사띠(念)를 확립하고 정착(處)하는 수행'은 탐진치와 모든 번뇌를 제거하여 청정淸淨하게 한다.

탐진치와 번뇌의 제거는 순간적인(momentary) 제거, 일시적인(temporary) 제거, 완전한(total, complete) 제거가 있다. 순간적인 제거는 마음의 고요집중과 산란이 되풀이되는 초보 단계에서 고요집중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순간의 탐진치와 번뇌의 사라짐을 말하며, 일시적인 제거는 마음의 고요집중 상태가 어느 정도 지속되고 깊어진 연후에 한시적으로 탐진치와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수행을 한동안 하지 않으면 탐진치와 번뇌는 다시 일어난다. 무상정등각을 증득하고 열반에 이르면 탐진치와 번뇌는 완전히 제거되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각주 : 초기불교를 대표하는 실實수행법

사념처四念處 수행이란 무엇인가. 팔정도를 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 실라-사마타-위빠사나)의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인 사념처 수행은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에 대해 지속적으로 '마음챙겨 알아차림'으로써 경험하는 현상들의 본질을 깨달아 정각(해탈, 열반)을 증득하는 수행법이다.

사념처四念處는 부처님Buddha이 사용하신 고대인도어 짯따로cattāro 사띠sati 빳타나paṭṭhānā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으로, 그 뜻을 풀이하자면 (신身·수受·심心·법法) ‘네 가지(cattāro; 四)에 대한 사띠(sati; 마음챙겨 알아차림, 念)의 빳타나(paṭṭhānā; 확립 정착, 建立, 住立, 處)’라는 뜻이다.

사념처 수행, 즉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 네 가지에 대한 사띠(마음챙겨 알아차림)를 확립하고 정착하는 수행은 사성제四聖諦의 실현을 최종 목적으로 하며 거기에 이르는 여러 절차를 망라한다.

사념처 수행은 남방 상좌부불교의 전통적인 명상법으로 알려져 있으며 위빠사나라는 이름으로도 (잘못) 알려져 있다.

사념처 수행은 고요히 집중된 바른 사띠라는 심리적 기능(작용)을 기초로 한다. 바른 사띠(samma·sati)는 바른 마음챙김과 바른 알아차림(sam·pajañña)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마음챙김이란 마음이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고 알아차림이란 그러한 상태를 지속하면서 개개의 현상들을 그때그때 명확하게 아는 것이다. 이들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실상과 진리에 눈을 떠 나가는 과정이 사념처 수행이다. 사념처 수행에는 고요히 집중됨을 뜻하는 사마타samatha의 측면과 통찰(깊은 관찰)을 의미하는 위빠사나vipassanā의 측면이 함께 포함된다.

사념처 수행을 위빠사나 일변도의 수행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경전에 설해진 사념처 수행은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망라하는 포괄적인 내용을 지닌다. 예컨대 느낌(受)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수념처受念處)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이 포함된다(DN. II. 298). 그런데 그러한 느낌이란 일상적인 상태에서는 포착되지 않으며 ‘즐거움도 끊어지고 괴로움도 끊어진’ 네 번째 선정(第四禪) 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사념처 수행이 반드시 사마타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마음(心)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심념처心念處)에는 내면에 깃든 탐욕이나 분노에 대한 알아차림이 포함된다(DN. II. 299). 탐욕이라든가 분노 따위는 사마타의 선정 삼매 상태에 이르면 저절로 가라앉는 거친 감정들이다. 따라서 탐욕이나 분노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을 내용으로 하는 사념처 수행은 일상의 상태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념처 수행에서 맨 마지막으로 설해진 법(法)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법념처法念處)은 특수한 성격을 지닌다. 거기에는 오개五蓋(다섯 장애), 오온五蘊(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질적, 정신적 다섯 무더기), 육내외처六內外處(여섯 가지 감각 기관/기능과 그 대상), 칠각지七覺支(정각으로 인도하는 원인이 되는 일곱 가지 요소), 사선정四禪定(네 단계의 선정)과 사성제四聖諦(네 가지 고귀한 진리)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이 세부 내용으로 언급된다(DN. II. 300-314). 이들은 몸·느낌·마음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을 통해 자신과 세상의 실상(실제 모습; 연기의 실상)과 진리(진실한 이치, 자연의 이치/법칙, 연기의 이치/법칙; 연기의 진리)를 체득하는 가르침을 망라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몸이나 느낌 등에 관련된 현상들이 매순간 인과 연기적으로 일어남(生 또는 集)과 사라짐(滅)을 반복하면서 그 비실체성(無我, an·atta : 실체atta 아님an)을 드러낼 때 다섯 장애라든가 오온의 본질을 꿰뚫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의 연장선에서 궁극에는 사성제四聖諦를 체득하게 된다.

증지부 경전에서는 팔정도를 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 실라-사마타-위빠사나)의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인 사념처 수행을 실천함으로써 계율을 닦는 수행(실라 바와나, 계행戒行)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AN. V. 457-460). 또한 고요함을 가로막는 탐냄 따위의 내면의 장애를 제거할 수 있고, 육체(色)·느낌(受)·지각(想) 따위에 대한 집착(오취온)을 버릴 수 있고, 정신적 성취를 가로막는 갖가지 내면의 족쇄를 제거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사념처 수행은 출가 수행자(비구, 비구니)들 뿐만 아니라 일반 재가 수행자들에게도 개방되어 널리 행해졌다고 전해진다(MN. I. 340쪽).

