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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바로보는 불교_무념 스님

종교의 본질

종교의 본질

옛날에는 각박한 삶이었다. 툭하면 전쟁이 터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칭기즈칸이나 히틀러와 같은 미친놈들이 등장하면 세상은 뒤집히고 무수히 많은 생명이 쓰러졌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사람들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겼다. 툭하면 기근이 들고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농사를 짓기 힘들었다. 툭하면 역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수명은 오십을 넘기 힘들었고 육십을 넘기면 잔치를 벌였다.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었으며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두려움과 공포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을 찾았다. 신에게 의지해서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래서 종교가 태어났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럼 현대는 어떤가? 이제 전쟁, 기근, 역병이 없다. 두려움과 공포가 없다. 높은 도덕률과 과학이 천재지변의 두려움과 공포를 없애버렸다. 이제 신을 찾을 필요가 없다. 옛날에는 생존의 불확실성 때문에 신을 찾았지만, 지금은 조금만 노력하면 생존은 큰 문제가 아니다. 현대는 탐욕으로 신을 찾지 않으면 특별히 신을 찾을 이유가 없다. 이제 마음을 다스리고 착하고 선하게 살면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현대는 왜 옛날보다 더 광신도들이 많을까? 왜 종교가 판을 치고 있을까?

그것은 종교가 사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종교 사업가들이 등장하여 없는 공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인식시킨다. 마음에서 두려움이 자라나면 나약한 인간은 다시 신을 찾는다. 종교 사기꾼들이 공포를 이용해서 돈을 착취한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가 비과학적, 비논리적,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종교 사기꾼들이 교묘하게 더 조직적이고 더 괴상한 교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착취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나 수법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신은 신성하다. 산은 성스러운 공간에만 존재한다. 그래서 사기꾼들은 신이 머무르는 공간을 엄숙하고 장엄하게 꾸민다. 공간이 장엄하면 장엄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몰려온다. 그 엄숙하고 장엄한 공간에만 오면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지고 호주머니에서 돈이 저절로 나오게 만든다. 그 장엄한 공간밖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을 보려면 반드시 그 신성한 공간으로 가야 한다. 그곳에 가서 돈을 내야만 신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신이 머물 수 있게 공간을 장엄하게 꾸며놓았는데도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잘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 신성한 공간으로 사람들을 끌어올 끌고 올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신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육칠 개월 동안 교육생들을 모집해서 집중교육을 한다. 종말론으로 공포를 주입하고 구원론으로 돈을 갖다 바치게 만든다. 너무 돈만 밝히면 오해를 살 수 있으므로 사랑과 희생과 봉사를 양념으로 가르친다. 종말론과 구원론이 먹히지 않으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인 탐욕을 활용한다. 신을 믿으면 신이 많은 돈을 벌게 해준다는 관념을 심어준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므로 그 욕망에 기대서 종교가 자라난다. 욕망이 끝이 없으므로 종교는 결코 사양산업이 될 수 없다. 세상에 역병이 퍼지며 목숨이 위태로워도 주일에는 그 신성한 공간에 와서 출석 도장을 반드시 찍어야 한다. 주일 모임에 한 번이라도 빠지면 신이 구원 명단에서 제외시켜 버릴 수 있다. 그렇게 장기간 세뇌를 시킨다. 그 괴상한 교리고 사람들을 옭아맨다. 이렇게 교육과정이 끝나면 어지간한 인간들은 세뇌가 완성된다. 한 번 관념이 박히면 이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공간에 격리시키고 금식을 시킨다. 금식기도가 신을 만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옛날에는 기근으로 저절로 신을 찾게 되었는데 현대에는 일부로 굶겨야 신을 어렴풋이 인식한다. 굶으면 정신이 혼미해지므로 신이 잘 보인다. 제정신이면 신이 보이지 않는다. 이삼일 굶고서 계속 신을 찾고 찬양하고 오직 신만을 생각하면 신이 환영을 드러낸다. 이해할 수 없는 신의 말씀이 입을 통해서 흘러나온다. 제정신이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이런 일은 비몽사몽 간에 일어나는 것이지 정상적인 정신으로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이 자신에게 강림했다는 기쁨에 카타르시스가 일어난다. 신성이 자신의 몸에 들어왔다는 황홀감이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고 영원한 신의 종이 된다.

꼭 금식기도가 아니더라도 한 일 년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어떤 특별한 공간에 들어가 열심히 기도한다면 신이 항상 자신과 함께한다는 특별한 인식이 형성된다. 그 특별한 인식이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렇게 굳어진 관념이 자신을 지배한다. 종교는 철저하게 이런 미신적 신비주의로 사람들을 속인다. 어떤 기쁨과 희열의 감정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신의 은총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깨달음이고 진리라고 여긴다. 이제 신과 소통했으므로 영원히 구원을 받았다.

이런 감정들, 기쁨과 희열, 황홀감에 흘러내리는 눈물은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이다. 신의 형상이 나타나고 신의 말씀이 머리에서 들리는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판타지이다. 스스로가 만든 환영에 스스로가 속는다. 지혜가 없는 자는 이것이 마음이 만든 환영임을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법구경 첫 번째 게송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로 시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종교란 어리석은 자들의 관념 놀이다. 지혜로운 자들은 절대 속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지혜로운 자들보다 어리석은 자들이 훨씬 많다.

- 무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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