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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지구별 여행자外_류시화님

나는 누구인가



뭄바이 부근의 명상 센터에서 지낼 때의 일이다. 한 한국인 여성이 심한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아서 내가 신경정신과 의원에 데려가게 되었다. 먼저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진료 예약을 하면서 증세를 설명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의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친절하게 맞으며 의자를 권했다. 검은 뿔테 안경에 지적인 인상이었다.

우리가 앞에 앉자 의사는 나에게 이름과 나이, 결혼 여부, 과거의 병력, 인도에 온 이유 등을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내 대답을 받아 적었다. 그러더니 나더러 입을 벌려 혀를 내밀라고 하고는 검안경으로 내 눈의 홍채를 살폈다. 그리고 두통과 환청에 시달리는지 물었다. 나를 환자로 착각한 것이다.

내가 아니라 옆의 여성 때문에 왔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의사는 내 외모와 분위기를 보고 나를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단정했다. 그리고 내 말투와 시선과 혀의 색깔까지도 모두 그 관점에서 판단했다.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나는 더욱 엇나가는 대답과 행동을 보였고, 의사는 확신을 갖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동안 정작 환자인 여성은 전개되는 상황이 매우 흥미롭다는 듯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난데없이 인도인 전문의로부터 정신착란증 진단을 받게 되었다.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닐 때가 많다. 사람들은 나를 만나지만 사실은 내가 아니라 자신들이 상상하고 추측하는 나를 만난다. 오래 만난 사이에도 때로는 그 접점이 너무 멀어서 진정한 만남이 불가능하다. 한번은 네팔 카트만두의 원숭이 사원에서 다리를 쉴 겸 걸인들 옆에 앉아 있는데 한국인 아주머니가 다가와 5루피(50원 가량) 동전을 던져 주고 사진까지 찍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알아보고는 "왜 여기에 이렇게 앉아 있느냐?"고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나는 일부러 나 아닌 척을 했고, 그녀는 다시 한 번 사진을 찍었다.

나는 타인이 말하는 '누구여야만 하는' 나가 아니며 '어디에 있어야만 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살아 있는 존재이므로 매 순간 다른 나이고, 어디에 있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나이다. 따라서 타인이 생각하는 나나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자신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불행과 불만족은 시작된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가진 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게 된다. 우리 자신은 하나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변화하는 무수한 모습들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라다크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그 내면의 줄무늬는 타인이 읽어 내기 힘들다. 그 줄무늬는 삶 속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면서 성장과 변신의 그림을 그려 나간다.

작자 미상인 다음의 글에 나는 동의한다.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당신의 스토리는 모른다. 그들은 당신이 해 온 것들은 들었지만, 당신이 겪어 온 일들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당신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당신 자신의 생각이다. 때로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최고의 것을 해야만 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이 아니라.'

- 류시화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더숲출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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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가 베트남어로 번역되어 하노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베트남어 제목은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 새』입니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베트남 친구 부 티 투 짱이 번역서를 읽고 사진과 함께 다음의 감상문을 보내왔습니다.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 새』 중 제일 감명 있게 읽은 글은 바로 「Ta là ai?」(나는 누구인가)였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글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나서 나 자신의 잣대를 기준 삼아 타인을 판단하거나 편견을 가지고 남을 평가하는 사고방식을 반성하게 되었다. 전 세계 인구가 몇십억 명이라면 그만큼의 ‘나'가 있고, 그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내 기준으로 남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인가.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닐 때가 많다. 사람들은 나를 만나지만 사실은 내가 아니라 자신들이 상상하고 추측하는 나를 만난다.'(38쪽).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 답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나는 성장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넌 누구처럼 공부 잘해야 한다', 또 '너는 그 일을 못 할 것 같다', '너한테 그 일은 잘 맞지 않는다', 혹은 '여자는 이래야 한다' 등과 같은 말들을 수없이 들었다. 이러한 ‘안내'에 맞추어 살다 보니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하여 생각할 틈이 없었다. 나는 타인이 상상하고 추측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시화 님의 글은 내게 그 틈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늘 변해 가고 있고, 내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거야!"


사진_부 티 투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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