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수행하는 삶
사람들은 걷기 명상이나 좌선, 혹은 법문을 듣는 것이 곧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옳은 말이지만 그런 것들은 외적인 형태의 수행일 뿐이다. 진정한 수행은 감각의 대상과 마주쳤을 때 마음 안에서 일어난다. 감각이 일어나는 곳, 바로 거기에서 수행은 시작된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면 그곳에 미움이 자라고 듣기 좋은 말을 하면 기쁨이 자란다. 수행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주위 모든 사람이 평생 당신에게 좋은 말만 해줄 것을 기대하는가? 그것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음을 열고 법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서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걸을 때나 주위의 모든 것을 공부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과, 세상의 진리를 알아야 한다. 세상은 우리가 분명하게 이해해야 하는 대상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마음속에는 여전히 불안이 남아 있다. 반면 그러한 감정의 본질을 이해하면 ‘좋아하는 감정 안에는 아무 것도 없구나. 이것은 그저 생겼다가 사라지는구나. 싫어하는 감정도 그저 생겼다가 사라지는데 왜 그것에 휩쓸려야 하는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쾌락과 고통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혼란에 빠진다. 이 혼란은 서로의 먹이가 되면서 끝나지 않는 사슬로 이어진다.
세상의 방식으로 평화를 얻고자 할 때 당신이 끄는 수레의 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가고 바퀴 자국도 끝없이 길게 늘어진다. 세상을 따르기 시작하면 멈출 수도 쉴 수도 없다. 그러나 당신이 멈추면 수레도 쉴 수 있다. 바퀴(업)는 더 이상 구르지 않는다. 예전의 방식을 따르는 한 영원히 멈춰 설 수 없다. 그러나 멈추어 서는 순간 비로소 쉴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법의 수행이다.
- <아잔 차의 마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