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 1900~ 1980)은 사상가이자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와 같은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알린 지식인입니다. 저서가 많이 읽혔다는 것은 추상적이지 않고 바로 와닿는 것 입니다. 반면 철학계에서는 무시하는 느낌이 많지요. 난해해야 대접받는 경향이 있는데 에리히 프롬을 통속적인 사상가로 여기는 것에 안타깝습니다. 그의 철학은 과소평가 되고 있습니다.
프롬의 철학은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철학까지 그 폭이 넓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선불교와 유대교, 기독교신비주의, 실존철학, 맑스철학 등 어느 특정한 철학 체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프롬은 평생에 걸친 것을 현대인과 현대사회의 병리적인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사고와 열정을 바쳤습니다. 단순한 이론가에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를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고, 정신분석과 맑시즘을 종합하려 했습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사회적 성격’의 개념입니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우리의 성격을 하나의 성격으로 몰아갑니다. 프롬은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에 자신이 잘 팔리도록 스스로의 성격을 변화 시킨다고 봤습니다.
자본주의사회가 어릴때부터 교육을 통해 소유에 기쁨을 느끼도록 만들고 이기적이고 타산적으로 사고하도록 성격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대인은 이성적 실현과 존재가치가 아닌 소유함에 있어서 행복을 느낍니다. 소유하느냐, 소유하지 못하느냐가 행복의 척도처럼 됐습니다. 프롬은 이같은 상황이 현대인을 병들게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근본적으로 불교와 프롬은 서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프롬의 정신분석학도 마음을 어떻게 행복하게 만드는가를 주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를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프롬은 불교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졌던 사상가였기 때문입니다.
프롬은 불교야말로 철저하게 이성에 입각한 종교이며 어떠한 비합리적인 신비화나 계시나 권위도 인정하는 종교라고 격찬했습니다. 실제 프롬은 불교와 노자에 대해 높이 평가했고, 특히 자신의 정신분석학과 불교는 동일한 목표를 갖는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프롬은 독일 태생의 유대인이었고 독실한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 자신도 어릴적 꿈은 유대경전인 〈탈무드〉의 연구가였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을 겪고 1918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그는 유대교를 버리고 비유신론적 휴머니즘을 자신의 신조로 삼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치의 박해가 심해지자 프롬은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그곳에서 여러 새로운 행보를 보인 프롬은 이스라엘 국가 재건을 목표로 한 시오니즘을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프롬이 불교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세 중반입니다.대학시절 정통적 유대교 교리와 관습을 포기하게 된 중요한 동기는 불교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의 불교적 이해를 심화시킨 것은 스즈키다이세츠 와의 만남 때문입니다. 프롬은 1956년 당시 뉴욕에 있었던 다이세츠와 선불교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이때 그는 선불교의 본질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이후 프롬은 1957년 다이세츠와 ‘정신분석학과 선불교’를 주제로 한 공동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프롬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이해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프롬은 매일 아침 10시에서 11시까지 명상을 했습니다. 실제로 프롬은 1975년에 자신의 75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병으로 쇠약해져 있었지만 전혀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두 시간에 걸쳐서 발표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프롬에게 그 비결을 묻자 “아침 2시간 동안 호흡과 명상을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선에 대한 이해와 수행을 병행했던 프롬은 선 불교에 대해 이런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선은 내가 알고있는 한에서는 가장 세련된 반(反)이데올로기적이고 이성적인 체계이며, 그것은 ‘비종교적’종교‘( nonreligious’religion)를 발전시키고 있다. 선이 서양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열렬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서 양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다.”
‘반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독단적이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고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맹신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 종교적 종교'라는 것은 유신론적 종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양적 사고방식에는 기독교를 '대표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불교를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많습니다. 프롬은 불교를 종교라고 봤습니다. 이성을 강화시키고 독립시키는 것이 종교의 본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서 한 구절에서 프롬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떤 종교를 분류할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그것이 인격신의 존재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유일신교냐 다신교냐가 아니라 그것이 권위주의적 종교냐 아니면 인본주의적 종교냐 이다.” 이렇듯 프롬은 종교를 이야기할 때 권위주의적 종교와 인본주의적 종교를 분류했습니다. 그는 종교를 신(神) 중심으로 보지 않고 종교를 믿음으로써 인간이 얼마나 진보할 수 있냐는 것을 중요한 척도라고 봤습니다.