; 이 각주는 법보신문에 실린 글(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70172)을 일부 수정 보완한 것이다.>

<각주 : 사마타(선정 삼매 계발 수행; 정정진·정념·정정 계발 수행)가 호흡 등 한 가지 대상에 '사띠를 집중하는 것'이라면, 위빠사나(통찰 지혜 계발 수행; 사마타 후에 하는 깊은 정견·정사유 계발 수행)는 여러가지 대상(身受心法)을 '사띠하여 이어보는(관찰하는) 것'이다.

팔정도를 닦는(계발하는) 수행을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으로 좁혀가면 사마디(삼매)와 사띠가 남는다.>

<각주 : 념念은 '지금(今)+마음(心)'의 합성어로 고대인도어 사띠sati를 한문(중국어)으로 번역한 것이다. 사띠를 우리말(한국어, 한글)로 번역하면 현재순간(지금)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전념하여 ‘마음챙겨 알아차림' 정도로 표현하면 그 의미가 유사하다.

한문 경전에서 념念(생각 념; 마음에 둠, 기억함)이라고 번역하는 사띠sati는 부처님 설법(법法을 설명함)에서 '마음챙김, 전념함, (되)새김, 기억함, 빠자나pajāna(알아차림; 앎, 이해), 깨어있음(awakening), 자각함(self-consciousness), 전념하여 또는 마음챙겨 알아차림 등'의 의미로 폭넓게 사용된다.

사띠sati는 대개 빠자나pajāna(알아차림)를 포함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강조하기 위해서 마음챙김[사띠]과 알아차림[빠자나]으로 분리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정념正念이라고 한역하는 삼마사띠samma-sati도 대개 삼빠자나sam-pajāna(바른 알아차림; 바른 앎, 바른 이해, 분명한 이해)를 포함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강조하기 위해서 삼마사띠와 삼빠자나를 분리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참고로 삼빠자나sam-pajāna에서 ‘삼sam’을 빼면 ‘빠자나pajāna’인데, ‘빠자나pajāna’의 동사형이 ‘빠자나띠pajanati’다. ‘삼sam’은 흔히 ‘삼붓다, 삼보리, 삼마사띠(바른 사띠) 등등’에서처럼 단어 앞에 붙는 접두어로 ‘바른’이라는 뜻이다. 빤냐paññā(혜慧, 지혜; 반야는 빤냐의 한문 음사)의 동사형도 ‘빠자나띠pajanati(알다, 이해하다)’이다.>

<각주 : 부처님이 '신수심법 네 가지에 대해서 사띠를 확립하고 정착하는 수행 방법'을 설(설명)하신 경이 『마하 사띠 빳타나 숫따(사띠 확립 정착에 대한 큰 경; 대념처경大念處經), D22』와 『사띠 빳타나 숫따(사띠 확립 정착 경; 념처경念處經), M10』인데 두 경전은 그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경전은 신수심법의 네 가지 큰 분류 아래 호흡을 시작으로하여 16가지 소분류의 수행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각주 : 이 경전은 정각(완전한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여덟 부분으로 이루어진 바른 길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팔정도 바와나 = 실라-사마디-빤냐 바와나 = 실라-사마타-위빠사나)의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에 있어서 매우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닦는 계행戒行(실라戒를 닦는 수행行 = 실라 바와나)은 정행定行(사마디定를 닦는 수행行 = 사마디 바와나 = 사마타; 지止 수행)과 혜행慧行(사마타 후에 깊은 빤냐慧를 닦는 수행行 = 빤냐 바와나 = 위빠사나; 관觀 수행)의 기반(기초, 토대, 바탕)이 된다.

달리 말하면 계행戒行(실라戒를 닦는 수행行)은 팔정도를 닦는 수행의 실實수행(실제 수행, 본격적인 수행)인 '사념처 수행, 즉 지관止觀(사마타-위빠사나) 겸수(상호의존) 방식으로 신수심법 네 가지에 대한 사띠를 확립하고 정착하는 수행’의 기반(기초, 토대, 바탕)이 된다.

사념처 수행의 핵심 요체는 신수심법(달리 표현하면 자신과 세상)을 여실히(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사띠를 확립하고 정착하는 것이다

이 경전은 일상생활에서 신수심법을 사띠하는 수행과 사마타(호흡에 대한 사띠를 확립 정착하여 선정 삼매를 계발하는 수행)와 위빠사나[사마타 후에 선정 삼매에서 계발된 극대화된 고요집중의 사띠와 평점심을 사용해서 신수심법을 '사띠하여 이어보면서'(관찰하면서) 머무는 수행]을 모두 포함하여, 신수심법에 대한 사띠를 확립하고 정착하는 수행 방법을 상세히 설(설명)하신 부처님의 설법을 기록한 경전이다

요컨대 부처님이 이 경전으로 설(설명)하신 '사념처四念處 수행(신수심법 네四 가지에 대한 사띠念를 확립 정착處하는 수행)'은 이 경전 본문의 1.1절에서 설(설명)하신 '아나빠나사띠(호흡에 대한 사띠)의 확립 정착 수행'을 기초 토대로 하여 지관겸수止觀兼修(사마타-위빠사나 상호의존) 방식으로 신수심법에 대한 사띠sati(마음챙겨 알아차림; 念)를 빳타나paṭṭhāna(확립 정착; 建立, 住立, 處)하는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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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ure_무상정등각(위없이 평등하고 완전한 바른 깨달음; 줄임말로 정각)을 증득하게 하고 열반(닙비나, 니르바나; 완전한 행복)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ekāyana magga)’을 수행자들에게 설(설명)하시는 부처님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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