모든 권위주의적 종교는 신의 이름은 다를지 모르지만 인간은 퇴보하게 됩니다. 북한의 체계도 권위주의적 종교 형태이고 구복(기복)신앙도 같은 형태입니다. 이를 믿으면 믿을수록 이기적이게 됩니다.
인본주의적 종교에서 신은 윤리적 가치고 궁극적 가치 실현입니다. 따라서 인본주의적 종교의 이념에 충실할수록 사람들은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비롯한 지혜를 더욱 성숙시키게 되며 모든 생명과 사물에 대해서 공감과 애정을 갖게 됩니다.
프롬은 불교를 인류역사상 나타난 모든 종교들 중에서 가장 '우상파괴적인 종교'일 뿐 아니라 철저하게 인본주의적 종교라고 평가했습니다. 대표 저서〈소유냐 존재냐〉는 불교 사상이 프롬의 사상에 미친 깊은 영향을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현대사회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소유지향적인 삶과 사회구조에서 비롯된다고 보면서 존재지향적인 삶과 사회구조를 대안으로 제시한 책입니다.
소유지향적인 삶이란 현대인들을 규정하고 있는 삶의 방식으로써 삶의 의미를 보다 많은 물질의 소유와 쾌락의 향유에서 찾는 삶의 방식입니다. 소유지향적인 삶의 방식에 의해 지배될수록 인간은 물질과 쾌락을 즐기는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쾌락에 예속되는 노예가 됩니다.
이렇게 물질과 쾌락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근본적인 불만을 느끼고 있고 이는 삶에 대한 공허감과 우울증 그리고 깊은 권태감 등으로 나타납니다. 현대인들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자신의 존재의 밑바닥에 큰 구멍이 뚫려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프롬은 공허함과 우울증 그리고 깊은 권태감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존재지향적인 삶의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봤습니다. 존재지향적인 삶의 방식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자들의 성스러움을 경험하면서 그것들과 교감을 나누는 삶입니다. 이러한 존재지향적인 삶의 방식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인 지혜와 사랑을 능동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프롬은 주장했습니다.
프롬이 존재지향적인 삶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삶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에 입각한 삶이며, 소유지향적인 삶의 방식은 탐욕과 분노 그리고 무지라는 삼독(三毒)에 사로잡혀 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간취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롬이 주장한 존재지향적 삶을 위한 과제들을 소개합니다.
첫째로, 소유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둘째로,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셋째로, 과거에 대한 회한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완전히 존재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넷째로, 인간의 사악함과 파괴성은 인간이 자신의 인격적인 성장을 실현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나타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와 모든 사람들의 완전한 성장을 실현하는 것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다섯째로, 자기 이외의 어떠한 인간이나 사물도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여섯째로,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지만 또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속지도 않는 지혜로운 인간이 돼야 합니다. 즉, 자기 자신과 타인들의 장점과 약점을 냉철하게 통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곱째로,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수양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반드시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야심은 없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야심도 탐욕과 소유의 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느냐는 운명에 맡기고 성장하고 있는 삶의 과정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입니다.
▶︎ 소유와 존재의 차이
박찬국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 및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1년〈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연구〉로 제5회‘청송학술상’을, 2014년〈니체와 불교〉로 제5회 ‘원효학술상’을 수상했다.
미붓아카데미가 7월 10일 시작한 인문강좌 ‘21세가 불교를 철학하다’가 구랍 18일 강연으로 5개월 간의 장정을 마쳤다. 약 1500명이 강좌를 들었고, 이중에는 스님과 불교신자뿐만 아니라 타 종교인도 상당수 있었다. ‘강남발 불교철학 열풍’이라는 소문은 허언은 아니었다. 마지막 강연은 니체 철학의 대가 박찬국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주제는 에리히 프롬이었다. 정신분석부터 사회·정치 등을 넘나들었던 사상가 에리히 프롬의 철학과 불교사상의 연관성을 찾아본 강연을 정리했다. - 현대불교 제 1078호 / 2016년 1월 6일 / 불기 2560년 / 정리=신성민 기자 motp79@hyunb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